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길 한복판에서 정도를 벗어난 나는  

눈을 뜨니 어두운 숲속에 있었다." 

 - 단테, [신곡] 지옥편 1장 -   

2011년 새해 첫날이자 첫주말에 읽은 책은 다카무라 가오루의 [석양에 빛나는 감]이었다. 최근에 개정판인 [조시]로 재출간되었지만 내가 자주 들르는 도서관에 마침 예전 책이 있기에 대출했었다. 소설의 제사로 쓰인 문장은 단테의 [신곡] 지옥편에 나오는 그 유명한 것이었다.  

 

 

 

  

 

형사 고다 유이치로는 8월 무더위 속에서 지하철역에서 발생하는 사고를 목격한다. 그곳에서 마주친 '포도알 같은 눈동자'를 가진 여인에게 한 순간에 끌리고 마는데, 그 우연은 18년만에 재회한 어린 시절 친구 노다 다쓰오와 그의 정부로서 그 여인을 다시 만나게 되면서 걷잡을 수 없는 질투심으로 이어진다. 뜨거운 불들이 소용돌이 치는 용광로를 상대하는 공장 노동자 다쓰오에게 겹치는 악재들, 그 속에서 서서히 망가져가는 정신이 치열하게 묘사되어 있다.   

'석양에 빛나는 감'이란 붉은 연시감의 색을 떠올리면 될 것이다. 그 색의 감각이 소설을 읽는 동안 인물들의 심리를 감지하게 한다. 살인으로 치닫는 심리를 묵직하게 그려내고 있는 소설은 작가의 전작 [마크스의 산]에서도 인상적이었지만 특히 심문하는 듯 상대와 대결하는 대사씬은 강렬한 힘을 여전히 보여준다. 주요 인물들인 고다, 다쓰오, 그리고 미호코는 그야말로 지옥으로 이끌어져 들어간다. 작가가 단테의 [신곡] 중 저 문장을 제사로 쓴 건 당연한 듯 보였다. [조시]로 개정된 내용도 궁금하다. 다시 한 번 읽을 기회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새해 첫 도전할 책은 단테의 [신곡]인데... 이게 또... 망설이게 한다. 김운찬 교수가 번역한 책은 절판된 상태이고 작년에 열린책들에서 세 권으로 분절해 책을 낸 모양인데 정체를 잘 알 수 없다. 민음사 판은 어쩐지 가벼워 보이는데 이걸 구입해도 될른지 모르겠다. 하여 일단 오늘은 주문을 보류했다. 머리맡 책들도 많은데 당장 읽기 어려울 것 같기도 하고.. 민음사판이야 쉽게 절판될 것 같지 않고, 김운찬 교수의 2007년판을 구입하지 못한 게 마음에 걸린다. 중고서적으로도 없어서 마음이 더 언짢다. 뒷북.     

 

 

 

 

 

그러고보니 오에 겐자부로의 [그리운 시절로 띄우는 편지]에서도 단테의 [신곡]은 주요한 책으로 등장한다. 기이형은 평생에 걸쳐 이 [신곡]을 반복하여 읽는다. 평생에 걸쳐 반복해서 읽어볼만한 책인 것인가.  

 

 

 

 

'인간은 왜 살인을 하는가'는 작가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는 주제라는데, [마크스의 산]도 그렇고 이 소설 역시 뚜렷한 인과관계 논리를 구성하지 않는다. 따라서 일반적인 미스테리추리물이라든지 경찰범죄소설로 분류하기엔 넘침이 있다. [죄와 벌]과 비교된다고 하는데 고이 모셔져 있는 [죄와 벌]도 이 참에 읽어볼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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