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득이라는 왕이 있었다.  

  후에는 베트남의 마지막 왕조인 응우웬 왕조가 1802년 부터 약 150년 동안 13명의 왕이 다스리며 도읍지로 삼은 곳이다. 뜨득은 그 중 네 번째 왕이다.  

  가이드북에 있는 내용은 될 수 있는 한 인용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데 이 부분은 어쩔 수 없을 것 같다. 이 뜨득이라는 왕이 대단한 호기심을 유발시키지만 자료가 불충분하고 도서관이나 서점에 가서 베트남 역사를 뒤적거리기에는 내 열정이 절대 부족하기 때문이다. 

  36년 간의 장기 집권, 104명의 부인과 수많은 후궁을 거느린 왕, 베트남이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는 시기에 왕 자리에 있었던 왕. 어린시절 천연두를 앓은 후 키가 자라지 않아 153cm에서 멈추었고 자식이 없었던 왕.  

  후손이 없는 뜨득이 자신의 사후를 위하여 스스로 만든 왕릉이 바로 뜨득 황제릉이라는 곳이다. 넓은 대지에 있는 그대로의 지형을 살려 아름답게 건물들이 들어서 있고, 배를 띄어 낚시를 즐겼다는 호수도 적당한 크기로 전체와 고즈넉한 조화를 이루고 있어서, 이곳은 죽은 자를 위한 능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운치있는 별장에 가깝다.  

  이 뜨득이라는 왕에 대한 이야기는 온갖 수치가 곁들여진다. 3년 동안 이 왕릉을 짓는데 약 3,000명의 군인과 노동자가 동원되었으며, 식사 때마다 50명의 요리사와 50명의 하인이 수행했으며, 실제로 그의 시신이 안장된 (이 왕릉이 아닌) 제 3의 장소의 무덤안에는 엄청난 보물을 묻어놓고는 도굴을 방지하기 위해 공사에 참여했던 200여 명의 인부들을 모두 살해했다는 등 어디까지가 진실인지도 모르는 이야기들이 무성하다. 

  그러나 이 왕릉의 호숫가나 후미진 어느 구석, 혹은 아무 나무 그늘 밑이라도 잠시나마 앉아보면 연잎에 떨어진 이슬을 받아 차를 마셨다는 얘기가 거짓은 아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시 짓기를 즐겼고 철학, 동양역사, 문학에도 조예가 깊었다는 것에도 고개를 끄덕일 만하다.  

  후에에서 3달러짜리 여행사  일일투어를 신청하면 제일 먼저 들르게 되는 곳이 이 뜨득왕릉이다. 이 3달러라는 요금에는 보트비용(오전 8시 부터 오후 4시 30분까지)과 점심, 영어가이드가 포함되어있다. 점심 식사는 분명 포함 사항인데 배에 오르면 점심 메뉴판을 내밀어 메뉴를 고르게하고 음료수를 사먹도록 무언의 눈치와 압력을 가한다. 마음이 약한 사람들은 젖먹이 아기엄마가 내미는 메뉴판을 들고 잠시 고민하다가 그 중 한 가지를 고른다. 가격은 투어비용과 엇비슷하지만 워낙 투어 비용이 미안할 정도로 싼 가격이라 그러려니하고 넘어가주기 마련이다. 우리도 그랬다. 그런데 점심으로 나온 국수는 베트남 여행 중 먹었던 것 중에서 제일 형편이 없었다. 강물을 퍼서 육수를 만들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잠시 속이 불편하더니 얼마 후 화장실로 직행해야했다.  

  누구는 연잎에 떨어진 이슬을 받아 차를 마시고, 누구는 강물을 퍼서 만든 음식을 먹고. 3~4개월된 젖먹이 아이에게 젖을 물려가며, 퉁퉁부은 젖을 가려가며, 노를 저어가며, 관광객의 눈치를 살피며 은근한 동정심을 유발하던 뱃사공 아낙이 내내 눈에 밟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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