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선한 자들은 모든 신념을 잃고
반면 가장 악한 자들은 격정에 차 있다."
예이츠의 시 <재림 Second Coming> 의 한구절이라고 한다.
지젝이 [멈춰라, 생각하라]에서 '무기력한 자유주의자와 열정적인 근본주의자 사이의 균열을 탁월하게 묘사'했다고 인용한 것인데, 나는 이것을 [실패한 우파가 어떻게 승자가 되었나](토마스 프랭크)를 읽다가 다시 한번 떠들어보게 됐다.
(로쟈님 페이퍼에서 발견한 것이기도 하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지난 대선패배 이후 멘붕 상태에 빠진 이들과 저질스럽고 낯뜨거운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민주주의 자체를 어지럽히고 있는 '격정에 찬 우파'를 딱 말하고 있는 걸로 봐도 무방하다. 아니 어쩜 이리도 잘... 이라 할 정도다.
[실패한 우파...]는 미국 이야기를 하고 있기에 저간에 벌어진 일들을 잘 모르면 쉽게 읽히는 것 같지는 않다.
처음엔 잘 모르는 미국 역사와 사건들이 나오는 터라 애먹었는데 검색해가며 읽었더니 수월해지는 편이다.
2008년 현란한 금융사기와 도덕적 해이를 맞본 미국인들이 난데없이 이념대립으로 빠져들게 된 저간의 과정을 다루고 있다.
죽을 위기에 처한 시장의 망나니들이 구제금융이라는 국민 세금으로 기사회생하더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식으로 오히려 당당히 자신들의 잘못을 정부의 잘못으로 향해게 하지 않나, 담보대출로 집을 산 이들의 파산 상황을 놓고 '실패한 자들은 실패하게 내버려 두라'라는 구호를 내세우면서 국가개입을 한사코 막는 염치없는 행동을 하기에 이르는 미국의 난맥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셧다운까지 경험한 미국인들에게 전국민의료보험이란 건 사회주의하자는 것이라는 식으로 몰아부치는 이 이념적 공세가 신기하게도 잘 먹히는 모양이다. 미국이라는 나라를 잘 들여다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반공산주의 전선의 우두머리 역할에 취해있었다보니 어이없게도 일차원적인 싸움처럼 보이는데도 미국으로서는 정말 진지한 싸움이 되는 모양이다. 계급배반의 투표행위들이 나타난 것도 좌파는 알지 못하는 대중의 마음을 이 격정에 찬 우파들이 어루만졌다는 것인데, 아직까진 이게 뭔지 잘 모르겠다.
아직 90 몇 페이지 읽고 있는데, 저자가 글렌 벡이라는 인물을 대놓고 미워하기에 이 사람은 도대체 누군가 했다.
올해로 1964년생인 그는 2009년부터 폭스뉴스를 진행하면서 백인 우파의 거두로 대두된 인물인데, 그 전 3년 간 CNN의 한 TV쇼를 진행할 때만 해도 한 시대의 아이콘은 커녕 단 한 차례도 대중적 인기를 얻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던 그가 폭스뉴스를 맡으면서 미국인들의 불만을 대변하는 사람, 대중의 분노를 교묘히 이끌어 그가 사냥하고픈 대상을 향하도록 만들어버리는 선동가가 됐다. 최근에 오바마를 향하여 '사탄 닮았다'라든지 탄핵하라는 식으로 거친 입으로 추종자들로 하여금 국가를 위기에서 구하는 대단한 격정적 전사가 되기라도 하는 것처럼 만드는 신공을 발휘했던 모양이다.
저자는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생각했던 이 인물이 교묘하게 대두되는 현상을 보면서 놀라고 걱정하는 것이다.
도대체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나, 뭐 그런 생각을 하지 않겠나.
우리도 다르지 않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나.
글렌 벡에 관한 또 그의 책도 몇 권 있다.
[글렌 벡의 상식]에 거품물고 좋아라하는 이들이 추천한 글들도 볼 만하지 않겠나.
[스웨터]는 글렌 벡의 소설이다. 햐~. 내용이 ... 내가 딱 싫어하는 것일 것 같긴 한데 그의 정신 세계를 볼만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기도 하고, 캐릭터로 참고할만한 점도 없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그러네.
여튼, [실패한 우파...]도 마저 읽어야 하고, 덕분에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시를 읽어보고 싶다는 호기심도 생긴다.
내가 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소양이 없기도 하고, .... 어렵더라.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린가 싶고.
근데 예이츠는 좀 읽어보고 싶다.
저런 싯구를 쓰는 시인이라면 읽어봐야 하지 않겠나. 보다 자더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