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어서 괴로운 점도 있지만 나이 들어서 좋은 점도 적지 않다. 그중 가장 큰 것은, 더 이상 눈치보지 않아도 된다는 것. 뭐 그렇다고 함부로 말하거나 행동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비교적 자유롭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몸사릴 일이 줄어들었으니 좀 더 당당하게 자기 목소리를 낼 수도 있다. 다만 우리가 사는 사회를 위한 공적인 면을 우선으로 한다면.

 

 

뭐 이런 책은 읽어도 그만 안 읽어도 그만이지만....그런 기분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다음 부분에서 속이 뻥 뚤렸다. 읽어보시라.

 

 

  나는 1987년부터 '해외일본인선교사 활동원조후원회(통칭 JOMAS)라는 NGO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외국에서 활동하는 일본인 신부님과 수녀님을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것인데, 인간은 모두가 도둑이다, 라는 가치관을 신조로 출발했습니다.

  어떤 나라를 막론하고 대통령도, 장관도, 시장도, 군수도, 이장도, 의사도, 가톨릭 주교도, 복지 위원도, 교사도, 군인도, 경찰도, 가난한 사람들끼리도 도둑질을 합니다. 돈을 모금해 일본인 선교사에게 지원하는 것만으로는 안심할 수가 없었습니다. 즉 우리는 수녀님들마저도 믿지 않았던 것입니다. 지원금이 목적대로 사용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남미, 인도, 아프리카의 오지까지 날아갔습니다.

  그동안 JOMAS의 모금액과 사용액이 얼마나 되는지를 조사해보았습니다. 2007년 말을 기준으로 35년 간 무려 14억 7431만 8000엔을 모금했습니다. 다행히도 모금액의 99.9퍼센트가 정확히 사용되었습니다. 우리가 처음부터 사람을 믿지 않았기에 가능한 성과입니다. 일본인 선교사는 물론이고 극소수 외국인 신부와 수녀를 대상으로도 돈의 사용처를 엄격하게 감독한 결과였습니다.         -31쪽

 

 

'인간은 모두가 도둑이다.'

요즘 내가 읽은 문장 중 가장 솔직하고 직설적인 표현이어서 자꾸 읊조리게 된다는 말씀.

 

그렇다면 나도 '도둑'인가? 대학 신입생 때 써클활동(탈춤반)을 잠시 했었다. 5월 축제 때 우리 써클도 부스를 만들어서 빈대떡 등을 팔았는데 금전 담당으로 선배들이 나를 지목하는 바람에 때 아닌 돈주머니를 차는 영광(?)을 누렸다. 아마도 정직하고 고지식하게 보이는 내 얼굴 덕이 아니었을까 생각되는데 내가 심정적으로도 도둑일 수 없었던 때는 딱 그때까지가 아니었을까싶다.

그때였다면 저 위의 문장을 읽고 이렇게 의미심장한 웃음을 짓지는 못했을테니까.

 

해외아동을 돕는 단체에 가입, 다년간 월 3만 원을 후원금으로 내서 연말정산 혜택을 받기도 했는데, 가장 궁금했던 점은 도대체 내가 내는 돈에서 얼마가 내가 후원하는 아동에게 투입이 되는지 였다. 이따금 후원 받는 아동이 보내주는 카드를 받거나,크리스마스 선물비 명목으로 추가 납부를 원한다는 우편물을 받아보는 것이 전부였다. 돈에 관한 건 감정적으로 처리할 일이 아니잖은가.

 

 

그래도 '인간은 모두가 도둑이다'라는 문장은 너무 속되고 아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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