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킬라파윤
민중의 역사를 노래한 누에바 칸시온의 주역
'누에바 칸시온'(Nueva Cancion). '새로운 노래'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이 개념은 1980년대 우리나라에서 광범위하게 불려졌던 민중가요와 상당히 비슷하다. 당시 국내에서 활동했던(물론 지금도 활동하는 가수들이 많다)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나 조국과 청춘, 꽃다지 등의 여러 그룹이 노래를 하나의 운동개념으로 받아들였듯이 '누에바 칸시온'으로 분류되는 칠레의 여러 가수도 노래를 통해 사회를 개혁하려고 했다. 그 대표적인 가수가 바로 비올레타 파라와 빅토르 하라 그리고 지금 소개하는 그룹 킬라파윤이다.
킬라파윤(Quilapayun)은 '세 명의 털보'라는 뜻이다(구성원이 세 명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1967년 대학생이었던 이들은 모두 급진적인 사회주의 청년단체에 속해 있었다. 비올레타 파라에게서 잉태됐던 누에바 칸시온 운동이 빅토르 하라에게로 이어졌고, 킬라파윤도 이들의 영향을 받으며 새로운 노래운동에 적극 가담하게 된 것이다. 당시 칠레를 비롯한 남미의 여러 나라는 미국을 대표로 하는 제국주의의 착취에 대항하고, 독점타파와 농지개혁이라는 공통의 목표가 있었다. 킬라파윤은 당시 검은색 와이셔츠와 바지에 고유의 노동자 의상 폰초를 걸치고 현실과 역사에 대한 인식을 노래로 표현했다.
누에바 칸시온을 이끈 1세대가 모두 세상을 떠났거나 해체된 반면 킬라파윤은 아직까지도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1973년 미국을 등에 업은 피노체트가 쿠데타에 성공하자 프랑스로 망명하는 데 성공했다. 빅토르 하라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밤새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고, 처참하게 처형되던 시기였다. 킬라파윤은 조국의 비참한 현실을 국외에서 노래를 통해 기록해갔다.
선전음악에서 록 리듬까지 35년의 행보
국내에 소개되어 있는 네 장 정도의 음반은 이들의 음악성을 조망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미지의 베트남'(X Viet-Nam)은 1968년에 발표한 이들의 초창기 앨범이다. 표지의 그림과 표제와는 달리 이 음반은 베트남 전쟁과는 그리 큰 관련은 없다. 대신 베트남 전쟁에서 파생된 여러 문제와 연결해 음악을 설정한 듯하다. 타이틀 곡 '미지의 베트남'은 노골적인 반미 노래다. "양키, 양키, 양키를 제거하라"와 같은 직설적인 가사가 등장하며 선율도 상당히 공격적이다. '체 게바를 추모하는 노래'와 '총탄'은 쿠바 혁명에 대한 찬탄을 묘사한 것이다. 당시 라틴 아메리카는 1959년 쿠바 혁명의 성공에 많이 도취되어 있었다. 제2의 쿠바 혁명을 일으키기 위해 각지에서 수많은 게릴라 활동이 일어날 정도였다. 칼리파윤은 이 쿠바 혁명에 대한 찬사를 통해 반미와 민중성 고취라는 정치색을 짙게 드러내고 있다.
'이것으로 충분하다'(Basta)는 킬라파윤의 민족 정신이 잘 묘사되어 있는 음반이다. '내 것을 가지고 나는 가지 못하네'(A la mina no voy), '이미 이것으로 충분하다'(Basta ya), '성벽'(La Muralla) 등의 노래는 외국 자본의 지배를 거부하는 노래다. 그러나 무작정 외세를 배격하자는 고답적 민족주의는 아니다. 즉 나쁜 외세는 막아내고, 좋은 것은 받아들이자는 개방적 태도를 음악 속에 견지하고 있다. 1969년에 선보인 이 앨범은 '미지의 베트남'과 마찬가지로 거친 느낌의 선동적인 선율이 주로 흐른다. 역사의 한 페이지를 현장에서 기록하고자 했던 이들의 의지가 격렬하게 묘사되어 있는 셈이다.
킬라파윤의 음악에서 언어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바로 연주이다. 안데스의 민속 선율은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또 다양한 전통 악기를 등장시켜 옛 선율을 현대적으로 계승해 풍요로운 소리를 만들어낸다. '35년'은 킬라파윤 결성 35주년을 기념한 베스트 음반이다. 이 음반을 접하면 이들이 얼마나 다양한 장르를 섭렵했는지 여실히 느낄 수 있다. 전통적인 안데스 선율을 바탕으로 한 선동적인 선전 음악이 있는가 하면, 세련되기 이를 데 없는 깔끔한 포크 송, 록이 가미된 발랄한 리듬이 흐르기도 한다. 곧 35년 동안 변화를 거듭하면서 이뤄놓은 행보가 이 음반에 담겨 있는 것이다. 피노체트 정권을 비판하는 노래 '접시'(La batea), 칠레 광부들의 저항가 '팜파의 노래'(Canto a la Pampa), 서정적인 발라드 '나는 아만다를 기억한다'(Te recuerdo Amanda), '영화 모음' 등이 이들의 대표 곡으로 선곡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