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혜옹주 (양장) - 대한제국 마지막 황녀
혼마 야스코 지음, 이훈 옮김 / 역사공간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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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노무현 대통령의 49재가 있는 날이다. 그때의 충격과 슬픔, 분노도 이제는 서서히 잦아들고 있다. 그래도 살아남은 사람은 살게 마련이다,라고 했던가. 어떻게든 그래도 삶은 살아진다. 조금만 비겁해지려고 마음 먹으면 못살 것도 없는데...그래도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인지는 모르겠지만.

고종의 고명딸이며 이씨 조선의 마지막 왕녀였던 덕혜옹주에 관한 책을 읽었다. 평소대로라면 나는 이런 류의 책에는 거의 손을 대지 않는다. 더구나 왕조사하면 더욱 질색이다. 그런데 이 책이 그런 나의 편견과 무지를 단박에 깨뜨렸다. 덕혜옹주의 생애를 집중 조명하면서 그를 둘러싼 오해를 차근차근 풀어나가는 열정과 솜씨가 독서의 즐거움을 주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눈시울을 적시고 위안을 받았다면, 시대의 희생양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는 한 여자의 쓸쓸하고도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러운 삶을 그래도 한조각 살려내려고 애썼다는 점이다. 남편이었던 대마도의 백작인 소 타케유키의 인간됨을 누누이 강조하면서, 한 여자로서 그리고 한남자의 아내로서 사랑을 받았다는 점에 시종일관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읽다보면 그대로 믿고 싶은 심정이 강렬해진다. 묘한 느낌이다.   

덕혜옹주의 정신분열증을 설명하기위해 저자가 어느 책에서 인용한 부분 -' 분열증 환자(여성)들에게서는 "모성"적인 것에 대한 경험이 공통적으로 결여되어 있었다' - 은 나름 탁월한 해석이라고 여겨진다. 결과적으로 덕혜옹주는 여러 가지 요인으로 평생 정신병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는데 이를 둘러싼 많은 오해를 풀이하면서, 내내 침묵을 지키며 뭇오해를 감당할 수 밖에 없었던 소 타케유키를 위해서도 많은 장을 할애하고 있다. 그들을 향한 시선이 참 따뜻하다.

덕혜옹주에 대한 인간적인 연민일까? 물론 이 책을 쓴 사람이 일본인이라는 사실을 꼭 집고 넘어가야한다. 가해자인 그들의 입장에서라면 이렇게해서라도 그들의 죄책감을 덜어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일본과의 관계에서는 왜 꼭 이런 부분을 따지게 되는지..어지럽다.) 

하나 더. 덕혜옹주에게는 마사에라는 딸이 있었는데 어느 날 홀연히 사라져서 행방불명 되었다한다.  그녀의 장례식에는 '작은 항아리에 한 알의 진주를 넣고 그것을 상자에 담아 치렀다고 한다,' 그녀의 아버지였던 소 타케유키는 생전에는 끝내 마사에의 사망신고를 내지 못했다고도 한다. 1976년에 발표된 그의 <진주>라는 시가 심금을 울려 옮겨본다. 마침 노무현 대통령 49재라서 더욱 더 절절하게 다가온다. 

   
 

여름 산 푸른 잎 우거진 길을 넘어갔음에 틀림없다
  

바위가 많은 곳을 지나가면 

작은 돌들이 뒹구는 강가 

그날 그 언저리는 

비가 내렸을 것이라 한다 

조금만 더 가면 길은 끊겨버린다 

하늘로 나는 것 이외에는 방법이 없다 

 

하늘로 날아가 버린 걸까 하얀 비둘기처럼 

(일부러 버렸을까 젊은 날의 갈피를) 

 

납골당의 작은 항아리에 

면으로 휘감겨 있는 작은 진주여!                                                  

 
   
17살에 앓기 시작한 정신분열증은 77세로 세상을 마감할 때까지 덕혜옹주를 괴롭혔다한다. 그 한많고 쓸쓸한 인생을 그나마 한조각 복원하려고 애썼던 이 일본인 저자가 그래서 참 고맙고 몇 년에 걸친 열정의 작업에 새삼 감탄스러워진다. 어디까지나 고마운 것은 고마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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