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나쓰메 소세키라도 시대를 감안해서 읽어야 한다. 이는 정신적인 노동이 필요하다는 말인데, 가급적 노동을 하지 않기로 마음 먹은 나는 과연 이 책을 끝까지 읽어야 하느냐는 갈등에 이르렀다. 책을 반쯤 읽었을 때 결말이 궁금한 성급한 마음에 책 말미에 있는 작품해설을 훔쳐본다. 마치 문제집을 풀다가 정답지를 먼저 보는 기분이 들었지만.

 

 

 

'고등유민' 인 다이스케는 부모형제의 도움으로 백수로 살아간다. 나름대로 논리가 있으니,

 

그는 실생활을 통한 세상살이 경험보다도 부활절 밤의 경험이 인생에 있어서 더 의의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서른이나 되어서 한량처럼 빈둥거리는 것은 아무래도 보기 좋지 않구나."

다이스케는 결코 빈둥거리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자신은 직업에 의해 더럽혀지지 않은 충실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고귀한 부류의 인간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사실은 아버지가 가엾어졌다. 아버지의 단순한 두뇌로는 이렇게 의미 있는 세월을 보내고 있는 것이 자신의 사상이나 정서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전혀 알아차릴 수가 없는 것이다.

 

 

 

사실 이 소설은 어떤 책을 읽다가 궁금해서 펼쳐보게 되었다.

 

 

 

 

 

 

 

 

 

 

 

 

 

 

 

 

일을 놓은 지금, 내 눈에는 온통 이런 책만 보인다. 아무도 뭐라 안 하는데, 일할 만큼 일했는데, 끊임없이 자기검증에 시달리는 기분마저 든다. 게을러지기 위해 노력(일)해야 할 것 같은, 그래서 이런 책이 눈에 들어오는 걸까.

 

 

나도 이쯤에서 게을러지기로 한다. 아무래도 시대를 감안해서 읽어야 하는 책은 머리를 써야 하기에 일처럼 느껴져서다. 반만 읽은 책을 미련없이 옆으로 치워버리기로 한다. 후반부 반은 사실, 그리 궁금하지 않다. 삼각관계건 불륜이건. 집요하리만치 자의식에 빠진 주인공의 내면 읽기도 좀 피곤하다.

 

 

함께 읽으면 좋을 책.

 

 

 

 

 

 

 

 

 

 

 

 

 

 

 

마르크스 사위가 쓴 이 책은 제목이 마음에 들지만 이것 또한 머리 아프리. 아서라.

 

 

그래도 나쓰메 소세키인데 너무 소홀하게 대한 감이 있어서 하나 더 옮겨본다.

 

사실을 말하자면, 아버지의 이른바 훈육은 부자간에 오가는 따뜻한 정을 점점 냉각시켰을 뿐이다. 적어도 다이스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아버지는 달리 생각하고 있다. 어떻게 대한다손 치더라도 결국 피를 나눈 부자간이 아닌가. 아들이 부모에 대해 선천적으로 느끼는 정은 아버지가 아들을 어떻게 다루든 간에 변할 리가 없다. 교육을 위해 다소 무리를 하더라도 그 결과는 결코 혈육의 정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 유교 정신이 몸에 밴 아버지는 이렇게 굳게 믿고 있었다. 자신이 다이스케를 이 세상에 존재하게 했다는 단순한 사실이야말로 어떠한 불쾌하고 고통스러운 일에 대해서도 부자간의 영원한 애정을 보장해 주는 것으로 생각하는 아버지는 그러한 신념으로 밀고 나갔다. 그리고 결국에는 자신에게 냉담한 아들로 만들었다.

 

어쨌건 시대를 뛰어넘는 나쓰메 소세키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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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06 08: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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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06 08: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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