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새롭게 만나볼 기회는 오지 않는 것일까.

소식이 깜깜이다.

작년 겨울 이맘쯤에도 이 타령을 했던 것 같은데 죽지도 않은 각설이처럼 또다시 해저무는 날에 또다시 한다.

 

 

 

 

 

 

 

 

 

 

 

 

 

 

 

올해 나온 걸로는 이게 전부인듯 하다. 알라딘에서 검색하니 2013년 출간 책은 이거 하나다.

청소년을 위한 책이다.

 

읽을 책이 없는 것도 아니건만 꼭 없는 것을 찾는 고약한 심사도 여전하다.

겨울만 되면 이상하게 곡식 쟁여놓고 들어앉아 나야하는 사람처럼 이 계절만 되면 뭔가 찾게 된다.

내년 봄까지 노예마냥 묶여 해야 하는 일을 앞두고 허기진 사람처럼 허한 속을 채울 책을 찾는다.

철학책들을 읽어볼까 했는데 피곤한 몸과 마음을 위로받기 보다는 탈진할지도 모를 것 같다는 생각에 아서라했다.

나쓰메 소세키도 있고 애거서 크리스티도 있지만 큰 줄기는 [전쟁과 평화]였으면 했는데,

여차하면 박형규 번역의 범우사 판이라도 읽어볼까 한다.

사놓고 모셔뒀는데 먼지털어 옆에 둬야지 싶다.

허기진다.

현 정권과 자본의 관계가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해진다.

노무현 대통령은 권력은 이미 자본의 손에 넘어갔다고 했는데 자본보다 약한, 또는 자유로운 자본을 생각한 권력의 항복소리였던 것 같다.

이처럼 총동원해서 퇴행적인 이념공세로 일관하는 권력 앞에서 자본은 어떤 생각을 하는지 통찰이 필요한 것 같다.

이런 사회분위기가 자본에 도움이 되는 것일까.

정권은 유한하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지만 지형을 완전히 바꿔 다시는 반대로 기울어지는 일이 없도록 하려는 또는 적어도 예전 정도로 돌려놓으려는 노력이 어디까지 갈지, 어느 정도로 성공할지 모르겠다.

나라꼴이 이 모양인데 무슨 연애냐고 했던 누군가처럼 나도 좀 그렇다.

엠비가 천박한 자본질로 분탕질하더니 지에치의 사상적 퇴행성은 섬뜩할 정도이다.

앞으로 4년만 견디면 될까, 대안 세력에 대한 철저한 통제와 짓밟기가 이 정권 내내 지속될 것이고 아마도 대안 진영 내에서도 계속되는 분열과 내부다툼으로 지리멸렬한 몇 년을 보낼 것이다.

이꼴을 봐야 하는 것이다. 내 생각이 짧았다고 말할 수 있게 되면 좋겠다.

견디기 힘들 것 같다. 나는 그렇다. ........ 닥친 일만 하며 견뎌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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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서재 하는 동안 이맘때쯤 나오는 말 중 하나가 난 11월이 싫다 라는 말이다. 
난 일년 중 11월이라는 달이 제일 싫다. 
무슨 초딩도 아니고 제일 싫다 고 징징대는 게 무슨 앙탈인가 싶기도 하지만 무거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아침에 한겨레 홍세화 칼럼 "불륜의 시대- 정치의 소멸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맺는 관계에 대해"를 읽다가 더 쓸쓸해져버렸다. 

우리가 사랑을 믿었던 때가 있었듯이, 민주주의를 믿었던 때가 있었다. 이제 사랑이라는 말이 누구의 마음도 흔들지 못하고 인간 존재들에게 어떤 생명력도 불어넣지 못하는 무료한 것으로 전락했듯이, 민주주의 역시 어떤 위험도 모험도 아니며 투표장에서의 선거행위로 축소되고 말았다. 격렬하고 난폭한 섹스에 매달리고 그것을 사랑이라 믿을수록 결합이 아닌 분리를 경험하게 되듯이, 민주주의를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대의제라는 제도와 일치시킬수록 그것은 사회적 실재를 설명하지도, 주어진 현실을 변화시키지도 못하는 형해화된 껍데기로서만 존재하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은 이런 질문으로 끝맺는다. 
"불륜의 시대, 사랑이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함께, 민주주의가 다시 우리의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있는가" 
'무료한 것으로 전락'한 사랑, 민주주의. 과연 그 지경이 되어 버린 것인가.

무료하게 읽은 것 중 하나가 애거서 크리스티 탄생 80주년을 맞아 출간된 스파이소설 [프랑크푸르트행 승객]이다. 
첫작품이 1916년에 출간되었으니 1970년에 출간된 이 작품은 그녀의 50년 넘은 창작 세월을 생각해보면 원숙하기 이를데 없는 글이다. 
초반부 주인공 스탠퍼드 나이 경이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런던행 환승 비행기를 타기 직전 대기 중 한 여인이 다가와 여권과 그의 옷을 빌려달라고 말한다. 반드시 제네바행 비행기를 타야한다고 목숨이 걸린 문제고 스탠퍼드의 신분이 필요하다고 당당하게 마치 모험을 하듯이 말하는 것이다. 
긴급한 용무와 두 남녀의 수작이 결합된 대화 등은 흥미진진하다. 
60년대를 거치며 세계 곳곳의 폭발하는 '젊은 것들의 혁명적 운동'이 애거서 같은 이들에게 안겨주는 불안과 염려 혼돈이 십분 느껴지며 매우 불편하게 읽힌다.

젊은 것들을 진정시킬 수 있는 것들은 노쇠하여 여기저기 아프고 계속해서 아프기만 하다 죽을 노인들의 활약이다. 

마치 히치콕의 60~70년대 스파이물 영화를 볼 때의 느낌과 비슷하다.  
읽지 않아도 좋았을 책인데 겨우 겨우 읽었다. 
우리의 지금은 너무 쪽팔리는 거 아닌가. 이건 뭐 수준이하의 싸움이 여전히 반복된다는 지긋지긋함에서 오는 것이기도 하다. 
왜 우리는 여전히 수준이하의 대상과 여전히 싸워야 하는 걸까. 기획력과 공작력이 예전보다 세련된 게 달라졌다면 달라진걸까. 70년대에 나온 이 스파이 소설에서 본 노인들의 막후 활약이 신기하게 여전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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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을 잘 다루는 작가는 좋은 작가가 될 자질이 있다.

그리고 회상을 대체할 방법을 아는 작가는 현명한 작가가 될 자질이 있다.

                  [소설쓰기의 모든 것 : Part 1 - 플롯과 구조](제임스 스콧 벨), p. 340

 

 

소설 작법이나 시나리오 작법 관련 책들도 심심찮게 보는 편인데, 내가 뭘 써서가 아니라 주변에 관련 일을 하는 사람들이 좀 있어서이다.(근데 내가 왜 들여다보고 앉았냐?)  

꼭 무슨 스킬을 배운다든지 나도 좀 해볼까... 라는 마음이 없더라도 그냥 책으로서 흥미로운 책들이 많다.

[소설쓰기의 모든 것]도 거의 한달에 걸쳐 읽었는데 이번에 딱 걸리는 대목은 저 '회상다루기'에 관련한 말이었다.

 

회상(플래시백)이란 다루기 어렵다. 이야기를 처지게 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퇴행시키기까지 하며, 촌스럽게 끼어들기 일쑤고.... 어떻게 세련되게 다룰 것인지를 고민하게 마련이다. 

가능하면 회상으로 넘어간다는 걸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더 좋은 건 회상을 쓰지 않고도 원하는 효과를 낼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소설이 더 유리한지 영화가 유리한지 딱히 판단이 안서네.

 

[소설쓰기의 모든 것], 플롯과 구조만 봤을 때 영화 시나리오 작법 책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대중소설 쪽으로 치우친 면이 있다. 자신이 쓰고자 하는 글의 색깔이 이것과 거리가 좀 있다해도 참고는 좀 해볼만하지 않을까.

가끔 그냥 일기장에나 쓰면 될만한 글을 열심히 쓰는 사람도 본다. 뭐 문장쓰기 연습이라면 딱히 할말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런 사람들일수록 작법과 관련한 책을 우습게 본다. 할말 없다. 그렇게 계속 써봐라.

 

  

 

 

 

 

 

 

 

 

 

 

 

 

 

딘쿤츠의 작품을 한 작품도 본 적이 없어서 이 책에서 몇번이나 언급되는 그의 작품을 한번 읽어보고 싶은데 절판이 많고 도서관에도 많이 없어서 난감하다.

 

[미드나이트](1989), 고려원, 1992

 

[푸른작별] 한권 번역되어 있는 존 D. 맥도널드도 플롯을 잘 짜는 작가라는데 그의 [밤의 끝 The End of the Night]도 보고 싶지만

아직 번역된 바 없다.

 

 

 

 

 

 

 

 

 

 

 

 

 

 

 

오래된 책들이긴 한데 지금봐도 놀랄만한 건지 궁금하다.

오래된 책들이긴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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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도어 드라이저의 [아메리카의 비극 An American Tragedy]가 이미 세계문학전집으로 나와 있는 줄 알았다.

아니구나. ..........

스타인 벡의 [분노의 포도]와 함께 읽어보려 찾았는데 ...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표지를 봤다고 생각했는데 난 뭘 본 건지?

완전 착각한건가?

 

 

 

 

 

 

 

 

 

 

 

 

 

 

범우사 판인데... 새로운 번역과 새 책으로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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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선한 자들은 모든 신념을 잃고

 반면 가장 악한 자들은 격정에 차 있다."

 

예이츠의 시 <재림 Second Coming> 의 한구절이라고 한다.

지젝이 [멈춰라, 생각하라]에서 '무기력한 자유주의자와 열정적인 근본주의자 사이의 균열을 탁월하게 묘사'했다고 인용한 것인데, 나는 이것을 [실패한 우파가 어떻게 승자가 되었나](토마스 프랭크)를 읽다가 다시 한번 떠들어보게 됐다.

(로쟈님 페이퍼에서 발견한 것이기도 하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지난 대선패배 이후 멘붕 상태에 빠진 이들과 저질스럽고 낯뜨거운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민주주의 자체를 어지럽히고 있는 '격정에 찬 우파'를 딱 말하고 있는 걸로 봐도 무방하다. 아니 어쩜 이리도 잘... 이라 할 정도다. 

 

[실패한 우파...]는 미국 이야기를 하고 있기에 저간에 벌어진 일들을 잘 모르면 쉽게 읽히는 것 같지는 않다.

처음엔 잘 모르는 미국 역사와 사건들이 나오는 터라 애먹었는데 검색해가며 읽었더니 수월해지는 편이다.

2008년 현란한 금융사기와 도덕적 해이를 맞본 미국인들이 난데없이 이념대립으로 빠져들게 된 저간의 과정을 다루고 있다.

죽을 위기에 처한 시장의 망나니들이 구제금융이라는 국민 세금으로 기사회생하더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식으로 오히려 당당히 자신들의 잘못을 정부의 잘못으로 향해게 하지 않나, 담보대출로 집을 산 이들의 파산 상황을 놓고 '실패한 자들은 실패하게 내버려 두라'라는 구호를 내세우면서 국가개입을 한사코 막는 염치없는 행동을 하기에 이르는 미국의 난맥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셧다운까지 경험한 미국인들에게 전국민의료보험이란 건 사회주의하자는 것이라는 식으로 몰아부치는 이 이념적 공세가 신기하게도 잘 먹히는 모양이다. 미국이라는 나라를 잘 들여다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반공산주의 전선의 우두머리 역할에 취해있었다보니 어이없게도 일차원적인 싸움처럼 보이는데도 미국으로서는 정말 진지한 싸움이 되는 모양이다. 계급배반의 투표행위들이 나타난 것도 좌파는 알지 못하는 대중의 마음을 이 격정에 찬 우파들이 어루만졌다는 것인데, 아직까진 이게 뭔지 잘 모르겠다.

 

아직 90 몇 페이지 읽고 있는데, 저자가 글렌 벡이라는 인물을 대놓고 미워하기에 이 사람은 도대체 누군가 했다.

올해로 1964년생인 그는 2009년부터 폭스뉴스를 진행하면서 백인 우파의 거두로 대두된 인물인데, 그 전 3년 간 CNN의 한 TV쇼를 진행할 때만 해도 한 시대의 아이콘은 커녕 단 한 차례도 대중적 인기를 얻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던 그가 폭스뉴스를 맡으면서 미국인들의 불만을 대변하는 사람, 대중의 분노를 교묘히 이끌어 그가 사냥하고픈 대상을 향하도록 만들어버리는 선동가가 됐다. 최근에 오바마를 향하여 '사탄 닮았다'라든지 탄핵하라는 식으로 거친 입으로 추종자들로 하여금 국가를 위기에서 구하는 대단한 격정적 전사가 되기라도 하는 것처럼 만드는 신공을 발휘했던 모양이다.

저자는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생각했던 이 인물이 교묘하게 대두되는 현상을 보면서 놀라고 걱정하는 것이다.

도대체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나, 뭐 그런 생각을 하지 않겠나.

우리도 다르지 않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나.

 

글렌 벡에 관한 또 그의 책도 몇 권 있다.

 

 

 

 

 

 

 

 

 

 

 

 

 

 

[글렌 벡의 상식]에 거품물고 좋아라하는 이들이 추천한 글들도 볼 만하지 않겠나.

[스웨터]는 글렌 벡의 소설이다. 햐~. 내용이 ... 내가 딱 싫어하는 것일 것 같긴 한데 그의 정신 세계를 볼만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기도 하고, 캐릭터로 참고할만한 점도 없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그러네.

 

여튼, [실패한 우파...]도 마저 읽어야 하고, 덕분에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시를 읽어보고 싶다는 호기심도 생긴다.

내가 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소양이 없기도 하고, .... 어렵더라.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린가 싶고.

근데 예이츠는 좀 읽어보고 싶다.

저런 싯구를 쓰는 시인이라면 읽어봐야 하지 않겠나. 보다 자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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