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문화와 외래문화의 만남 그리고 소통


1998년부터 시작된 ‘실크로드 프로젝트’가 드디어 첫 결실을 맺었다. 이 프로젝트는 첼리스트 요요 마와 음악학자 테어도어 레빈이 주축이 돼서 실크로드로 상징되는 다양한 문명간의 만남과 소통을 음악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이들은 1999년 실크로드와 관계된 9개 국가 20여 명의 작곡가에게 곡을 위탁했고, 그 결과 한국의 강준일과 김지영을 포함해 아르메니아, 중국, 아제르바이잔, 일본, 이란, 몽골, 타지키스탄, 터키, 우즈베키스탄의 작곡가들의 곡을 위촉받을 수 있었다. 이 곡들은 공히 자국의 전통음악과 유럽음악의 요소가 혼합되어 있으며, 이를 통해 실크로드가 그랬던 것처럼 민족문화와 외래문화의 만남과 소통이 반영되어 있다. 또 음악에만 머무르지 않고 이 프로젝트는 공연과 학술행사, 교육 프로그램, 멀티미디어 출판 계획을 아우르며 대규모의 소통의 장으로 진행시킬 예정이다.

이 음반은 그동안 풍문으로만 전해졌던 ‘실크로드 프로젝트’가 처음으로 실체화되어 나타난 것이다. ‘실크로드 여행-낯선 사람들이 만날 때’라는 타이틀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이 음반은 서로 다른 문화를 섞는 것이 아니라 만남을 강조하고 있다. 동서양의 만남이라는 주제를 어설프게 추진하다 보면 자칫 무게중심이 한쪽으로 쏠릴 우려가 있지만, 이 음반은 한 문화의 주체를 인정하며 그것을 더욱 보편적인 것으로 승화시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곧 문화간의 만남이 한쪽으로 동화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주체의 만남임을 새삼 일깨워주고 있으며, 그 만남을 통해 문화가 서로 교류되며 변화한다는 진리를 다시 확인시켜 주고 있는 것이다. 요요 마는 이 작업을 “세계 여러 지역에 존재하는 다양한 문화에 대한 관심과 동경, 서로간의 소통, 근원에 대한 탐구 등에 대해 생각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낯선 사람들이 모여 문화를 일구다

첫곡은 몽골의 간바아타르 콩고르줄이 부르는 몽골의 전통 민요이다. 내지에 ‘긴 노래’라고 적혀 있는 이 민요는 우리의 민요처럼 한 소절이나 단어가 오랫동안 꺾인 음으로 진행된다. 이 때문에 ‘긴 노래’라는 제목을 붙이게 됐다고 테어도어 레빈은 내지에 적고 있다. 하지만 이는 무지의 소산이다. 원 제목이 반드시 있을 테지만, 이 서구인은 이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단지 한 음이 길게 늘여진다는 이유만으로 ‘긴 노래’라고 명명한 것이다. 이 음반의 유일한 옥에 티인 이 첫 트랙을 지나면 음악은 그들만의 가치를 지니며 생명력을 확보한다. 몽골 작곡가 뱜바수렌 샤라브의 ‘헐렌의 전설’은 퍼커션과 요요 마가 직접 연주한 몽골의 전통악기 모린 쿠르의 고요한 음으로 시작해 콩고르줄의 날카로운 음성과 트롬본의 금속음이 더해진 곡이다. 서정성과 웅장함, 피날레의 강렬함, 그리고 잦아드는 고요함이 깃들여 있는 이 매력적인 곡은 몽골의 현대화된 풍경을 연상시킨다. 이는 서양의 악기와 문법이 가미되어 이뤄진 결과이다. 몽골의 전형성과 보편성이 살아 있으면서도 다른 문명이 섞여 있는 양상을 띄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젊은 작곡가 우통이 중국 민요를 편곡한 ‘푸른빛의 작은 꽃’과 ‘미도산’ 또한 서양의 악기와 비파, 생황, 얼후 등의 전통악기가 어우러져 있다. 그렇지만 아무리 살펴봐도 이 음악은 중국산 음악이다. ‘헐렌의 전설’과 마찬가지로 서양의 악기와 문법은 중국 전통을 해치지 않고, 이를 받쳐주며 분위기를 살짝 바꿀 뿐이다. 반면 일본 작곡가 미치오 마미야의 ‘다섯 개의 핀란드 민요’와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 민요인 ‘Chi passa per’sta strada’는 서양음악을 동양악기로 연주한 것이다. 이 또한 문명의 충돌을 표현한 게 아니라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조화로운 목소리가 표현되어 있다. 한편 한국 작곡가 강준일과 김지영의 곡은 이번 음반에 포함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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