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하게 말해서, 여자 작가에 대한 편견이 좀 있는 편이다. 종종거리며 맴도는 좁은 반경에 질려하는 편이다.  

마거릿 애트우드라는 일흔 두살 먹은 캐나다 작가의 [눈먼 암살자]를 읽으며 반성했다.  

 

 

 

 

 

 

 

 

 

거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남자들은 주인공 아이리스를 이해할 수 있을지, 공감할 수 있을지, 궁금하기도 하다. 이런 류의 인물이 남자라면 다른 상황, 다른 행동들로 구축되겠지.  

안나 카레니나는 사랑 때문에 남편과 아들을 떠났고, 결국 기차에 몸을 던졌다면, 아이리스는 저 아래로 흐르는 어둠을 그대로 둔 채 기품을 가장한 채 위태롭게 얼음장 위를 지치는 암살자 같은 여자다. 눈 멈을 가장한 채. 소설 속 소설인 <눈 먼 암살자>는 정말 멋진 이야기다, 멋진 장치이기도 하고.  

여운이 많이 남는 소설이다.  

민음사는 교정에 지금보다 더 신경써 주길. 민음사, 작지 않은 출판사인데 책 만듦새가 늘 실망스럽다. 언제부터 그랬지?  

이 세상에 내가 읽어보지 못한 소설이 얼마나 많은지, 알지 못하는 작가들이 얼마나 많은지. 소설을 등한시 했던 잃어버린 십 여년이 이제와 너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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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2012-04-24 0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검색으로 찾았습니다. 눈 먼 암살자 정말 좋은 소설이지요. 한 문장 한 문장 공감하고 민음사의 교정, 번역 문제에도 공감하고 갑니다. 돼, 되 와같은 기본적인 맞춤법부터 비문, 꼬인문장 ㅠㅠ실망했어요 ㅠㅠ

포스트잇 2012-04-24 10:51   좋아요 0 | URL
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소설, 읽은지 1년이 넘었네요. 시간을 이겨낼수있을지...다시 읽을 땐 또 어떨지 궁금합니다. 이 작가의 새소설 [그레이스]도 읽을 예정인데,어떤 얘기를 품고 있을지 설레요.
 

살랑살랑 봄바람을 만끽하기엔 세상 공기가 그다지 쾌청하지는 않은 요즘이다. 일본 작가들은 안녕들 하신지. 오랫만에 히가시노 게이고의 [플래티나 데이터]를 읽다. 

 

 

 

 

 

 

 

 

조르주 심농도 들쳐보던 터라 이른바 장르소설이 시간을 견디고 오래토록 계속해서 읽히게 되는 조건들이라면 어떤 걸까를 생각해보곤 했다. 심농은 필립말로를 창조한 레이몬드 챈들러도 무척이나 좋아했던 작가라고 하는데 심농과 챈들러의 문체는 극과 극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항상 '물질적인' 단어만을 쓰려고 해왔소. 탁자, 의자, 바람, 비 같은. 만일 비가 온다면, 나는 '비가 온다'고 쓸 뿐이오. 내 책에서는 물이 진주가 되는 일 따위는 눈을 부릅뜨고도 찾지 못할 거요", 라고 심농은 말했다. 나이를 먹어가는 말로는 담배 연기가 '섬유 속을 거쳐 나오는 안개 같은 맛'이라고 알려주기도 한다.  심농의 소설이라곤 고작 중편 두 편을 읽었을 뿐이지만 아직까지는 잘 모르겠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문체에서 뿜어내는 매력이 그다지 강렬하지도 않고, 강렬한 캐릭터가 끌어가는 힘이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그에게는 주제나 소재를 장악하여 플롯과 인물 행동 동기에 대한 사회학적 논리를 잘 구사하는 능력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플래티나 데이터]는 전 국민의 DNA를 국가가 수집, 데이터하여 시스템화함으로써 범죄를 해결하고 예방효과까지 달성하려는 과학자들의 욕구와 그 시스템에서 자신들의 데이터만은 변형, 삭제함으로써 특권을 고수하려는 이해관계가 관철되는 제도가 정착되는 상황을 가상한 범죄 미스터리물이다. '매드 사이언티스트'라는 인물과 순수한 과학자적 호기심과 본능으로 접근하는 '사이언티스트', 여전히 고전적인 발품과 수사적 머리를 써서 범죄를 해결하는 게 진리라는 신념을 갖고 있는 형사 아사마 같은 인물을 통해, 끊임없이 관리 시스템을 찾으려는 체제와 그 체제가 지닌 정의롭지도 평등하지도 못한 디스토피아적 미래,  그로부터 탈주할 수 있는 가능성을 시사하는 게이고의 작가의식이 돋보이는 소설이었다.     

아침에 인터넷에 난 소식 중에 수원검찰 지청이 쌍용자동차공장 점거파업에 참여했다 형을 살았던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DNA 시료채취를 위해 출두를 요청했다는 기사가 있었다. 법 근거는 지난 해 제정된 'DNA 신원확인 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에 의거한 것이라는데, 조두순 사건 등을 계기로 아동대상 성범죄라든지 흉악범죄를 저지른 자들의 DNA를 채취, 관리함으로써 수사를 쉽게 하고 재범 방지를 위해 '국회가 합의해 만든 법'이라고 검찰 측은 전혀 문제될 것 없다는 식이다. 노동자의 파업 행위에 '폭력행위'가 있으므로 폭력범의 DNA를 채취하는 것일 따름이라는 해석이다. 범위가 어디까지 넓혀질 수 있겠는가. 어디까지 가봤냐며 마일리지 찍고 다니는 것 보다 어디까지 탈주해갈 수 있을지 생각해볼 시기가 이미 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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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구입한 책들과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들을 탑처럼 쌓아놓고, 정작 지난 주말에 읽은 책은 하루키의 [1Q84]였다. 그냥 마음이 그러고 싶었다. 그리고 오늘 조지오웰의 [1984]를 주문했다. 이번엔 꼭 [1984]를 읽으리라.  

[1Q84] 1권을 다시 읽으면서 하루키의 주인공들이 지닌 삶의 태도, 즉 최소한의 삶을 운영할 수 있는 정도 외는 세상과 더불어 살지 않기, 시스템에, 시스템과 더불어 책임지는 삶을 살지 않기, 그것이 '저항'이고 '투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러므로 하루키는 40대를 넘긴 인물이 주인공이 되는 이야기를 할 수는 없겠구나 라는 생각도 들었다. ...... 

하루키의 책을 읽는다는 건 어떤 정연함을 느낀다는 것과 내겐 같다. 마음이 복잡하고 생각이 어지러울 때 언제부턴가 하루키의 문장을 읽으면서 진정시키는 버릇이 생겼다. 어지러운 마음에 새로운 책을 집어넣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윌리엄 케인의 [거장처럼 써라]를 재밌게 봤다. 이론이라든지, 사조를 들먹이며 작가와 작품을 논하는 게 아니라, 그야말로 인물과 이야기만을 따라가며 또 하나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이었다. 이런식의 분석은 대개 영화 시나리오 분석에서는 많이 볼 수 있는데 이 책에서 로버트 맥기도 언급되고 있다. 미국작가로 대상이 편중되어 있다든지, 라이트한 분석에 치우친 감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읽어볼만 했다. 문예창작과 같은 데서는 어떤 식으로 '창작'법을 가르치는 지 궁금했다.  

   

   

 

 

 

 

 

[거장처럼 써라]에서 인상적인 것은 저자가 각 작가의 전기나 평전을 제법 섭렵한 후 간략한 전기 요약으로 시작한다는 점이었다. 예전에 경영학의 창시자라고 하는 피터 드러커의 자서전을 읽으면서 이 책은 경영학자의 자서전이라기 보다는 캐릭터의 보고라는 생각을 했었다. 드러커 자신이 밝혔듯이 그가 되고 싶었던 건 작가였다.  

 

 

 

 

 

 

인물의 전기나 평전을 보는 데는 캐릭터로 접근하여 보는 맛도 있을 수 있다.  

[거장처럼 써라]에서 대상으로 다룬 거장에는 허먼 멜빌도 있는데, 이 멜빌의 인생이 꽤나 인상적인 것인지 모르겠다. 오에 겐자부로의 [그리운 시절로 띄우는 편지]에는 멜빌의 평전이 언급된다. 그 때 멜빌 평전을 한 번 꼭 보고 싶었다. 물론 번역된 것은 없다. 멜빌을 이런 식으로 몇 차례 마주하게 되었다. 그런 인물이 또 한 명 있는데 나폴레옹이다. 나폴레옹이 자꾸 밟힌다. 나폴레옹이 어떤 인물이지? 전설로만 떠도는 인물에 대해 한 번 자세히 들여다 보고 싶어졌다.  

그런데 탑처럼 쌓아놓은 책들에 있는 자서전은 안데르센의 자서전이다.  

 

 

 

 

 

 

  

쏟아지는 혹평에 자신의 작품을 방어하기 위해서라도 자기 작품의 '주석서'로 읽어주기를 바랐다고 하니, [분홍신]같은 잔혹동화가 어떻게 창조되었는지 들여다볼만 하겠다. [인어공주] [성냥팔이 소녀] [미운오리새끼]... 놀라운 이야기 아닌가? 작가가 직접 이야기를 들려주는 셈이니 빨리 봐야겠는데 ...... . 세계 5대 자서전 중 하나다.   

그밖에 탑에 끼여있는 책에는   

 

 

 

 

 

 

 

이런 책들도 있는데, 벌써 몇 주째 쌓여만 있다. [유엔미래보고서]는 유엔의 미래가 아니라 미래 세상에 대한 예상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 부제가 '기후와 에너지로 재편되는 세계'다. 당면한 문제이다. 첫 몇 페이지를 읽었을 뿐인데, '농업과 식량' 부분에서 미래에는 고층빌딩 꼭대기에 작물 재배를 위한 공간이 할애된다는 얘기가 있는데, 얼마전 읽은 우석훈의 책들과 연관하여, 농작지가 점점 줄어드는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인가? 드넓은 평야 대신 저 높은 공기와 맞닿은 텃밭에 만족해야 할 시대가 온다는 말인가? 뭐, 이런 내용들로 채워져 있는 책일 것이다. 그래도 읽어볼 일이다.  

원자력은 일본 지진과 원자력 문제가 생기기 전에 우연히 좀 알아야 할 일이 생겨서 책을 찾다가 그나마 좀 읽어볼만하지 않을까 해서 구해놨던 건데, 아직 떠들어보지도 못했다.  

우리 나라에서 원자력 반대 시위가 조직된다면 환경단체나 시민단체 회원들이나 활동가 외에 시위가 조직될 수 있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미국소의 수입에 대해 저항했던 저 2008년의 촛불시위가 아득하기도 하다. 원자력 외에 대안은 없는 것인가? 대안을 찾기 위해 할만큼의 노력은 한 것인가?  

며칠 돌아가는 형편을 주워들으며 한 번 밑바닥까지 간 타락이 정화될 수 있는지 아득하곤 했다. 이 정권 하에서 너무나 많은 것들이 상식 이하로 떨어졌고 탄식은 하되 그냥 굴러 가는 세상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무뎌지려 애쓰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아, 또 흥미로운 책 한 권이 있었다. 조르주 심농이라는 프랑스 작가. 셜록홈즈, 아르센 뤼팡, 필립말로와 버금가는 매그레반장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어낸 작가라는 데 내가 한 번도 접해본 적이 없는 작가다.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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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의 말처럼, 이 사람들은 부동산으로 이득을 볼 사람들과 경상도라는 두 개의 변수만을 가지고, 결국 한국 경제가 상부와 하층부, 즉 8자형 경제로 분리되는 상황에서 일부의 중산층과 노동자만 효율적으로 통제할 수 있으면 영구 집권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걸까?([디버블링] p.141) 일본의 자민당 50년 집권처럼? 

우석훈은 '주급제'를 만지작거리는 정부 정책자들 얘기를 풀면서 한 말이지만, MBC 변해가는 거 보면 어째, 쫌 꺼리낌이 없는 것 같다. PD 수첩 손보고, 손석희 손보고, 또...  

주급제라는 게 그렇게 큰 파괴력을 지닌단 말인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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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픔이 밀려오고 머리가 멍해지는 시각이 5시 언저리쯤이다. 어제는 내 형편으로는 꽤나 밤 늦게까지 책을 읽은 셈인데, [디버블링]은 깨알같은 재미가 그득한 책이다.  

 

 

 

 

 

이제 딱 절반 정도 읽었는데, 우석훈이 자기가 공부한 걸 다 집어넣고 싶어했다는 말이 수긍이 갈 정도로 많은 지식과 정보들로 채워져 있다. 방송에서 우석훈을 본 적은 한 번 밖에 없는데, 실시간 토론프로그램도 아니었고 몇 년 전 신년 무슨 좌담회같은 거였던 것 같다. 실망스러운 방송이었는데, 편집상의 문제였을 수도 있지만 토론이나 방송에는 잘 맞지 않아보였다. 요즘은 논객들도 방송까지 섭렵해 주셔야 여러모로 도움을 받는 것 같다. 강준만 교수 같은 경우가 좀 예외인데(그냥 책으로 나온다) 개인적으로 강준만 교수의 예전 글들은 정말 웃겼다. 인문사회학 책 읽으면서 깔깔 거리고 웃기 쉽지 않다. 그래서인지 방송에는 안 나오지만, 가끔 신문이나 잡지 인터뷰를 보면 유머 그득한 사람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뭔 얘기 하다... 그러니까 88만원세대라는 시대의 개념을 낳고도(물론 단독 저서는 아니었지만) 대중적인 인지도가 아주 높지는 않은 것 같다. 내가 잘 모르고 하는 말인가? 내가 느끼기엔 그렇다. 출간된지 얼마되지 않아서인지 책 소개도 본격적인 리뷰나 비평은 없고, 대동소이한 개략적인 책 소개 정도가 다 인듯하다. 허긴 나도 이제 딱 절반 읽었으니까.  

만담꾼 같기도 하고, 시시콜콜할 정도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소소한 일들을 놓치지 않고 자기식으로 통찰할 줄 아는 능력이 분명 있는 것 같다. 나 같은 경우, 상당히 많은 것들을 배우고 있는 중이다. 공감하는 부분도 정말 많다.  

254페이지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케인스를 중심으로 공부했던 조순, 정운찬 같은 케인스주의자나, 이후에 하이에크와 밀턴 프리드먼을 이론적 스승으로 삼아 시장 근본주의를 전개한 시카고학파나, 문제는 이들이 너무 '디테일'에 약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큰 얘기에 익숙했던 경제학자들은 구체적인 사업 도면을 볼 줄도 몰랐고, 토지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토건쟁이'들의 지독할 정도로 세세한 수익의 움직임을 분석하기에는 너무나 이론적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나는 통렬한 지적이라고 본다. 우석훈의 통찰대로라면 한국의 이 시대는 토건, '공사주의'가 완전히 국민경제와 국민 대다수의 삶의 재생산을 어렵게 하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이 정도에 이를 때까지 얼마나 많은 국민들의 삶이 토건 혹은 공사주의와 무관할 수 있었겠는가를 생각해 볼 일이다. 뉴타운, 재개발 담론이 한창일 때 시민단체 등이 제 아무리 지적하고 소리친다해도 이 엄연한 이해관계 현실 앞에서 생태니 경제민주화니 하는 얘기가 먹히겠는가? 이익이 왔다갔다하는 눈앞의 사태 앞에서 초연하라는 건... 그래서 2006, 2007, 2008년의 선거 결과가 어쩌면 당연했다. 그 때 느꼈지 않나, 어쩔 수 없는 흐름이라고. 어제 뉴스에는 의정부 어느 지역의 뉴타운 반대를 외치며 농성하는 주민들 소식이 있었다. 몇 년 전 뉴타운 지정될 때는 쌍수를 들며 환영했다는 주민 한 사람은 이제는 강경반대자가 되었다. 집값 하락을 맞으면서 뉴타운이 오히려 손해가 된다는 현실 때문이다.  
 

토건 아닌 다른 지역경제를 경험할 수 없는지를 질문하는 우석훈의 말도 와 닿았다. 풀뿌리 민주주의라고, 풀뿌리부터 개발이익을 따지는 것 외엔 다른 지역경제를 생각하지 못한다면 말짱 도루묵일 것이다. 토건 아니고 다른 무엇을 어떻게 내세울 것인가. 
 

[생태요괴전]은 지난 주말에 읽었는데, 이 책도 재미난 책인데, 그 중 울림이 있는 질문은 이런 거였다.  

특히 이 책을 보고 있을 도시의 십대 여학생들에게 아파트가 아닌 공간에서 사는 것을 상상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

 

 

 

 

 

근데, [디버블링]에 Index가 없는 건 좀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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