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맞닥뜨린 기괴한 예술가를 지난번에 얘기했었다. 로버트 메이플소프. 그의 연인이었던 패티 스미스의 책에 대해서도 잠깐 언급했었다. 언젠가는 읽겠지, 하고. 읽었다. 혹시나 하고 동네 도서관 자료검색을 해봤는데 두 군데 모두 그 책을 보유하고 있었다. 놀랐다. 내가 몰랐을 뿐 이미 이 분들은 유명했다.

 

 

 

 

 

 

 

 

 

 

 

 

 

 

 

 

 

패티 스미스가 고향을 떠나 뉴욕에 무일푼으로 도착, 노숙을 하면서 버티는 이야기, 로버트 메이플소프와의 영화 같은 만남과 동거, 소울 메이트로서 둘의 관계, 뉴욕 예술계 거물들과의 교류, 메이플소프의 성공과 인간관계 그리고 죽음. 한편의 잘 짜인 소설같은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2010년 아마존 최고의 책 베스트 10을 비롯하여 여러 상을 받은 책인데 읽다보면 그럴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냈는데 거기에 따르는 후회, 원망, 아쉬움 같은 감정 과잉따위나 어두운 구석이 없다. 과장도 없고 각색도 없는 깔끔함에 오랫동안 글을 써온 사람의 내공이 느껴지는 책이다. 한마디로 내용도 좋고 글도 좋다. 이런 책은 소장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참았다.

 

어떤 날은 미술관에 갔다. 티켓 한 장밖에 살 돈이 없었던 우리는 한 명만 들어가 전시를 보고 나와 어땠는지 이야기해주곤 했다.  -69족

 

가난한 예술가들의 눈물겨운 뉴욕 생활담이다.

 

우린 서로 다른 목표를 지향했다. 나는 나를 넘어서 더 높고 다른 세계를 탐험하기 바랐고, 로버트는 자기 안의 세계를 추구하길 바랐다. 그는 자기 작품 속에서 표현되는 예술적 언어들을 탐구하고 그 요소들을 바꾸고 변형해왔다. 사실상 지금까지 억눌러온 성정체성을 드러내는, 내적 변화를 기록하는 도구로서 창작 활동을 해온 것이다.   -107쪽

 

'자기 안의 세계를 추구'. 메이플소프의 심히 충격적인 사진들을 보다보면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자기 만의 세계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런 아름답고도 아찔한 작품이 나올 수 없다.

 

로버트는 관음증이 아니었다. 그는 항상 자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주제를 선호했고, 그러다 보니 사도 마조히즘에 관련된 작품들을 찍었다.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도 아니고, 그 행위가 좀 더 사회적으로 인정받게 하겠다는 사명감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는 그것이 당연히 받아들여져야 할 부분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고, 모두가 자신 같기를 바라지도 않았다.

(중략)

 

왜 그런 사진을 찍게 되었는지 물었을 때 그는 누군가는 해야 했고, 그게 자기였을 뿐이라 답했다. (중략) 그의 의도는 폭로가 아니라 섹슈얼리티를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데 있었고, 그 이외엔 아무도 시도한 적이 없는 일이었다. 예술가로서 로버트를 가장 흥분시키는 일은 어느 누구도 생각지 못한 창조적인 작업을 하는 일이었다. -302~304쪽

 

 

영화를 봤다.

 

 

(출처: Naver )

 

로버트 메이플소프에 대한 다뮤멘터리 영화. 영화를 보니 <저스트 키즈>의 내용과 겹쳐지면서 메이플소프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영화를 봤으니 다시 <저스트 키즈>를 좀 더 확실하고 완벽하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그만. 평소 책을 달고 사는 패티 스미스에 의하면 메이플소프는 책을 거의 안 읽었다고 한다. 책에 길이 있어 책을 벗하는 사람으로서,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이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냈다는 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무턱대고 책을 읽는다고 그 속에서 길을 발견하는 건 아닐 터. 잠시 한 예술가의 천재성에 시비를 걸고 싶었다.

 

 

<저스트 키즈>에는 젊고 아름답고 상큼한 메이플소프의 사진이 실려있다. 책 내용 또한 그러하다. 남자건 여자건 메이플소프를 보는 순간 그에게 끌렸다고 하니 얼마나 매력적이었는지 그저 짐작할 따름이다. 그랬던 그였으나 영화 <메이플소프> 뒷부분으로 가면 그의 마지막 모습에 또한번 충격에 빠진다. 고작 42살인데 외모는 80대 후반이다. 에이즈로 생명이 꺼져가고 있는 것이다. 그는 그렇게 죽었는데 영화에 등장하는 그의 가족, 애인들, 지인들은 그에 대한 이야기에 거침이 없다. 얘깃거리로 남은 한 예술가의 생애가 짠하게 여운을 남긴다.

 

 

마지막으로 메이플소프의 말을 옮겨본다.

"그때 찍은 사진이 정말 중요해요. 그건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작품이었고 사람들이 처음으로 그런 작품을 봤으니까요. 그렇게 새 경험의 장을 열어주는 것, 새 세상을 열어주는 게 바로 예술입니다."

 

메이플소프의 작품이 '새 경험의 장'을 열어주는 것만은 확실하다. 음, 외설도 새 경험의 장을 열어주긴 하지만. 여전히 내 머리로는 그의 작품이 외설과 예술 사이를 오고가지만, 대담한 그의 작품이 아직도 충격으로 다가오지만, '새 세상'을 열어주었으니 예술로 받아들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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