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문화와 외래문화의 만남 그리고 소통


1998년부터 시작된 ‘실크로드 프로젝트’가 드디어 첫 결실을 맺었다. 이 프로젝트는 첼리스트 요요 마와 음악학자 테어도어 레빈이 주축이 돼서 실크로드로 상징되는 다양한 문명간의 만남과 소통을 음악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이들은 1999년 실크로드와 관계된 9개 국가 20여 명의 작곡가에게 곡을 위탁했고, 그 결과 한국의 강준일과 김지영을 포함해 아르메니아, 중국, 아제르바이잔, 일본, 이란, 몽골, 타지키스탄, 터키, 우즈베키스탄의 작곡가들의 곡을 위촉받을 수 있었다. 이 곡들은 공히 자국의 전통음악과 유럽음악의 요소가 혼합되어 있으며, 이를 통해 실크로드가 그랬던 것처럼 민족문화와 외래문화의 만남과 소통이 반영되어 있다. 또 음악에만 머무르지 않고 이 프로젝트는 공연과 학술행사, 교육 프로그램, 멀티미디어 출판 계획을 아우르며 대규모의 소통의 장으로 진행시킬 예정이다.

이 음반은 그동안 풍문으로만 전해졌던 ‘실크로드 프로젝트’가 처음으로 실체화되어 나타난 것이다. ‘실크로드 여행-낯선 사람들이 만날 때’라는 타이틀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이 음반은 서로 다른 문화를 섞는 것이 아니라 만남을 강조하고 있다. 동서양의 만남이라는 주제를 어설프게 추진하다 보면 자칫 무게중심이 한쪽으로 쏠릴 우려가 있지만, 이 음반은 한 문화의 주체를 인정하며 그것을 더욱 보편적인 것으로 승화시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곧 문화간의 만남이 한쪽으로 동화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주체의 만남임을 새삼 일깨워주고 있으며, 그 만남을 통해 문화가 서로 교류되며 변화한다는 진리를 다시 확인시켜 주고 있는 것이다. 요요 마는 이 작업을 “세계 여러 지역에 존재하는 다양한 문화에 대한 관심과 동경, 서로간의 소통, 근원에 대한 탐구 등에 대해 생각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낯선 사람들이 모여 문화를 일구다

첫곡은 몽골의 간바아타르 콩고르줄이 부르는 몽골의 전통 민요이다. 내지에 ‘긴 노래’라고 적혀 있는 이 민요는 우리의 민요처럼 한 소절이나 단어가 오랫동안 꺾인 음으로 진행된다. 이 때문에 ‘긴 노래’라는 제목을 붙이게 됐다고 테어도어 레빈은 내지에 적고 있다. 하지만 이는 무지의 소산이다. 원 제목이 반드시 있을 테지만, 이 서구인은 이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단지 한 음이 길게 늘여진다는 이유만으로 ‘긴 노래’라고 명명한 것이다. 이 음반의 유일한 옥에 티인 이 첫 트랙을 지나면 음악은 그들만의 가치를 지니며 생명력을 확보한다. 몽골 작곡가 뱜바수렌 샤라브의 ‘헐렌의 전설’은 퍼커션과 요요 마가 직접 연주한 몽골의 전통악기 모린 쿠르의 고요한 음으로 시작해 콩고르줄의 날카로운 음성과 트롬본의 금속음이 더해진 곡이다. 서정성과 웅장함, 피날레의 강렬함, 그리고 잦아드는 고요함이 깃들여 있는 이 매력적인 곡은 몽골의 현대화된 풍경을 연상시킨다. 이는 서양의 악기와 문법이 가미되어 이뤄진 결과이다. 몽골의 전형성과 보편성이 살아 있으면서도 다른 문명이 섞여 있는 양상을 띄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젊은 작곡가 우통이 중국 민요를 편곡한 ‘푸른빛의 작은 꽃’과 ‘미도산’ 또한 서양의 악기와 비파, 생황, 얼후 등의 전통악기가 어우러져 있다. 그렇지만 아무리 살펴봐도 이 음악은 중국산 음악이다. ‘헐렌의 전설’과 마찬가지로 서양의 악기와 문법은 중국 전통을 해치지 않고, 이를 받쳐주며 분위기를 살짝 바꿀 뿐이다. 반면 일본 작곡가 미치오 마미야의 ‘다섯 개의 핀란드 민요’와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 민요인 ‘Chi passa per’sta strada’는 서양음악을 동양악기로 연주한 것이다. 이 또한 문명의 충돌을 표현한 게 아니라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조화로운 목소리가 표현되어 있다. 한편 한국 작곡가 강준일과 김지영의 곡은 이번 음반에 포함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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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로비츠 오리지널 재킷 컬렉션


격변기와 위대한 순간이 담긴 역사적 명연을 재조명


소니에서 선보이고 있는 ‘오리지널 재킷 컬렉션’은 옛 콜롬비아와 CBS의 LP 음원을 CD로 재발매한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음반이 낱장으로 이미 출시된 것이긴 하지만, 박스물로 포장된 이 시리즈는 한 연주가의 연주생애를 재조명할 수 있다는 점에서 특별하게 다가온다. 그동안 ‘글렌 굴드가 연주하는 바흐’(12CD)와 ‘스트라빈스키가 연주하는 스트라빈스키’(9CD)가 나왔고, 앞으로도 20세기에 주목할 만한 활동을 했던 연주가를 택해 한정 발매할 예정이다. 이 시리즈에는 공히 옛 LP와 똑같은 모양을 한 CD 재킷과 당시의 내지를 그대로 수록한 소책자가 담겨 있다.

10장의 오리지널 재킷 CD로 구성된 '호로비츠의 독집 앨범 모음집'은 호로비츠의 격변기와 위대한 순간을 빠짐없이 포착하고 있다. 호로비츠는 1922년 데뷔한 이래 굴곡 없는 연주생활을 이어가며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로 군림했다. 그렇지만 그는 절정의 순간에서 매번 은퇴를 선언해 팬들을 애타게 한 괴짜 연주가이기도 했다.

첫번째 은퇴는 토스카니니의 딸 완다와 결혼한 후 더욱 정력적인 활동을 펼칠 무렵인 1936년에 행해졌다. 그는 3년 동안의 휴식을 가진 뒤 1939년 파리에서 복귀 연주회를 열며 청중들 앞에 다시 서게 된다. 그리고 1940년대 후반에서 1950년대 초반, 그는 대중의 폭넓은 사랑을 받으며 생애 최대 전성기를 맞는다. 이미 거장적 품격을 지녔다고 평가받은 그는 1953년 미국 데뷔 25주년 축하공연을 카네기홀에서 가졌고, 당연히 이 공연은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그리고 또 은퇴 선언. 두 번째 은퇴는 첫번째와 달리 상당히 길었다. 자그마치 12년 동안 그는 무대를 찾지 않았다. 긴 칩거 생활을 끝낸 그는 1965년 카네기홀에서 재기 콘서트를 열고 화려하게 복귀한다. 그러나 그는 1968년부터 1974년까지 휴식을 위해 세 번째 은퇴를 선언한다.

음반은 호로비츠가 두 번째 은퇴 선언을 끝내고 복귀하는 순간에서 세 번째 은퇴 기간까지를 담고 있다. 호로비츠는 은퇴 기간에 연주회를 개최하지는 않았지만, 드문드문 음반녹음을 하기도 했다. 실제로 그는 두 번째 은퇴를 선언하고, 복귀하기까지 몇 장의 스튜디오 녹음을 남겨 놓았다. 이 녹음이 이번에 소개된 시리즈에 포함되어 있는데, 1962년에 녹음한 쇼팽, 슈만, 라흐마니노프, 리스트의 곡이 수록되어 있는 음반과 슈만의 ‘어린이 정경’과 스카를라티, 슈베르트, 스크랴빈의 곡이 커플링된 음반, 그리고 1963년 녹음한 베토벤의 ‘열정’과 드뷔시의 ‘3개의 전주곡’이 그것이다. 은퇴와 재기를 반복했지만, 그는 쉬는 동안 치열한 연습을 거듭했음을 알 수 있다. 10여 년의 칩거기간 동안 그의 연주 스타일은 조금씩 변해갔다. 외면적인 화려함보다는 사색의 깊이가 한층 더 강조됐고, 날카로움이 느껴지기는 하지만 더욱더 투명하고 고아한 아름다움으로 음반을 채색하고 있다.

 

1950년부터 죽기 2년 전인 1987년까지 무려 다섯 번이나 녹음할 정도로 애착을 가지고 있었던 ‘어린이 정경’은 풍부한 상상력이 가미된 탄탄한 구성력이 돋보이는 명연이다. 다섯 차례 녹음 중 가장 뛰어난 완성도를 지닌 이 시기의 연주는 첫곡 ‘미지의 나라들’에서부터 듣는 이를 사로잡는다. 사뿐하게 내딛는 절묘한 타건과 천진난만함은 전편에 걸쳐 탁월한 아름다움을 창출해낸다. ‘트로이메라이’는 특히 뛰어나다. 색채미가 깃들여 있는 투명함은 환상미가 가득하고, ‘난로가에서’ ‘시인의 이야기’ 등에 이르러서도 시적 정감이 사라지지 않는다. 음반은 1965년 5월 9일 ‘카네기홀의 역사적 귀환 연주회’ 음반에서 절정을 맞는다(그는 후에 역사적 연주회를 몇 번 더 개최했는데, 1978년 ‘미국 데뷔 50주년’ 연주회와 1986년 모스크바와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61년 만의 귀향 연주회’를 열었다). 12년 동안의 긴 침묵을 깨고 청중들 앞에 선 호로비츠는 마치 노래를 부르는 듯이 부드러운 다이내미즘을 선보이며 관객들을 환상의 세계로 인도한다. 이 음반은 바흐/부조니의 ‘토카타’에서 시작해 슈만의 ‘환상곡’, 스크랴빈의 소나타에 이어 쇼팽의 ‘발라드’로 끝을 맺고 있다. 그리고 앙코르로 드뷔시의 ‘인형의 세레나데’, 스크랴빈의 ‘연습곡’ Op.2-1, 모스코프스키의 ‘연습곡’ Op.71-11, 슈만의 ‘트로이메라이’를 들려준다. 은퇴 전의 찬란한 기교와 박력은 다소 누그러졌지만, 풍요로운 서정성, 부드러움, 투명함은 그의 새로운 미래를 예고하는 것이었다. 낭만적인 동경과 작품의 본질을 꿰뚫는 혜안으로 인산인해를 이룬 청중들의 열화와 같은 환호를 받고 있다.

또 하나의 명반으로 기록되어 있는 1969년 녹음 슈만의 ‘크라이슬레리아나’도 이번 컬렉션에 포함되었다. 이 음반은 그의 만년 녹음(DG)보다 훨씬 뛰어난 직관과 기교가 돋보이는 것으로 시시각각 변하는 색채미를 통해 작품 속에 깃들여 있는 정신과 육체의 상반된 요소를 면밀하게 포착해내고 있다. 그리고 그의 연주가 가장 빛을 발했던 라흐마니노프와 쇼팽, 스크랴빈의 곡. 장대한 구조를 러시아적 서정미와 색채미로 해석해낸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소나타 2번과 쇼팽의 ‘폴로네즈’ ‘마주르카’ ‘연습곡’ ‘왈츠’를 뒤섞어 연주한 음반도 좋긴 하지만, 그의 개성이 가장 빛을 발하는 것은 역시 스크랴빈의 음반에서이다.

스크랴빈의 ‘연습곡’과 ‘3개의 소품’ 중 ‘앨범 철’, 피아노 소나타 10번, 시곡 ‘불꽃을 향하여’가 담겨 있는 이 음반은 스크랴빈이라는 러시아 작곡가를 세상에 각인시킨 명연주이다. 호로비츠는 1950년대부터 스크랴빈의 작품을 자신의 레퍼토리에 집어넣어 자신만의 연주 스타일을 정립시켰다. 그때까지만 해도 스크랴빈은 거의 잊혀진 작곡가였다. 이 음반과 더불어 소나타가 담겨 있는 음반(RCA)은 후세에 헤아릴 수 없는 영향을 주었고, 아직까지도 이를 뛰어넘는 음반을 쉽게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 음반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는 ‘불꽃을 향하여’는 특히 인상적이다. 5분 여 동안 지속되는 크레셴도의 강한 추진력은 다른 연주가들이 쉽게 넘볼 수 없는 경지에 있는 것으로 호로비츠만의 연주라고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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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물만두 > 암살 주식회사에 등장하는 작품들...

 '고대사회의 기본적인 특징을 고찰하고 있는 이책은 저자가 1884년에 쓴 것이다. 저자는 생산에 따른 경제적 진보가 결혼과 가족의 형태에 어떤 영향을 끼쳤으며, 어떻게 그것들을 변화시켰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그에 의하면 가족은 인류의 발전단계에 따라 진화하였으며, 사유재산과 국가는 경제발전의 일정 단계에서 나타났고, 특정 계급이 장악하고 있는 국가는 항상 특정계급의 이익을 옹호하기 위한 '억압장치'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 책은 '영국 선사학과'(English Anthropologists) 등 기존의 사회이론에 일대 타격을 주면서 당시의 고대사회에 관한 이론적 공백을 메꾸어 주었고, 오늘날까지도 불후의 대작으로 남아있다.

 니체 사거 100주년을 맞아 책세상 출판사에서 내고 있는 니체전집 중 한권이다. 책세상의 니체전집은, 니체 연구사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했다는 독일 발터 데 그루이터 출판사의 《니체 비평 전집Nietzsche Werke, Kritische Gesamtausgabe》(KGW)중에서 서신과 주해서를 뺀 나머지를 번역하는 것으로 총 21권 예정이다.
이 전집은 니체전집의 정본을 번역한다는 자부심과 사명감, 그리고 니체 사거 100주년에 대한 기념이라는 의미와 함께, 기존의 국내의 니체전집이 가진 결함을 극복한다는 의도도 함께 내포하고 있다. 즉 그 동안 충실한 해제도 없이 니체 전공자가 아닌 역자들에 의한 임의적인 번역에 그치거나, 대부분 일본을 통해 들어온 개념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마구 주석을 붙임으로써 니체 해석을 왜곡시켜온 점 등을 극복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1998년 겨울, 4인의 철학교수로 니체편집위원회를 구성하여 근 3년간 니체의 철학적 개념과 번역상의 오류를 잡고 통일안을 마련하는 등의 작업을 통해 한국어판 니체전집을 준비해왔다. 그 동안 국내 학계에서 문제되어온 번역상의 용어나 개념들을 재규정함으로써 니체 번역의 표준적 기준을 제시하고, 그의 비유와 상징들이 나타내는 바를 역자의 개입 없이 그대로 독자들에게 전달함으로써 니체를 온전히 접하게 할 것이다. 또 니체 사상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이나 대상 텍스트의 탄생 배경, 각각의 저작들 간의 관계 등에 대한 자세한 해설을 덧붙여 독자들이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게다가 유고의 발굴로 니체 연구에 새로운 지평이 열렸음에도 불구하고 고답적이고 구태의연한 해석에 머무르고 있는 책들과 달리, 이 전집에는 니체의 유고가 포함되어 있다. 독자들은 이 전집을 통해 니체의 육성을 생생하게 듣게 됨은 물론, 그의 사상의 심원한 깊이와 매력, 그의 인간적인 고뇌와 철학사적 의미까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베블런은 누구인가
19세기 미국 사회와 경제체제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가함으로써 미국의 자만심을 뒤흔든 독창적 경제학자. 베블런은 1857년 위스콘신 주 카토 부근의 한 개척 농가에서 태어났다. 1880년 칼턴 칼리지를 졸업한 베블런은 존스홉킨스 대학교에서 잠시 철학을 공부했지만 예일 대학교에서 1884년 정치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하지만 기독교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교수직을 얻을 수 없었던 그는 가족이 사는 농촌으로 돌아와 독서와 집필을 했다. 그는 1892년이 되어서야 시카고 대학교의 전임강사직을 얻을 수 있었다. 1899년 그는 첫 번째 저서이자 최고의 역작인 <유한계급론>이 출간되자 학계가 발칵 뒤집혔다. 이 책은 기존의 고전경제학자들이 금과옥조로 여기던 두 가지의 교리적 논리, 즉 ① 자본가의 이익은 사회의 이익과 일치한다, ② 경쟁체계는 경제를 진보시키는 역동성을 제공한다는 논리를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학술서도 대중적인 인기를 모을 수 있음을 증명해 보였다. 한 세기가 지난 후 이 책은 경제이론 뿐 아니라 사회학과 역사학에서 하나의 고전으로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기업론>(1904)을 통해 미국의 기업제도에 이단적이라고 할 만한 직격탄을 날리고 그는 더욱 유명해졌다. 그 유명세 덕분에 한때 마르크스주의자라는 의혹을 받았지만 그는 자신은 마르크스주의와는 무관하며 마르크스의 체계는 지속력도 없고 사고력도 부족하다고 단언했다. 베블런은 미주리 주립대학교 교수로 부임하면서 집필에 더욱 열중해 <제작본능과 산업기술의 실태>(1911) <독일제국과 산업혁명>(1915) <평화의 본질과 그 존속기간에 대한 연구>(1917) <미국의 고등교육>(1918) 등을 펴냈다. 그는 사망하기 전 10여 년간을 뉴욕에서 진보적인 ‘새로운 사회연구소’에서 강의했다. 이 시기에 집필한 책으로는 <기득권과 산업기술의 현황>(1919) <소유권 부재와 근대의 기업>(1923) 등이 있으며 자신이 어린 시절 추억이 깃들인 아이슬란드 전설을 영어로 번역하여 <락스다엘라 사가>를 출간하기도 했다. 그는 오랫동안 예견했던 대공황이 엄습하기 얼마 전인 1929년 8월 3일 캘리포니아 팔로알토 근방에서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그의 마지막 저서 <변화하는 우리의 질서에 관한 단상들>은 그가 죽은 뒤 1934년에 출간되었다. 독자들은 늘 그를 정치적 급진주의자 또는 사회주의자로 생각했지만 그는 어떤 형태의 정치적 행동에도 참여하지 않았던 비관주의였다.

왜 사람들은 <유한계급론>을 읽는가
베블런의 <유한계급론>은 전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이며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읽고 있다. 왜 그럴까? 사회철학자 루이스 멈퍼드는 “베블런은 우리의 경제 질서에 내재한 사회적 모순을 마르크스 이후 가장 선구적으로 분석한 학자였다”고 회고하면서 “그의 저서들은 실로 막대사탕 포장지에 감싸인 다이너마이트와 같은 인격을 반영하는 듯하다”고 평가했다. 또한 뉴딜정책을 주창한 경제학자 스튜어트 체이스는 “베블런은 미래세대가 나아갈 궤도를 그려 보인 천문학자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세기의 초입에서 그는 사실들을 수집하고 경제사적으로 가장 대담한 해석을 통해서 종합하여 향후 수십 년간 적용할 수 있을 것이 분명한 이론적 틀을 제시함으로써 역사를 예견했다”고 말했다. 그리하여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는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그의 시대에나 그 이후에도 금전 자체가 아닌 금전을 획득하려는 남자들과 여자들의 행동방식을 그처럼 냉철하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꿰뚫어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무튼 베블런은 부자들이 나머지 우리와 다르게 생각하고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한, 그리하여 과거와 다를 바 없는 미래가 우리를 향해 걸어오고 있는 한 지속적으로 읽힐 책 한 권을 써냈다고 평가된다.

과시적 소비, 과시적 여가
베블런은 많은 돈을 가지고 있음을 남들에게 증명하는 최선의 방법은 그 돈이 자신에게 아무 소용없다는 듯이 행동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야만사회에서는 약탈의 능력이 분명히 드러나기 때문에 쉽게 대중들의 존경을 불러일으키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그것이 감추어져 있어서 유한계급은 과시적 소비와 과시적 여가를 통해 그들의 약탈능력을 드러내는 것이다. 또한 부자가 하인들을 고용하여 그들을 생산활동에서 제외시켰다고 말하면서 그처럼 세속적인 생각이 어떻게 그렇게 쉽게 망각될 수 있었는지를 증명하고 있다. 의복의 경우, 그것은 언제나 “증명용”이어서 “누가 보더라도 첫눈에 우리의 금력상의 지위를 알아볼 수 있게” 만들기 때문에 상류계급의 의복은 몸을 보호하는 기본적인 기능과는 거의 무관하다고 말한다. 그들은 과시적 낭비, 과시적 여가, 과시적 소비에 몰두함으로써 “다양한 가치를 지닌 고급요리들, 음료와 장신구, 그럴싸한 의상과 저택, 무기, 게임, 무용수, 흥분제 등에 관한 전문가가 되기에 이른다.” 그것은 마치 미래를 내다볼 때에도 오로지 과거밖에 못 보는 자본가들과 같다. 그들이 소유한 공장들이 세계가 혁명에 휩싸여도 여전히 상품을 만들어내듯이 그들의 생활양식도 르네상스를 연상시키는 우아함을 흉내 낸다. 또한 그들은 노동자들의 희생을 기반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만일 노동자들이 이 사실을 깨닫고 체제를 붕괴시키려고 할 것을 우려해 문화적ㆍ사회적 통제를 하게 되는데, 이것이 애국심, 민족주의, 군국주의, 제국주의 등으로 나타난다고 말한다.

과시성을 지향하는 현대사회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전세계 노동자들이 단결하여 자본가계급을 타도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에 비해 혁명적이라기보다는 훨씬 냉소적이었던 베블런은 부자들의 자화상을 신랄하게 묘사하는 데 자신의 정열을 바쳤다. 베블런이 부자들에게 그토록 혹독한 비난을 퍼부은 까닭은 “그들의 모든 종교적 믿음과 모든 소비패턴이 바로 프로테스탄트들이 종교개혁을 위해 싸워야했던 가톨릭주의의 유습이었다”는 데 있다. 그는 실용성보다는 과시성을 지향하는 현대사회의 소비가 “의례”나 “성례”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 한다. 그런 소비의 특징은 “신도들의 정신구조를 확연히 고양시키고 위무”하는 “사치스럽고 화려하기” 그지없는 “신성한 건축물”에서 행해지는 “경건한” 의례나 성례를 통해서 가장 잘 드러나고 또 그런 의례나 예배 속에 가장 잘 농축되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베블런은 과시적 소비가 기껏해야 이성이 아닌 감정에 호소하는 제의적인 격세유전의 산물에 불과하다고 갈파한다.

폭력과 스포츠의 과시성
빈민들은 야만인이고 부자들은 문명인이라는 통념에 반대하는 베블런은 양측이 다 폭력에 매력을 느낀다고 지적한다. 그는 “의견차를 해소하기 위한 보편적인 방법으로 여겨지는 결투에 통상적으로 의존하는 사람들은 오직 상류계급 신사들과 무뢰배들밖에 없다”고 진단한다. 결투든 거리의 싸움이든 베블런이 보기에는 하등의 차이가 없다. 두 가지 싸움 모두 구경꾼들의 격정에 호소하면서 타인의 눈을 통해 자신의 명성을 확인하고 과시하려는 “발달이 억제된 남자의 도덕성”의 발로이기 때문이다.
베블런이 보기에, 스포츠는 폭력과 마찬가지로 역시 그 진행방식부터 지각없는 해로운 활동이다. 베블런은 스포츠를 종교생활과 비교하면서 거듭 부자나 빈민 할 것 없이 공통적으로 미신에 사로잡혀 있다고 비판함으로써 스포츠에 대해서 미증유의 모욕을 퍼부었다. 무뢰배 내지 범법자들이나 잘 훈련받은 스포츠맨이나 모두 “공동체나 사회의 일반적인 평균인들보다 더 쉽사리 공인된 어떤 신조의 신봉자가 되는 경향이 있을 뿐 아니라 종교적인 의례에 이끌리기도 더 쉽다”고 베블런은 적고 있다. 아마도 베블런은 자유투를 하기 전에 성호를 긋는 현대의 농구선수들이나 승리를 확신한 순간 신에게 감사기도를 하는 듯한 자세를 취하는 여타의 현대 스포츠선수들을 보았더라도 그리 놀라지는 않을 것이다. 베블런이 보기에 종교와 스포츠 모두 행운에 대한 믿음을 강조하는 전근대적인 활동이다. 그런 믿음을 가진 종교나 스포츠 옹호자들은, 예컨대, 인간에게는 신의 영광을 달성할 능력이 있다고 믿거나 미식축구의 결과도 이미 예정되어 있다고 믿는다. 스포츠가 사회에서 대표적인 역할을 하는 한, 즉 과시적 소비체제가 유지되는 한 스포츠는 계속될 것이라고 말한다. 즉 그것은, 오늘날 경제적인 실용성과는 거리가 먼 ‘고대적인 생활양식’에 권좌를 내주는 것이다.

과시적 대학문화
베블런의 눈은 권위적인 대학도 피해가지 않는다. 고등교육 자체가 스포츠와 마찬가지로 이미 약탈의 매력을 부추기는 활동이었다. 특유의 의례, 학사모, 가운, 배지 같은 특이한 복장을 통해 대학은 “일부 학문적 사도들의 대물림”하고 한 세대의 권위를 다음 세대에까지 세습하는 학자들로 구성된 “전문 성직자계급”의 지배를 받고 있다고 분석했다. 베블런이 보기에 대학은 무용한 상류계급 사람들을 유용한 사람들로 느끼게 만드는 기능을 제외하면 아무런 공적 기능도 수행하지 못하는 “보수적”이고 심지어 “반동적”인 교육기관이다. 무엇보다도 대학교는 종교기관이었다. 베블런의 관점에서 보면 대학교들은 고전이나 인문학을 가르치고 “일반 학생들로 하여금 그런 류의 지식들을 습득하고 있음을 과시하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도록” 후원하는 식의 구시대적인 관행들에 바쳐지는 “고등교육을 위한 신학교들”로 남았다고 말했다.

베블런학파
그의 <유한계급론> 덕분에 영어권에서는 이른바 “베블런학파(Veblenesque)”라는 신조어가 출현했다. 지금까지 경제학계는 100여 년 전 베블런이 내놓은 저서에 필적할 만한 처방전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한편, 오늘날 일반 대중에게도 알려진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 줄리엣 쇼어, 로버트 프랭크 등 다수의 저명한 경제학자들이 베블런의 영향 아래 배출되었다. 이제 누군가를 “베블런학파”라고 부르는 것은 그(그녀)가 전문 경제학자들만 빼고 거의 모든 사람들이 확연히 알고 있는 현재 자본주의의 맹점을 파헤치고 폭로하는 작업에 종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유한계급론>의 현대적 의미
1899년에 출간된 <유한계급론>에는 ‘기존 제도에 대한 경제적 연구’(An Economic Study of Institutions)라는 제목의 부제가 붙어 있다. 그는 다윈의 진화론을 현대의 경제생활 연구에 적용하려 했다. 그는 산업화된 제도가 사람들에게 근면ㆍ효율ㆍ협동을 요구하는 반면, 실제로 산업계를 지배하는 사람들은 돈을 벌고 자신들의 부를 과시하는 데에만 여념이 없다고 지적하면서 이는 과거에 약탈을 일삼았던 미개사회의 잔재라고 주장했다. 이 흥미로운 책은 베블런이 철저히 경제학적 분석이라고 못을 박았음에도 불구하고 특히 문학계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독자들 대부분이 이 내용을 경제학적 분석이라기보다는 풍자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베블런은 경제학자로서의 한계를 뛰어넘어 사회비평가로서도 명성을 얻을 수 있었다.
베블런이 살던 시대의 생활만큼 현대의 생활도 불공정하다. 현재 미국의 대통령인 조지 W. 부시가 만일 지금 고등학교 졸업반이라면 아마도 오늘의 예일 대학교에 입학하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는 부시 일가의 금력과 인맥을 등에 업고 그보다 머리가 좋은 가난한 사람들을 앞질러 출세를 보장받을 수 있을 것이다. 비단 미국의 예가 아니더라도 그것은 전세계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 따라서 유한계급이 가치 없고 값이 비싼 것일수록 과시적 소비의 품목으로 높이 치고, 값이 싸고 유용한 것일수록 천하고 품위 없는 것으로 여길수록 <유한계급론>의 분석은 가치를 더할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산의 소유가 사회적 존경의 기초가 되어 자기가 속한 계층의 사람들과 경쟁적 소비를 일삼게 된다. 그 소비의 악순환에 빠지면 노동자들은 그들의 수입에 상관없이 만성적 불만에 빠질 것이고 역으로 그들은 금전적 문화에 순응하게 된다. 이 악순환이 계속되는 한 우리는 <유한계급론>을 통해 여전히 자본주의 경제제도의 모순을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고, 그가 풍자하려고 했던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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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물만두 > 시간 여행자의 아내 1에 등장하는 작품들

 다리를 다친 신문 기자가 다른 아파트를 망원렌즈로 훔쳐보다가 살인 현장을 목격하게 되면서부터 벌어지는 이야기의 걸작 스릴러물. 스릴러 추리 소설의 대가 코넬 울리치(Cornell Woolrich)의 원작을 서스펜스의 1인자 히치콕이 영화화했다. 그레이스 켈리는 히치콕의 <다이알 M을 돌려라>에 이어 두 번째 그의 영화에 주연하고 있다.
 다리를 다쳐 무료하게 휠체어에서 나날을 보내던 제프리는 이웃집을 망원렌즈로 넘보게 된다. 어느 날 살인 사건을 우연히 목격하면서 살인범에게 위협을 받게 된 제프리는 엿본 대가를 톡톡히 치른다. 이 영화에서 제프리가 당면한 고난은 사진작가나 영화감독의 직업 윤리와 유사한 것을 떠올리게 하고 아울러 영화 관람의 도덕적 의미도 건드린다. 비평가들은 이 영화가 너무 무례하고 음탕하다고 지적했지만 오히려 히치콕은 우리 마음 속에 모두 이런 이중적인 엿보기 심리가 숨어 있다고 꼬집는다. 히치곡 자신도 '가장 창조력이 넘치던 시대'라고 회고한 시절에 만들어져는데, 영화 전편을 아파트에 갇혀 지내는 주인공의 시각에서 펼쳐 나가는 구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방안에서 창을 통해 바깥 세상을 훔쳐본다는 설정은 '관음적 환자'의 시작이면서 동시에 영화 관객의 시각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작품과 나중에 만들어진 <현기증>, <사이코>를 합쳐 비평가들은 '관음증 3부작'이라 지칭하기도 했다. 주인공 커플의 불편한 관계가 살인 사건의 수사가 진전됨에 따라 조금씩 변화하는 구성은 치밀하기 이를 데 없다.
 영화는 건너편 아파트 전체를 세트로 지은 스튜디오에서 촬영했다. 히치콕 감독은 작사가의 아파트에서 시계에 태엽을 감아주는 사람으로 카메오 출연하고 있다. 작사가는 실제 작사가 로스 바그다사리암이다. 한편, 히치콕은 이 영화로 아카데미 감독상 후보에 올랐다.
 옥의 티. 이 영화에서 실수가 있다. 제임스 스츄어트는 왼쪽 다리에 기브스를 하고 나오는데, 딱 한 장면에서 오른쪽 다리에 기브스를 하고 있다.

 <빌리 버드>는 <백경(Moby Dick)>으로 유명한 허먼 멜빌이 마지막으로 남긴 유작(遺作)이다. 이 소설의 내용은 아주 단순하다. 영국 해군에 강제 징집된 순진한 수병 빌리 버드와 그와 대조적인 성향을 지닌 선임 위병 하사관 클래가트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을 다루고 있다. 클래가트는 빌리를 시샘하여 그가 선상반란의 음모를 꾸몄다고 거짓으로 비어 함장에게 보고한다. 함장은 두 당사자를 불러 대질시켜서 사건을 해결하려고 하는데, 뜻하지 않게 클래가트가 빌리의 주먹에 맞아 죽게 된다. 함장은 빌리의 무고함을 알고 있지만 군이라는 집단의 안정을 유지하기 위하여 이 사건을 하극상으로 다루어 빌리를 교수형에 처한다.
이처럼 내용은 단순하지만, 그 주제에 대해서는 이 작품을 종교적인 알레고리로 보는 시각과 세상에 대한 아이러니로 보는 시각 등 다양한 해석이 제기되어왔다. 그러나 멜빌이 긴 세월 동안 세상에 잊혀진 채 조용히 일해왔던 세관원직을 그만둔 뒤 죽기 몇 달 전까지 이 작품을 완성하는 데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는 점, 이 작품이 결과적으로는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되었다는 점, 그리고 이 작품에서 그가 평생 추구해왔던 삶의 심오한 문제들에 대한 대답을 나름대로 제시하고 있다는 점을 미루어볼 때, <빌리 버드>가 멜빌이 세상에 남긴 마지막 유언 같은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선(善)의 화신인 빌리 버드는 악마의 본성을 지닌 클래가트의 덫에 걸려 군대라는 집단의 안정과 질서를 위해 희생된다. 이들이 타고 있던 배를 인생에 비유하자면, 멜빌은 우리에게 인간의 삶이나 세상이 항상 공정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그는 이처럼 삶이 필연적으로 갖고 있는 비극성에 대해 비관적이거나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지는 않다. 세상은 풀 수 없는 수수께끼와 같이 애매한 곳이지만 그래도 인간은 희생이라는 숭고함을 통하여 영원할 수 있으므로, 필연적으로 비극적인 면들이 내재해 있는 인간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살아가라는 마지막 증언을 세상에 던지고 멜빌은 처절했던 삶의 여행을 마친 것이다.

절름발이 세계 문학을 벗어나서

기존에 소개되었던 세계 문학 시리즈는 문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작품들을 선별한 것이긴 하지만 너무나 천편일률적으로 대작가들의 대표작들만을 고집했다는 한계를 갖는다. 문학적 교양을 쌓으려는 사람들에게 기본적인 토양이 될 만한 작품들을 엄선해 주었다는 장점은 있지만 여러 출판사들의 선별 기준이 대동소이하여 중복 출판되는 경향이 많았으며, 또한 세계 문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면서도 정작 문화적 이질감이나 그 나라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명작들은 제외시킨 ‘절름발이’ 세계 문학이었다. 이에 열림원 출판사는 ‘이삭줍기’라는 이름에 걸맞게 그동안 놓쳤던 명작들을 골라 재발견하려는 생각에서 이 시리즈를 기획했다. 이 시리즈는 좀더 다양하고 폭넓은 시각으로 세계 문학을 볼 수 있게 해주며, 다른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귀중한 텍스트를 각 분야 전공자들의 실력 있는 번역문으로 읽게 해줄 것으로 기대된다.

‘숨겨진 보석’을 줍는다

숨어 있는 명작을 찾아라! ‘이삭줍기 시리즈’는 뛰어난 문학성을 갖고 있으면서도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는 제3세계 문학작품과 동서양의 고전 사상서들을 이삭줍듯 찾아내어 그동안 한쪽으로만 치우친 세계 문학 독서 편식의 균형을 찾아보겠다는 열림원 출판사의 야심 찬 기획 시리즈이다. 출간 도서 중 ?야자열매술꾼?과 ?뜨거운 태양 아래서?는 각각 나이지리아와 팔레스타인의 대표 작품들이다. 그리고 출간 예정 작품 중에는 케이트 쇼팬의 ?이브가 깨어날 때?(미국), 노발리스의 ?푸른 꽃?(독일),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영국), 발자크의 ?세라피타?(프랑스), 율곡과 그의 친구들인 송익필?성혼 등이 주고받은 한문 편지를 우리말로 옮긴 ?세 선비간의 대화?(가제) 등이 포함되어 있다.
우리는 근현대를 겪어오면서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것을 추구하고 비이성적이고 환상적인 것들을 배제하는 데 익숙해왔다. 이는 인문학 분야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비이성적이고 환상적인 것은 인문학으로 포함시키기조차 꺼려질 정도로 저급하고 전근대적인 것으로 치부되었다. 그러나 지금의 문학을 있게 하고 그 정신적 바탕이 되었던 한 부분으로 환상적이고 신화적인 전통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모든 문학의 모태이자 원형을 신화에서 찾을 수 있듯이 말이다. 이에 ‘이삭줍기 시리즈’에서는 그동안 소외되었던 이런 비주류 장르의 주요 작품들을 찾아내서 다수 포함시켰다는 특징이 있다. 출간 도서 7권 중 <야자열매술꾼> <그림자를 판 사나이>가 여기에 해당할 것이다.
세계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데 문학은 가장 재미나고도 진실된 교과서 역할을 한다. 세계 문학의 응달에 밝은 햇살을 비추려는 이번 시도가 독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기를 기대한다. ‘이삭인 줄 알고 주웠더니 보석이었다’는 감탄이 여기저기 터져 나올 수 있도록 말이다.

 2003년 골든 글로브 최우수작품상, 여우주연상 부문 수상한 영화 <디 아워스>의 원작 소설인 마이클 커닝햄의『세월』을 읽어보신 분이라면,『세월』의 중요한 모티브가 된 버지니아 울프의『댈러웨이 부인』을 많이 기다리셨을 듯. 울프가 41살 때 내놓은 장편 소설로, 파티를 준비하는 것이 주요 일과인 하원의원 부인 클라리사 댈러웨이의 어느 하루의 일을 의식의 흐름의 기법을 통해 유려하게 그려내고 있다.
버지니아 울프의 최대 걸작 가운데 하나로 1922년부터 1924년 사이에 완성된 이 작품은 울프 자신의 새로운 서술기법이 유감없이 발휘된 작품으로,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와 유사하면서도 울프만의 섬세하고 밀도 있는 세계가 잘 표현된 모더니즘 소설의 대표격. 하루종일 파티를 준비하는 주인공 클라리사 댈러웨이와, 정신 병원에 갇히기를 거부하여 마침내 창문에서 뛰어내리는 셉티머스의 최종 자살을 큰 축으로, 인도에서 막 귀국한 클라리사의 옛 애인 피터 월시, 셉티머스의 불쌍한 이탈리아 아내 루크레치아, 그리고 클라리사의 처녀시절 친구 샐리 시튼이 등장한다. 중년에 들어선 클라리사는 정치가의 아내로 세속적인 성공을 거둔 듯 하지만, 자신의 천성에 깊이 내재된 무언가를 희생하면 살고 있다는 자의식에 시달린다. 작품의 주요 부분을 이루는 이들은 각각 연상의 원리를 통해 서로의 성격 및 인생관을 투명하게 드러낸다.

 3차원 세계! 이제는 옛날 말이라구요. 이 책에 나오는 공간은 시간의 주름, 즉 5차원 공간 이야기랍니다. 사회에서 적응하기 힘들어 하는 세 명의 천재 아이들이 스커트 주름처럼 시간도 접어지게 되어 몇 광년이나 떨어진 '카마조츠' 행성으로 가게 됩니다.
이제까지 보아오던 환상 동화보다는 좀 더 집중을 하며 읽어야 하는 책입니다. 곳곳에 숨어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 상상하지 못할 환타지 요소들이 책을 읽는 즐거움을 더 해 줍니다. 우리도 모르게 우리 주위에 숨어 있는 천재들의 모험 이야기를 들어볼까요?엄마 아빠가 모두 천재 과학자이지만 자기는 실수로 태어난 돌연변이라고 생각하는 메그. 머리는 비상하지만 사람들에게는 저능아로 알려진 남동생 찰스. 마음이 통할 친구를 찾고 있던 우등생 캘빈. 세 아이들은 미 항공 우주국의 비밀 업무를 띠고 파견 된 채 소식이 없는 아빠를 찾아 나서기로 한다. 아이들은 '제게뭐야''누구야''어느거야' 아줌마들의 도움으로 시간의 주름을 통과한다. 눈 깜짝할 새에 몇 광년이나 떨어진 카마조츠 행성에 도착한 것이다. 하지만 이제 시작이다. 과연 아이들은 아빠와 함께 무사히 지구로 돌아올 수 있을까?

 어느 작은 마을에서 평생을 선하게 살아온 한 사나이가, 자신의 인생이 실패했다고 생각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을 그린 멜로드라마. 발표 당시 보다는 최근에 더욱 높히 평가되고 있는 작품이다. 컬러로 복원되었다.

 

 

 웅대한 스케일, 치밀한 구성, 리얼한 묘사!
대하처럼 도도히 구비쳐 흐르는 서스펜스!
황색 다이아몬드는 과연 흉마의 보석인가!
T.S. 엘리엇 절찬! 주술로 완성한 불후의 거작!
류머티즘으로 두 다리 자유를 잃는 고통 속에서도 틈틈이 구술 완성하여 이제까지 없었던 가장 훌륭한 미스터리소설이라고 황무지 대시인 엘리엇에게 격찬받은 불후의 거작. 추리문학사에 우뚝 선 최고봉 명작.
인도 사원의 신비한 보물 <월장석>에는 어두운 재앙의 그늘이 따른다. 대하처럼 도도히 흐르는 서스펜스! 거듭 뒤집어지는 으스스한 진상의 미로! 황색 다이아몬드는 마의 보석인가? T.S. 엘리어트가 '최대ㆍ최고의 미스터리'라고 절찬한 대명작!- 이성과 광기! 절묘한 트릭! 숨막히게 압박해오는 서스펜스!
- 간담을 서늘케하는 스릴! 통쾌하게 뒤집는 의외 결말!
- 지적능력의 시대! 머리회전단련운동! 인생승부에 강해진다!

오락으로서의 살인-미스터리에의 권유
- 골치 아픈 세상 한방에 날려보낸다! Sam Spade
최근 들어 북한 핵, 이라크사태 등으로 경제가 추락하고 사회는 불안하기만 하다. 암울하고 이런 답답한 시대를 반영하듯 독서계에 아더 코난 도일의 작품 등 미스터리소설 읽기 붐이 달아올라 단숨에 100만부를 돌파하는 놀라운 사태가 일어났다. 이 현상은 미스터리소설의 황금기라고 할 수 있는 1,2차 세계대전과 대공황이 일어난 1910년대와 30년대를 돌이켜보면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왠지 모르게 불안하고 답답한 심정을 미스터리소설 한 권으로 단 한 방에 날려보내고 싶기 때문인 것이다.
미스터리소설을 읽는 순수한 독자들에게 ‘왜 미스터리소설인가’ 하고 물으면 그것은 미스터리소설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광기와 이성, 정신분석학적으로 범죄에 대한 난해한 비밀을 해부하고 논리적으로 풀어나감으로써 얻게 되는 결말의 통쾌감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독자들은 미스터리소설을 통해서 아슬아슬한 긴장감과 스릴도 맛보게 되지만, 탐정이 되어 문제를 풀어나가면서 미스터리게임에 몰입하여 지적인 훈련을 쌓아가는 것이다.

왜 미스터리소설인가
엘러리 퀸은 미스터리소설을 읽는 기쁨을《미스터리 100년사》에서 다음과 같이 피력하고 있다.
"미스터리 고전들은 질로써 승부를 건 빼어난 걸작들입니다. 나는 이 명작들을 읽고 또 읽고, 시간을 두었다가 다시 읽었습니다. 몇 번이나 되풀이 읽었지만 그때마다 새롭고 흥미진진했으며 즐겁기조차 했습니다. 나의 평가나 감탄도 전혀 바뀌지 않았습니다. 어느 작품이나 미스터리 범죄소설이 갖추어야 할 두 가지 요소, 즉 정서적인 흥분과 지적인 자극을 완벽하게 갖춘 기념비적인 수작들이었습니다. 고전의 아름다움은 형식과 내용의 아름다움이며, 구성과 기교의 아름다움입니다. 일찍이 존 키츠는 ‘아름다운 것은 영원한 기쁨’이라고 말했고, 하워드 헤이클래프트는 <즐거움을 위한 살인-미스터리의 생명과 시간>에서 ‘에이브러햄 링컨은 에드거 앨런 포의 미스터리를 읽지 않고는 한 해도 그냥 보낼 수 없었다’고 기록했습니다.
고전이란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그 빛이 바래지 않으며 고전을 읽는 기쁨은 영원한 것입니다. 나는 당신에게 ‘고귀한 정신의 레크리에이션’ 미스터리 고전을 읽는 기쁨을 선물로 안겨 드리고 싶습니다. 독자들이여, 범죄에 건배를! 탐정에 축배를! 그리하여 미스터리문학에 영광 있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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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우타노 쇼고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1. 어떤 식으로 끝낼려고 이렇게 방만하게 전개되는가. 사뭇 걱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던 소설이 아닌가. 뭔가가 있을 것이라고 여기면서 읽어나갔다. 벌써 반이 넘었는데도 사건은 더욱 부풀려지기만 했다. 그리고 마지막 장. 이와 같은 반전만은 정말 예상치 못했다. 갖은 것을 상상하면서 읽었으나 이것만은 생각지 못했다. 그리고 다시 처음부터 곱씹어보니 아하, 그랬구나 하고 작가의 솜씨를 인정하게 되었다.

2. 그런데 내가 정말 재미있게 읽은 것일까? 다시 생각해보니 그렇지만은 않은 듯했다. 가장 아쉬웠던 건 말이 너무 많다는 것. 세부 묘사가 지나칠 정도로 많았다. 없어도 될 말, 묘사하지 않아도 되는 인물의 심리, 쓸데 없이 너무 긴 대화들. 이런 것들이 나를 너무 지루하게 했다. 더 압축적이고, 더 서정적으로 쓸 수는 없었을까. 그랬으면 더 좋은 작품이 되었을 것이다.

3. 이 소설은 과연 완벽한가?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 다시 처음부터 곱씹어봤다. 하지만 빈틈이 정말 많았다. 야쿠자에 들어가 사건을 해결하는 장면도, 또 인물들이 서로 부딪치는 장면에도 모순이 많았다. 앞으로 읽어야 할 독자들을 위해 자세히는 말하지 못하겠으나 내 생각에는 추리소설의 적이라 할 우연적인 요소가 많은 작품이라고 생각되었다. 

4. 알라딘 리뷰를 하나씩 읽어보았다. 대부분 이 소설이 사회문제를 건드리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계속 생각해봐도 이 소설에는 뭔가가 부족하다. 이 소설에서 주장하는 ㅇㅇ문제(사서 읽어보세요^^)와 사회의 악이라 할 만한 호라이 클럽의 사기 행각이 서로 씨줄과 날줄처럼 연결되지는 않는다. 호라이 클럽은 그저 악의 세력일 뿐이다. 그리고 ㅇㅇ문제는 마지막의 반전에서 툭 튀어나올 뿐이지 소설을 읽는 독자들이 내내 고민해야 할 문제가 아니다. (소설을 다 읽은 다음 그 문제에 대해 모두 생각하게 하는 장점은 있지만) 그러니까 ㅇㅇ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뤘다고 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그 문제의 표면적인 면을 살짝 건드렸을 뿐이며, 본질을 파헤치지는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5. 이 소설에 이렇게 기막힌 반전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과연 뛰어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었을까? 한번쯤 생각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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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6-02-26 0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요, 쓸데없는 말이 너무 많고, 사건이 개연성없이 흘러가고, 정작 사회문제에 대해서는 그냥 설명조로 줄줄 얘기해버리고 마는 경향이 있지요. 그 반전이라는 것도 일본에서는 아하! 했을지 모르지만, 사실 우리정서에는(우리가 쓰는 말이 아니니깐) 안 맞지 않나요. 속이려고 작정하고 속였을뿐 대단한 반전 아니였다고 생각됩니다.

새들처럼 2006-02-26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너무 과대평가 받는 소설은 아닌지...

sayonara 2006-07-10 14: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적극 동감, 개연성 없는 전개와 억지스러운 반전을 강요하는 작품입니다. 심각한 척 고민하는 노령화 문제로 정말로 진지했던가 싶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