몹시 피곤하다.   

 

 

 

 

   

 

 따끈따끈한 책들이다. [대중을 유혹한 학자]는 세계일보에 연재됐던 '대중과 소통하는 학자들' 시리즈를 보강, 자그만치 60명의 학자들이 대중과 만나는 방식과 내용을 살펴본 책이라 한다. 전체 7개의 주제별 챕터로 나눠 학자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내가 글이나 책을 통해 한 번이라도 만났던 학자는 23명 정도 되는 것 같다. 다른 이들 중에는 TV를 통해 본 적이 있는 사람도 있지만 관심을 별로 갖지 않은 사람들도 있어서 패스. 몰랐던 학자들에 주의를 기울여서 새롭게 발견해볼만하다.  

[인터뷰 한국 인문학 지각변동]은 인문학 담론의 대표적인 학자로 인정받고 있는 중견 연구자 15인의 인터뷰를 중심으로 한 책이라는데, '대중을 유혹'하지는 못하고 각기 일단의 관심 독자들을 거느린 학자들의 파티? 요새 복지관련 책들과 글들을 들여다보면서 한동안 국내 학자들의 저서들을 멀리해왔었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반성하긴 하는데..   

며칠 전부터 읽기 시작한 제러미 리프킨의 [노동의 종말]은 몇 페이지 남지 않았다. 1부는 이 책의 논거를 시작하는 부분이라 읽어야 하고 2,3,4부는 기술발달로 인해 기계가 인간을 대체하면서 노동자들의 일자리가 사라져가는 현상을 되도록 많은 예를 들고 있다. 스륵스륵 읽어가도 괜찮다. 내가 생각하기에 중요한 부분은 5부의 '새로운 사회 계약'과 제3부문(정부의 공공부문과 시장경제부문 외)에 대한 저자의 분석과 전망인데, 미국에서 이미 60년대부터 논의를 시작하고 논쟁과 실험 등이 지속적으로 이뤄져왔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우리가 얼마나 뒤쳐져 있는지를 새삼 느끼게 된다. 물론 뒤늦게 가는 쪽에게 부여되는 이득도 있다. 앞서간 것들의 시행착오를 잘 헤아린다면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 아마도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복지관련 논의들에 이 모든 게 반영되어 있을 것이란 기대를 해보지만, 아직까지도 무상급식 가능하네 마나 수준에서 머물고 있다는 건 심각한 지체현상이 아닐 수 없다. 제러미 리프킨의 제3부문에 대한 생각이 잘 이해되는 건 아니고 이게 많은 문제, 특히 한국적 상황에서는 너무나 위험한 수사에 넘어갈 확률이 클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부정적인데 좀더 살펴봐야 할 것 같다.  

이 [노동의 종말]에 대해 비판적으로 본 프랑스 사회학자 도미니크 슈나페르와의 대담을 담은 [노동의 종말에 반하여]도 함께 읽어볼 책이다.   

 

 

      

 

 

 

배도 고프고, 정리도 해야 해서 마음은 급하고, 나중에 좀더 보충을 해야겠다.  

관심가는 도서로 최근에 읽은 [진보의 재탄생, 노회찬과의 대화]에서, 김정진 변호사가 흥미롭게 읽었다는 [자크 아탈리의 미테랑 평전]. 미테랑에 대해서, 80년대에서 90년대의 프랑스를 좀 읽어 보고 싶다. 자크 아탈리는 별로 믿음이 안 가지만, 어쩔 수 없다.    

 

 

 

 

 

[진보의 재탄생-]도 재미난 부분을 소개해볼만한데 이 역시 다음에... .  

머리맡에 또 놔둔 책들로는, 오건호의 [대한민국 금고를 열다]와 미야모토 타로의 [복지국가 전략 : 스웨덴 모델의 정치경제학]. 오건호의 책에 추천사를 쓴 우석훈의 글을 읽으면서 짠했다.  

 

 

 

 

 

 

최근에 신필균의 [복지국가 스웨덴]이란 책자가 후마니타스에서 나왔는데, 어떤 책인지 한 번 살펴볼만. 현재만이 아니라 여기까지 오게 된 스웨덴의 정치경제학, 사회적 역사를 보고 싶은 건데, 더 정확하게는 어떻게 싸웠나. 

 

 

 

 

 

 

표지가 밝지만, 사실 이건 싸움 아닌가? 우리 나라에서는 더군다나. 그래서 더 읽어본다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요즘 부쩍 호기심 왕성... 매우 흥미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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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야 할 일을 차일피일 미루며 미적대다가 마음이 점차 우울해지는 현상을 많이 겪는다. 지금이 딱 그짝이다. 어차피 해야할 일이다. 그래도 어쨌든... 느즈막히 일어나 토요일에 게시되는 프레시안 북들을 살펴보는 데 오늘도 역시나 만만찮은 분량의 글들을 읽느라 오전 시간이 훌러덩 벗어나고 있는 중이다.태블릿PC가 이런 기사 읽는데 유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요즘 든다. 아무래도 좀 편한 자세에서 글들을 읽을 수 있지 않을까? 그렇긴 해도 여전히 긴 글들을 스크롤해가며 보는 건 불편할 듯하다. 종이에 인쇄해서 편하게 보는 쪽을 따라갈 수 없을 것같다. 덕분에 짐이 늘어가는 부작용이 있긴 하지만. 사람마다 편차가 있겠지. 종이야 미안해.  

눈에 띄는 책은 역시 선대인의 [프리라이더]. 보관함에 넣어뒀다가 잊어버리고 있었다. 지난 주 금요일에 주문했던 책들은 안내와 다르게 바로 다음날 일찍 도착했었다. 민망하게도... [박근혜현상]을 제외하고 다른 책들은 첫페이지도 들쳐보지 못했다. 뭐 급한 책들이 아니라 두고 읽으려고 주문했던 책들이 많아서 그렇기도 하지만 일주일동안 그 책들에 눈길 한 번 주지 못하고 방치(모셔뒀다기 보다)했다는 건 좀 심각했다. 가끔 브래드버리의 [화씨451]에 나오는 방화서장 비티를 생각한다. 책이 금지된 미래, 방화수들은 책을 불태우는 일을 하는데 바로 그 책임자 서장의 집에는 어마어마한 책이 소장되어 있다. "책을 소유하는 것은 범죄가 아니네,몬테그. 읽는 게 문제지. 그래 맞아. 난 이것들을 그저 가지고 있을 뿐이지 읽지는 않는다네." 난... 읽는다니까. 

 

 

    

 

 

옆길로 샜는데, [프리라이더]에 대해 이상이 제주대 교수이자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가 논평한 글도 일단 프린트해두었다.  

 

 

 

 

  

 

올해와 '대회전'의 시기인 2012년을 앞두고 화두는 단연 '복지'가 될 것 같다. 뭐, 북한변수가 있긴 하겠지만 제발 쫌. 선택적 복지든 보편적 복지든 어쨌든 정치권이 이 화두를 피해가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만큼 20세기 말부터 21세기 10년을 통과해오면서 사람들이 너무 지치고 불안해있는 것만은 분명하므로. 그리고 이제 더 이상 피해갈 수도 미룰 수도 없는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그래서 몇 년 전만 해도 복지를 위한 증세가 내 일이 되는 것을 감당할 수 없다고만 생각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진지하게 고민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단 공정과 정의가 밑바탕에 깔려야 감수할 의지도 생길 것이다. 그러므로 제 아무리 '포퓰리즘'이니 국가를 망국적 상태에 빠트리는 얘기라고 노발대발해도 어느 시점에서는 돈마련을 제대로 하느냐 마느냐를 놓고 공세를 벌이는 국면으로 변할 것이다. [프리라이더]를 이 시점에서 읽어봐야할 이유이기도 하다. 이상이 교수는 좀 아쉬움을 표한 것 같지만. 

더불어 관심가는 도서는 지난 몇 년 사이에 복지국가의 전망을 얘기해온 책들이다. 최근에 읽은 조국,오연호의 대담집 [진보집권플랜]을 통해 알게 된 건데, 2007년에 다음 세 권이 한꺼번에 나왔다는 것이다. 유시민의 [대한민국개조론] 복지국가소사이어티의 [복지국가혁명], 민노당 진보정치연구소의 [사회국가, 한국사회 재설계론]. 

 

 

 

 

 

 

이 외에도 이상이 교수가 공동대표로 있는 복지국가소사이어티에서 나온 책들을 살펴보고 싶다. 복지국가이야기 시리즈로 1권은 [복지국가혁명]이고, 이어 2,3,4권이 2010년에 연이어 나왔다.

 

 

 

 

 

[박근혜현상]과 관련하여 프레시안의 대담이 정리되어 있어서 흥미롭게 봤다. 책에서 안병진의 글<포스트모던 시대, 박근혜 정치의 작동방식>은 박근혜현상의 문화정치학적 분석을 시도하면서 다른 글들과 다소 차별성을 갖는 듯했는데 끝까지 읽어보면 자신이 끌어대온 논리나 이론과 박근혜가 과연 맞는 예인지 아리송하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안병진은 아무래도 박근혜를 자기가 시도하는 논리에 흥미롭게 시험해볼 대상으로 보고 있는 듯했다. 아님 박근혜의 '귀족적 우아함'을 흠모하는지도. 내참~.  

 

 

 

 

 

박근혜현상에 박근혜가 없다는 말은 본질의 일부를 나타내는 말인 것 같다. 30년 넘게 정치판에서 살아남았을 뿐만 아니라 극적인 순간에 힘을 보여주는 정치인으로서의 파워도 보여줬고, 여전히 압도적인 지지율을 보여주고 있지만, 나는 어째서 박근혜 거품론을 거품물고 지지하는지 모르겠다.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정치적 성향 때문에 갖게 되는 편향적 견해일 수도 있다. 책에서도 필자들이 지적하듯이 박근혜가 가지고 있던 박정희의 아우라를 아이러니하게도 MB가 집권하면서 휘발시켜버렸다. 글쎄 사람들이 더 이상 박정희에 대한 향수를 박근혜를 통해 보려고 할까? 어른들은 어떨지 몰라도 20대, 30대에게 먹힐 수 있을런지. 그래서 박정희가 아니라 육영수라고? 내 참, 할말이 없다.  

그래서 문제는 대항마인데, 요즘 민주당을 비롯하여 범진보세력간에 연합이니 통합이니 난리도 아니다. 사람들의 의식이 중도,좌클릭함으로써 지형은 이들에게 유리하게 전개되고 있다는데 이들이 믿을만한 결과물을 내올지 아직은 알 수 없다.  

그리고 [여자에게 일이란 무엇인가]도 한 번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책이었다.   

 

 

 

 

 

 

여자란 이해하기 무척 어려운 사람들이다. 무슨 여자의 마음잡기 이런 게 아니라 사회적으로든 존재론적으로든 다루기 까다로운 주체라는 것이다. 일전에 로쟈님 덕분에 <다윈의 대답>시리즈를 읽게 됐는데, 그 세 번째 권이 [다윈의 대답3:남자 일과 여자 일은 따로 있는가]이다.    

  

 

   

 

  

 

한국사회에서 여성에게 주어지는 일자리의 열악함과 불안정함을 꼭 짚고 넘어가야 하겠지만, 어쨌든 일반적으로 생물학적인 성차와 성공에 대한 다른 정의, 일의 우선순위와 행복을 느끼게 되는 사안이 다른 점들을 생각해보게 해주는 책이었다. 이러니 여성들이 어찌 까다롭지 않을 수 있는가. 어려운 문제다. [여자에게 일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의 카피들은 이렇다.
"비즈니스 정글보다 더 위험한 스위트홈에 대하여", "여자의 경제적 자립과 행복에 대한 도발적 담론". 원제목은 "여자들의 오류 The Femine Mistake"라는데, 오늘날 여자들이 하게 되는 오류, 실수는 무엇일지 들여다볼만 하겠다. 몇 장 읽지 못한 [안나카레니나] 3권. 안나가 저지른 오류가 뭐길래 기차에 몸을 던져야 했나, 아직도 알지 못했다. 결혼한 귀족 여성으로서 새 남자와 바람났기 때문에, 애까지 버리고... 같은 행위를 저질렀기 때문이라는 단순 연결이 아니라 안나 스스로 느꼈을 그 어떤 심리의 과정을 톨스토이가 어떻게 써놓았을지에 대한 기대가 있다.   

 

 

 

 

  

 

새로 머리맡에 둔 책들은 제러미 러프킨의 [노동의 종말]([박근혜현상]을 읽다 안병진의 글을 보면서 제러미 러프킨의 '종말' 시리즈를 모셔뒀음을 깨닫고 한 권 꺼내놓았다. 오래된 책인데 미래를 넘겨볼 수 있을만한지 궁금했다.)과 장하준이 소개한 [광기, 패닉, 붕괴 금융위기의 역사]다. 꽤 오랫동안 머리맡에 있을 것 같다.  

 

 

 

 

 

작년 말부터 서서히 나의 독서성향이 소설로부터 사회경제서적으로 방향전환하고 있는 것 같다. 읽고 싶은 장르소설도 많지만 지금으로선 사회돌아가는 걸 좀 신경써서 봐야할 것 같다.  

책 생각하다 오전이 가버렸다. 점심 먹고는 일 마무리를 지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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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예상되는 상황으로는 주말에 검토해야 할 자료들이 있을 것 같은데, 올라오는 거 봐야 하겠고, .... 세상사에 관심이 쏠리는 요즘이다. 신문이나 뉴스, 각종 잡지류를 늘 살피는 게 가장 좋겠지만 하루하루 당장 눈 앞에 떨어지는 일거리들 치닥거리 하기에도 벅찬데 일과 직접적인 연관이 안되면 신문도 제대로 보기 어려운 처지다.   

  

 

 

 

 

 

오늘 저녁쯤이면 받아볼 수 있을 것 같아서 주문 넣었는데 결재까지 다 하고 나니 10일에야 배송된다고 뜬다. 기가 막힌다. 주말에 눈 소식이 예고되어 있으니 월요일에도 받아볼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난 '박근혜 현상'이 이해가 안되고 진짜로 가능성이 있는지 정말 모르겠는데, 어쨌든 부정할 수 없는 '현상'이라니 어찌 관심두지 않을 수 있으랴. 진보논객들의 박근혜현상 분석과 해명글이라니 대선을 앞두고 움직이는 이들이 느끼는 체감 현실과 어떻게 다른지도 비교해보고 싶다. 각종 정보와 자료를 수집하고 취합하며 분석,해명하는 일은 언제나 중요하다. 끙. 

머리맡에 안나 카레니나 세 번째 권을 새로 올려놨는데, 작년에는 이상하게도 구입해 둔 책들을 고이 모셔두는 일이 잦았다. 특히 온라인 주문해 받은 책들은 더 고이 대접을 받은 것 같다. 오히려 동네 서점에서 사 들고 온 책들은 그런대로 제깍제깍 읽은 편이다. 나 같은 사람이 많으면 동네 서점이 이다지도 작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어젯밤 눈도 아리고 물젖은 솜처럼 피곤한 몸을 뉘였는데도 이리 뒤척 저리 뒤척거려져서 훌떡 일어나서 안나 카레니나 2권을 꺼내들었다. 작년에 이어서 계속 읽었다. 마지막 권을 읽을 차례다. 아 글씨, 안나는 왜 열차에 뛰어드냐고~ 그것이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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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길 한복판에서 정도를 벗어난 나는  

눈을 뜨니 어두운 숲속에 있었다." 

 - 단테, [신곡] 지옥편 1장 -   

2011년 새해 첫날이자 첫주말에 읽은 책은 다카무라 가오루의 [석양에 빛나는 감]이었다. 최근에 개정판인 [조시]로 재출간되었지만 내가 자주 들르는 도서관에 마침 예전 책이 있기에 대출했었다. 소설의 제사로 쓰인 문장은 단테의 [신곡] 지옥편에 나오는 그 유명한 것이었다.  

 

 

 

  

 

형사 고다 유이치로는 8월 무더위 속에서 지하철역에서 발생하는 사고를 목격한다. 그곳에서 마주친 '포도알 같은 눈동자'를 가진 여인에게 한 순간에 끌리고 마는데, 그 우연은 18년만에 재회한 어린 시절 친구 노다 다쓰오와 그의 정부로서 그 여인을 다시 만나게 되면서 걷잡을 수 없는 질투심으로 이어진다. 뜨거운 불들이 소용돌이 치는 용광로를 상대하는 공장 노동자 다쓰오에게 겹치는 악재들, 그 속에서 서서히 망가져가는 정신이 치열하게 묘사되어 있다.   

'석양에 빛나는 감'이란 붉은 연시감의 색을 떠올리면 될 것이다. 그 색의 감각이 소설을 읽는 동안 인물들의 심리를 감지하게 한다. 살인으로 치닫는 심리를 묵직하게 그려내고 있는 소설은 작가의 전작 [마크스의 산]에서도 인상적이었지만 특히 심문하는 듯 상대와 대결하는 대사씬은 강렬한 힘을 여전히 보여준다. 주요 인물들인 고다, 다쓰오, 그리고 미호코는 그야말로 지옥으로 이끌어져 들어간다. 작가가 단테의 [신곡] 중 저 문장을 제사로 쓴 건 당연한 듯 보였다. [조시]로 개정된 내용도 궁금하다. 다시 한 번 읽을 기회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새해 첫 도전할 책은 단테의 [신곡]인데... 이게 또... 망설이게 한다. 김운찬 교수가 번역한 책은 절판된 상태이고 작년에 열린책들에서 세 권으로 분절해 책을 낸 모양인데 정체를 잘 알 수 없다. 민음사 판은 어쩐지 가벼워 보이는데 이걸 구입해도 될른지 모르겠다. 하여 일단 오늘은 주문을 보류했다. 머리맡 책들도 많은데 당장 읽기 어려울 것 같기도 하고.. 민음사판이야 쉽게 절판될 것 같지 않고, 김운찬 교수의 2007년판을 구입하지 못한 게 마음에 걸린다. 중고서적으로도 없어서 마음이 더 언짢다. 뒷북.     

 

 

 

 

 

그러고보니 오에 겐자부로의 [그리운 시절로 띄우는 편지]에서도 단테의 [신곡]은 주요한 책으로 등장한다. 기이형은 평생에 걸쳐 이 [신곡]을 반복하여 읽는다. 평생에 걸쳐 반복해서 읽어볼만한 책인 것인가.  

 

 

 

 

'인간은 왜 살인을 하는가'는 작가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는 주제라는데, [마크스의 산]도 그렇고 이 소설 역시 뚜렷한 인과관계 논리를 구성하지 않는다. 따라서 일반적인 미스테리추리물이라든지 경찰범죄소설로 분류하기엔 넘침이 있다. [죄와 벌]과 비교된다고 하는데 고이 모셔져 있는 [죄와 벌]도 이 참에 읽어볼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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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건 그나마 어찌 해볼 수 있지만 읽은 책에 관하여 뭐라도 쓰는 건 더 많은 시간과 힘을 들여야 하기에 정말 쉽지 않다. 그래서 올해도 책만 읽고 정리는 제대로 못했다. 일에의 집중과 읽고 싶은 책으로 마음이 가는 딜레마를 달고 살았다.  

올해는 소설을 손에 쥔 날이 많았다. 특히 장르소설을 많이 읽었다. 아무래도 쉽게 몰입하여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가장 인상적인 책으로 꼽자면 쑹홍빙의 [화폐전쟁]이었는데 어쩌면 근래에 읽었기에 아직 여진이 남아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소설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가 읽는 재미를 줬지만 나름의 어떤 평가를 내리기에는 아직 판단이 서지 않는다. 가라타니 고진 덕분에 오에 겐자부로와 하루키를 가까이 놓고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 역시 깊이 파고들 처지가 아니다. 생각 뿐이다. 오에, 하루키, 고진 세 사람은 시차를 두고 군조문학상 수상으로 인연이 있다. 최근에 번역된 하루키의 [언더그라운드]와 [약속된 장소에서]는 옴진리교의 도쿄 지하철 사린가스 살포사건을 하루키식 논픽션으로 응답한 프로젝트였다면 오에는 [공중제비]라는 소설을 썼다. 하루키는 [1Q84]를 내놓았다. 그 전에 오에는 히로시마 원폭 피해자들의 증언을 기록한 르포르타주 [히로시마 노트](1965)-아직 읽어보지는 못했다-를 작업한 바 있다. 오에의 시대와 개인사, 하루키의 시대와 그의 라이프스타일, 두 사람에 대해 다룬 글들이 이미 있을지도 모르고 전혀 터무니없는 비교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흥미로운 점이 있었고, [약속된 장소에서]까지 번역되어 나온 마당에 1995년 이후의 하루키 소설들을 다시 한 번 되짚어 볼만은 하겠다고 생각했었다.  

 

 

 

 

  

  

 

 

  

 

또 올해는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을 읽었다는 것이 꼽을 만한 일이다. 하루키 때문이었으니 나는 하루키의 자장에 머물고 있다. 소세키 전작을 읽지는 못했고 읽었던 책 모두 생의 미스테리를 담으면서도 담백함이 있어서 좋았다.   

 

 

 

 

 

빌 벨린저의 소설들은 50년대 소설임에도 신선했다.   

 

 

 

 

 

역시 50년대 소설이면서도 놀라운 구성력을 보여준 조엘 타운슬리 로저스의 [붉은 오른손]도 인상적이었다.

 

 

 

 

 

그밖에 한 번 손에 쥐면 좀처럼 놓을 수 없었던 재미를 선사했던 책들을 꼽아보면  

  

 

 

 

 

한국소설은 많이 읽지 못했는데 맘 편히 신뢰를 갖고 집어들기에 여전히 주저하게 된다. 왜 그럴까? ... 은희경의 소설도 처음 읽었지만 오래된 책인지라 올 해 나온 책 중 내가 읽은 소설 중에 가장 흥미로웠던 건 최제훈의 [퀴르발 남작의 성]이었다.   

 

 

 

      

SF와 친해지고 싶었지만 여전히 거리를 좁힐 수 없었다.   

평소에 좀 정리를 해 두면 좋으련만 갑자기 돌아보니 제대로 잘 보이지가 않는다. 깊이 읽기와 반복해서 읽기는 잘 안되고 늘 새 책, 읽어보지 못한 책들에 도대체 무슨 이야기가 담겨 있을지 너무나 궁금하여 미지의 책 읽기가 더 다급하다. 쉽게 버리지 못할 습성임을 잘 안다. 수십년을 그래왔는데 갑자기 변할리가 없다. 사람, 쉽게 변하지 않는다. 내년 마지막날에도 오늘처럼 이 서재에 들어와 이렇게 뭐라도 쓸 수 있으면 좋겠다. 부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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