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콜카타와 마지막 춤을

   정확히 오후 8시 실리구리를 출발한 야간 에어컨 디럭스 버스. 로얄이라는 수식어도 붙어 있었지, 아마. 그간 인도에서 타 본 모든 차량을 통틀어 제일 그럴싸해 보이는 버스다. 물론 우리나라의 우등 고속버스나 공항 리무진 버스 보다야 못하고 시외버스 수준에 고급스러운 좌석 시트가 보태진 정도지만 인도에서는 만나기 쉬운 버스가 아니다. 지금까지 경험으로 보아서. 가격도 상당한 편이다. 다즐링의 숙소가 하루에 600Rs였는데 이 버스 요금은 일인당 800Rs나 된다. 물론 얼마간의 여행사 수수료가 포함된 가격이지만. 겨우 몸을 회복한 남편을 위한 배려이기도 하지만 한번쯤 타보고도 싶었다. 여행 막바지가 가까워오니 움켜잡았던 주머니도 여유가 생긴 탓이다. 그러잖아도 이번 여행은 내게 어떤 의미에서 실험적인 여행이라고 할 수 있는데, 우선 그간 여행 때마다 갖고 다니던 수동 겸용 카메라를 과감하게 버리고 온 것(따라서 사진도 찍지 않았다), 평소 쓰지도 않는 가계부를 여행 때는 꼬박꼬박 기록했는데 그것도 하지 않는 것, 여행의 흔적들인 각종 팸플릿, 영수증 따위를 모으지 않는 것, 아, 이 해방감이라니!

   남편도 기력을 회복하고 딸아이도 옆에서 재잘거리고, 마지막 행선지인 콜카타로 가는 버스는 최고급이고, 세상의 무게를 모두 덜어낸 양, 자못 뿌듯한 기분으로 우쭐거렸지만 그 달콤함도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이 비싼 에어컨 버스는 그 이름에 걸맞게 밤새 에어컨을 절대로 끄지 않는 것이 아닌가. 좌석마다 있는 두꺼운 담요를 틈새를 보일 새라 여기저기 꼼꼼히 여며가며 뒤집어쓰고 입고 간 고어텍스 쟈켓의 후드까지 끈을 조여 가며 썼는데도 한겨울의 에어컨 바람 아래에서는 도통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14시간을 그렇게 달렸다. 가히 최악의 밤이었다고나 할까. 여기저기서 콜록거리는 소리가 들려도 누구 하나 에어컨을 줄여달라는 말조차 하지 않는다. 말로만 듣던 악명 높은 에어컨 버스가 바로 이것이구먼, 그래 이것도 경험이지. 여긴 인도니까.

   

   콜카타에선 순데르반스 국립공원과 샨티니케탄을 일정에 꼭 넣을 작정이었다.

다른 곳은 별 의미가 없어보여서 고려하지도 않았는데 결과적으로 고려하지 않은 곳들에 의미를 붙이는 작업이 되었다. 둘레가 450m에 이르고 4,500여 평의 땅을 차지하고 있는 단 한 그루의 나무, 반얀트리. 뻗어 내린 줄기가 뿌리가 되어 퍼져 나가서 숲을 이루고 있는 모습이 축소판 인도 같다. 가난한 인도 서민의 삶은 길 위에서 이루어진다. 밥을 먹고, 몸을 씻고, 대소변을 보고, 이웃과 만나고, 아이들을 돌보고, 돈을 버는 일 들이 모두 길 위에서 이루어진다. 그 드넓은 땅덩어리에서 제 몸 하나 편안히 머물 곳 없는 부지기수의 사람들은 제각각 뿌리를 땅에 내리고 줄기로 서기위해 아등바등하는 나무와 같다. 그러나 숲을 이룬 나무는 그늘을 만들며 누군가의 쉼터가 되어 주지만 이 길 위의 사람들은 누군가의 거대한 그늘에 가려 하루하루 힘겹게 삶을 영위해 갈 뿐이다.

   네타지(Netaji)라는 인도 독립의 영웅 기념관도 갔었다.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수바스 찬드라 보세(Subhas Chandra Bose). 네타지로 불리는 이 유명한 영웅의 기념관을 우리가 어찌 알았으며, 알았다한들 구태여 찾아 갔으리요. 당일짜리 시티투어에 참가한 덕분에 애국심 고취시키기로 작정한 프로그램에 따라 우리도 하루짜리 인도 국민이 된 것이었다. 벵골 지방의 독립 운동사를 전시 설명한 시청사 건물에서는 시뮬레이션으로 구성된 시위 대열에도 참여하여 만세를 부르짖기도 했다. 불가촉천민으로 태어나 인간 해방을 위해 치열하게 투쟁했던 암베르카드 선생이 나와 같은 무색무취의 호사가들을 보면 어떤 말을 할까?




   암베르카드: 간디 선생님, 저에게는 조국이 없습니다.

   간디: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암베르카드의 말을 끊는다) 조국이 없다니 무슨 말씀이십니까?.....박사님이야말로 그 누구보다도 훌륭한 애국자이십니다.

   암베르카드: 선생님은 저에게 조국이 있다고 하십니다만, 다시 한 번 분명히 말씀드리건대 저에게는 조국이 없습니다. 개나 돼지보다도 못한 취급을 당하면서 마실 물도 얻어먹을 수 없는 이 땅을 어떻게 저의 조국이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그런 나라의 종교가 어떻게 저의 종교가 될 수 있겠습니까? 눈꼽만한 자부심이라도 갖고 있는 불가촉천민이라면 결코 이 땅을 자랑스러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 땅이 우리에게 가하는 불의와 고통은 너무나 엄청납니다. 그래서 우리가 부지불식간에 이 나라에 불충한 생각을 품더라도 그 책임은 전적으로 이 나라에 있는 것이지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암베르카드-인도 불가촉천민 해방자․현대 인도불교의 중흥자>by 디완 챤드 아히르 지음, 이명권 옮김. 에피스테메 출판)




   마지막 날 콜카타에서 다시 심한 장염에 걸린 남편은 한국에 돌아와서도 한동안 앓고 나서야 몸을 회복할 수 있었다. 14년 전 첫 인도 여행에서 돌아온 후 나는 인도 신화나 역사에 빠져들었고 그 쪽 분야의 책을 읽어 나갔는데, 이번 여행이 첫 인도 여행이었던 남편은 <암베르카드>라는 책을 먼저 손에 집어 들기 시작했다. 다시는 인도에 가지 않겠다는 말과 함께. 그나저나 나는 다시 가야 되는데, 어쩌나?




“ 이 책을 250Rs에 주신다면 저는 다시 인도에 올게요.”

“ 몇 번이나 인도에 왔었나요?”

“ 이번이 네번 째 인데요.”

“ 좋아요. 가져가요.”

우다이푸르 한 서점에서 <DK Eyewitness Travel Guides- INDIA>라는 중고책을 흥정하면서 늙수레한 서점 주인과 주고받은 약속 아닌 약속이 있는데, 어쩌나?

                                        

                                                        2008년 3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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