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나더러 차라리 낙타를 타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어디 그게 쉬운 일인가. 여기까지 와서 더군다나 번호표까지 손에 쥔 상태에서 낙타를 타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금까지도 살면서 낙타를 타보지 못했는데, 그리고 앞으로도 언제 낙타 등에 오를지도 모르는데, 바로 코 앞에 있는 내 순서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사람을 태운 수백 마리의 쌍봉낙타가 대열을 이루면서 명사산에 오르는 광경은 장관이었다. 신발에 모래가 들어가는 것을 막기위해 주황색의 발토시를 신은 사람들의 물결도 분위기를 고조시키는데 일조하고 있었다. 모자와 마스크와 선글라스와 때로는 스카프로 잔뜩 멋을 부린 관광객들은 기대감에 부풀어 상기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행동이 민첩한 사람들은 휴대폰으로 셀카를 찍거나 동행자를 향해 촛점을 맞추었으나 이내 낙타몰이꾼의 따가운 눈총을 받고는 두 손을 얌전하게 낙타 등에 얹힌 안장손잡이에 올려놓았다. 말할 수 없는 불안감에 젖어있었던 나도 살짝 휴대폰을 꺼내 몇 장의 사진을 찍었는데 의식적인 행동이라기보다는 거의 무의식적인 반사행동에 가까웠다.

 

낙타의 걸음은 몹시 더디기만 했다. 성큼성큼 걸어서 얼른 한바퀴 돌고 끝내주면 좋으련만 수많은 낙타들이 대열을 이루며 질서를 유지하고 있는만큼 감히 이탈이나 새치기 따위를 기대할 수 없었다. 질서 따위, 누가 그런 단어를 생각해냈는지 원망스럽기 그지 없었다. 모래산 중턱에는 간이건물로 된 본부가 있어 연신 확성기로 무언가를 지시하고 있었다. 들으나마나 질서를 지키라는 얘기겠지.

 

묘지의 수호자인 진묘수. 온갖 동물의 형상을 하나씩 따와 합성시킨 괴물같은 모양의 동물모양을 진묘수라고 한다는데 낙타 역시 진묘수의 형태를 띠고 있단다. 순하게 생긴 큼직막한 눈망울, 긴 목과 긴 다리, 단봉 혹은 쌍봉이라 불리는 등허리의 혹, 오리발 같이 생겨서 모래에 빠지지 않고 거뜬히 걸어다니는 발. 이런 특이한 모양이 조합되어 살아있는 진묘수로 불리고 있다.

 

그러나 불안감과 고통으로 떨고있는 내게 눈에 들어오는 것은 내 손등을 간지르는 혹위에 엉성하게 나있는 낙타털 뿐이었다. 낙타야. 질서 따위, 주인의 회초리 따위 무시하고 얼른 한바퀴 돌아주고 끝내주렴. 이렇게 주문인지 기도인지 모를 간절함을 보내건만 낙타나 낙타몰이꾼이나 내 마음을 알 리 없었다.

 

드디어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낙타몰이꾼에게 휴대폰을 주고 몇 장의 사진을 찍게되면 일인당 20위안의 팁을 주라고 했던 가이드의 조언대로 얼른 40위안의 지폐를 남편에게 건네주었다. 10여 미터만 달려가면 이 모든 불안감과 고통도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그러나...

 

간밤에 마신 맥주 탓이었다. 저녁을 먹고 숙소에 들어왔으나 그냥 밤을 보내기가 아쉬워 다시 밖에 나가 맥주를 사와서는 남편과 둘이서 히히덕거리며 맥주를 들이켰었다. 들이켰다기보다는 마셨다. 각자 한 캔씩. 그러고는 화장실 가까이에 있는 침대는 남편이, 창문쪽 침대는 내가 자리를 차지하고 참을 청했다. 평소에 남편은 밤마다 두세 번씩은 화장실에 드나들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웬걸. 평소와는 다르게 남편은 한번도 깨지않고 잠을 달게 자고 있었고 속이 편치않은 나는 예닐곱 번이나 일어나 불도 켜지 않고 어둑어둑한 화장실을 더듬어 다녀와야만 했다. 나중에 물어보니 남편은 내가 화장실에 들락날락했다는 것을 몰랐다나. 하여튼 아침밥을 먹고 나중을 위해 지사제와 위장약을 먹어두었다. 괜찮아지겠지 하며.

 

지금도 그때 그 절명의 순간을 생각하면 몸이 움찔해진다. 속옷을 변기 옆 쓰레기통에 버리며 얼마나 황당하고 미안하던지. 그나마 낙타등에 실례하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오후에 돈황박물관에 도착해서야 겨우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렇게 속을 텅 비운 상태에서 명사산에 올랐었다. 행여 눈치라도 챌까봐 소매 긴 남방을 허리에 두르고, 흔들리는 눈빛을 감추기 위해 선글라스를 쓰고, 남편의 애정어린 동정을 받으며. 월아천 맞은 편에 있는 모래산에도 올라갔다. 이미 지옥을 다녀온 몸은 모래산 따위 아무래도 괜찮았다.한걸음 한걸음 내딛을 때마다 고도의 집중력과 함께 감사의 마음이 절로 흘러나왔다. 명상이 따로 없었다.

 

"월아천에 와보다니...내 인생이 그리 나쁘지는 않아."

 

 

그날 밤 함께 간 친구들에게 이 얘기를 했다. 오후에 돈황박물관에서 휴대폰을 잃어버린 한 친구는 이제 가까스로 마음을 달래고 있었고, 내 말에 귀를 기울이던 또 다른 친구는 나에게 조언을 했다. 자기도 장이 약해서 외출할 때는 가방에 속옷을 챙겨넣는다고. 아직 한번도 그런 적은 없지만 늘 그걸 대비한다고. 그랬었구나. 너도 그렇구나, 친구야.

 

 

 

 

 

위에 있는 동물이 진묘수. 아래의 사람은 귀신이 오는 소리를 듣기 위해 땅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고 한다. (우루무치 <신강박물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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