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한 생
파스칼 키냐르 지음, 송의경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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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칼 키냐르의 '은밀한 생'은 '사랑과 고독에 관한' 성찰이라고 할 만하다. 이 책은 소설이지만 딱히 소설이라고 해야 할 요소는 존재하지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이 등장하고 그와의 관계가 기술되어 있으나, 그것은 이야기가 아니라 독설에 지나지 않는다. 키냐르는 이 책을 "단 하나의 육체와도 같은 책"으로 만들고 싶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이 사랑에 대한 담론을 통해 모천으로 회귀하는 연어처럼 근원에 대한 탐색을 추구하고 있다.

"훌륭한 음악가는 육체 안에 있는 가장 오래된 집(옛집, 공명기, 배, 자궁의 동굴)이 소리를 내게 만든다. 음악이란 틀림없이 가장 오래된 예술이다. 모든 예술에 선행되는 예술이다. 박동하면서 살에 혈색이 돌게 하는 심장, 말을 하기 위해 입이 호흡한 공기를 들이쉬고 내쉬는 폐, 이것들의 들쭉날쭉한 리듬을 연주하는 예술이다. 그리고 이 리듬을, 박자를 맞추는 다리와 손뼉 치는 손의 리듬에 결합시키는 예술이다."

이 책에는 수많은 음악 이야기가 서술되어 있다. 주인공이 사랑하는 여자 네미는 주인공에게 음악을 가르치는 교사이자 연주가이다. 때문에 그녀와의 관계 설정은 음악을 통해 이루어진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내가 그녀를 알기 전에, 내 마음에는 음악과 같은 근본적인 체험에 비교될 만한(혹은 책들의 매력에 비교될 만한) 세계, 벌거벗은 인간을 포용함으로써 다가갈 수 있는 사랑의 세계가 없었다."


주인공에게 음악은 사랑과도 같은 것이다. 또 그가 가장 좋아하는 독서와도 같은 것이다. '나'는 소통의 세계를 믿지 않지만, 음악과 사랑과 독서는 소통을 위한 열쇠이다. 그것은 '은밀한 삶'과도 같은 것이다. '나'는 사랑이 인간들 사이에 소통 가능한 것으로 되기 위해서는 세 가지 금기 사항을 지키라고 권유한다. 듣지 말 것, 보지 말 것, 말하지 말 것이 그것인데, 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말하지 않는 것이다.
언어로 인해 엿보는 자가 나타나고, 사회가 나타나서 사랑하는 사람의 결합을 깨트린다고 적고 있다. 실제로 주인공은 "네미가 피아노를 치지 않으면서도 피아노를 치고 있다고 믿는 놀라운 경험을 두 번이나 목격"하면서 사랑의 존재감을 부각시키고 있다.


"세계는 둘이다. 연주는 표면과 표면의 닮음이라는 차원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힘의 윤회에 속한다. 힘, 수액, 피, 활력, 그것은 원택스트의 내벽 뒤에 있으며, 작곡자는 그것을 형상화시키고 연주자는 표현한다. 전자는 직접적인 지배력으로, 후자는 연기되거나 반복되는 지배력으로."

이 특이한 소설을 쓴 파스칼 키냐르는 우리에게 영화 '세상의 모든 아침'의 원작자로 알려져 있다. 책으로는 '은밀한 생'이 처음으로 번역되어 소개된 것. 현재 그는 프랑스 문학계의 새로운 소설 쓰기를 주도하고 있는 작가이다. 그것은 일상과 철학과 자아에 대한 글쓰기가 혼합되어 나타나는 것으로, 딱히 소설이라고 규정지을 수 없는 독특한 산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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