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라면 누구나 자신을 에워싸고 있는 틀에서 벗어나기를 꿈꾼다. 이런 울타리를 벗어나기 위해 대개 음악인들은 크로스오버라는 장르로 눈을 돌린다. 자신의 음악적 표현의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 또는 확장하기 위해 크로스오버라는 장르는 때로 예술가들의 자유를 맘껏 발산할 수 있는 장을 제공하곤 한다. 물론 상업성만을 추구하는 음악가들도 많고, 각 장르마다 있을 법한 진정한 정신과 정신의 만남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한 교류에 그치고 만 경우도 많다. 그렇지만 이러한 시도는 여러 장르간에 존재하고 있는 불화를 더욱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앞으로도 계속 시도될 것이란 걸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캐나다 출신의 소프라노 패트리샤 오캘런. '리얼 이모우셔널 걸'(Real Emotional Girl)이라는 앨범을 국내에 정식으로 선보인 그녀는 콘서트 홀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보다 바나 나이트 클럽 같은 곳을 더 선호하는 신세대 가수이다. '카바레 뮤직'이라고 불리는 노래들을 담고 있는 이 음반은 오캘런이라는 또 한 명의 유능한 크로스오버 가수의 탄생을 알리고 있다. 오캘런은 이 음반에서 고급스런 예술적 향취를 담은 '진지한' 레퍼토리와 20세기의 다양한 대중 음악의 흐름을 녹록치 않은 깊이와 해석으로 들려주고 있다. 단순히 흉내내기에 급급한 것이 아니라 세밀하게 다져진 음악성을 바탕으로 오캘런식의 해석을 담고 있다.
오캘런은 캐나다의 조그마한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누가 음악을 가르쳐 줄 사람도 없어 스스로 피아노를 치고, 스스로 노래를 배웠다. 음악은 그녀의 성장기의 유일한 위안이었다. 또한 음악은 그녀의 꿈이기도 했다. 이런 꿈을 향한 여정은 그녀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 지방 록 밴드에 참여하게 했다. 록 음악은 그녀를 단숨에 사로잡았다. 때문에 그 당시 그녀의 꿈은 록커가 되는 것이었다. 그 꿈은 심지어 기도를 할 때도 오지 오스본과 롤링 스톤스의 톤으로 내뱉게 할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다.
이런 그녀가 성악을 시작한 건 16세 때. 클래식 레퍼토리가 잠재돼 있던 예술혼을 건드렸던 것이다. 꿈은 금세 록 가수에서 오페라 가수로 바뀌었다. 그녀는 이 꿈을 키우기 위해 토론토 대학에서 클래식 음악을 전공하게 된다. 그러나 시골에서 대도시로의 이동은 그녀를 또 다른 욕망에 사로잡히게 했다. 돈도 필요했다. 란제리 모델도 했고, 다시 록 밴드에 참여하기도 했다. 또 솔리스트로서 카바레에서 피아노 반주를 하며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이런 경험들은 오늘날 그녀의 음악에 록과 카바레 송, 뮤지컬, 클래식 등을 아우를 수 있는 다양성을 확보하게 해주었다. 그녀는 바로크 음악에서부터 현대 오페라에 많은 흥미를 가지고 있다. 또 아방가르드 앙상블인 재브라 슈벙크(Zebra Schvungk)의 멤버로 활동하기도 했고, 토론토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역시 카바레 송이다. 특히 오캘런에게 중요한 레퍼토리는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을 대표하는 독일 작곡가 쿠르트 바일이 만든 노래이다. 바일의 곡은 그녀가 이제껏 발표했던 3장의 앨범에 여러 곡을 수록했을 정도로 큰 애착을 가지고 있다. 밥 딜런, 펄 잼, 오지 오스본 등 1970∼80년대의 저항적 록 가수들의 곡 또한 그녀가 즐겨 부르는 레퍼토리 중 하나다. 1997년 그녀는 쿠르트 바일, 에릭 사티, 프랑시스 풀랑크 등의 노래를 담은 'Youkail'이라는 앨범을 발표한다. 이 앨범은 곤궁했던 그녀의 삶에 도움이 됐고, 여러 장르의 음악을 혼합하여 소화해내는 그녀만의 독특한 능력을 인정받는 성과를 이루어냈다. 그녀는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떠올린다.
"그제서야 노래를 내 품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청중들이 항상 나와 함께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지요. 관객들이 내 노래를 듣고 즐거워하고, 동요하고, 기뻐한다는 것이 그렇게 놀라울 수가 없었어요."
이어서 발매된 두번째 앨범 '슬로우 폭스'는 그녀의 이름을 캐나다뿐만 아니라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갈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레오나르드 코헨, 쿠르트 바일, 쇤베르크의 노래를 담은 이 앨범은 각 음악가들마다 다를 수밖에 없는 음악성을 그녀 특유의 퓨전 정신으로 폭넓게 소화해내 많은 사람들에게 갈채를 받았다. 또 1999년 CBC 드라마 '바보같은 마음'은 오캘런이라는 이름을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릴 수 있는 계기를 제공했다. 이 시리즈에서 그녀는 쿠르트 바일의 노래를 불렀고, 드라마의 성공과 더불어 그녀의 매혹적인 목소리는 많은 사람들에게 가수로서의 인지도를 확실히 심어주었다.
이 '리얼 이모우셔널 걸'은 오캘런 나름대로의 관점이 확실히 투영된 앨범이다. 그녀가 3집에 걸쳐 이뤄낸 성과는 예술 가곡과 프랑스의 샹송, 아메리칸 팝 등 꾸준히 레퍼토리를 확대해가면서 그것들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시켰다는 데 있다. 이 다양한 장르의 노래들은 오캘런의 음반에서 새로운 것으로 재탄생한다. 곧
단순한 재생이 아니라 창조적인 편곡과 해석력이 있다는 얘기다. 이 앨범에서도 가장 두드러진 것은 역시 편곡의 미학에 있다. 오캘런이 빛나는 가수로서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 알리게 된 것도 이런 색다른 해석과 매혹적인 목소리 때문일 것이다. 이를테면 여러 록 밴드에게 큰 영향을 끼쳤던 밥 딜런의 불후의 걸작 '라이크 어 롤링 스톤'은 의외로 잔잔한 첼로 반주로 시작된다. 원곡에서 느낄 수 있는 저항적이면서도 활달한 뉘앙스와는 다르게 전체적으로 차분하게 소화하고 있다. 철학적인 노랫말로 밥 딜런 등에게 영향을 끼친 레오나르드 코헨의 '아임 유어 맨' 또한 마찬가지다. 읊조리면서 저음으로 내뱉는 코헨과는 달리 오캘런은 흥겨운 비트를 느낄 수 있도록 한다. 매력적인 고음 처리는 원곡과는 다른 또 다른 깊이를 담고 있다. 역시 코헨의 '잔다르크'는 부드러운 예술적 향취를 만끽할 수 있도록 해석했다. 이밖에 그녀가 오랫동안 천착해온 바일의 '나나의 노래' 등 두 곡과 펄 잼의 '배터 맨'(Better Man), 랜디 뉴먼의 '리얼 이모우셔널 걸', 번스타인의 '럭
키 투 비 미'(Lucky to Be Me) 등이 수록되어 있다.
이 앨범에는 20세기의 다양한 음악 형태와 흐름이 존재하고 있다. 오캘런은 이런 음악들이 지니고 있는 다양성과 창조성을 그녀 자신의 강렬한 개성으로 조화시켜 예술적인 멋스러움을 자아낸다. 이는 곧 오캘런이 단순간에 빛을 발하고 사라져버릴 가수가 아님을 말해준다.
"아마도 나는 여전히 여기 저기에 흩어져 있는 비트와 함께 작업을 계속 해나갈 것 같아요. 팝, 재즈, 전위적인 현대 음악의 영향을 내 것으로 소화시켜 앞으로 더 많은 실험을 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