써지지 않는 기행문, 백두산(2007년 8월 11일 ~ 16일)


1. 세 끼니의 밥을 일말의 고민이나 망설임 없이 주는 대로 먹는 다는 것, 그것도 제대로 된 구색 맞춘 밥을, 그것도 여행지에서. 하루 밤 잠자리를 위해 무거운 배낭을 메고 낯선 거리를 헤매며 싸구려 호텔을 찾아 가격을 흥정하여 겨우 방 하나 얻고는 마침내 안도의 숨을 내쉬는 행위가 생략되어버린 여행. 터덜거리며 신발을 질질 끌며 생수 병을 손에 들고 휘저으며 여기저기 탐색의 눈길을 번들거릴 필요가 없는 단순 명쾌한 깔끔한 여행. 여행자의 전설과 신화가 안전하게 묻혀버리는 여행. 패키지 여행.


2. 최소한 한 달, 참고 서적을 훑어가며, 심지어 고등학교 교과서까지 참고하며, 지도를 그려가면서 준비하는 역사 기행. 동학혁명 역사 기행을 그렇게 해 보았다. 이십여 년 전에.(참, 그때는 환상적인 백수 시절이었다.) 얄팍한 지식과 준비 과정 없는 역사 기행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과 허탈감을 안겨준다. 흠, 이번 백두산과 고구려 유적지 답사가 그랬다. 주몽이 주름잡던 곳, 빈약한 내 상상력과 보잘 것 없는 지식이 마구마구 내 멱살을 휘어잡고 휘둘러댔다.


3. 전혜숙.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람. 또 있다. 김놈석.

돌아가신 아버지의 전처 딸과 전처. 아무도 이들 이름을 기억하지 않는다. 잊어도 상관없는 사람들이건만, 그런데도 잊혀지지 않는다. 작년에는 호적에 남아있는 김놈석이라는 이름 덕분에 한바탕 난리를 부렸었다. DNA 유전자 검사도 해보고 법정에 나가 재판이라는 과정에도 참석해보았다. 우리 가족이 그간 겪어야 했던 마음고생을 생각해보면 희극적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해프닝 같은 재판이라니.

  가족사는,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신파극. 압록강 변을 따라 버스로 달리는 백두산행에는 여행 내내 비까지 내렸다. 화면에 비 내리는 무성 영화 한 편. 글 이전에 눈물이 앞선다.   

4. 판문점. 아마도 교사라는 신분이 있어서 가 볼 수 있었던 곳. 정장과 정장 구두차림으로 가야했고, 수술 전 서명을 받는 동의서와 비슷한 각서 한 통에 서명을 해야 하는 절차를 거쳐야했던 곳. 패키지로 온 듯한 외국인 단체 여행객들, 아 이들에게는 마음만 먹으면 올 수 있는 관광지구나, 에 놀랐던 곳. 남과 북이 만나 회담을 하는 회의실, 한 가운데 선이 그어져 있었던가. 하여튼 북쪽 측 땅을 살포시 밟고는 얼마나 감격했던지...관광지로서는 최고의 긴장감과 동시에 황홀감을 맛보았던 곳.

  육로로 아버지의 고향인 경기도 개풍군과 어머니의 고향인 황해도 해주를 거쳐 평양에서도 며칠 머물다가 내 두 발로 이 땅을 꼭 꼭 밟으며 백두산에 오른다면, 정말 그럴 수 있다면, 진짜 그렇게 된다면, 그 땐 수십 장 수백 장에 달하는 기행문을 한 번 써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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