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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유니버설의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디 오리지널스’ 시리즈. 이 시리즈는 푸르트벵글러의 위대한 연주만을 엄선해 OIBP(Original-Image Bit-Processing) 시스템으로 자체 리마스터링을 거쳐 LP 형식으로 발매한 것이다. 이미 애호가들 사이에 소문이 자자해 한때 일본 직거래로 많이 구입하곤 했던 음반이다. 그러니 푸르트벵글러를 좋아하는 사람이나 클래식 음악 팬이라면 누구나 군침을 삼킬 만하다. 그러나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것이 흠. 2만 원대를 훨씬 뛰어넘는 가격은 상당히 부담스러운 게 분명하며, 이 타이틀을 접해보지 못한 사람은 연주의 질과 녹음 상태를 의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적당한 가격이라면 연주와 녹음 상태를 따지지 않고 푸르트벵글러라는 이름과 유니버설의 ‘노란 딱지’만을 믿고 구입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의심할 여지 없이 음반 내용은 상당히 알차다. 모두 푸르트벵글러가 장기로 삼았던 베토벤, 브람스, 슈만, 슈베르트, 바그너 등 독일 정통 관현악 작품이 수록됐다. 이 중 푸르트벵글러가 스위스로 망명한 뒤 1947년 베를린 필하모닉에 복귀하며 가졌던 베토벤 교향곡 5번 연주가 가장 각별하다(이 연주회는 1947년 5월 26일에서 28일까지 사흘에 걸쳐 열렸는데, 뮤직 앤 아트와 타라 레이블 등에서 이 연주회 실황이 음반으로 선보였다). 이 음반에는 푸르트벵글러의 해석 경향이 오롯이 담겨 있다. 특유의 웅장함과 다이내믹함이 생생하게 살아 있으며, 느림과 빠름, 그리고 그 중간 템포를 오가며 곡의 구성을 명확하게 하는 독특한 면도 여실히 드러나 있다. 또 함께 커플링 된 ‘에그몬트 서곡’에서도 서서히 부풀어 올라 환희를 과시하는 푸르트벵글러만의 뜨거운 열기를 감지할 수 있다. 그러나 예전에 ‘도큐멘트’ 시리즈로 나온 베토벤 교향곡 7번(1953년)은 오히려 열기와 긴장감이 전시 녹음(DG, 1947년)보다 뒤처지는 편이다.
음악적 긴장감과 실황의 불같은 열기
푸르트벵글러가 베토벤 다음으로 가장 많이 연주했다는 브람스 교향곡도 두 타이틀이 선보였다. 베를린 필하모닉과 연주한 1952년 녹음인 1번과 1954년 녹음인 3번이 그것인데, 두 음반 모두 EMI에서 선보인 1952년 녹음, 1949년 녹음과 좋은 비교가 된다. 우선 1번은 빈 필하모닉과 함께 한 EMI반보다 녹음 상태가 더 좋지 않은 데 반해 실황의 격렬함과 음악적 긴장감이 생생하다는 측면에서는 DG반이 월등히 좋다. 반면 3번은 여러모로 활기차고 웅장한 EMI 쪽이 훨씬 뛰어나다고 볼 수 있다. 푸르트벵글러가 베토벤과 브람스와 함께 애착을 가지고 자주 연주했다는 브루크너 교향곡 녹음은 음질이 좋지 않다는 게 흠이다. 빈 필하모닉과 연주한 4번(1951년 )이 특히 좋지 않다. 베를린 필하모닉과 녹음한 7번(1951년)은 관악기를 중심으로 7번 교향곡의 특징인 중후한 울림을 강력하게 묘사하고 있다. 두 음반 모두 푸르트벵글러의 개성인 웅장한 스케일과 다이내믹함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현대의 연주와는 다소 차이가 있어 브루크너 초심자보다는 마니아에게 더 잘 어울리는 연주다. ‘뉘른베르크의 명가수’ ‘트리스탄과 이졸데’ ‘파르지팔’ 등 바그너 관현악곡을 수록한 음반에도 푸르트벵글러의 살아 움직이는 음악이 담겨 있다. 슈만 교향곡 4번(1953년)과 ‘만프레드 서곡’(1949년)이 담긴 음반 또한 놓치기 아깝다. 독일적인 중후한 흐름을 바탕으로 유연한 감흥과 스케일감이 낭만성과 어우러져 표현되어 있는 명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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