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현, 박상연 방송작가 콤비가 앞으로 하고 싶은 장르가 SF라는데, 그들이 만든 SF 이야기가 궁금하고 어서어서 나오길 간절히 기대한다. 영화 쪽은 누구? 언제쯤 놀라운 물건 하나가 나올까, 나오긴 할까 뭐 이런 생각들을 잠자기 전에 누워서 생각하곤 한다.

누구 말대로 우리나라에서 SF는 게토장르라고 한다던데, 나에게 SF는 늘 도전해보지만 실패! 하는 쪽이다.

그러다보니 몇 년째 이쪽으로는 도무지 진도가 안나간다.

 

작년 1월, 2011년 처음 읽은 책은 다카무라 가오루의 [석양에 빛나는 감](개정판 [조시])이었고, 그 소설의 제사로 나온 단테의  [신곡]을 보고 신년 기획으로 [신곡] 독서를 계획했다. 책도 사들이고. ...... 일단 작년 한 해 그리고 해가 바뀌어 오늘까지 이 계획은 그냥 계획일 뿐이다. 책만 꽂아두고.

 

계획하지 않았지만 1월부터 몹시도 부지런하게 책을 읽어가고 있다. 문득 나의 책읽기 경향이 보수적이고 다소 치우치고 단조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학만 놓고 보더라도 현대문학 쪽은 잼병이다. 국적 다양성에서도 나는 뭐, 이렇다 말할 게 없다. 닥치고 일단 읽어....가 제대로 될리 없다. 읽다보면 이걸 도대체 어떻게 읽어야 하는 거야???? 이 소설에서 뭘 봐야 하는거지????? 혹 시간낭비 하는 건 아닐지 뭐, 이런 투입 대비 생산성을 따지는 독서를 하고 앉았더라고.

사상체질에 따른 학습법이 있다고 하듯이 독서도 비슷할 것 같다.

나의 성향상 이해되지 않고 뭔가 잡히지 않는 독서를 계속 해나가기는 절대로 쉽지 않다.

SF가 나의 이 성향 때문에 발목 잡히는 장르가 되었다.

빈약한 상상력과 이해력, 얄팍한 감수성, 더 보태자면 근본 없는 철학적 취약함이 드러난다. 

 

SF만 남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SF로 향하고 있다.  .......

내가 그 동안 사들인 SF에 속하는 책들이라곤 열 손가락에 다른 손가락 몇 개 더 꼽으면 끝난다.

그것도 최근 사들인 필립 K. 딕 선집 덕분에 늘어났다. 거기다 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것까지 좀 보탤 수 있다. 

완독한 책이 별로 없다는 것도 문제다. 더 참담한 것은 읽은 책에 대해서 딱히 뭐라 할 얘기가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

계통도 없다. 그나마 소장서 중에서도 PKD의 저작물이 많은 건 영화 때문이다.

SF나 환상문학을 콘텐츠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좋다. 문학적 취향으로 다가가든 뭔가 좀 건져보려는 콘텐츠로 접근하든 도전은 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올해는 애써 SF를 찾아 읽어볼 계획을 세웠다.

 

일단 내가 가지고 있는 빈약한 SF 서재의 책들 중 읽지 않은 책들부터 꺼내 놓아야겠다.

 

읽다 중단한 책들......

 

 솔라리스 / 스타니스와프 렘 / 강수백(김상훈) 역

 

 아마도 내가 처음으로 받아든 SF 소설 아닌가 생각이 든다.

 내가 산 책이 아니다.

 미소년에 가까웠던 그는 잘 살고 있는지.... .

 이 누나는 아직 이 책을 완독하지 못했구나...

 쓸쓸하고 우울한 정서를 지닌 책이었던 느낌이 남아있다.

 

 

 

 

 신들의 사회 / 로저 젤라즈니 / 김상훈 역

 

 

 

 

 

 

 

 

 

 

 마이너리티 리포트 / 필립 K. 딕 / 이지선 역

 

 마이너리 리포트 외 7편의 단편집인데 표제작 외 읽은 게 없다. 쩝.

 

 

 

 

 

 

 

 

  죽은 자가 무슨 말을 / 필립 K. 딕 / 유영일

 

  표제작 외 5편의 단편집인데, 역시 표제작 외 읽은 게 없고,

  죽은 자가 무슨 말을... 하긴 했남?

  도매가로 기억을 팝니다와 두번째 변종이 실렸다.

 

 

 

 

 

 

 

그리고 그대로 모셔둔 책들 ......

 

 당신 인생의 이야기 / 테드 창  / 김상훈 역

 

 

 

 

 

 

 

 

 

 

 

 

 

 

 

 

 

 

 

폴라북스의 PKD 선집. 아, 진짜 숙제하듯이 읽어야 할 것 같다. 그러고보니 PKD 월드에 너무 치우쳐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갖고 있는 책 중에 아직 읽지 않은 책만으로도 녹록치 않다.

SF와 함께 카프카의 세계를 좀 깊이 들여다볼 계획을 가지고 있다.

카프카는 어렸을 때 읽은 뒤 제대로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옛날 책들 정리하면서 다 버린 관계로 지금 집에 한 권도 남아 있지 않다. 새로 나온 번역서들로 새롭게 읽을 일이다.

카프카 월드.

 

 

 

 

 

 

 

 

 

 

 

 

 

 

 

그리고 아직도 읽지 못한 조지 오웰의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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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욱동 번역의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를 읽다가 두었다가 다시 집어들었다가 해가며 겨우 읽기를 마쳤다.

그렇게 3주 정도 걸려 읽은 것 같다.

소설을 읽는 동안에는 다른 책을 집어들어서는 안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 소설에만 온전히 집중하는 것.

그런데 지난 1월에 읽기 시작한 제발트의 [토성의 고리]는 반 정도 읽다가 중단된 상태고 헤밍웨이의 이 소설은 읽다 중단하기를 반복하며 그래도 끝을 보긴 했다.

헤밍웨이 사이에 대실 해밋과 엘러리가 끼어들었다. 가끔 애거서 크리스티도.

 

그러다보니 '빙산이론(Iceberg Theory)'이라 불린다는 헤밍웨이의 문체를 따라 빙산 꼭대기만 간신히 디뎌가며 건너온 것인데,

보이지 않고 잠겨있는 깊이를 감히 떠올려보지도 못한 것 같다.

끝에 이르러 딱 걸리는 장면이 있었는데... ,

 

책 소개에 나오다시피 이 소설의 줄거리는 전쟁에서 하필이면 중요부위에 부상을 당한 '나'(제이크 반스)와 내가 사랑한 브렛, 그녀를 사랑하는 마이크와 소설가 로버트 콘 간의 이렇다 할 것 없이 이어지는 일상과 여행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제이크와 브렛은 여전히 미련이 있는 듯하지만, 브렛은 마이크와 결혼하려 하고, 로버트 콘 역시 애인이 있었음에도 그녀와 헤어지고 브렛을 만나며 브렛은 로버트와 여행까지 다녀온다.

네 사람의 감정들과 갈등이 미묘하게 절정을 향하고 브렛은 어린 투우사 로메로와 함께 떠나 버린다.

제이크와 마이크와 로버트도 헤어져 각자의 집으로 돌아간 뒤 제이크는 다시 스페인의 산세바스티안을 찾는다.

 

그 곳에서 제이크는 브렛의 전보를 받는다. 힘든 일이 생겼으니 자기가 있는 곳으로 와달라는.

제이크는 브렛에게 가기 위해 열차를 예약하고 그녀에게 전보를 띄운다. 그곳으로 갈 예정이라는 짤막한 전갈,

'사랑하는 제이크' 라는 서명과 함께.

 

그 다음에 나오는 대목이다.

 

"여자를 한 남자와 떠나 보낸다. 그녀를 또 다른 남자에게 소개하니 또 그 남자하고 도망친다.

이제는 그 여자를 데리러 간다. 그리고 전보에 '사랑하는'이라고 쓴다. 바로 그랬다. 나는 점심을 먹으러 호텔로 들어갔다."

  (김욱동 번역,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361쪽)

 

한겨레출판에서 나온 이한중의 번역 판은 이렇다.

 

"한 여자를 딴 남자와 떠나 보내고. 그녀를 또 다른 남자와 떠나 보내고.

이제 그녀를 데리러 가다니. 그리고 사랑한다며 전보를 보내다니. 아무튼 그렇게 되고 말았다. 나는 점심을 먹으러 갔다."

  (이한중 번역, [태양은 다시 뜬다], 326쪽)

 

이 다음부터 마지막까지 10여 페이지는 이 '빙산' 밑을 보아야 할 것 같다. 그렇게 미련 많던 제이크와 알 수 없는 브렛의 행위와 대화들... . 씨바, 나도 여잔데 브렛을 모르겠다.

어쨌든 이한중 번역의 [태양은 다시 뜬다]를 읽을 차례다. 이번엔 한 번에 읽으려 한다.

 

 

 

 

 

 

 

 

 

 

 

 

 

필립 K. 딕의 새 책이 나왔다. 폴라북스에서 나오는 PKD의 책들을 사모으고는 있지만 아직 한 권도 읽지 못했다.

지금 내게 PKD는 숙제같은 작가가 됐다. 게다가 이번에 나오는 [발리스]는 SF에서 신비주의로 넘어간 PKD 말기의 '발리스 3부작' 중 첫번째라고 한다. 감당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작가 자신의 체험담이 녹아들어간 자전적 내용, 영지주의를 근간으로 신화학, 철학, 정신분석학, 음모이론이 복잡하게 뒤얽힌 이론적 바탕, 가짜 기억과 현실 붕괴 속에서 인간의 존재 가치에 대하여 탐구한 PKD 특유의 주제의식이 어우러진 문제작,

 

이라는 소개가 호기심을 자극하면서도 걱정이 앞서게 한다.

나처럼 단순한 사람에게는 '높은 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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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이 2012-12-08 2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태양은 다시 뜬다> 민음사 판과, 한겨레 판중에 어떤 책이 원작에 충실한 번역인지 모르겠네요...
둘 다 읽어보신것 같은데...어느 출판사가 헤밍웨이 문체나 느낌을 잘 살렸는지 알수있을까요?

포스트잇 2012-12-12 17:36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너무 어려운 질문이신데요, 흠..원서를 보지못한 데다가 가려볼 능력이 없어서요...제가 어떻게 헤밍웨이 문체까지 가려볼 수 있겠습니까,,,?
저한테 왜 이러세요~^^
민음사 김욱동 교수 번역작만 읽고 이한중 씨 번역판은 그냥 갖고만 있습니다,
위에서 다룬 부분만 찾아봤거든요, 저 대목만 보자면 전 이한중 번역이 더 좋더라구요, 김욱동의 번역은 하드보일드 문체에 충실하려는 의도가 너~무 드러난 것 같아 뻣뻣해진것도 같구요,
[무기여 잘 있거라]는 열린책들 이종인 번역으로 읽었는데 갠적으로 [태양은...]보다 더 좋았습니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아직이지만 선택한다면 김종인 번역을 선택하겠습니다.
오역은 없어야하고 그다음엔 원저자의 문체가 강하다면 번역자가 최대한 살리면서 느낌도 잘 전달할 방법을 찾아야겠지요.


최근에 히라노 요시노부의 [하루키 하루키]를 읽고 놀란게 [1Q84]의 우리 번역서에 중요한 문장의 시제 번역이 잘못됐다는 걸 알았습니다, 고의는 아닐지라도 역자와 교정자의 보다 정확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믿고 보는 거잖아요.

여튼 만족하실만큼 충분한 대답을 드리지 못해 죄송,,,

2012-12-13 02: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12-13 17: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어제 윤종빈 감독의 <범죄와의 전쟁>을 봤다. 어제의 흥취가 여전하다.

아주 재밌는 영화였고 무엇보다 배우들을 보는 즐거움으로 행복할 지경이었다.

최민식이 연기한 최익현이라는 캐릭터는 아주 흥미로웠다. 근래 한국영화를 많이 보지는 않았지만 캐릭터로는 갑 축에 낄 수 있다고 자신한다. 최민식, 하정우는 물론 연극배우였다는 김성균은 쉽게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또 빠뜨릴 수 없는 게 음악. '함중아와 양키즈'의 "풍문으로 들었소"를 '장기하와 얼굴들'이 새롭게 연주했다.

하루 종일 듣다.

 

감독은 영화의 시대적 배경이 된 80년대와 1990년에 부산에서 경찰을 했던 자신의 아버지를 생각하며 시나리오를 썼다고 한다. 그 시대에 집에서의 아버지와 집 밖에서의 아버지.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

 

천명관은 그 시대의 자신의 삼촌 얘기를 하는 모양이다. 

 

 

 

 

 

 

 

 

 

 

 

 

 

 

 

 

[고래]를 인상깊게 읽었는데, 이번 책도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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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왜 이래?

 

 

*지금 주문하면 "2월 7일 출고" 예상(출고 후 1~2일 이내 수령)

 

 

 

 

 

 

 

 

 

 

 

 

 

 

 

에이, 빈정 상했어.

수요일에 풀렸으니 날이 지나면 배송일이 바뀔 줄 알았는데 계속 미뤄진다.

본격추리물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어서 지 아무리 엘러리 라고 해도 패스하자 그랬는데, 이번에 시공사 검은숲의 시리즈는 책뽄새가 ... 이뻐~

 

인기 많은 연극이 상연되고 있는 로마극장에서 관객  한 명이 살해된다. 그의 모자가 어딘가로 사라졌다.

정장을 입을 때 반드시 모자를 써야했던 시절이라 제기 될 수 있는 미스터리다.

[로마모자 미스터리] 한 권을 겨우 읽었고,  [프랑스 파우더 미스터리] [네덜란드 구두 미스터리]는 그냥 ... 있다.

그 와중에 [그리스 관 미스터리]가 나왔다.

 

 

 

 

 

 

 

 

 

 

 

 

헤밍웨이와 대실 해밋, 두 사람의 책들을 부지런히 읽는 와중에 엘러리까지 가세한 형국이다.

공교롭게도 1920~1930년대에 나온 책들이라 ([노인과 바다]는 50년대지만) 시간차의 현기증까지 느낀다.

지금의 책, 지금의 작가(소설에 한해서)를 읽기 두려워 하는 건 아닌지. 시간도, 돈도, 마음도 다 한정된 자원이라 새로운 것들을 찾아 물건을 발견하는 재미를 취미 삼아 갖기란 쉽지 않겠다. 그럴까? 한정된 자원을 현재와 미래의 것들에 쏟으면 되는 거 아닌가?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 보수적 책읽기를 하는 것 같다.

 

[물만두의 추리 책방]에 첫번째로 실린 글은 "정통 본격 추리소설은 이런 것이다"로 엘러리 퀸의 [중간지대]를 다룬 것이다.

 

 

 

 

 

 

 

 

 

 

 

 

 

 

 

물만두 님은

 

'조그마한 단서라도 지나칠까 봐 세심히 주의를 기울였다. 그리고 단서들을 통해 누군가를, 이 사람이 범인이라고 추리했고, 내 추리는 들어맞았다. 이것이 추리소설을 읽는 묘미다. 아무 생각없이 몇 시간을 범인을 찾기 위해 정신없이 책만을 봐야 하는, 그리고 읽고 나면 휴식을 취한 듯 머리가 맑아지는 장르가 추리소설, 그 중에서도  본격 추리소설이 가진 진정한 매력이다'

고 썼다. 이 태도!

 

나는 [중간지점의 집]을 읽으면서 물만두 님처럼 '세심히 주의를 기울'여 읽으려 노력했다. 나도 누군가를 의심했다. 중간 중간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지목한 그 사람은 범죄를 저지름으로써 얻을 이득이 없었다. 또한 작가는 중간 지점에서 이미 범인을 가르쳐 주고 있는데도, 그럼에도 나는 집착했다. 결국 내 추리는 실패했는데, 논리적 추론 보다는 초반의 '감'에 집착한 듯 했다. 본격 추리소설의 작동원리를 무시한 것이다.

 

헤밍웨이, 대실 해밋, 엘러리까지 읽으면서 뭔가를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민음사 김욱동 판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는 여전히 데면데면하고 김우열 번역의 [붉은 수확]과 [유리 열쇠]는 이게 진짜 해밋의 세계인지, 해밋의 인물답게 번역한 것인지 감을 잡지 못하고 그저 읽는다.

 

 

 

 

 

 

 

 

 

 

 

 

 

 

 

 

 

 

 

 

 

 

 

 

[태양은 다시 뜬다]로 한 번 더 읽고, 대실 해밋은 다른 책들을 마저 읽고, 엘러리 퀸과 나머지 책들도 계속 읽을 것이다.

이처럼 집중할 수 있는 시간도 별로 없다. 할 수 있을 때 일단 멀리 가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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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면 폭풍독서라 할만하다. 정말 오랫만에 맛보는 진공상태로의 몰입. 여튼 정신없이 읽으며 보냈는데 그렇다고 리뷰라든지 좀더 상세한 독후감은 쓸 수가 없다. 요즘 묘하게 중독되는 김어준 총수의 말투를 흉내내 말하자면, 리뷰쓰기 '싫다!', 더 정확하게는 '못해!' 쓸 능력이 안돼!

 

책 첫 페이지에 작년 10월 25일 날짜가 쓰여 있다. 이 날짜가 책을 이 날 받았다는 건지, 이 때 읽기 시작했다는 건지, 내가 써놓고도 무슨 의미인지를 모르겠다. 찾아보면 둘 중 하나의 날짜일텐데,... 귀찮다!

어쨌든 벌써 꽤 오랜 시간이 흐른 것이다.

 

 상당히 재미있는 책이다. 일개 상품에 '문화적 무게감'을 실리게 한 시대의 인물을 다루는 무게를 감당할만한 저자의 솜씨도 좋다. '당신의 아이팟에 담긴 음악이 당신을 말해준다'. 취향과 스타일의 시대.

 

 

 

 

 

 

 

 

히가시노 게이고의 초기작 [마구].

 

게이고의 소설은 늘 재밌게 읽을 수 있다. 깔끔하달까, 군더더기가 없다.

 

 

 

 

 

 

 

 

 

 

 

 

반면에 노나미 아사의 [얼어붙은 송곳니]는 군데군데 장황스러워진다. 이 소설은 유하 감독의 도시 3부작 중 마지막이 될 영화 <하울링>의 원작이라고 한다. 원작을 잘 잡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형사와 경력 많은 남자 형사 캐릭터 간의 충돌과 변화, 늑대개에 의한 연쇄 살인, 그리고 마지막에 늑대개와 그 뒤를 쫓는 여형사의 오토바이 추격신 등 영화화해 볼만한 매력적인 요소들이 있는 듯했다. 이나영과 송강호가 주연이다. 유하 감독이 두 캐릭터에 원작과 다른 어떤 의미를 부여했을지 궁금해진다. 진부하지 않기를.

 

 

 

 

 

 

 

 

제발트의 [토성의 고리]는 읽는 중이다. 잡스 때문에 밀려났다. 재미없는 건 아니다. 5장은 영국 사우스월드 지방에 도챡해 우연히 보다 잠이 든 다큐멘터리를 빌미로 재구성된 인물과 역사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비교적 선명한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흥미로웠다. 1916년 런던 감옥에서 반역죄로 처형당한 로저 케이스먼트를 추적해가면서 영국인들의 아프리카 식민지 착취(여기서는 콩고)에 대한 실상을 언급한다. 이 얘기의 매개 인물은 조셉 콘래드이다.

 

 

 

 

 

 

 

제발트 때문에 배수아를 다시 떠들어봤다. 지난 7일자 프레시안 BOOKS에 실린 소설가 김사과의 글 때문이었는데, 김사과는 제발트가 배수아에게 각별한 영향을 끼친 작가라고 알려준다.

"제발트의 글쓰기와 배수아의 글쓰기가 갈라지는 지점은 히스테리의 유무, 그것이 제발트 보다 배수아의 글이 더 흥미로운 이유다. 히스테리가 없는 제발트의 글쓰기는 유려하지만, 균열이 없고 매끈하게 봉합되어 있다. 배수아의 글쓰기는 균질적이지 않고 과잉되어 있다. 그래서 제발트의 글쓰기가 꿈처럼 독자들을 마비시킨다면, 배수아의 히스테릭한 글쓰기는 독자들을 불편하게 한다. ...... 제발트가 유럽의 종말적 풍경에 압도되어 보르헤스적인 꿈의 세계를 어슬렁거렸던 것처럼, 카프카가 자신의 현실의 곤경을 재료삼아 관료들로 이루어진 악몽의 세계를 설계했던 것처럼, 배수아는 굳게 닫힌 문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현실의 압력을 재료삼아 길을 잃은 목소리들이 떠다니는 꿈의 세계를 짓고 있다."

 

배수아의 책은 [올빼미의 없음]을 한 권 구입해 놓고 그 세계가 궁금해서 들여다봤지만 잘 모르겠다. 그의 소설에서 뭘 봐야 하는건지. 아주 매력이 없는 건 아니지만, 낯선 것만은 분명하다. 새로 나온 소설집 [서울의 낮은 언덕들]도 낯선 세계, 낯선 취향을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 때문에 읽어볼 예정이다.

 

 

 

 

 

 

 

지젝의 [폭력이란 무엇인가]도 끝을 내야겠기에 나머지를 읽었는데, 제발트의 소설이 언급된다.

 

 

[On the Natural History of Destruction]

 

 

 

 

 

 

 

 

 

 

 

 

지젝의 [폭력이란 무엇인가]를 읽다가 애거서 크리스티의 [뮤스가의 살인]도 궁금해졌다.

 

[뮤스가의 살인]은 초기 단편 중 하나라는데, 푸아로는 자살처럼 보이는 사건을 만난다. 자살인가, 자살처럼 보이게 서툴게 위장된 살인인가, 지젝은 푸아로의 해결이 애거서 크리스티 작품에서 최고중 하나라고 한다. 아직 읽어보지 못했다.

 

 

 

 

 

 

 

 

읽고 있는 책은 홍기빈의 [비그포르스, 복지 국가와 잠정적 유토피아]다. 지젝의 [폭력이란 무엇인가]도 다시 한 번 찬찬히 읽어보고 싶은데, 두 책이 주는 의미가 분명 있을 것이다. 둘 다 어려운 책이다.

 

 

  

 

 

 

 

 

 

 

 

 

그리고 헤밍웨이, 아득히 먼 옛날 읽었던 책들.

 

 

 

 

 

 

 

 

 

 

 

 

 

헤밍웨이와 피츠제랄드 사이는 모르는 사람 빼고 다 아는 사이인데, 김영하가 [위대한 개츠비] 해설에서 썼듯이 개츠비가 인생을 걸고 사랑한 여성이 과연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여성이었던가를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를 읽으며 떠올린다.

이제 100여 페이지를 읽고 있는데 헤밍웨이의 문체며 스타일을 느끼기엔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잘 모르겠다.

 

또 다른 전집

 

 

 

 

 

 

 

 

 

 

 

 

 

[몰타의 매] 정도를 빼고는 구입해야 할 것 같다. 동서문화사에서 나온 [피의 수확]은 절반쯤 읽고 말았다.

대실 헤밋은 잘 모르겠다. [몰타의 매]가 그렇게 매력적이지는 않았기 때문에. 영화 <말타의 매>는 느와르 영화의 고전이 됐다. 레이먼드 챈들러의 [심플 아트 오브 머더]를 참고하면서 해밋을 만나는 거다.

 

"해밋은 초창기부터 (그리고 거의 마지막까지)삶에 대해 공격적이고 날카로운 태도를 지닌 사람들의 얘기를 썼다.

그들은 인생의 어두운 면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원래 그런 곳에서 자라난 사람들이었으니까. 폭력에 이미 익숙했기에 쉽게 좌절하지도 않았다.

해밋은 단순히 시체를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확실한 이유로 살인하는 사람들 손에 살인을 돌려주었다."

 

 

 

 

 

 

 

 

 

 

 

 

 

헤밍웨이의 영향을 받은 대실 헤밋이 비슷한 시기에 저작권 만료를 만나면서 전집을 갖게 됐는데, 덕분에 때아닌 하드보일드 월드를 헤매게 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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