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오 이시구로의 [남아 있는 나날]을 최근에야 읽었다.

이 소설은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의 동명 영화로 먼저 접했고 그게 아주 오래전 일인데 지금까지도 인상깊었던 영화로 남아있다. 앤서니 홉킨스가 연기한 주인공 스티븐스는 문제적 캐릭터로 생각을 많이 하게 한 인물이었기에 오래 남아 있을 수 있었다. 그래서 언젠가 꼭 원작을 봐야한다고, 숙제처럼 내 마음속에 남았을 것이다.  

그런데 아이보리 할아버지, 미스 켄턴을 연기한 엠마 톰슨과 스티븐스의 앤소니 홉킨스 사이의 로맨스는 역시나 별로 효과적이지 않았어요.

로맨스가 이루어지기에 스티븐스는 지나치게 (자신의 연정에 대해) 억압적이었다고 봐주길 기대했으려나? 

작품해설에서 김남주는 '억압'했다고 봤으나 나는 진짜로 무심했던 거 아닌가 싶은데.

 

아니, 스티븐스가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면서 계속해서 위대한 집사로서의 품위와 명예를 지켜온 삶이라고 자신을 설득하는 진술로 소설 전체를 본다면 무심해 보이는 진술 속에(화자는 스티븐스이니까) 실제 품었던 연정을 읽어내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가즈오 이시구로는 54년 일본 나가사키에서 출생했고 60년에 영국으로 이주했으니까 일본에서는 고작 6살까지만 살았다. 딱히 일본작가라고 할 수도 없을 것 같다. 영어로 소설을 쓰는 작가이고.

내가 신기해한 건 영국 신사계급을 수발드는 삶을 살아온 늙은 집사를 주인공으로 삼았다는 점이었다.

영국에서 살아왔지만 어쩔 수 없는 이방인의 삶이 투영될 수 있었던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흥미로운 점이다.

모시는 주인에 대한 충성, 집사로서의 임무를 완벽하게 해내는 삶.

물론 주인이 잘못된 인식과 판단하에 명예롭지 못한 일에 이용당했다고 해도(그것도 "세월이 입증"했다) 

"내 탓이라고 할 수는 없다. 나에게도 응분의 가책이나 수치를 느끼라고 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다."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과 만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맹목. 보려하지 않는 비겁함.

달링턴 경이 나치에 이용당하고 있던 날 밤, 스티븐스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정황을 똑바로 인식하라고 말하는 젊은 기자 카디널을 물리치고 회동이 벌어지고 있는 방 밖 "아치 밑 내 자리로 돌아"가 서 있었던 장면은,

영화에서는 어떻게 표현됐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이 소설에서 가장 결정적인 장면인 듯하다.

 

나는 다시 홀을 가로질러 아치 밑 내 자리로 돌아갔고, 그로부터 한 시간쯤 흐른 뒤 마침내 신사분들이 자리를 파할 때까지, 내가 자리를 떠야 할 일은 전혀 없었다. 그런데도 거기에 그렇게 서 있었던 시간이 지금까지 두고두고 내 마음에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처음에는 약간 울적한 기분이었음을 기꺼이 인정할 수 있다. 그런데 계속 그렇게 서 있는 사이에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아주 깊은 승리감이 내 마음속에서 솟구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당시 내가 이 감정을 어디까지 분석해 보았는지는 기억할 수 없지만, 오늘날 그 순간을 돌이켜 보면 그다지 설명하기 힘든 것 같지는 않다. 그 때 나는 극도로 힘든 시간들을 거의 마무리한 직후였다. 그날 저녁 내내 '내 직위에 상응하는 품위'를 지키느라 애써야 했고, 게다가 내 부친도 자랑스러워하셨을 정도로 잘해 냈다. 그리고 홀 건너편, 내 시선이 머물고 있는 문 뒤, 방금 막 내 직무를 수행하고 나온 바로 그 방에는 유럽 최고의 실력자들이 우리 대륙의 운명을 논하고 있었다. 그 순간에 누가 의심할 수 있었겠는가?

내가 집사라면 누구나 소망하는, 세상의 저 위대한 중심축에 거의 도달했다는 것을. 그때 거기에 서서 그날 저녁의 사건들, 즉 그 시각까지 있었던 일들, 그리고 현재도 진행되고 있는 것들을 되씹어 보자니, 내가 그때까지 살아오면서 성취했던 모든 것들의 요약 판인 양 느껴졌다. 그날 밤 나를 고무시켰던 그 승리감을 나로선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p.282)

 

 

아, 씨바... 잘쓴다.

작가가 아마 가장 심혈을 기울여 쓴 장면 중 하나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실제로 보지 못하는 자도 있고, 알면 괴로워지기 때문에 애써 외면하는 자도 있다. 그렇게들 산다.

정의를 세우는 것은 그래서 필요한 것이다. 그것이 무너지면 사회는 피폐해지며 그 피해는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 가장 심하게 받게 된다. 왜 그걸 모르는 걸까.

권은희 같은 사람의 소중함을 사회가 깨달아야 한다.

이명박 같은 이를 대통령으로 뽑으면서 우리 사회가 얼마나 하락했나. 지금 그토록 어렵게 가꿔온 민주적 상식이 어처구니 없이 모멸당하는 걸 보면 심상치 않다. 나는 위기를 느낀다.

 

 

 

 

 

 

 

 

 

 

 

 

 

 

 

 

영화 다시 한 번 보고 싶다.

 

알라딘 10주년이라고? 그렇구나. 나는 아마 2004년에 시작하지 않았나? 손놓고 있다 2005년부터 본격적으로 신경썼던 것 같다.

돌아보면 알라딘을 시작하기 전에 나의 '화양연화'는 끝났다. 끝났기 때문에 알라딘을 시작했을 것이다.

1990년대 중반부터 2003년까지가 그나마 내 인생에서 가장 빛났던 날들이었을 것이다.

그때도 늘 미래에 대한 불투명함과 두려움, 불안을 안고 살았지만 지나서인가... 그마저도 아련할 뿐이다.

그러니 어쨌든 견디며 지나보내야 하는 것인지. 아련해지도록.

 

<일대종사>(왕가위 감독)를 보다가 양조위(엽문 역)의 내레이션에서 픽 웃었다.  

나이 40에 인생의 봄은 끝나버렸다는(정확히 기억안나지만 가장 인상적인 내레이션이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의 인생은 40살로 끝난 것 같았다.

지금은 가을을 지나고 있는 것 같다. 앞으로 겨울만 계속될 것이다. 

이후 삶은 ... 아직 대책이 없다.

언제부터인가 ...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나는 어둠을 더 안온하게 느끼는걸까, 오히려?

마이클 코넬리의 [클로저]를 읽다가 다음과 같은 문장에서 숨을 고르게 된다.

 

보슈는 새벽은 황혼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새벽은 항상 볼품없이 찾아왔다. 마치 태양이 뭔가 어설프고 서두르고 있는 것 같았다. 

반면에 황혼녘은 좀 더 자연스럽게 찾아왔고 달은 태양보다 인내심이 많았다.

인생이나 자연이나 항상 어둠이 더 오래가는 것 같았다.   (p.399)

 

어둠이 기다리고 있잖아. 우리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어둠은 찾아온다고.  (p.448)  

 

 

 

 

 

 

 

 

 

 

 

 

 

 

아, 씨바...,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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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라 그런지, 휴가가 있어서인지 두꺼운 책들에 눈이 간다.

읽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뭐 그런.

제임스 엘로이의 [LA컨피덴셜]을 읽기 시작했는데... 초반이 잘 안 읽힌다.

인물들이 많이도 나온다. 인물들의 내력과 사연, 얽힌 인연, 관계가 마구 쏟아지는데 각 잡고 정리하면서 정신차려 읽어야지 뒤가 편할 것 같다.

 

 

 

 

 

 

 

 

 

 

 

 

 

 

 

영화(커티스 핸슨 감독)는 1998년에 나왔군. 이렇게 오래됐나? 러셀 크로우와 킴 베신저가 젊었던 때였으니.

당시 내가 딱 좋아하는 장르와 분위기를 갖춘 영화여서 기대 많았었는데 영화는 기대만큼 대단하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이제와서 원작을 보는 셈인데, 초반부터 쉽지 않다.

 

지금부터는 별로 두껍지 않은 책인데, 뭐 고작 300 페이지 '살짝' 넘는 분량이니.

미국 추리작가 협회가 엮은 [미스터리를 쓰는 방법]은 1970년대 글들이라 지금 보면 낡은 것도 있겠지만 글쓰는 사람들에게 글쓰는 어려움이란 뭐 크게 달라졌을까 싶기도 하고, 그런 점을 감안하고 보면 유용하고 재미있다.

부분부분 읽어가고 있는데 특히 14장 '실감나는 등장인물'은 아주 재미있었다.

존 D. 맥도날드([푸른작별])의 글이다. 주인공을 묘사하는 글과 함께 '다음과 같이 써서는 안된다'를 예시하고 있는데 이게 참 눈에 확 들어온다. 배울 거리가 있을 것이다.

 

 

 

 

 

 

 

 

 

 

 

 

 

 

 

마쓰모토 세이초의 [역로]는 단편집인데, 오랜만에 읽어서 그런지 아주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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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자기 전에 하루키의 데뷔작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휘리릭 넘겨보다가 뜻밖의 책이 눈에 들어왔다.

예전에 읽을 때는 전혀 인상적이지 않았던 것 같은데.

 

작가들의 첫 작품이 궁금해져서 내가 가지고 있는 것 중에 하루키의 데뷔작만 생각나서 펼쳐봤다.

오랜만에 다시 읽은 하루키의 데뷔작, 1~2장은 정말 좋다. 구원으로써 글쓰기를 시작하려는 하루키의 소망이자 뱃심이 읽혀지기도 한다.

작가들은 이렇듯 구원을 기원하며 글을 쓰는 걸까.

 

115페이지에 하루키가 만들어낸 작가 데릭 하트필드라는 이가 '끔찍하게 좋아했던' 책이라는 데,

로맹 롤랑의 [장 크리스토프]라는 책을 소개한 대목은 이렇다 .

 

나는 이 방에 있는 가장 신선한 책, 즉 알파벳 순으로 된 전화부에게 진실만을 얘기할 것을 맹세한다.

인생은 텅 비었다고, 그러나 물론 구원은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처음부터 완전히 텅 빈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정말로 고생에 고생을 거듭하며 열심히 노력하여 그것을 소모시켜서 텅 비워버린

것이다. 어떻게 고생하고, 어떤 식으로 소모시켜 왔는지는 여기에다 일일이 쓰지 않겠다.

귀찮기 때문이다. 그래도 꼭 알고 싶은 사람은 로맹 롤랑의 <장 크리스토프>를 읽어주기 바란다.

거기 전부 씌어 있다.

 

하트필드가 <장 크리스토프>를 끔찍하게 좋아했던 이유는, 그 책이 한 사람의 탄생에서 죽음까지를

참으로 정성스럽게 차례대로 묘사하고 있는 데다 엄청나게 긴 소설이기 때문이다. 소설이란 정보인

이상 그래프나 연표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으며, 그 정확함은 양에

비례한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915년 노벨문학상 수상작이라네. 베토벤을 이상화하여 만든 장 크리스토프라는 천재 음악가의 일생을 그린 소설이라는데 분량이 장난 아니다. 일단 당장 읽을 수 없는 책이다.

범우사와 동서문화사 두 곳에서 나온 게 대표적이네. 둘 다.... 섭섭하다.

 

나가야 하는데 이러고 있다. 쯧쯧.

 

 

 

 

 

 

 

 

 

 

 

 

 

 

 

 

 

 

 

 

 

 

 

 

ttb 광고 책장의 책들은 서재를 새로고칠 때마다 위치를 변동하는 모양이구먼. 그러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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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봐야 하는데 이러고 있다.

스마트폰을 사용 후부터는 그래도 가끔 혹은 곧잘 알라딘과 서재를 들여다보는 편이다.

아무래도 손 안에 있으니 그리 되더라고.

벌여놓은 일과 자꾸 발생하는 걱정되는 일들 때문에 독서가 쉽지 않은데 내게 책은 지금까지 위로를 주던 것이라서 멀리 하지는 못한다.

늙음에 대해서 부쩍 생각이 많아지는 요즘이다. 정말이지 예기치 않은 몸의 이상 변화들에 깜짝 깜짝 놀라게 된다.

20대에서 30대로, 30대에서 40대로 넘어가면서 흔히들 아, 몸이 예전같지 않네 라고 말들 하지만 그런 것과는 차원이 달라지는 것 같다. 죽음을 준비하는, 더 가까워지는 나이라 그런가. 여자라서 그런가. 여자는 남자보다 몇 개가 더 있지.

지금부터 이러할진대, 앞으로는 또 어떤 것들이 가슴에 싸한 바람으로 들어올런지 걱정스럽다. 평정함, 무상함을 생각하기.

어릴 땐 저마다 한번씩 생각하지 않나, 늙기 전에 사라지기.

그럴 수 있기를 소망한 적도 있지 않나? 두려워 회피하고 싶어지나.......

여튼 늘 새로운 날들이 열리는 느낌이다.

 

ttb광고를 나도 시작했다.

사실 잘 모르겠다. 사용방법도 낯설고 그렇지만 리스트를 따로 만들지도 않고, 새 책 나오거나 구미 당기는 책을 소개받을 때는 보관함이나 장바구니로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그걸로도 족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서재를 너무 오래 방치하는 경우가 잦아졌다. 좀 알량하지만 상단에 광고로라도 책을 노출하면 자주 손보게 되는 맛이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기도 한다. 수익은 별로 고려사항이 아니다.

책을 읽어야 서재질도 할텐데

8월엔 좀 여유가 생기지 싶다. 탑 높이가 자꾸 높아지고 있다.

 

근데 저 ttb 책장에 있는 책은 자꾸 움직이는 거냐? 아까 볼 때하고 위치가 달라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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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3-07-21 0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정하신 책들의 위치는 랜덤이에요. 클릭해 들어올 때마다 바뀌죠. 저도 그런데, 이게 제가 랜덤으로 설정한건지 원래 랜덤으로만 지정이 되는건지는 모르겠어요. 저는, 그나저나, 자정이 넘었는데 배가 고파서 이를 어쩌나 싶어요.

포스트잇 2013-07-21 10:42   좋아요 0 | URL
여전히 매혹적이시군요,다락방님^^
끝내 뭐좀 드셨을려나...[에브리맨] 페이퍼 쓰셨던데용...
야식의 힘...인가요?
언제나 열심, 부지런, 활력...늘 경탄하곤 합니다^^

지난번 츠바이크의 [초조한 마음] 소개하신 글 보고 저도 꼭 읽어봐야겠다고 두었는데 아직이네요
언젠가 읽어보려고요.
 

오늘은 아주 오랜만에 장르소설이 고팠다. 한동안 별로 보고 싶지 않았고 이제 혹 장르소설과는 영 이별하려는 건가 싶을 정도로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어째 이리 변덕이 심할꼬.

 

하, 6월 마지막 날 급하게 집을 나서 7월 첫날까지 중환자실 앞을 지키고 있어야 했다.

많은 생각이 오갔지만 또한 어떤 생각도 명료하지 않았던 시간이기도 했다.

정작 고비를 넘기고 일반 병실로 옮긴 며칠 뒤에야 밤에 문득 깨어 눈물을 쏟았다. 잘 감당할 수 있을지, 잘 견뎌낼 것 같기도 하다가 어느땐 지금까지와 다른 삶이 펼쳐질 것 같은 두려움도 일었다. 이렇게 쓰고 있으니 눈시울이 다시 뜨거워진다.

하, 여튼 힘든 시간이었고 ....... 물론 한 고비만 넘겼을 뿐이다. 마음이 내내 어둡고 무겁다는 건 이런 것인가 보다.

아무 일 없이 무료한 날들을 사랑해야겠다.

 

지난 달 내내 니체를 읽으려고 했지만 책만 사고 정작 읽지는 않았네. 줄리언 반스의 책도 역시 마찬가지.

지난 주말에는 레이먼드 카버를 꺼내놓았다. [대성당] 하나만 구입했는데 다시 꺼내 읽었고, 단편의 맛을 음미중이다. 

2007년이었나, [대성당] 외에는 [제발 조용히 좀 해요]나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은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었는데 별로 기억나는 게 없어서 이번 기회에 다시 읽어보려한다.

카버의 미발표 소설과 초기 소설, 에세이, 서평과 잠언을 한데 모은 [내가 필요하면 전화해 Call If You Need Me]가 문학동네 근간으로 소개되어 있었는데 이건 출간되지 않은 모양이다. 저간의 사정을 이제야 묻다니 참 빠르기도 하다, 끌끌.

 

 

 

 

 

 

 

 

 

 

 

 

내친김에 캐롤 스클레니카의 카버 전기 [레이먼드 카버 : 어느 작가의 생]도 읽어보려 한다.

옮긴이(고영범)의 말을 읽다가 잊었던 카버와 관련된 출간 스캔들을 다시 기억할 수 있었다.

2007년 10월 <뉴욕타임즈>에 두 번에 걸쳐 발표된 기사인데, 카버의 마지막 몇 해를 같이 보내고 사망 직전에 결혼한 부인 테스 갤러거가 새로운 카버 선집을 기획한다는 소식과 함께 초기 작품집이 편집자 고든 리시에 의해 거의 개작에 가깝게 고쳐진 후 출간됐다는 기사였다고 한다. 12월에는 <뉴요커>에서 본격적으로 분석을 했는데 [초보자들]이라는 작품이 리시의 편집을 거쳐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이 되기까지, 그 첨삭 내용을 그대로 공개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카버의 역량은 어디까지인가. 고영범은 리시가 손본 작품들에 더 끌렸기에 카버에 실망했었다고 하는데 캐롤 스클레니카의 이 책이 그러한 실망을 바로잡을 기회를 주었다고 한다. 그러니 아무래도 이 대목부터 먼저 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궁금하면 기사를 직접 찾아보고 더 자세한 정보들을 읽어보면 되겠지만 어디 말처럼 그게 쉬운가.

어떤 얘기들이 오갔는지 대개 궁금하다. 

그러니까 저 두 권, [제발 조용히 좀 해요]와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은 리시의 '지도'가 들어간 작품들인 것인가?

 

책을 떠들어보면서 맞아, 카버의 거구, 험상궂은 듯한 얼굴(일부러 강한 인상을 주기 위해 사진을 찍을 때 표정을 그렇게 짓곤 했다고 하지만 부드러운 표정을 가진 사람은 아닌듯하다), 알코올중독, 금주, 그리고 이른 죽음 등 예전에 카버에 대해 알고 있던 것들이 다시 생각났다. 오랜만에 본문만 893페이지인 전기를 볼 생각을 했다. 부분부분 작품과 관련된 대목 찾아 읽으려 한다. 그러다가 혹 정말 재미있으면 완독하게 될 것 아닌가.

 

카버를 읽으며 함께 참조할 작가로는 안톤 체호프, 프란츠 카프카, 그리고 무라카미 하루키.

 

  

 

 

 

 

 

 

 

 

 

 

 

 

 

 

자, 그리고 마구마구 사들이고 싶은 장르소설들.

아직까지 우리 나라에 소개되지 않은 초기 단편들을 모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비정근].

현대물로 돌아온 미야베 미유키의 [솔로몬의 위증].

이상하게 북스피어가 아니라 문학동네라서 의아해했는데 북스피어의 팟캐스트를 들어보니 이건 돈 때문에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다. 대신 북스피어의 [그림자 밟기]. 그동안 멀리했던 미야베 미유키에 다시 감탄할 수 있을런지.

 

 

 

 

 

 

 

 

 

 

 

 

게다가 김영하의 [살인자의 기억법]까지.

 

 

 

 

 

 

 

 

 

 

 

책만 읽고 싶다.

 

 

 

 

 

 

 

 

 

 

 

 

 

 

아, 또 이 책도 보고 싶다.

 

 

 

 

 

 

 

 

 

 

 

 

 

귀태(鬼胎). 고맙다. 놓치고 갈뻔한 책이었는데 돌아보게 해줘서. 일본 고단샤의 '흥망의 세계사' 시리즈 중 한 권으로 강상중 교수와 현무암 교수의 공저다. 박근혜와 새누리당, 그리고 지지도 보면 부끄럽지 않은가. 난 창피하고 쪽 팔려서 살 맛이 안나던데 다들 괜찮은가부다. 아무리 대안이 시원치 않다해도 그렇지. 세상 참 쪽 팔려서. ......  언론, 기자들까지 생각하면 내 참......

 

만주국에 대한 얘기로 하루키의 [태엽감는 새]가 다시 생각난다.

이번에 하루키의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에서도 다시 나오는데 '꿈속의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자신에게도 어떤 책임이 있지 않을까 하는 느낌'(374)

'그러나 어디까지나 상징적으로 그는 유즈를 죽이려 했을지도 모른다. 마음속에 도대체 어떤 짙은 어둠이 깔려 있는지 쓰쿠루 자신도 가늠할 수 없었다. 그가 알 수 있는 것은 유즈 안에도 그녀만의 은밀하고 짙은 어둠이 있었던 게 분명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어둠은 어딘가에서, 아주 깊은 지하의 어딘가에서 쓰쿠루 자신의 어둠과 서로 만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가 유즈의 목을 조른 것은 그녀가 그것을 바랐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는 그녀의 바람을 서로 이어진 어둠 속에서 들었을지도 모른다."(375)

하루키를 좋아하지만, 나는 하루키의 이러한 태도가 영 못마땅하고 꺼름칙하다.

그냥 개인적 취향을 맘껏 따라주었던 예전의 하루키가 더 생기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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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kim 2017-07-24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신 분이 님 본인이신지 분명친 않치만 고비를 두번이나 넘겨야했던저의 경험에 비추어 건강보다중요한건없더군요. 포스트잇님의 글을좋아하는사람으로서 명령합니다 부디 오래 건강하시길,

포스트잇 2017-07-24 16:14   좋아요 0 | URL
와, 여기 포스팅된 제 글을 좋아해주시다니, 더위를 훅 날려주는 바람같은 말씀이시네요 ㅎㅎ
감사합니다.

2013년 여름이었군요.. 제 아버지께서 급작스럽게 쓰러지셔서 중환자실에 계시다는 전활받았던.
님 덕분에 오랫만에 떠올려봅니다.

그나저나 지금은 괜찮으신가요? 세상에..고비를 두번이나 넘기셨다니..
건강하셔야 할 분은 제가 아니라 bgkim님이시네요.
더위 잡숫지 마시고 ㅎㅎ 건강한 여름 나시길 바랍니다.

bgkim 2017-07-24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뜻한 남쪽 해남으로.. 모든걸 접고 조용히 살고 있습니다.항상 님의글 잘보고 있으니 글많이 쓰세요.저는글재주가 없어요.우리 아들은 문학청년이지만 애비는 책소개만 해줄뿐 도움이 안돼 무력감을 느낄때가많아요·

포스트잇 2017-07-24 16:38   좋아요 0 | URL
깊은 생각없이 그때그때 지극히 사소한 메모처럼 글을 올리는데 예쁘게 봐주시니 참.. 고맙습니다.
앞으론 정말 생각 열심히 하고 좋은 글 올리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드님께서 잘 하실거에요. 옆에 계시는 것만으로도 힘인데요.
저 여름에 제 아버지께서 고비를 넘기시고 돌아오신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딴 생각 안하셔도 됩니다.
건강하세요~~

bgkim 2017-07-24 16: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솔직하고 이쁜 맘이 글에 묻어나서 기뻐요.열심히 쓰셔요.여기 충성도 높은 애독자를 생각하셔서...

포스트잇 2017-07-24 16:54   좋아요 0 | URL
네, 그저 감사할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