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tual
미시아 (Misia) 노래 / 워너뮤직(WEA) / 2001년 12월
평점 :
품절


미샤의 '리추얼'(Ritual)에는 파두의 전통과 현대성이 공존해 있다. 그녀의 노래는 아말리아 로드리게스의 전통적인 파두와는 사뭇 다른 모습을 띈다. 그렇다고 팝이 가미된 파두로 많은 인기를 끌고 있는 브랑코와 베빈다와도 다소 거리를 두고 있다. 미샤는 전통적인 파두와 긴밀성을 유지하면서 파두에 좀더 현대적인 감각을 불어넣는다. 그녀의 새로움은 전통과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전통에 바탕을 두고 전통을 극복하는 것이 창조의 첫 발걸음임을 잊지 않고, 이를 한껏 되새김질한다. 미샤는 이를 위해 파두의 여왕 아말리아 로드리게스의 영혼을 다시 불러들인다. 곧 미샤는 이 음반에서 로드리게스를 추모하고 로드리게스를 음미한 뒤 로드리게스를 극복하고 있는 것이다.
우선 그녀는 로드리게스의 대표곡 '눈물'(Lagrima)을 절절함이 깃든 목소리로 노래한다. 또 로드리게스가 직접 가사를 붙인 '나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을 통해 평소 로드리게스가 피아노 반주에 맞춰 리허설을 했던 방식을 그대로 재현한다. 그리고 '눈물'을 작곡했고, 로드리게스와 함께 많은 작업을 했던 카를로스 곤살베스에게 곡을 부탁해 '침묵의 숄'과 '달빛'을 노래한다. 특히 로드리게스가 사망한 해인 1999년에 만들어진 '침묵의 숄'에는 눈물기가 잔뜩 배어 있다. "그대가 두고 가버린 침묵의 숄이여"라며 외치는 미샤의 목소리에는 로드리게스에 대한 존경의 마음이 깃들여 있음은 물론이다.

미샤는 재현에만 머무르지 않고, 자신이 살고 있는 현재를 담기도 한다. 이를테면 로드리게스가 자주 불렀던 '달의 신비'를 그녀는 다른 방식으로 표현한다. 음은 같지만, 동시대를 함께 호흡하고 있는 주앙 몽지의 시로 가사를 대체함으로써 이 노래를 새롭게 해석한다. 그런 뒤 그녀는 한껏 자기 자신을 노래에 불어넣는다. '절망' '내겐 인생의 그리움이 없어요' '두개의 달' 등에서 그녀는 로드리게스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며 그녀만의 개성을 과시한다.
미샤는 파두의 새로운 경향성을 대표하는 가수이다. 그녀의 노래에는 포르투갈의 현대 시인, 페르난도 페소아, 안토니오 보토, 나탈리아 코레이아, 주제 사마라구 등의 시를 자주 차용한다. 노래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전개되지만, 이들 시가 내포하고 있는 현대성이 미지아의 노래를 이전의 파두와는 다른 느낌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또 그녀의 노래에는 현대적인 감각에 맞게 세련된 반주가 딸리고, 경쾌한 리듬도 자주 선보이고 있다.
미샤는 1991년 첫 음반을 발매한 뒤 7개 정도의 음반을 선보였다. 이중 1998년에 선보인 '마음의 손길'은 62개국에 배급되어 20만 장이 넘게 팔릴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끈 바 있다. 그녀는 슬픔을 슬픔의 목소리로, 분노를 분노의 목소리로 과장하지 않고 표현한다. 약간 거친 듯한 목소리이지만, 인위적으로 변조한 목소리와는 차원이 달라 슬픔의 본질을 꿰둟고 있는 듯한 느낌을 전해준다. 테너 라몬 바르가스는 이런 미샤의 노래를 듣고 "목을 사용하지 않고 노래를 부른다"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미샤는 이 음반을 통해 과거의 파두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녀는 과거에서 길을 잃지 않고 현재의 자신을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그녀는 이 음반을 두고 "나의 지옥과 천국, 그리고 삶과 죽음이 모두 담겨 있다"고 표현한 바 있다. 그만큼 이 음반에는 미샤의 파두에 대한 깊은 사랑과 열정이 오롯이 새겨 있다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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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라파윤

민중의 역사를 노래한 누에바 칸시온의 주역


'누에바 칸시온'(Nueva Cancion). '새로운 노래'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이 개념은 1980년대 우리나라에서 광범위하게 불려졌던 민중가요와 상당히 비슷하다. 당시 국내에서 활동했던(물론 지금도 활동하는 가수들이 많다)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나 조국과 청춘, 꽃다지 등의 여러 그룹이 노래를 하나의 운동개념으로 받아들였듯이 '누에바 칸시온'으로 분류되는 칠레의 여러 가수도 노래를 통해 사회를 개혁하려고 했다. 그 대표적인 가수가 바로 비올레타 파라와 빅토르 하라 그리고 지금 소개하는 그룹 킬라파윤이다.
킬라파윤(Quilapayun)은 '세 명의 털보'라는 뜻이다(구성원이 세 명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1967년 대학생이었던 이들은 모두 급진적인 사회주의 청년단체에 속해 있었다. 비올레타 파라에게서 잉태됐던 누에바 칸시온 운동이 빅토르 하라에게로 이어졌고, 킬라파윤도 이들의 영향을 받으며 새로운 노래운동에 적극 가담하게 된 것이다. 당시 칠레를 비롯한 남미의 여러 나라는 미국을 대표로 하는 제국주의의 착취에 대항하고, 독점타파와 농지개혁이라는 공통의 목표가 있었다. 킬라파윤은 당시 검은색 와이셔츠와 바지에 고유의 노동자 의상 폰초를 걸치고 현실과 역사에 대한 인식을 노래로 표현했다.
누에바 칸시온을 이끈 1세대가 모두 세상을 떠났거나 해체된 반면 킬라파윤은 아직까지도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1973년 미국을 등에 업은 피노체트가 쿠데타에 성공하자 프랑스로 망명하는 데 성공했다. 빅토르 하라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밤새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고, 처참하게 처형되던 시기였다. 킬라파윤은 조국의 비참한 현실을 국외에서 노래를 통해 기록해갔다.

선전음악에서 록 리듬까지 35년의 행보

국내에 소개되어 있는 네 장 정도의 음반은 이들의 음악성을 조망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미지의 베트남'(X Viet-Nam)은 1968년에 발표한 이들의 초창기 앨범이다. 표지의 그림과 표제와는 달리 이 음반은 베트남 전쟁과는 그리 큰 관련은 없다. 대신 베트남 전쟁에서 파생된 여러 문제와 연결해 음악을 설정한 듯하다. 타이틀 곡 '미지의 베트남'은 노골적인 반미 노래다. "양키, 양키, 양키를 제거하라"와 같은 직설적인 가사가 등장하며 선율도 상당히 공격적이다. '체 게바를 추모하는 노래'와 '총탄'은 쿠바 혁명에 대한 찬탄을 묘사한 것이다. 당시 라틴 아메리카는 1959년 쿠바 혁명의 성공에 많이 도취되어 있었다. 제2의 쿠바 혁명을 일으키기 위해 각지에서 수많은 게릴라 활동이 일어날 정도였다. 칼리파윤은 이 쿠바 혁명에 대한 찬사를 통해 반미와 민중성 고취라는 정치색을 짙게 드러내고 있다.
'이것으로 충분하다'(Basta)는 킬라파윤의 민족 정신이 잘 묘사되어 있는 음반이다. '내 것을 가지고 나는 가지 못하네'(A la mina no voy), '이미 이것으로 충분하다'(Basta ya), '성벽'(La Muralla) 등의 노래는 외국 자본의 지배를 거부하는 노래다. 그러나 무작정 외세를 배격하자는 고답적 민족주의는 아니다. 즉 나쁜 외세는 막아내고, 좋은 것은 받아들이자는 개방적 태도를 음악 속에 견지하고 있다. 1969년에 선보인 이 앨범은 '미지의 베트남'과 마찬가지로 거친 느낌의 선동적인 선율이 주로 흐른다. 역사의 한 페이지를 현장에서 기록하고자 했던 이들의 의지가 격렬하게 묘사되어 있는 셈이다.
킬라파윤의 음악에서 언어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바로 연주이다. 안데스의 민속 선율은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또 다양한 전통 악기를 등장시켜 옛 선율을 현대적으로 계승해 풍요로운 소리를 만들어낸다. '35년'은 킬라파윤 결성 35주년을 기념한 베스트 음반이다. 이 음반을 접하면 이들이 얼마나 다양한 장르를 섭렵했는지 여실히 느낄 수 있다. 전통적인 안데스 선율을 바탕으로 한 선동적인 선전 음악이 있는가 하면, 세련되기 이를 데 없는 깔끔한 포크 송, 록이 가미된 발랄한 리듬이 흐르기도 한다. 곧 35년 동안 변화를 거듭하면서 이뤄놓은 행보가 이 음반에 담겨 있는 것이다. 피노체트 정권을 비판하는 노래 '접시'(La batea), 칠레 광부들의 저항가 '팜파의 노래'(Canto a la Pampa), 서정적인 발라드 '나는 아만다를 기억한다'(Te recuerdo Amanda), '영화 모음' 등이 이들의 대표 곡으로 선곡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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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릴리언트 클래식스
브릴리언트 클래식스
Brilliant
시샵뮤직
11CD(수입)
양질의 연주를 가장 싼 가격에 제공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는 브릴리언트 클래식스는 기존 저가 음반의 대명사였던 낙소스나 아르테 노바보다 가격이 더 저렴하다. 낙소스와 아르테 노바가 낱장 위주의 발매 정책을 펴고 있는 것과는 달리 브릴리언트 클래식스는 전집물 중심으로 음반을 내놓고 있다. 이 정책이 바로 브릴리언트 클래식스의 인기 비결인데, 이 레이블에서 꾸준히 내놓고 있는 이 박스물은 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신뢰할 만한 것이어서 해외에서 여러 번 호평받았다. 베토벤, 모차르트, 슈베르트, 멘델스존, 말러,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전집은 물론 160CD로 구성된 ‘바흐 에디션’, 170CD로 완성될 ‘모차르트 에디션’, 슈베르트 가곡집, 바그너의 오페라 등 웬만한 레퍼토리는 모두 갖추고 있어 저가 레이블의 새로운 강자로 떠올랐다.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레이블에서 이처럼 다양한 전집을 낼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해답은 바로 라이선스 음반 발매에 있다. 브릴리언트 클래식스의 음원은 대부분 다른 음반사의 것이다. 브릴리언트 클래식스는 이 음원을 사들여 싼 가격으로 시장에 내놓는다. 여기에는 그동안 빛을 보지 못했던 연주와 이미 폐반된 음반이 꽤 많이 포함되어 있고, 더불어 원래 레이블로 시중에 팔리고 있는 음반도 상당수 발견된다.

바르샤이의 열정과 세밀한 성찰이 담긴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전집은 브릴리언트 레이블에서 단연 돋보이는 타이틀이다. 루돌프 바르샤이와 WDR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지난 1994년부터 2000년에 걸쳐 완성한 이 전집은 이례적으로 다른 음반사의 음원이 아니라 자체 기획으로 제작된 앨범이다.
완성도 높은 연주도 주목할 만하다. 작곡가와 친분이 두터워 교향곡 14번을 초연하기도 했던 바르샤이는 단 한 곡도 겉치레로 꾸미지 않는다. 옹골차게 텍스처와 프레이징을 이끌어가는 1번과 목관 사운드를 전면에 내세우고 강렬한 음을 펼친 8번, 역사의 아이러니와 비극을 뛰어나게 표현한 솔리스트 알라 시모니와 블라디미르 바네예프의 활약이 돋보이는 14번, 웅장한 피날레가 마음을 사로잡는 15번은 그야말로 명성에 걸맞는 훌륭한 연주이다. 그리고 박진감 넘치는 11번과 강인함보다는 고귀함을 강조한 5번, 열정을 아름답게 채색해놓은 6번 등도 놓치기에는 아까운 연주이다.
모든 연주에는 이처럼 바르샤이의 열정적이면서도 세밀한 성찰이 깃들여 있다. 마치 작곡가의 내면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인간적이다. 5만원 정도로 이만큼 뛰어난 전집을 얻기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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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트벵글러 ‘디 오리지널스’


일본 유니버설의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디 오리지널스’ 시리즈. 이 시리즈는 푸르트벵글러의 위대한 연주만을 엄선해 OIBP(Original-Image Bit-Processing) 시스템으로 자체 리마스터링을 거쳐 LP 형식으로 발매한 것이다. 이미 애호가들 사이에 소문이 자자해 한때 일본 직거래로 많이 구입하곤 했던 음반이다.  그러니 푸르트벵글러를 좋아하는 사람이나 클래식 음악 팬이라면 누구나 군침을 삼킬 만하다. 그러나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것이 흠. 2만 원대를 훨씬 뛰어넘는 가격은 상당히 부담스러운 게 분명하며, 이 타이틀을 접해보지 못한 사람은 연주의 질과 녹음 상태를 의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적당한 가격이라면 연주와 녹음 상태를 따지지 않고 푸르트벵글러라는 이름과 유니버설의 ‘노란 딱지’만을 믿고 구입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의심할 여지 없이 음반 내용은 상당히 알차다. 모두 푸르트벵글러가 장기로 삼았던 베토벤, 브람스, 슈만, 슈베르트, 바그너 등 독일 정통 관현악 작품이 수록됐다. 이 중 푸르트벵글러가 스위스로 망명한 뒤 1947년 베를린 필하모닉에 복귀하며 가졌던 베토벤 교향곡 5번 연주가 가장 각별하다(이 연주회는 1947년 5월 26일에서 28일까지 사흘에 걸쳐 열렸는데, 뮤직 앤 아트와 타라 레이블 등에서 이 연주회 실황이 음반으로 선보였다). 이 음반에는 푸르트벵글러의 해석 경향이 오롯이 담겨 있다. 특유의 웅장함과 다이내믹함이 생생하게 살아 있으며, 느림과 빠름, 그리고 그 중간 템포를 오가며 곡의 구성을 명확하게 하는 독특한 면도 여실히 드러나 있다. 또 함께 커플링 된 ‘에그몬트 서곡’에서도 서서히 부풀어 올라 환희를 과시하는 푸르트벵글러만의 뜨거운 열기를 감지할 수 있다. 그러나 예전에 ‘도큐멘트’ 시리즈로 나온 베토벤 교향곡 7번(1953년)은 오히려 열기와 긴장감이 전시 녹음(DG, 1947년)보다 뒤처지는 편이다.

음악적 긴장감과 실황의 불같은 열기

푸르트벵글러가 베토벤 다음으로 가장 많이 연주했다는 브람스 교향곡도 두 타이틀이 선보였다. 베를린 필하모닉과 연주한 1952년 녹음인 1번과 1954년 녹음인 3번이 그것인데, 두 음반 모두 EMI에서 선보인 1952년 녹음, 1949년 녹음과 좋은 비교가 된다. 우선 1번은 빈 필하모닉과 함께 한 EMI반보다 녹음 상태가 더 좋지 않은 데 반해 실황의 격렬함과 음악적 긴장감이 생생하다는 측면에서는 DG반이 월등히 좋다. 반면 3번은 여러모로 활기차고 웅장한 EMI 쪽이 훨씬 뛰어나다고 볼 수 있다. 푸르트벵글러가 베토벤과 브람스와 함께 애착을 가지고 자주 연주했다는 브루크너 교향곡 녹음은 음질이 좋지 않다는 게 흠이다. 빈 필하모닉과 연주한 4번(1951년 )이 특히 좋지 않다. 베를린 필하모닉과 녹음한 7번(1951년)은 관악기를 중심으로 7번 교향곡의 특징인 중후한 울림을 강력하게 묘사하고 있다. 두 음반 모두 푸르트벵글러의 개성인 웅장한 스케일과 다이내믹함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현대의 연주와는 다소 차이가 있어 브루크너 초심자보다는 마니아에게 더 잘 어울리는 연주다. ‘뉘른베르크의 명가수’ ‘트리스탄과 이졸데’ ‘파르지팔’ 등 바그너 관현악곡을 수록한 음반에도 푸르트벵글러의 살아 움직이는 음악이 담겨 있다. 슈만 교향곡 4번(1953년)과 ‘만프레드 서곡’(1949년)이 담긴 음반 또한 놓치기 아깝다. 독일적인 중후한 흐름을 바탕으로 유연한 감흥과 스케일감이 낭만성과 어우러져 표현되어 있는 명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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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칼라스 컬렉션
카리스마 넘치는 칼라스 서거 25주년 기념 미발매 음원
마리아 칼라스 서거 25주년(2002년)을 기념해 EMI가 그동안 발매되지 않았던 음반들을 대거 선보였다. 오페라 전곡집 네 타이틀과 오페라 리사이틀 다섯 타이틀. 모두 1950년대 중·후반 칼라스의 최전성기 시절 라이브 실황이다.
우선 리사이틀 앨범 다섯 종은 모두 최초 발매인 만큼 자료 가치가 높다. 하지만 역으로 음질 상태가 나빠서 그동안 음원이 버려져 있지 않았는가 하는 의심도 든다. 그만큼 대부분의 음질 상태가 극도로 좋지 못하다. 때문에 칼라스를 평소에 잘 모르거나 자주 듣지 않았던 사람보다는 칼라스를 아주 익숙히 알고 있는 마니아에게 더 어울리는 음반이다.
이 중 가장 추천할 만한 것은 ‘1956년 밀라노, 1957년 아테네 실황’이다. 다른 타이틀에 비해 상대적으로 음질도 괜찮은 편이고, 칼라스의 위엄도 비교적 잘 표현되어 있다. 첫 트랙 스폰티니의 ‘베스타의 무녀’ 아리아가 특히 인상적인데, 칼라스 특유의 감정 처리와 음색이 어우러지며 대단한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이어지는 벨리니의 ‘해적’, 로시니의 ‘세미라미데’, 베르디의 ‘일 트로바토레’의 아리아에도 마찬가지로 아름다우면서 다채로운 칼라스만의 개성이 고풍스레 잘 표현되어 있다. 하지만 두 번째 트랙 벨리니의 ‘해적’ 중 ‘아르투로의 여인이여, 교회로 돌아오라’에서부터 약간씩 음질이 손상되어 아쉬움을 주는데, 코러스 부분의 음질과 뒷부분의 칼라스의 음정이 자주 끊겨 감상에 방해요소가 된다.
‘1958년 파리 실황’도 들을 만하다. 여기에 담긴 음원은 이미 비디오나 DVD로 선보였기 때문에 비교적 애호가 사이에 널리 알려진 것이다. 음질도 ‘밀라노, 아테네 실황’보다 괜찮은 편이다. 칼라스의 장기였던 벨리니의 ‘노르마’ 중 ‘정결한 여신’과 푸치니의 ‘토스카’ 아리아가 담겨 있어 더욱 각별하다. 특히 뒷부분의 열한 곡을 모두 ‘토스카’로 채우고 있는데, 칼라스의 박진감 넘치는 진면목이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 등에 다채롭게 묘사되어 있다.
나머지 세 음반은 끝까지 듣는 데 상당한 인내심이 필요할 정도로 음질이 좋지 못하다. ‘1958년, 59년 런던 실황’은 테이프 늘어지는 소리와 갖은 잡음으로 인해 칼라스의 파괴력이 다소 둔화되는 느낌이 든다. ‘1957년 달라스 리허설’ 음반도 칼라스와 지휘자 니콜로 레시뇨가 얘기하는 장면이 포착되어 있어 자료 가치가 높다고 할 수 있겠으나 감상용으로 추천하기가 곤란할 정도로 음질이 좋지 않다.

테발디파의 집중 공격을 받은 ‘안드레아 셰니에’
리사이틀 음반보다 오페라 전곡 녹음 네 타이틀이 오히려 칼라스라는 한 인간을 더욱 생생하게 포착하고 있는 듯하다. 1953년 번스타인과 함께 한 공연 실황 케루비니의 ‘메데아’는 비교적 초창기 시절, 즉 살을 빼기 직전의 뚱뚱했던 칼라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녹음이다. 박진감 넘치는 번스타인의 반주가 우선 귀를 사로잡고, 이에 걸맞게 칼라스의 음성도 상당히 풍부하게 들린다. ‘당신은 당신 아이들의 어머니를 보고 있소‘ 등에서 칼라스의 매력적인 어두운 음색이 잘 나타나지만, 상대 배역으로 나오는 테너들이 이를 받쳐주지 못해 겉도는 느낌이 든다.
1955년 실황인 벨리니의 ‘몽유병의 여인’도 마찬가지로 번스타인과 함께 한 녹음이다. 한 가지 뜻깊은 것은 이 공연을 통해 칼라스가 라 스칼라에서 처음으로 아미나로 분했다는 점이다. 당시 관객에게 많은 갈채를 받았다고 전해지는데, 그 생생함이 음반을 통해 그대로 재현되는 느낌이다. 무엇보다 칼라스의 기교와 연기력이 최상으로 치솟았음을 여러 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몽유병 장면에서 드러나는 감정 처리도 뛰어나고, 흔들리지 않고 맘껏 내지르는 칼라스의 음정도 나무랄 데 없이 좋다.
안토니오 보토가 반주를 맡은 조르다노의 ‘안드레아 셰니에’는 당시 라이벌이었던 테발디의 팬에게 집중 공격을 받았던 사연 깊은 녹음이다. 1955년 당시 ‘안드레아 셰니에’는 테발디의 고유 레퍼토리였다. 그러던 것이 공연을 5일 앞두고 갑작스레 칼라스가 이 곡을 공연한다고 하자 테발디파 사람들이 “칼라스가 테발디의 레퍼토리를 훔쳐갔다”고 비난한 것이다. 사실은 칼라스가 레퍼토리를 바꾼 게 아니라 델 모나코가 바꾼 것이었지만, 아무튼 이로 인해 반대파들은 다시 한번 칼라스의 위대함만 확인하는 꼴이 되었다. 한 번도 공연해보지 않았던 이 곡을 칼라스가 단 5일 만에 마스터해 거의 완벽하게 소화해냈기 때문이다. 이 음반에서 칼라스의 음성은 상당히 드라마틱하게 들리며, 성량 또한 폭발적이다. 상대역으로 출연한 델 모나코의 음성도 힘차며, 보토의 반주도 좋은 편이다.
1957년 라이브 공연을 담고 있는 베르디의 ‘가면 무도회’는 우선 화려한 출연진이 주목거리다. 주세페 디 스테파노(리카르도), 에토레 바스티아니니(레나토), 줄리에타 시묘나토(울리카) 등 당대를 대표하는 성악가들이 펼치는 협연은 상당히 완성도가 높다. 여기에 가바체니의 반주도 이채로운데, 그는 빠르고 거칠게 몰아치며 시원스레 악단을 움직이고 있다. 그래서인지 전반적으로 보토와 함께 한 1956년 스튜디오 반보다 드라마틱하고 야성적으로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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