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구입한 책들과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들을 탑처럼 쌓아놓고, 정작 지난 주말에 읽은 책은 하루키의 [1Q84]였다. 그냥 마음이 그러고 싶었다. 그리고 오늘 조지오웰의 [1984]를 주문했다. 이번엔 꼭 [1984]를 읽으리라.  

[1Q84] 1권을 다시 읽으면서 하루키의 주인공들이 지닌 삶의 태도, 즉 최소한의 삶을 운영할 수 있는 정도 외는 세상과 더불어 살지 않기, 시스템에, 시스템과 더불어 책임지는 삶을 살지 않기, 그것이 '저항'이고 '투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러므로 하루키는 40대를 넘긴 인물이 주인공이 되는 이야기를 할 수는 없겠구나 라는 생각도 들었다. ...... 

하루키의 책을 읽는다는 건 어떤 정연함을 느낀다는 것과 내겐 같다. 마음이 복잡하고 생각이 어지러울 때 언제부턴가 하루키의 문장을 읽으면서 진정시키는 버릇이 생겼다. 어지러운 마음에 새로운 책을 집어넣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윌리엄 케인의 [거장처럼 써라]를 재밌게 봤다. 이론이라든지, 사조를 들먹이며 작가와 작품을 논하는 게 아니라, 그야말로 인물과 이야기만을 따라가며 또 하나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이었다. 이런식의 분석은 대개 영화 시나리오 분석에서는 많이 볼 수 있는데 이 책에서 로버트 맥기도 언급되고 있다. 미국작가로 대상이 편중되어 있다든지, 라이트한 분석에 치우친 감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읽어볼만 했다. 문예창작과 같은 데서는 어떤 식으로 '창작'법을 가르치는 지 궁금했다.  

   

   

 

 

 

 

 

[거장처럼 써라]에서 인상적인 것은 저자가 각 작가의 전기나 평전을 제법 섭렵한 후 간략한 전기 요약으로 시작한다는 점이었다. 예전에 경영학의 창시자라고 하는 피터 드러커의 자서전을 읽으면서 이 책은 경영학자의 자서전이라기 보다는 캐릭터의 보고라는 생각을 했었다. 드러커 자신이 밝혔듯이 그가 되고 싶었던 건 작가였다.  

 

 

 

 

 

 

인물의 전기나 평전을 보는 데는 캐릭터로 접근하여 보는 맛도 있을 수 있다.  

[거장처럼 써라]에서 대상으로 다룬 거장에는 허먼 멜빌도 있는데, 이 멜빌의 인생이 꽤나 인상적인 것인지 모르겠다. 오에 겐자부로의 [그리운 시절로 띄우는 편지]에는 멜빌의 평전이 언급된다. 그 때 멜빌 평전을 한 번 꼭 보고 싶었다. 물론 번역된 것은 없다. 멜빌을 이런 식으로 몇 차례 마주하게 되었다. 그런 인물이 또 한 명 있는데 나폴레옹이다. 나폴레옹이 자꾸 밟힌다. 나폴레옹이 어떤 인물이지? 전설로만 떠도는 인물에 대해 한 번 자세히 들여다 보고 싶어졌다.  

그런데 탑처럼 쌓아놓은 책들에 있는 자서전은 안데르센의 자서전이다.  

 

 

 

 

 

 

  

쏟아지는 혹평에 자신의 작품을 방어하기 위해서라도 자기 작품의 '주석서'로 읽어주기를 바랐다고 하니, [분홍신]같은 잔혹동화가 어떻게 창조되었는지 들여다볼만 하겠다. [인어공주] [성냥팔이 소녀] [미운오리새끼]... 놀라운 이야기 아닌가? 작가가 직접 이야기를 들려주는 셈이니 빨리 봐야겠는데 ...... . 세계 5대 자서전 중 하나다.   

그밖에 탑에 끼여있는 책에는   

 

 

 

 

 

 

 

이런 책들도 있는데, 벌써 몇 주째 쌓여만 있다. [유엔미래보고서]는 유엔의 미래가 아니라 미래 세상에 대한 예상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 부제가 '기후와 에너지로 재편되는 세계'다. 당면한 문제이다. 첫 몇 페이지를 읽었을 뿐인데, '농업과 식량' 부분에서 미래에는 고층빌딩 꼭대기에 작물 재배를 위한 공간이 할애된다는 얘기가 있는데, 얼마전 읽은 우석훈의 책들과 연관하여, 농작지가 점점 줄어드는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인가? 드넓은 평야 대신 저 높은 공기와 맞닿은 텃밭에 만족해야 할 시대가 온다는 말인가? 뭐, 이런 내용들로 채워져 있는 책일 것이다. 그래도 읽어볼 일이다.  

원자력은 일본 지진과 원자력 문제가 생기기 전에 우연히 좀 알아야 할 일이 생겨서 책을 찾다가 그나마 좀 읽어볼만하지 않을까 해서 구해놨던 건데, 아직 떠들어보지도 못했다.  

우리 나라에서 원자력 반대 시위가 조직된다면 환경단체나 시민단체 회원들이나 활동가 외에 시위가 조직될 수 있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미국소의 수입에 대해 저항했던 저 2008년의 촛불시위가 아득하기도 하다. 원자력 외에 대안은 없는 것인가? 대안을 찾기 위해 할만큼의 노력은 한 것인가?  

며칠 돌아가는 형편을 주워들으며 한 번 밑바닥까지 간 타락이 정화될 수 있는지 아득하곤 했다. 이 정권 하에서 너무나 많은 것들이 상식 이하로 떨어졌고 탄식은 하되 그냥 굴러 가는 세상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무뎌지려 애쓰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아, 또 흥미로운 책 한 권이 있었다. 조르주 심농이라는 프랑스 작가. 셜록홈즈, 아르센 뤼팡, 필립말로와 버금가는 매그레반장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어낸 작가라는 데 내가 한 번도 접해본 적이 없는 작가다.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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