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미국에 가지 말 걸 그랬어
해길 지음 / 텍스트칼로리 / 2021년 9월
평점 :
품절



" 여기 와서 일 년만 김밥 말아보쇼. 선생 때려치우고 온 걸 두고두고 후회할거요."

" 여기는 물과 공기만 좋아요. 말하자면 심심한 천국이지요."

" 우리 내일 라면 함께 끓여 먹어요. 여기선 라면 함께 먹는 날이 소풍날이예요."

" 외국은 여행이나 다녀야지 직접 외국에서 사는 건 아니랍니다."


2003년 뉴질랜드에 갔을 때 얘기이다. 당시 외국어과 교사 대상으로 해외 배낭연수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운 좋게 당첨되어 170만 원을 보조 받았다. 연수 해당 국가는 미국, 영국, 호주, 유럽, 뉴질랜드로 주로 영어권 국가에 한정되었다. 공용어로 영어를 사용하는 인도를 비롯한 아시아권 국가는 왜 해당이 안되는지 그때나 지금이나 당혹스럽다. 유럽에서 영어를 사용할 기회보다 인도에서 영어를 사용할 기회가 훨씬 많은데도 말이다. 흑인 원어민 교사를 채용하지 않는 것과 비슷한 이치겠지. 지금은 좀 달라졌는지 모르지만. 뉴질랜드를 선택한 사람은 내가 유일했다. 


일주일은 패키지로 뉴질랜드 남북을 훑어보았다. 나머지 열흘은 동료교사 언니가 운영하는 오클랜드 외곽에 위치한 한 모텔에 묵으며 현지인처럼 지내보았다. 매일 버스를 타고 오클랜드 시내로 출퇴근했다. 대학에도 가보고 영화도 보고 맥주공장 견학도 하고 수족관도 가고.... 그러다가 어느날은 동료교사의 언니를 비롯한 한국인들과 어울려 월남쌈을 해먹기도 하고 현지인이 애용하는 온천에도 다녀왔다. 그들 중에는 퇴직하고 이민온 노부부가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지금의 내 나이쯤 되는 분들이었던 것 같았다. 그분들이 내게 물었다. 오클랜드 시내 가는 버스요금이 얼마냐고. 자기들은 한번도 타본 적이 없노라고. "그거요. 손바닥에 동전 몇개 올려놓고 기사분한테 알아서 가져가시라고 했죠. 그래서 요금을 알게되어서 그 다음부터는 딱 맞게 내고 타게 되었어요." 맥주공장 견학도 다녀왔다고 했더니 어떻게 알고 갔냐고 물었다. 여행안내소에 있는 브로슈어 보고 다녔왔다고 하니 "그런 방법도 있네요."하면서 신기해했다. 그렇게 두어 번 어울리다보니 한국이민자들 얘기와 이민생활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것들을 듣게 되었다. 대책없이 온 어떤 가족 얘기, 선생 때려치우고 이민와서 하루종일 김밥 마는 어떤 분 얘기, 이민 초기 운전이 익숙하지 않아 3시간 동안 직진했던 얘기 등. 그리고 위의 저 대화들. 듣다보니 이민생활이 그리 행복해보이지 않았다. 유일한 낙이라면 한인상가에 가서 비디오테이프 빌려다가 보는 것 정도. 이민자들끼리 함께 라면이나 맛있는 음식 해먹는 정도. 그리고 무엇보다 무료해보였다. 영어를 잘 못하니 키위(현지인)들과 어울리지도 못하는 실정이었다. 그래도 이분들은 돈을 벌어야하는 압박감은 없어보였다. 부인은 전직 초등학교 교사여서 연금을 받고 있으며 한국을 오가며 생활한다고 했다.


여차하면 이민이나 가야지, 하고 막연하게 마음 먹고 동경도 품고 있었는데 단박에 정신이 들었다. 아, 니, 구, 나......하고.



이 책을 읽다보면 절로 한숨이 나온다. 어떻게 하는 일마다 망해버릴 수 있을까. 예전에 우리 아버지가 그랬다. 잉어 양어장, 양계장, 약초 재배, 향나무 재배, 시멘트 매매....하는 것마다 처절하게 실패했다. 답답한 엄마가 점쟁이를 찾아갔더니, 가만 있는 게 도와주는 것이라고 했단다. 그냥 한국에 있었으면 절대 하지도 않을 고생을 온식구가 7년에 걸쳐 재산 탕진해가면서 고생은 고생대로 했다는 게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쩌릿쩌릿했다. 귀촌이나 귀농도 최종 결정을 내리기 전에 한달살기, 일년살기를 해보는 게 실패를 줄이는 방법인데 하물며 외국 이민이야....



이 책은 아주 고마운 책이다. 미국에 막연한 동경을 품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특히 더.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도 내가알던 친구들이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친구들은 학생 티를 벗지 못한 사회 초년생들이었는데 어느새 한 분야에서 자리를 잡고 조직에서도 중요한 위치까지 올라가 있었다. 대학가 근처에서 저렴한 술집이나 찾아다니던 예전의 친구들이 아니었다. 연예인 못지않은 머리 스타일에 유행하는 옷을 입고, 브랜드 가방을 멘 모습이 눈부셨다. 반면에 나는 미국에 갈 때 가져갔던 옷을 그대로 입고 낡은 가방을 메고 있었다.

                                                                                  -248쪽



7년간의 고생이 빛을 발할 때가 있을 거예요. 기죽지 마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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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31 11: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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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31 11: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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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31 14:1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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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01 09: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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