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펠탑의 검은 고양이
아라이 만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2000년 10월
평점 :
품절


"그렇습니다. 자꾸 빼 나가는 겁니다. 군더더기 음표, 쓸데없는 음표, 장식에 불과한 음표, 요컨대 군살 같은 음표는 가차없이 잘라냅니다. 그러다 보면 맨 마지막에는 도저히 잘라낼 수 없는, 그러니까 없어서는 안될 음표만 살아남게 됩니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찾고 있던 음표지요. 그래서 내가 만드는 작품들은 모두 악보가 얄팍합니다."

늘 검은 모자에 검은 옷과 검은 고양이 모양의 손잡이가 달린 박쥐 우산을 들고 파리를 배회했던 에릭 사티(1866∼1925). 그는 동시대의 작곡가 라벨과 드뷔시에게 영향을 주었지만, 그들과는 달리 프랑스 음악의 중심인물이 되었던 적은 없었다. 19세기 말 유럽 음악계의 표상과 같았던 바그너의 '과장된 표현'에 반기를 들며 아주 단순한 작품들을 생산했다. 그의 작품들은 '배 모양의 세 작품'과 같은 이상한 제목을 갖고 있거나 악보에 이상한 지시어를 붙이고 조롱하는 듯한 인물을 등장시키곤 했다.


사티의 음악이 없었다면 자신도 작가가 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하는 아쿠타가와 상 수상작가 아라이 만이 에릭 사티 서거 75주년을 맞아 펴낸 이 소설은 사티의 예술적 개성이 강하게 풍겼던 20대 후반까지의 삶을 다루고 있다. 특히 19세기 말 몽마르트에 모여든 쉬잔, 위트릴로, 르누아르, 로트레크, 모리스 등 사티와 직·간접적으로 인연을 맺었던 다양한 예술인의 풍부한 일상을 엿볼 수 있어 20세기 초 이들에 의해 펼쳐질 다양한 예술운동을 선 체험할 수 있다.


젊은 시절 '무슈 르 포브르'(가난뱅이 씨)로 불렸던 사티는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에서 해운업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자신을 유일하게 인정해주는 어머니를 일찍 여윈 그는 반항적인 소년으로 자란다. 피아노 선생이었던 계모의 강요에 의해 국립 파리음악원에 진학했지만, 학교에는 거의 나가지 않았고 군에 입대함으로써 학교를 자퇴한다. 그러나 군대는 반항적이고 자유로운 성격의 사티와 애초부터 맞지 않았다.
사티는 의도적으로 폐병을 일으켜 1년도 안 돼 제대하고, 몽마르트에 있는 카페에서 '시인의 자작시 낭송이나 샹송 가수의 노래를 반주하는' 피아니스트로 일한다. 그곳에서 사티는 모델이자 화가였던 쉬잔 발라동과 평생의 단 한번뿐이었던 연애를 하게 된다. 그 자신이 화가이기도 했던 쉬잔은 당대의 유명 화가 르누아르, 샤반, 로트레크 등의 모델이자 애인이었고, 20세기 초를 장식하는 풍경화가 모리스 위트릴로의 어머니이기도 했다. 사티는 그런 그녀와 반년 동안의 동거를 했지만 자유분방한 쉬잔은 그를 떠나고 만다. 사티는 이 충격에 "여자란 기어오르는 독사입니다"라는 생각을 가지게 됐으며 평생을 고양이, 새와 함께 독신으로 지냈다.

소설은 지극히 간단한 선율을 '840번 반복해서 연주하시오'라는 지시문이 붙어있는 '벡사시옹'(Vexations)을 작곡함으로써 연애의 실패와 자살충동에서 벗어나 새로운 출발을 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덧셈의 시대에 철저히 뺄셈의 논리로 장식음들을 제거했던 사티는 프랑스 현대 음악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프랑스 6인조(오릭, 뒤레, 오네게르, 미요, 프랑크, 타이유페르)는 사티의 이런 가치를 발견하고 자신들의 정신적인 아버지라고까지 했다.
이 소설은 사실을 토대로 작가의 상상력으로 사티의 젊은 시절을 재미있게 재구성했다. 자주 튀어나오는 감상적 문체가 흠이기는 하지만 사티의 예술세계를 이해하는 데에는 별 무리가 없을 듯하다. 또 사티와 다양한 관계를 맺었던 화가들이 그에게 그려준 초상, 사티가 쉬잔에게 보낸 편지, 쉬잔을 모델로 한 르누아르, 사반 등의 그림도 실려 있어 당대의 예술정신을 폭넓게 체험할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