라오스의 수도인 비엔티안은 한마디로 심심한 곳이다. 아니 내가 가 본 라오스라는 나라의 대부분이 심심한 곳이다. 재촉하는 것도 바쁠 것도 없는, 가라는 사람도, 오라는 사람도 없는...말하자면 말 없는 친구 같은 모습이랄까. 그래서 라오스 관련 기행문이나 서적을 훑어보면 하나같이 밋밋하고 구멍이 술술 뚫려 바람이 지나가는 형국 같은 모양새를 띠고 있다.
특히 비엔티안이 그랬다. 비엔티안을 떠올릴 수 있는 키워드가 무엇일까를 생각해보았다. 메콩강, 바케뜨, 라오커피, 비어라오, 탓 루앙, 딸랏 사오(재래시장), 폰 트래블, 대통령궁, 독참파(라오스국화), 아무거나 시켜도 맛있는 라오스 음식...그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역시 라오스인의 미소였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 민규라는 이름의 학생이 몇 명 있는데 그 중 내가 말하고자 하는 민규는 여러모로 주목을 받는 학생이다. 신입생 시절부터 남달리 늙은 얼굴과 세상 풍파에 찌든 것 같은 곱지 않은 인상으로 아무도 근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내품었다. 건들거리며 걸어가는 폼새를 봐도 한 눈에 한 인물할 것 같은 아우라를 품고 있는 녀석이다. 물론 녀석을 둘러싸고 크고 작은 사건이 끊이지 않아서 늘 선생들을 긴장 시키곤 한다. 한마디로 무서운 녀석이다.
그런데 비엔티안의 한 게스트하우스에서 그 민규 녀석의 원형을 만났다. 민규 녀석의 거칠고 반항적이고 안하무인격인 분위기를 모두 제거한, 말 그대로 녀석의 원형 같은 얼굴을 만난 것이다. 나쁜 기운이 모두 제거된 얼굴에 살짝 드리워진 미소라니...사진을 한 컷 찍어 민규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사진 좀 함께 찍을 수 있냐고 물었더니 거절의 미소가 돌아왔다. 거절의 미소마저 아름다웠다. 그렇다면 이 라오스 어딘가에 내 얼굴의 원형 하나쯤 있지 않을까 싶다. 욕심도 떨어져나가고 무관심과 무뚝뚝함의 더께를 덜어낸 내 본연의 얼굴 하나쯤 어딘가에서 아름답게 살고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너무나 인상적인 그림 하나. 경비병이 보이지 않는 대통령궁이 있다. 가까이 다가가 사진을 찍어도 아무도 제지하지 않는다. 외관이야 당연히 적당히 화려하고 적당히 도도하지만, 정문을 지키는 경비병 하나 눈에 띄지 않아서 그곳이 대통령궁인지 예술회관인지 아니면 갑부의 대저택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였다. 경비병 없는-물론 어딘가 보이지 않는 곳에 있겠지만- 대통령궁은 무언가 허를 찌르는 듯한 전율을 느끼게 했다.
비엔티안은 이렇게 무장 해제, 긴장 해제 시키는 곳이다. 마치 시골 외할머니 동네 같은 곳이다. 그러니 이곳은 카메라에 담기 보다 마음에 담아오기에 더 잘 어울리는 곳이다. 부디 카메라일랑은 한 켠으로 치워두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