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칼라스 컬렉션
카리스마 넘치는 칼라스 서거 25주년 기념 미발매 음원
마리아 칼라스 서거 25주년(2002년)을 기념해 EMI가 그동안 발매되지 않았던 음반들을 대거 선보였다. 오페라 전곡집 네 타이틀과 오페라 리사이틀 다섯 타이틀. 모두 1950년대 중·후반 칼라스의 최전성기 시절 라이브 실황이다.
우선 리사이틀 앨범 다섯 종은 모두 최초 발매인 만큼 자료 가치가 높다. 하지만 역으로 음질 상태가 나빠서 그동안 음원이 버려져 있지 않았는가 하는 의심도 든다. 그만큼 대부분의 음질 상태가 극도로 좋지 못하다. 때문에 칼라스를 평소에 잘 모르거나 자주 듣지 않았던 사람보다는 칼라스를 아주 익숙히 알고 있는 마니아에게 더 어울리는 음반이다.
이 중 가장 추천할 만한 것은 ‘1956년 밀라노, 1957년 아테네 실황’이다. 다른 타이틀에 비해 상대적으로 음질도 괜찮은 편이고, 칼라스의 위엄도 비교적 잘 표현되어 있다. 첫 트랙 스폰티니의 ‘베스타의 무녀’ 아리아가 특히 인상적인데, 칼라스 특유의 감정 처리와 음색이 어우러지며 대단한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이어지는 벨리니의 ‘해적’, 로시니의 ‘세미라미데’, 베르디의 ‘일 트로바토레’의 아리아에도 마찬가지로 아름다우면서 다채로운 칼라스만의 개성이 고풍스레 잘 표현되어 있다. 하지만 두 번째 트랙 벨리니의 ‘해적’ 중 ‘아르투로의 여인이여, 교회로 돌아오라’에서부터 약간씩 음질이 손상되어 아쉬움을 주는데, 코러스 부분의 음질과 뒷부분의 칼라스의 음정이 자주 끊겨 감상에 방해요소가 된다.
‘1958년 파리 실황’도 들을 만하다. 여기에 담긴 음원은 이미 비디오나 DVD로 선보였기 때문에 비교적 애호가 사이에 널리 알려진 것이다. 음질도 ‘밀라노, 아테네 실황’보다 괜찮은 편이다. 칼라스의 장기였던 벨리니의 ‘노르마’ 중 ‘정결한 여신’과 푸치니의 ‘토스카’ 아리아가 담겨 있어 더욱 각별하다. 특히 뒷부분의 열한 곡을 모두 ‘토스카’로 채우고 있는데, 칼라스의 박진감 넘치는 진면목이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 등에 다채롭게 묘사되어 있다.
나머지 세 음반은 끝까지 듣는 데 상당한 인내심이 필요할 정도로 음질이 좋지 못하다. ‘1958년, 59년 런던 실황’은 테이프 늘어지는 소리와 갖은 잡음으로 인해 칼라스의 파괴력이 다소 둔화되는 느낌이 든다. ‘1957년 달라스 리허설’ 음반도 칼라스와 지휘자 니콜로 레시뇨가 얘기하는 장면이 포착되어 있어 자료 가치가 높다고 할 수 있겠으나 감상용으로 추천하기가 곤란할 정도로 음질이 좋지 않다.

테발디파의 집중 공격을 받은 ‘안드레아 셰니에’
리사이틀 음반보다 오페라 전곡 녹음 네 타이틀이 오히려 칼라스라는 한 인간을 더욱 생생하게 포착하고 있는 듯하다. 1953년 번스타인과 함께 한 공연 실황 케루비니의 ‘메데아’는 비교적 초창기 시절, 즉 살을 빼기 직전의 뚱뚱했던 칼라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녹음이다. 박진감 넘치는 번스타인의 반주가 우선 귀를 사로잡고, 이에 걸맞게 칼라스의 음성도 상당히 풍부하게 들린다. ‘당신은 당신 아이들의 어머니를 보고 있소‘ 등에서 칼라스의 매력적인 어두운 음색이 잘 나타나지만, 상대 배역으로 나오는 테너들이 이를 받쳐주지 못해 겉도는 느낌이 든다.
1955년 실황인 벨리니의 ‘몽유병의 여인’도 마찬가지로 번스타인과 함께 한 녹음이다. 한 가지 뜻깊은 것은 이 공연을 통해 칼라스가 라 스칼라에서 처음으로 아미나로 분했다는 점이다. 당시 관객에게 많은 갈채를 받았다고 전해지는데, 그 생생함이 음반을 통해 그대로 재현되는 느낌이다. 무엇보다 칼라스의 기교와 연기력이 최상으로 치솟았음을 여러 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몽유병 장면에서 드러나는 감정 처리도 뛰어나고, 흔들리지 않고 맘껏 내지르는 칼라스의 음정도 나무랄 데 없이 좋다.
안토니오 보토가 반주를 맡은 조르다노의 ‘안드레아 셰니에’는 당시 라이벌이었던 테발디의 팬에게 집중 공격을 받았던 사연 깊은 녹음이다. 1955년 당시 ‘안드레아 셰니에’는 테발디의 고유 레퍼토리였다. 그러던 것이 공연을 5일 앞두고 갑작스레 칼라스가 이 곡을 공연한다고 하자 테발디파 사람들이 “칼라스가 테발디의 레퍼토리를 훔쳐갔다”고 비난한 것이다. 사실은 칼라스가 레퍼토리를 바꾼 게 아니라 델 모나코가 바꾼 것이었지만, 아무튼 이로 인해 반대파들은 다시 한번 칼라스의 위대함만 확인하는 꼴이 되었다. 한 번도 공연해보지 않았던 이 곡을 칼라스가 단 5일 만에 마스터해 거의 완벽하게 소화해냈기 때문이다. 이 음반에서 칼라스의 음성은 상당히 드라마틱하게 들리며, 성량 또한 폭발적이다. 상대역으로 출연한 델 모나코의 음성도 힘차며, 보토의 반주도 좋은 편이다.
1957년 라이브 공연을 담고 있는 베르디의 ‘가면 무도회’는 우선 화려한 출연진이 주목거리다. 주세페 디 스테파노(리카르도), 에토레 바스티아니니(레나토), 줄리에타 시묘나토(울리카) 등 당대를 대표하는 성악가들이 펼치는 협연은 상당히 완성도가 높다. 여기에 가바체니의 반주도 이채로운데, 그는 빠르고 거칠게 몰아치며 시원스레 악단을 움직이고 있다. 그래서인지 전반적으로 보토와 함께 한 1956년 스튜디오 반보다 드라마틱하고 야성적으로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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