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사막, 고비를 건너다
라인홀트 메스너 지음, 모명숙 옮김 / 황금나침반 / 2006년 11월
평점 :
품절


라인홀트 메스너 

현대의 전설적인 모험가. 

그가 쓴 책을 읽은 것은 이것이 처음이다. 생각했던 것보다 차분하고 관조적인 글이다. 아마도 예순을 넘긴 나이 때문이 아닐까싶다. 젊은 시절에 쓴 책을 읽으면 다른 느낌이 들지 않을까. 

p. 41  발로 걸어서 다니고 싶었던 것이다. 독자적으로 제 발로 걸어간다. 이것이 내가 길을 떠나는 전제 조건이었다...오프로드 자동차와 헬리콥터의 공중 지원이 생긴 후로 어떤 식으로든 고비 사막 횡단은 실행 가능해졌고, 나처럼 조건을 달지 않는 게 가소로운 짓이 되었다. 오늘날은 기술을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나는 그 기술을 자발적으로 포기하려고 한다.  
p. 55  나는 형이 떠난 후 예전에 형과 함께 주었던 닭 모이를 처음으로 혼자서 주었을 때 소리 내지 않고 조용히 울먹였다. 
p. 95  나는 회상을 통해 아버지에 대해 커다란 존경심을 갖게 되었다. 아버지는 전쟁 시기를 제외하고는 언제나 빌뇌스에 머물렀다. 원래 내키지 않는 삶을 오래 산다는 것은 자기의 백일몽을 좇는 것보다 더 어렵고 결국 더 용감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마흔 살이 되어서 그것을 아주 다르게 생각했던 일이 기억난다.  
p. 199  중부 유럽에 사는 것이 아무리 좋아도, 나는 광활한 지평선에 대한 중독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했다. 집이 있는 주발 성의 담에서 추락한 이후에도 지평선에 대한 갈망은 사라지지 않았다. 병적인 방랑벽 때문에 도저히 가만히 머물 수가 없었다. 여행했다고 해서 내가 더 노련해지거나 현명해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오래 돌아다닌 것 때문에 더 늙고 몸만 뻣뻣해졌을 뿐이다. 

다른 때에 이 책을 읽는다면 다른 구절을 옮겨 적었을 지도 모른다. 책 뒤 표지에 있는 아름다운 글 같은 것.  이를테면 ' 마음 속에 있는 사막 한가운데' 같은 표현. 그러나 나는 이런 식의 표현이 마음에 와닿지는 않는다. 차라리 등반 길에 사고로 잃어버린 형제에 관한 이야기나 어린 시절의 형 이야기가 더 진하게 가슴에 와 닿는다. 마음 속의 사막이란 아무리 드러내고 싶어도 타인은 알 수 없지 않을까. 혼자서 그저 읖조릴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몇 주 동안 홀로 사막을 걸어가며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겠는가. 묵묵히 그리고 힘겹게 걸어가며 자신에게 말을 걸거나 옛 생각에 빠져들거나 명상에 접어들거나 아니면 사막처럼 텅 비게 되지 않을까. 이런 내면의 세계는 직접 경험해보는 것이 가장 좋겠는데 그러고 싶은데, 대신 이 위대한 모험가가 쓴 책을 통해 대리경험을 해보는 수 밖에..... 

여행이랍시고 며칠만 돌아다녀도 눈에 띄게 늙어가는 게 무엇인지 조금씩 몸으로 체험하는 나이가 되었다, 나도. 여행 중에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보고 놀랐으니까. 그래서 나는 "여행했다고 해서 내가 노련해지거나 현명해진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는 이 솔직함에 더 마음이 끌리는 것이다. 도저히 가만히 머물지 못하게 하는 그의 방랑벽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하고, 감히. 

만약 내가 사막을 여행한다면 나도 이 모험가처럼 "가소로운 짓"을 하고싶다. 너무나 잘 짜여진 밥 잘 먹여주는 여행 대신, 내 두 발을 혹사해가며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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