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욕심은 많고 몸이며 정신은 안 따라 주고.... 내 평생의 고질이 아주 지겨울 지경이다.

벌써 또 한달이 훌러덩 벗겨지는데 그냥 보내기 뭣하야 서재 들어왔다.

도서정가제가 알라딘 최대의 화두였군. 그 사이에도 제대로 읽지도 못하는 책을 사고 또 사고... 책값을 정가대로 사야한다면.... 아무래도 한번 주저했던 것 한번 더 주저하게 될 것이다. 경제사정이야 빤한거 아닌가. 욕심을 줄여야 한다. 참고 참고 또 참는 것 외에 아무래도 신간이나 서재 블로그도 덜 쳐다보고 들입다 일만 하는 쪽으로다가 ...

근데 들입다 일을 해도 경제사정이 거기서 거기인 건, 내가 미스터리 장르 안에 있어서 그런가? 어딘가 단서가 있다니까!

 

도서정가제를 원칙적으로 찬성한다. 그러나 이로인해 동네서점이 살아나고 뭐 이따구 바램을 갖지는 않는다. 그건 안될 것이다. 그 문젠 도서정가제 하나가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도서정가제를 추진하는 쪽에서도 그런 소리로 호도하진 않았으면 한다. 대형마트 설립과 영업규제로 재래시장이 활성화되거나 살아나지 않는 것과 거의 같은 것 같다. 소비자들이 이미 그런 양태의 소비를 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대형마트에 서점이 입점하는 경우는 어떨까? 이건 좀 관심이 가네. 종편의 경험이 좀 아프다보니 조심스럽다. 알라딘이 최대의 공적이 되어 있었군. 결국 손을 들었고. 알라딘이 업계4위. 위태로울 수 있다는 것. 대체 그동안 알라딘이 도서생태계와 유통질서를 얼마나 어지럽히고 있었다고 이 난리인가? 다른 인터넷서점은 좀 다른가? 알라딘이 정을 맞은 셈이군.

책값이 실제로든 체감적으로든 인상되는 건 분명할텐데 책 구매 여력이 더욱 어려워지는 사람들은 어떡할 것인가? 그게 도서관으로 커버될 수 있을까? 도서정가제가 책을 만드는 주체들과 유통계, 소비자들 모두에게 원칙 기둥 하나를 세우는 것이니 그 원칙을 둘러싼 세부사항들까지도 잘 정비되길 바랄 뿐이다. 개인적으로 도서정가제가 정착되어 어느 정도 적응될 때까지는 책을 사는 데 지금보다 훨씬 신중해질 것이 뻔하다.

모든 근심은 유혹됨에서 시작된다. 책의 유혹을 안 받는 쪽으로다가....

 

헨리 제임스의 [여인의 초상]을 읽었는데... 왜 이사벨 아처는 다른 구혼자들 다 마다하고 하필이면 길버트 오스먼드에게 빠지는가? 다른 인물들에 의해서건 작가에 의해서건 오스먼드가 이러저러한 사람이고, 이사벨이 이런저런 심리고 하는 내용이 많은데 정작 인물의 말이나 행동, 사건을 통해서 인물들을 이해할 수는 없었다. 다시 읽으면 좀 알려나? 나는 이런 책이 너무 어렵다. 결혼 후 3년이 흐른 지점부터 사람들은 모두 이사벨과 길버트의 결혼이 불행하다고, 특히 이사벨이 '불행'하다고 저마다 말한다. 불행해야만 한다는 듯이. 안나카레니나 부부와 이사벨 부부는 어떻게 다른가? 읽는 내내 궁금했다.

헨리 제임스와 [순수의 시대]의 이디스 워튼이 연인이었다는 게 얼핏 생각나는데, 헨리 제임스와 이디스 워튼이 비교되기도 하는 것 같다. 재미는 이디스 워튼이 훨씬 재미지다. 흥미롭다.

사랑이 얼마나 참혹할 수 있는지 [이선 프롬]만큼 서늘하게 보여줬던 작품도 드문 것 같다. 물론 과문해서 잘 몰라서이겠지만.

[여인의 초상]은 짬짬이 읽느라도 그랬지만 속도도 더디고 답답해서 읽고 나서도 개운치 않은 소설이 됐다. 다음에 다시 한번 도전해보고 싶다. 두번째 읽을 땐 좀 다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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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웃기는 김어준이 사라지고 난 한달여의 삭막함은 한겨레신문의 하니TV <김어준의 뉴욕타임스>가 그 없이 어떻게든 꾸역꾸역 회를 채워나가고 있음에도 감출 수가 없다. 이번 204회 방송에서 제작진은 국외에서 '망명정부'를 준비하고 있다(?)는 김어준의 말을 전해줬다. 웃겨죽는 줄 알았다. 여전한 명랑함이란........ . 

망명정부라는 말을 듣고 김광균의 시 한구절이 떠올랐다. 학창시절 이 시는 다른 어떤 시보다 인상적이었고 특히 이 한구절은 세월이 가도 잊혀지지 않는 구절이다. 다들 잘 아는 ........

 

"낙엽은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 (김광균,「추일서정秋日抒情」)     

라는 구절 .

 

이 구절은 김어준의 말 때문이 아니라 며칠전에 이미 한번 떠올렸던 시구였다. 작년 여름 사놓고 보지 못하고 있던 김기협의 [해방일기]도 올해 들어와  조금씩 읽고 있는데 이 폴란드망명정부 언급은 1권 1945년 9월 3일자 '일기'에 나온다. 9월 3일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회 주석 김구'의 이름으로 성명서가 나왔다. '3천만 동포에게 고함'.

 

 

 

 

 

 

 

 

 

 

 

 

 

 

 

 

일제의 통치가 종식된 시점에 망명으로부터 고국으로 돌아와야하는 임정으로서는 넋놓고 있을수만은 없었을 것이다. 앞으로 임정이 돌아와 할 일들까지 공표한 성명서였다. 김기협은 당연히 임정의 '가치'에 대해 묻는다. 무엇을 했던가.

 

자기 앞가림도 잘 못하는 장개석 밑에서 놀던 조무래기들 아닌가.

 물론 우리는 안다. 장개석 밑에 매여 있었던 것이 어떤 부득이한 사정 때문이었는지. 겉으로 드러난 창대한 업적은 없더라도 어려운 세월 동안 그 깃발 하나 지켜온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었는지. 그리고 민족의 앞날을 위한 어떤 훌륭한 생각들이 임정을 중심으로 어떻게 펼쳐져 왔는지.

 그러나 이런 것은 우리 한국인끼리나 알 수 있고 평가할 수 있는 것이다. 폴란드를 다시 한번 떠올려보자. 망명정부를 지키며 백만 가까운 병력을 연합군에 제공하고 국내의 독립운동도 치열했던 폴란드를. 그 폴란드가 패전국 일본보다 더 참혹한 대접을 받지 않았던가. 우리 임정이 그들에게 폴란드보다 좋은 대접을 받을 밑천이 무엇이 있었는가? (161)   

 

폴란드역사를 잘 알지 못한다. 폴란드 망명정부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단순 비교할 수 있는것인지도 아직은 잘 모르겠다. 어쨌든 김기협의 견해는 저렇다. 알아볼 일이다. 김광균의 저 시를 읽을 때, 저 싯구를 인상깊어 할 때, 왜 더 깊이 파들어가지 못했을까. 김광균이 저 싯구를 창작했을 때 무슨 생각을 했던 것일까? 김광균은 어떤 시인이었나?

 

 

 

 

 

 

 

 

 

 

 

 

'낭만적 감상성', '주제를 깊이 확보하지 못함'.......

 

폴란드 망명정부, 1939년부터 1990년까지로 돼 있는데, 이는 종전 후 폴란드가 공산화되면서 망명정부는 계속 유지됐다는데 이 또한 더 자세히 들여다봐야 할 것 같다. '민족주의는 반역이다'는 임지현의 '폴란드 민족해방운동사'가 흥미로운 얘기들을 전해줄지도 모르겠다. 동유럽사도 언젠가 보고싶다.

 

 

 

 

 

 

 

 

 

 

 

 

 

 

 

셰익스피어 역사극을 읽기 시작했다. 심벨린, 존왕, 리처드2세, 리처드3세까지. 역사는.... 놓칠 수 없는 주제이기도 하고, 언제나 흥미롭다. 아마도 이는 유전자 문제일지도 모르고 기질적인 문제일 것이다. 추하게 늙고 싶지 않다. '타는 목마름으로 신새벽에 남몰래 쓴다'던 시인은 시를 영원히 잃어버렸다. 김광석이 무심하듯 부르던 그 '타는 목마름'이 기억에 생생한데 이 시를 읊으려할 때 그 시인을 떠올려야 한다는 건 이제 참혹한 일이 되버렸다. 우린 왜 이런 일을 이다지도 흔하게 겪어야 한다는 말인가.

 

셰익스피어는 어쩌면 '저주'에 관한한 탁월한 작가인지도 모르겠다. 이다지도 '저주' 가득한 말들이 난무하는 작품들을 본 적이 없다. 저주에 관한한 따로 사전을 내도 되지 않을까? 셰익스피어식 저주사전.

지난주 일끝내고 주문한 김정환 번역의 책들은 주중에 배송될 예정이다. 당일배송이 사라졌다고 채널돌리다 언뜻봤다. 요즘 알라딘 당일배송도 '이틀배송'으로 바뀐 것 같다. 예측 불가능한 일이 한가지 더 는셈이다.

뉴스를 보지 않는 시간이 계속 흐르고 있다. 시사관련 프로그램도 전혀 보지 않는다. 나의 망명정부는 어따 꾸려야하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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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날  읽은 보르헤스의 [모래의 책].
사놓은 줄도 몰랐던 책, 민음사 황병하역의 [셰익스피어의 기억]에 수록된 단편이다.

 

 

  

 

 

 

 

 

 

 

 

 

 

 

 

어느날 음울함이 새어나오는 사람의 방문을 받는다. 음울함이 새어나오는 그 사람은 주인공에게 '성스러운 책'을 사라고 권한다. 페이지를 가늠할 수도 없고, 방금 읽은 대목이 다시 찾을 때는 사라져버린, 무한한 시간이 담긴 책. 주인공은 성경과 몇푼의 돈을 지불하고 책을 산다. 주인공은 점점 책의 수인이 되어가고, 주인공은 그 책이 자신을 갇히게 하고 현실을 손상시키고 썩게 만드는 악몽의 물체라는 걸 느낀다. 그는 나뭇잎을 숨기기 위한 가장 적합한 장소가 숲이듯이 자신이 일했던 국립도서관에 그 책을 버리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그곳에 버린다. 어디에 숨겼는지 기억하지 않으려 애쓴다.

 

새삼스레[셰익스피어의 기억]이 생각난 건 셰익스피어 때문.

지젝이 [멈춰라 생각하라]에서 언급한 셰익스피어의 [코리올라누스] 때문에 다시 셰익스피어에 급해졌다.

 

 

 

 

 

 

 

 

 

 

 

 

 

 

 

 

정확히는 랄프 파인즈가 연출한 영국 영화 <코리올라누스>(2011)인데, 원작이 기원전 5세기 로마의 전설상의 영웅 가이우스 마르키우스를 다룬다면, 랄프 파인즈와 극작가 존 로건은 코리올라누스의 지정학적 좌표를 바꿨다고 한다. 영화를 못봐서, 햐, 구하기 힘드네...., 로마는 위기와 부패에 빠진 현대의 식민지 도시국가이고 가이우스 마르키우스가 로마의 장군으로서 파괴시킨 적국 볼스키인Volscian은 불량국가 정도의 좌파 게릴라 반군으로 설정된다고 한다. 이 지정학적 구도속에 랄프 파인즈는 가이우스 마르키우스 코리올라누스를 급진적인 좌파 영웅으로 재정립시켰다고 지젝은 분석한다.

 

자세한 줄거리는 생략하고, 어쨌든 원작에서는 볼스키인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전쟁영웅으로 돌아온 가이우스 마르키우스를 로마인들은 코리올라누스라는 명예로운 별칭을 내려주며 집정관으로 추대하는데, 집정관 추대과정에서 그를 시기한 호민관 시시니우스와 브루투스는 코리올라누스의 반민중적 오만함을 증거해보임으로써 그를 모욕하고 코리올라누스는 로마를 떠나 얼마전까지 자신의 적이었던 볼스키인으로 들어가 적장 아우피디우스에게 자신은 로마와 싸우겠다고 그의 군에 합류한다.

코리올라누스는 정치적 맥락도, 세에 대한 이해도, 분석도 전략도 갖지 않는 그저 장군이다.

평민과 평민의 이해를 대변한다는 호민관 사이의 암암리에 진행되는 불온한 기운과 그에 굴복하지 않는 오만한 코리올라누스, 어느쪽이든 해석하기 만만치 않다.

 

지젝은 코리올라누스를 '신체없는 기관'이라고 한다. '두 호민관이 대표하는 평민은 착취당하는 노동자가 아니라 룸펜 프롤레타리아 폭도, 국가가 먹여살리는 군중이다'(페이지 221)고 정의한다. 코리올라누스가 적대하는 평민(대중)은 바로 그들이다. 그래서 진짜 평민(대중)을 찾는다면 차라리 볼스키인에게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신체없는 기관'으로서 고정된 계급 동맹의식이 없어 억압받는 자를 위해서도 선뜻 일할 수 있'(페이지 222)으며 따라서 코리올라누스는 '급진적인 자유의 전사'(223) 초상이 된다. 지젝이 덧붙인 말은 바로 코리올라누스를 통해 오늘날의 우리를, 우리가 처한 곤경을 정확히 주시할 수 있다는 거다. 

 

이 곤경을 지적해주는 또 하나의 지표로 최근의 대중문화 속에 등장하는 소시오패스적 인물들의 매력이다.

지젝은 이시대의 '진정한 혁명가'로서 '충분히 반사회적'인 소시오패스적 인물을 기대한다.

지젝은 아담 코츠코에 기대 소시오패스적 유형으로서 책략가, 야심가, 집행자의 유형을 가진 진정한 혁명가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혁명가의 모습이라고 결론짓는다.

"대의를 위해 인생을 바칠 준비가 되어 있고, 그 일을 하는 데 창의적으로, 기꺼이 위험을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으며, 자신의 행동에서 순수한 기쁨을 느껴 희생적인 마조히즘의 모든 흔적을 털어 내는 사람"(226페이지).

과거의 혁명가들과 다른 가장 중요한 점, "순수한 기쁨, 천진난만한 기쁨'이 있어야 한다는 점. 누가 이런 사람 모르시나요?

박근혜 정권을 맞는 우리의 곤경과 지젝이 갈구하는 이런 사람은  어느 정도의 싱크로율을 가질 것인가? 나는 그것이 궁금하다.

지젝이 던진 화두를 가지고 별로 영리하지 못한 나는 전전긍긍하고 있다.

 

 

 

 

 

 

 

 

 

 

 

 

 

 

 

 

코리올라누스로부터 시작해 '천진난만한 기쁨'을 발산하는 소시오패스적 혁명가까지 멀리 전개해나가는 지젝의 상상력은 정말이지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발랄하다. 우선은 영화를 좀 봐야할텐데, 설마... 이 영화, 지젝은 끝까지 다 보고 말하는 거겠지?

 

[코리올라누스]와 함께 셰익스피어의 역사극 [리처드2세]도 내친김에 야금야금 읽었는데, 재밌다.

 

나남의 이성일 역으로 구입해 읽었는데, 역자는 산문투로 풀지도, 운문번역투로도 번역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이 무대에 올리고자 쓴 대본이라는 점을 십분 이해하여 가급적 셰익스피어의 시행에 맞게끔 리듬에 반향하는 행들을 맞추려 노력하며 번역했다고 하는데,

잘 모르겠고, 어쨌든 부드럽게 읽히긴 한다. 읽는 데 방해되지 않도록 꼭 필요한 것이 아니면 각주다는 것 조차 조심한 듯 보인다. 편안하게 읽힌다. 역사극만큼은 이 선집을 사볼만한 것 같다.

 

아, 마지막에 셰익스피어 역사극에서 다뤄지는 영국왕조의 가계도가 실려있다.

 

 

 

 

 

 

 

하, 이 셰익스피어 역사극 관련해서도 쓸게 많을 것 같지만, 능력이 안되고, 이성일은 리처드2세의 왕의 자격보다는 시인으로서 관객과 독자를 끌어들이는 매력을 지적한 반면, 박우수는 리처드2세를 시인으로 볼링브로크를 평범한 스타일로 보는 일반적인 해석은 잘못이다고 지적한다. 대립하는 두 인물 리처드2세와 볼링브로크는 실재론과 유명론을 대변하며 중세에서 근대로, 봉건제에서 초기 자본 축적기로 힘의 전이를 상징한다고 박우수는 분석한다.

 

  

 

 

 

 

 

 

 

 

 

 

 

 

 

10일 이후 김정환 역의 역사극을 본격적으로 읽어볼 생각이다. '심벨린'부터 '존왕', '리처드3세' '헨리4세', '헨리5세', '헨리6세', '리처드3세', '헨리8세'까지 다 읽어보고나서야 셰익스피어의 역사와 인물에 대한 생각들의 그림들이 보이지 않을까 싶다. 아직은 뭐라 말하기 쉽지 않다.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은 작고 얇은 책들이 좋은 것 같다. 지나치게 주석 많이 달려있고 뭐, 그런 것 보다는 한권씩 주머니에 넣고다니며 읽을만한 아주 좋은 독서감이다. 연구할 것도 아니고 필요하면 나중에 더 찾아 읽고 그러면 되지, 뭐 대단한 공부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마음먹기로 했다.

 

 

올해 내가 더 열심히 생각하고 알아봐야 할 일은, 회피하지말고, 은퇴후의 생에 대해서도 좀더 적극적인 탐색을 해야할 시점이다. 늦은감이 없지않지만........, 갈길이 멀다. 힘든 시절이 예상되는데 잘 버텨나가고 싶다.

 

 

2012년 마지막날 당일배송으로 주문한 책은 [네버랜드 그림책을 빛낸 거장들].

 

 

 

 

 

 

 

 

 

 

 

 

 

다늙어 그림책의 매력에 빠져들게 생겼다. 허참. .......

 

버나드 쇼의 [쇼에게 세상을 묻다]는 책 표지 그림만 줄구장창 들여다보고 있는데, 독일 낭만주의회화의 대표주자 카스파 다비트 프리드리히(1774~1840)의 <안개바다 위의 방랑자(혹은 안개낀 바다위의 방랑자)>라고 한다. 은근히 사로잡는 그림이다.

주로 자연과 등지고 있는 인물을 많이 그렸다고 하는데, 그의 그림들도 한번 들여다보고 싶다.

급기야 앤서니 브라운의 [겁쟁이 빌리]에도 이 그림이 나오는 걸 보고 말았다. 세상만사가 모두 걱정인 빌리의 잠못이루는 밤, 침대머리맡 위에 떡하니 걸려있는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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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2022-05-20 10: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이건 뭐 더러운 역사다. 이루 말할 수 없다. 굴욕스러워서 도저히 얼굴들고 다닐 수 없을 지경이다.

뉴스, 방송이든 인터넷이든 당분간은 들여다볼 수 없고, 들여다보지도 않을 것이다.

딱한 처지가 됐다. 돌아가는 꼴을 몰라라할 수도, 그렇게 해서도 안되지만, 지금부터 더 눈에 불을 켜고, 꼼꼼히 그들을 지켜봐야하지만, 솔직히 정말 보고 싶지 않다. 대안이 나오지 않는 한(누군가들은 열심히 대안을 찾고 있겠지, 제발 헛삽질 같은 건 하지 말고 제대로 대안을 찾자) 당분간 끊고 살 생각이다. 어쩔 수 없다.

 

해야할 일에 코를 박아보지만, 책도 읽어보려 애써보지만 아직까지는 힘들다.

휴가 내서 쉴 생각이다. 미안하지만 그렇게 해달라. 연초에는 끝내야 할 일들이 많다는 건 알지만 며칠만 시간을 달라, 했다.

그래도 책 한권이라도 가지고 가볼 생각으로 주문한 책들이 있다.

그중 가지고 갈 책은 버나드 쇼의 것이다.

 

 

 

 

 

 

 

 

 

 

 

 

 

 

 

[쇼에게 세상을 묻다], 부제가 '모르면 당하는 정치적인 모든 것'이다. 몰라서 당한다는 건 우리에겐 맞지 않는 것 같다.

뭐, 몰라서 당하는 것도 있겠지, 그러나 대부분은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다. 우리는 고착과 퇴행의 길을 선택했다.

쇼의 말년의 역작이라니까, 쇼의 생애 동안 경험하고 생각한 것들이 집대성된 결과물을 볼 수 있겠다. 그것도 아주 '지적 위트'가 넘치게 쓰여진 글이라니, 나도 덩달아 유쾌하게 '정치적인 모든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볼만 하겠다. 나의 휴식은 그런 것이다.

어떤 알라딘 서재지기는 '지젝을 읽을 필요가 있나 싶게 만드는 책'이라며 고수는 이런 것이다를 보여주는 모델처럼 소개하고 있는데, 흥미롭다.

 

대선 전까지 읽은 책은 지젝의 [멈춰라, 생각하라] 였다. 지젝의 글들은 소설도 아닌데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재미를 제공한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홍보문구처럼 띠지에 붙은 그의 '행동강령'이 적절하든 그렇지 않든,  물론 내가 잘 몰라서일수도 있지만, 솔직히 지젝 또한 헤맨다는 생각을 했다. 징후가 곧 미래라는 것, 단지 확신할 수 있는 건, '기존 체계의 무한한 재생산은 불가능하다는 것 뿐'(241)이라는 것인데, 이건 고작 카산드라의 운명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미래의 불행, 파국은 예언은 하지만 그외는 아무것도 없다. 이래저래 심난한 상황인 것이다. 제길.

 

 

 

 

 

 

 

 

 

 

 

 

 

 

 

 

최근에 민족문제연구소의 '백년전쟁' 다큐멘터리를 봤다. 눈물겨운 노력들은 계속되고 있다.

미래 세대는 모든 걸 똑똑히 알아야하지만, 그들의 현재 상황을 생각하면 이또한 암담하다.

미래 세대를 포기해선 안된다.

일찍이 경상도의 나라를 지적한 사람이 누구지? 본격적으로 연구해봐야할 테제인지도 모른다. 아, 천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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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2022-05-20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포스트잇 2022-05-20 15:09   좋아요 0 | URL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2012년 12월에 쓴 페이퍼네요....
 

오늘의 곤경.  
오늘 우리가 처해있는 곤경.
여긴 자신들이 어떻게든 해보겠다, 했다는 이의 고단함이 더욱 짠하다.
오늘밤 너무 깊이 절망하지 말고 더욱 알 수 없어진 미래를 위해 일단 멈추는거다.
지금과 다른 민주주의를 발명해내는 일이 미래에 해야할 일이될 것 같다.

이 정말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은 이 허무감을 추스려야 할텐데.  
독재자의 딸이 아무렇지도 않듯이 대통령이되는,  
역사의식이나 민주주의에대한 저급한 인식을 가졌더라도 아무렇지도 않는, 
언론, 검경을 쥐고 부정과 부패의 도를 넘어서도 그딴건 아무렇지도 않는,
아무일도 없었던듯이 대통령이 될 수 있다면,
미친듯이 투표하고 독려하고 생난리를 쳐서도 여기라면,  
우린 지금 우리가 맞이한 이 곤경을 다시 생각해봐야하는 거 아닌가.

오늘밤은 여기까지.  완전히 다른 싸움을 해야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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