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여행길에서 우연히 만난다면 - 오래된 여행자 이지상 산문집
이지상 글.사진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오래된 여행자, 이지상의 산문집.

처음 몇 장을 읽었을 때는, 그래 역시 오래된 여행자의 글이라서 좋구나, 싶었다.

반 넘게 읽자 변덕스러운 독자가 되어, 뭐야 맨날 같은 얘기잖아 그 얘기가 그 얘기잖아, 싶었다.

그러다 책의 끝이 보일무렵, 가슴이 짠해지면서 눈물이 핑 돌았다. 바로 이 구절에서..

p,254 "시베리아 평원에서 볼을 스치던 싸늘한 바람

         터키의 어느 골목길에서 코끝을 스치던 빵 굽는 냄새

        그리스의 어느 길가에서 햇빛을 쬐던 고양이

        프라하 구시가지의 카페에서 풍겨나오던 진한 커피 향기

        서역 지방의 카슈가르에서 본 위구르족의 낯선 옷차림"

지난 겨울 인도 여행중, 몸살을 앓고 난 딸아이는 컵라면 몇 젓가락과 작은 식당에서 먹은 버섯수프를 먹고 입맛을 되찾아 나머지 여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는데, 그래서인지 아그라 하면 타지마할을 떠올리는 게 아니라 그 옆에 있었던 작은 식당을 떠올리는 것이다. 몸살 기운에 게스트하우스 옥상의 탁자에 축쳐져 엎드려있던 딸아이 앞에서 알장거리던 다람쥐 두 마리, 그 놈들을 애타는 심정으로 바라보던 우다이푸르에서의 순간들. 순서없이 떠오르는 사소한 이런 풍경들. 어디 이것뿐인가. 심심한 날 이런 풍경들의 목록을 만들어보면 좋겠다.

p.46 ..나는 오래전부터 한 번의 여행은 한 번의 삶이란 얘기를 해왔다.

p.62 ..자신이 살던 세계를 버리고 떠난 사람은 돌아와 가슴속에 자신의 세계를 건설해야 한다. 이 사회에서 만든 신기루 같은 관습과 가치, 윤리와 법과 질서를 버리고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야 한다. 일상은 변한 것이 없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자신의 시각이 변하고, 그에 따라 자신의 가치도 변하기 때문이다.

p.68 "여행이 즐거우려면 현실의 삶에서 스트레스가 많아야 해!"

p.90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여행이 내게 준 것들은 허허로운 자유와 이 세상에 살아도 이곳 사람이 아닌 바람 같은 존재감이었다.

p.188 프랑스의 사회학자 미셸 마페졸리에 의하면 정체성이란 근대성의 산물이다.  합리주의, 기계론적인 세계관, 그 속에서 모든 것이 규격에 맞게 규정되는 사회가 인간에게 요구하는 것이 바로 정체성(identity)이란다.....

역시 이지상의 글은 갈수록 흡입력이 강하다. 계속 좋은 글 쓰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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