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컴한 새벽. 늙은 개는 늙은 인간처럼 새벽잠이 없는지 머리맡에서 끙끙대는 통에 잠을 이을 수가 없다. 더듬더듬 목줄 채우고, 배변봉투 챙기고, 눈 비비며 흐느적 흐느적 걷다가 오늘은 그만 빗물이 질펀한 화단가의 진흙을 밟고 말았다. 오른쪽 무릎이 땅에 부딪히면서 양쪽 다리가 꺾여 거꾸로 된 w 자가 되었다. 당장 아프기도 하지만 여전히 문제가 있는 오른쪽 무릎 때문에 걱정이 앞섰다. 설상가상이다.




이 녀석을 하루에 두 번씩 숙제하듯 꼬박꼬박 산책을 시키며 수발을 들어준다. 나의 원래 지론은 이랬다. '개는 개답게 키워라.' 즉 개는 실외에서 줄에 묶은 채 키우는 게 맞다는 생각으로 살았는데 딸내미의 '전도'로 유기견을 키우게 되면서 새로운 세계에 진입하게 되었다. 


처음과는 달리 해가 지날수록 배변 실수가 잦아지는데 아마도 나이 탓이겠거니 여기다가도 짜증이 나는 건 나 또한 늙어가기 때문이다. 곰곰이 생각해본다. 딸이 어렸을 적에 이렇게 정성스럽게 딸이 누는 똥을 닦아줬던가. 부모가 늙고 병들었을 때 내 손으로 똥오줌 받아본 적이 있던가. 직장에 다닌다고 어린 딸을 시어머니께 맡기고 주말과 방학 때 잠깐씩 봐준 게 전부. 딸의 유아시절을 오롯이 함께 보내지 못했다. 정신차리고 보니 딸은 부모의 이상한 교육열에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어린 딸의 똥오줌을 제대로 봐주지 못한 죄값이 컸다. 부모한테는 더 가혹했다. 역시 직장 핑계로 모든 돌봄에서 벗어나 있었는데 지나고보니 당장의 안일을 추구했을 뿐 생각과 행동이 한없이 가벼웠었다. 병원에서 사경을 헤매는 엄마의 똥오줌을 한번도 내 손으로 봐드린 적이 없었다.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부모한테 받는 것을 당연하게만 여겼다. 


그간 부모와 자식에게 못한 정성을 개에게 기울이면서 때늦은 감상에 젖는다. 어리석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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