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3년 7월 15일 96세의 일기로 세상을 마감한 콤파이 세군도의 추모 음반이다. 음반 타이틀 ‘고마워요 콤파이’(Gracias Compay)라는 말처럼 그가 쿠바 음악계에 남겨놓은 유산은 막대하다. 장장 80년이 넘는 세월 동안 100곡이 넘는 작품을 남겼고, 조금 과장되게 말하면 이것은 지금의 쿠바 음악이 전 세계의 음악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이었다.

두 장의 CD에 모두 서른 다섯 곡이 담겨 있는 음반에는 콤파이 세군도의 인생을 축약해놓은 느낌이 든다. 첫 CD에는 세군도의 초기 음원이 담겨 있고, 두 번째 CD에는 1990년대 이후에 선보인 음반에서 뽑아놓았다. ‘찬 찬’을 비롯해 ‘듀엣’, ‘인생의 꽃들’, ‘기쁨’ 등 그의 주옥같은 노래를 모두 들을 수 있는 훌륭한 음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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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rahim Ferrer - Buenos Hermanos
Ibrahim Ferrer 노래 / 워너뮤직(WEA) / 2003년 9월
평점 :
품절


역시 세월의 무게는 아무나 피할 수 없나 보다. 2000년 말, 국내에 월드 뮤직 열풍을 일으킨 장본인 이브라임 페레르가 2003년 10월 초로 예정되어 있던 내한공연을 결국 갖지 못했다. 원인은 노환. 1927년 생인 페레르는 공연 오기 전에 안타깝게도 출혈성 결막염에 걸렸고, 장시간 비행기를 타면 기압 차이로 병이 악화될 우려가 있어 공연을 포기했다고 한다. 그러더니 결국 지난 해에 사망했다. 곧 또 한 명의 월드 뮤직 연주가를 잃은 셈이다.

이 아쉬움을 그의 두 번째 독집 음반으로 달랠 밖에 없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페레르는 지난 1997년 혜성처럼 등장한(우리 시각으로 보면 그렇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쿠바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단원 중 한 명이다. 이 음반을 선보이고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불러일으킨 뒤 그는 지난 1999년 첫 독집 음반을 발매했다. 그 때 나이가 72세. 이 데뷔 음반은 다음 해 시상된 그레미상 월드뮤직 부문 올해의 음반으로 노미네이트되며 다시 한 번 그의 진가를 널리 알리게 됐다.

두 번째 음반 타이틀은 ‘좋은 사람들’(Buenos Hermanos). 첫 음반을 선보이고 4년이 지난 2003년  76세의 나이에 발표한 음반. 여전히 첫 음반과 마찬가지로 열정으로 가득하다. 무엇보다 오랫동안 살아온 사람에게서 느낄 수 있는, 평탄한 삶이 아닌 굴곡진 인생을 살아온 사람만이 표현할 수 있는 감정의 깊이가 수록곡 곳곳에 배어 있다는 점이 가장 훌륭하다. 행복함과 슬픔, 기쁨과 괴로움 등 우리가 살아오면서 반드시 거치게 되는 갖은 감정들이 여러 노래를 통해 표현되고 있고, 이 노래를 듣는 사람들은 금세 감정의 깊이에 빠져 페레르의 숨결에 따라 흐느끼고, 웃고, 떠들며 놀게 된다. 이것이 바로 페레르가 추구하는 음악의 힘이고, 쿠바의 여러 뮤지션들이 간직하고 있는 음악 철학이다.

쿠바 음악 특유의 왁자지껄함이 다소 누그러졌지만, 페레르는 쿠바의 정열을 여전히 그만의 부드러움으로 거뜬히 표현하고 있다. 첫 곡 ‘보끼네네’, 두 번째 곡 ‘좋은 사람들’, 이어지는 ‘쿠바의 음악’ 등은 여전히 흥겹고 감칠맛 난다. 그렇지만 1집과는 조금은 다른 느낌이 들기도 한다. 1집 음반이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시절과 별다른 차이가 없는 밴드 음악으로 들렸다면 2집 음반은 완전한 페레르의 독집 음반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그의 개인성이 강조되어 있다. 여기에는 악단에 의해서라기보다는 페레르라는 가수에 의해 모든 것이 움직이고 있다. 곧 1집보다 자신만의 목소리가 더 강화됐고, 울림이 더욱 크게 부각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과관코의 거리 안내자’나 ‘그를 숲 속으로 데리고 들어와야 해요’ 등이 더욱 흥겹고 쾌활하게 들리며, ‘난파’와 ‘정원들의 향기’가 페레르의 연륜이 담겨 더욱 아름다운 곡으로 들리는 것이다.

페레르의 음악뿐만 아니라 여러 쿠바 음악을 들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그 음악 속에는 늘 사람들이 소리치고, 울고, 웃고 있는 느낌이 든다. 곧 그들의 음악에는 사람들의 감정이 생생하게 살아 숨쉬고 있다. 마치 ‘좋은 사람들’이 모여서 음악을 연주하고, 그 음악을 듣는 사람들 역시 ‘좋은 사람’이 되어 자신의 감정을 달래고 있는 것이다. 아무튼 이 음반 또한 쿠바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큰 선물이 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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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화와 외래문화의 만남 그리고 소통


1998년부터 시작된 ‘실크로드 프로젝트’가 드디어 첫 결실을 맺었다. 이 프로젝트는 첼리스트 요요 마와 음악학자 테어도어 레빈이 주축이 돼서 실크로드로 상징되는 다양한 문명간의 만남과 소통을 음악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이들은 1999년 실크로드와 관계된 9개 국가 20여 명의 작곡가에게 곡을 위탁했고, 그 결과 한국의 강준일과 김지영을 포함해 아르메니아, 중국, 아제르바이잔, 일본, 이란, 몽골, 타지키스탄, 터키, 우즈베키스탄의 작곡가들의 곡을 위촉받을 수 있었다. 이 곡들은 공히 자국의 전통음악과 유럽음악의 요소가 혼합되어 있으며, 이를 통해 실크로드가 그랬던 것처럼 민족문화와 외래문화의 만남과 소통이 반영되어 있다. 또 음악에만 머무르지 않고 이 프로젝트는 공연과 학술행사, 교육 프로그램, 멀티미디어 출판 계획을 아우르며 대규모의 소통의 장으로 진행시킬 예정이다.

이 음반은 그동안 풍문으로만 전해졌던 ‘실크로드 프로젝트’가 처음으로 실체화되어 나타난 것이다. ‘실크로드 여행-낯선 사람들이 만날 때’라는 타이틀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이 음반은 서로 다른 문화를 섞는 것이 아니라 만남을 강조하고 있다. 동서양의 만남이라는 주제를 어설프게 추진하다 보면 자칫 무게중심이 한쪽으로 쏠릴 우려가 있지만, 이 음반은 한 문화의 주체를 인정하며 그것을 더욱 보편적인 것으로 승화시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곧 문화간의 만남이 한쪽으로 동화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주체의 만남임을 새삼 일깨워주고 있으며, 그 만남을 통해 문화가 서로 교류되며 변화한다는 진리를 다시 확인시켜 주고 있는 것이다. 요요 마는 이 작업을 “세계 여러 지역에 존재하는 다양한 문화에 대한 관심과 동경, 서로간의 소통, 근원에 대한 탐구 등에 대해 생각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낯선 사람들이 모여 문화를 일구다

첫곡은 몽골의 간바아타르 콩고르줄이 부르는 몽골의 전통 민요이다. 내지에 ‘긴 노래’라고 적혀 있는 이 민요는 우리의 민요처럼 한 소절이나 단어가 오랫동안 꺾인 음으로 진행된다. 이 때문에 ‘긴 노래’라는 제목을 붙이게 됐다고 테어도어 레빈은 내지에 적고 있다. 하지만 이는 무지의 소산이다. 원 제목이 반드시 있을 테지만, 이 서구인은 이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단지 한 음이 길게 늘여진다는 이유만으로 ‘긴 노래’라고 명명한 것이다. 이 음반의 유일한 옥에 티인 이 첫 트랙을 지나면 음악은 그들만의 가치를 지니며 생명력을 확보한다. 몽골 작곡가 뱜바수렌 샤라브의 ‘헐렌의 전설’은 퍼커션과 요요 마가 직접 연주한 몽골의 전통악기 모린 쿠르의 고요한 음으로 시작해 콩고르줄의 날카로운 음성과 트롬본의 금속음이 더해진 곡이다. 서정성과 웅장함, 피날레의 강렬함, 그리고 잦아드는 고요함이 깃들여 있는 이 매력적인 곡은 몽골의 현대화된 풍경을 연상시킨다. 이는 서양의 악기와 문법이 가미되어 이뤄진 결과이다. 몽골의 전형성과 보편성이 살아 있으면서도 다른 문명이 섞여 있는 양상을 띄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젊은 작곡가 우통이 중국 민요를 편곡한 ‘푸른빛의 작은 꽃’과 ‘미도산’ 또한 서양의 악기와 비파, 생황, 얼후 등의 전통악기가 어우러져 있다. 그렇지만 아무리 살펴봐도 이 음악은 중국산 음악이다. ‘헐렌의 전설’과 마찬가지로 서양의 악기와 문법은 중국 전통을 해치지 않고, 이를 받쳐주며 분위기를 살짝 바꿀 뿐이다. 반면 일본 작곡가 미치오 마미야의 ‘다섯 개의 핀란드 민요’와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 민요인 ‘Chi passa per’sta strada’는 서양음악을 동양악기로 연주한 것이다. 이 또한 문명의 충돌을 표현한 게 아니라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조화로운 목소리가 표현되어 있다. 한편 한국 작곡가 강준일과 김지영의 곡은 이번 음반에 포함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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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로비츠 오리지널 재킷 컬렉션


격변기와 위대한 순간이 담긴 역사적 명연을 재조명


소니에서 선보이고 있는 ‘오리지널 재킷 컬렉션’은 옛 콜롬비아와 CBS의 LP 음원을 CD로 재발매한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음반이 낱장으로 이미 출시된 것이긴 하지만, 박스물로 포장된 이 시리즈는 한 연주가의 연주생애를 재조명할 수 있다는 점에서 특별하게 다가온다. 그동안 ‘글렌 굴드가 연주하는 바흐’(12CD)와 ‘스트라빈스키가 연주하는 스트라빈스키’(9CD)가 나왔고, 앞으로도 20세기에 주목할 만한 활동을 했던 연주가를 택해 한정 발매할 예정이다. 이 시리즈에는 공히 옛 LP와 똑같은 모양을 한 CD 재킷과 당시의 내지를 그대로 수록한 소책자가 담겨 있다.

10장의 오리지널 재킷 CD로 구성된 '호로비츠의 독집 앨범 모음집'은 호로비츠의 격변기와 위대한 순간을 빠짐없이 포착하고 있다. 호로비츠는 1922년 데뷔한 이래 굴곡 없는 연주생활을 이어가며 당대 최고의 피아니스트로 군림했다. 그렇지만 그는 절정의 순간에서 매번 은퇴를 선언해 팬들을 애타게 한 괴짜 연주가이기도 했다.

첫번째 은퇴는 토스카니니의 딸 완다와 결혼한 후 더욱 정력적인 활동을 펼칠 무렵인 1936년에 행해졌다. 그는 3년 동안의 휴식을 가진 뒤 1939년 파리에서 복귀 연주회를 열며 청중들 앞에 다시 서게 된다. 그리고 1940년대 후반에서 1950년대 초반, 그는 대중의 폭넓은 사랑을 받으며 생애 최대 전성기를 맞는다. 이미 거장적 품격을 지녔다고 평가받은 그는 1953년 미국 데뷔 25주년 축하공연을 카네기홀에서 가졌고, 당연히 이 공연은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그리고 또 은퇴 선언. 두 번째 은퇴는 첫번째와 달리 상당히 길었다. 자그마치 12년 동안 그는 무대를 찾지 않았다. 긴 칩거 생활을 끝낸 그는 1965년 카네기홀에서 재기 콘서트를 열고 화려하게 복귀한다. 그러나 그는 1968년부터 1974년까지 휴식을 위해 세 번째 은퇴를 선언한다.

음반은 호로비츠가 두 번째 은퇴 선언을 끝내고 복귀하는 순간에서 세 번째 은퇴 기간까지를 담고 있다. 호로비츠는 은퇴 기간에 연주회를 개최하지는 않았지만, 드문드문 음반녹음을 하기도 했다. 실제로 그는 두 번째 은퇴를 선언하고, 복귀하기까지 몇 장의 스튜디오 녹음을 남겨 놓았다. 이 녹음이 이번에 소개된 시리즈에 포함되어 있는데, 1962년에 녹음한 쇼팽, 슈만, 라흐마니노프, 리스트의 곡이 수록되어 있는 음반과 슈만의 ‘어린이 정경’과 스카를라티, 슈베르트, 스크랴빈의 곡이 커플링된 음반, 그리고 1963년 녹음한 베토벤의 ‘열정’과 드뷔시의 ‘3개의 전주곡’이 그것이다. 은퇴와 재기를 반복했지만, 그는 쉬는 동안 치열한 연습을 거듭했음을 알 수 있다. 10여 년의 칩거기간 동안 그의 연주 스타일은 조금씩 변해갔다. 외면적인 화려함보다는 사색의 깊이가 한층 더 강조됐고, 날카로움이 느껴지기는 하지만 더욱더 투명하고 고아한 아름다움으로 음반을 채색하고 있다.

 

1950년부터 죽기 2년 전인 1987년까지 무려 다섯 번이나 녹음할 정도로 애착을 가지고 있었던 ‘어린이 정경’은 풍부한 상상력이 가미된 탄탄한 구성력이 돋보이는 명연이다. 다섯 차례 녹음 중 가장 뛰어난 완성도를 지닌 이 시기의 연주는 첫곡 ‘미지의 나라들’에서부터 듣는 이를 사로잡는다. 사뿐하게 내딛는 절묘한 타건과 천진난만함은 전편에 걸쳐 탁월한 아름다움을 창출해낸다. ‘트로이메라이’는 특히 뛰어나다. 색채미가 깃들여 있는 투명함은 환상미가 가득하고, ‘난로가에서’ ‘시인의 이야기’ 등에 이르러서도 시적 정감이 사라지지 않는다. 음반은 1965년 5월 9일 ‘카네기홀의 역사적 귀환 연주회’ 음반에서 절정을 맞는다(그는 후에 역사적 연주회를 몇 번 더 개최했는데, 1978년 ‘미국 데뷔 50주년’ 연주회와 1986년 모스크바와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61년 만의 귀향 연주회’를 열었다). 12년 동안의 긴 침묵을 깨고 청중들 앞에 선 호로비츠는 마치 노래를 부르는 듯이 부드러운 다이내미즘을 선보이며 관객들을 환상의 세계로 인도한다. 이 음반은 바흐/부조니의 ‘토카타’에서 시작해 슈만의 ‘환상곡’, 스크랴빈의 소나타에 이어 쇼팽의 ‘발라드’로 끝을 맺고 있다. 그리고 앙코르로 드뷔시의 ‘인형의 세레나데’, 스크랴빈의 ‘연습곡’ Op.2-1, 모스코프스키의 ‘연습곡’ Op.71-11, 슈만의 ‘트로이메라이’를 들려준다. 은퇴 전의 찬란한 기교와 박력은 다소 누그러졌지만, 풍요로운 서정성, 부드러움, 투명함은 그의 새로운 미래를 예고하는 것이었다. 낭만적인 동경과 작품의 본질을 꿰뚫는 혜안으로 인산인해를 이룬 청중들의 열화와 같은 환호를 받고 있다.

또 하나의 명반으로 기록되어 있는 1969년 녹음 슈만의 ‘크라이슬레리아나’도 이번 컬렉션에 포함되었다. 이 음반은 그의 만년 녹음(DG)보다 훨씬 뛰어난 직관과 기교가 돋보이는 것으로 시시각각 변하는 색채미를 통해 작품 속에 깃들여 있는 정신과 육체의 상반된 요소를 면밀하게 포착해내고 있다. 그리고 그의 연주가 가장 빛을 발했던 라흐마니노프와 쇼팽, 스크랴빈의 곡. 장대한 구조를 러시아적 서정미와 색채미로 해석해낸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소나타 2번과 쇼팽의 ‘폴로네즈’ ‘마주르카’ ‘연습곡’ ‘왈츠’를 뒤섞어 연주한 음반도 좋긴 하지만, 그의 개성이 가장 빛을 발하는 것은 역시 스크랴빈의 음반에서이다.

스크랴빈의 ‘연습곡’과 ‘3개의 소품’ 중 ‘앨범 철’, 피아노 소나타 10번, 시곡 ‘불꽃을 향하여’가 담겨 있는 이 음반은 스크랴빈이라는 러시아 작곡가를 세상에 각인시킨 명연주이다. 호로비츠는 1950년대부터 스크랴빈의 작품을 자신의 레퍼토리에 집어넣어 자신만의 연주 스타일을 정립시켰다. 그때까지만 해도 스크랴빈은 거의 잊혀진 작곡가였다. 이 음반과 더불어 소나타가 담겨 있는 음반(RCA)은 후세에 헤아릴 수 없는 영향을 주었고, 아직까지도 이를 뛰어넘는 음반을 쉽게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 음반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는 ‘불꽃을 향하여’는 특히 인상적이다. 5분 여 동안 지속되는 크레셴도의 강한 추진력은 다른 연주가들이 쉽게 넘볼 수 없는 경지에 있는 것으로 호로비츠만의 연주라고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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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물만두 > 암살 주식회사에 등장하는 작품들...

 '고대사회의 기본적인 특징을 고찰하고 있는 이책은 저자가 1884년에 쓴 것이다. 저자는 생산에 따른 경제적 진보가 결혼과 가족의 형태에 어떤 영향을 끼쳤으며, 어떻게 그것들을 변화시켰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그에 의하면 가족은 인류의 발전단계에 따라 진화하였으며, 사유재산과 국가는 경제발전의 일정 단계에서 나타났고, 특정 계급이 장악하고 있는 국가는 항상 특정계급의 이익을 옹호하기 위한 '억압장치'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 책은 '영국 선사학과'(English Anthropologists) 등 기존의 사회이론에 일대 타격을 주면서 당시의 고대사회에 관한 이론적 공백을 메꾸어 주었고, 오늘날까지도 불후의 대작으로 남아있다.

 니체 사거 100주년을 맞아 책세상 출판사에서 내고 있는 니체전집 중 한권이다. 책세상의 니체전집은, 니체 연구사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했다는 독일 발터 데 그루이터 출판사의 《니체 비평 전집Nietzsche Werke, Kritische Gesamtausgabe》(KGW)중에서 서신과 주해서를 뺀 나머지를 번역하는 것으로 총 21권 예정이다.
이 전집은 니체전집의 정본을 번역한다는 자부심과 사명감, 그리고 니체 사거 100주년에 대한 기념이라는 의미와 함께, 기존의 국내의 니체전집이 가진 결함을 극복한다는 의도도 함께 내포하고 있다. 즉 그 동안 충실한 해제도 없이 니체 전공자가 아닌 역자들에 의한 임의적인 번역에 그치거나, 대부분 일본을 통해 들어온 개념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마구 주석을 붙임으로써 니체 해석을 왜곡시켜온 점 등을 극복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1998년 겨울, 4인의 철학교수로 니체편집위원회를 구성하여 근 3년간 니체의 철학적 개념과 번역상의 오류를 잡고 통일안을 마련하는 등의 작업을 통해 한국어판 니체전집을 준비해왔다. 그 동안 국내 학계에서 문제되어온 번역상의 용어나 개념들을 재규정함으로써 니체 번역의 표준적 기준을 제시하고, 그의 비유와 상징들이 나타내는 바를 역자의 개입 없이 그대로 독자들에게 전달함으로써 니체를 온전히 접하게 할 것이다. 또 니체 사상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이나 대상 텍스트의 탄생 배경, 각각의 저작들 간의 관계 등에 대한 자세한 해설을 덧붙여 독자들이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게다가 유고의 발굴로 니체 연구에 새로운 지평이 열렸음에도 불구하고 고답적이고 구태의연한 해석에 머무르고 있는 책들과 달리, 이 전집에는 니체의 유고가 포함되어 있다. 독자들은 이 전집을 통해 니체의 육성을 생생하게 듣게 됨은 물론, 그의 사상의 심원한 깊이와 매력, 그의 인간적인 고뇌와 철학사적 의미까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베블런은 누구인가
19세기 미국 사회와 경제체제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가함으로써 미국의 자만심을 뒤흔든 독창적 경제학자. 베블런은 1857년 위스콘신 주 카토 부근의 한 개척 농가에서 태어났다. 1880년 칼턴 칼리지를 졸업한 베블런은 존스홉킨스 대학교에서 잠시 철학을 공부했지만 예일 대학교에서 1884년 정치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하지만 기독교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교수직을 얻을 수 없었던 그는 가족이 사는 농촌으로 돌아와 독서와 집필을 했다. 그는 1892년이 되어서야 시카고 대학교의 전임강사직을 얻을 수 있었다. 1899년 그는 첫 번째 저서이자 최고의 역작인 <유한계급론>이 출간되자 학계가 발칵 뒤집혔다. 이 책은 기존의 고전경제학자들이 금과옥조로 여기던 두 가지의 교리적 논리, 즉 ① 자본가의 이익은 사회의 이익과 일치한다, ② 경쟁체계는 경제를 진보시키는 역동성을 제공한다는 논리를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학술서도 대중적인 인기를 모을 수 있음을 증명해 보였다. 한 세기가 지난 후 이 책은 경제이론 뿐 아니라 사회학과 역사학에서 하나의 고전으로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기업론>(1904)을 통해 미국의 기업제도에 이단적이라고 할 만한 직격탄을 날리고 그는 더욱 유명해졌다. 그 유명세 덕분에 한때 마르크스주의자라는 의혹을 받았지만 그는 자신은 마르크스주의와는 무관하며 마르크스의 체계는 지속력도 없고 사고력도 부족하다고 단언했다. 베블런은 미주리 주립대학교 교수로 부임하면서 집필에 더욱 열중해 <제작본능과 산업기술의 실태>(1911) <독일제국과 산업혁명>(1915) <평화의 본질과 그 존속기간에 대한 연구>(1917) <미국의 고등교육>(1918) 등을 펴냈다. 그는 사망하기 전 10여 년간을 뉴욕에서 진보적인 ‘새로운 사회연구소’에서 강의했다. 이 시기에 집필한 책으로는 <기득권과 산업기술의 현황>(1919) <소유권 부재와 근대의 기업>(1923) 등이 있으며 자신이 어린 시절 추억이 깃들인 아이슬란드 전설을 영어로 번역하여 <락스다엘라 사가>를 출간하기도 했다. 그는 오랫동안 예견했던 대공황이 엄습하기 얼마 전인 1929년 8월 3일 캘리포니아 팔로알토 근방에서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그의 마지막 저서 <변화하는 우리의 질서에 관한 단상들>은 그가 죽은 뒤 1934년에 출간되었다. 독자들은 늘 그를 정치적 급진주의자 또는 사회주의자로 생각했지만 그는 어떤 형태의 정치적 행동에도 참여하지 않았던 비관주의였다.

왜 사람들은 <유한계급론>을 읽는가
베블런의 <유한계급론>은 전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이며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읽고 있다. 왜 그럴까? 사회철학자 루이스 멈퍼드는 “베블런은 우리의 경제 질서에 내재한 사회적 모순을 마르크스 이후 가장 선구적으로 분석한 학자였다”고 회고하면서 “그의 저서들은 실로 막대사탕 포장지에 감싸인 다이너마이트와 같은 인격을 반영하는 듯하다”고 평가했다. 또한 뉴딜정책을 주창한 경제학자 스튜어트 체이스는 “베블런은 미래세대가 나아갈 궤도를 그려 보인 천문학자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세기의 초입에서 그는 사실들을 수집하고 경제사적으로 가장 대담한 해석을 통해서 종합하여 향후 수십 년간 적용할 수 있을 것이 분명한 이론적 틀을 제시함으로써 역사를 예견했다”고 말했다. 그리하여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는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그의 시대에나 그 이후에도 금전 자체가 아닌 금전을 획득하려는 남자들과 여자들의 행동방식을 그처럼 냉철하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꿰뚫어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무튼 베블런은 부자들이 나머지 우리와 다르게 생각하고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한, 그리하여 과거와 다를 바 없는 미래가 우리를 향해 걸어오고 있는 한 지속적으로 읽힐 책 한 권을 써냈다고 평가된다.

과시적 소비, 과시적 여가
베블런은 많은 돈을 가지고 있음을 남들에게 증명하는 최선의 방법은 그 돈이 자신에게 아무 소용없다는 듯이 행동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야만사회에서는 약탈의 능력이 분명히 드러나기 때문에 쉽게 대중들의 존경을 불러일으키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그것이 감추어져 있어서 유한계급은 과시적 소비와 과시적 여가를 통해 그들의 약탈능력을 드러내는 것이다. 또한 부자가 하인들을 고용하여 그들을 생산활동에서 제외시켰다고 말하면서 그처럼 세속적인 생각이 어떻게 그렇게 쉽게 망각될 수 있었는지를 증명하고 있다. 의복의 경우, 그것은 언제나 “증명용”이어서 “누가 보더라도 첫눈에 우리의 금력상의 지위를 알아볼 수 있게” 만들기 때문에 상류계급의 의복은 몸을 보호하는 기본적인 기능과는 거의 무관하다고 말한다. 그들은 과시적 낭비, 과시적 여가, 과시적 소비에 몰두함으로써 “다양한 가치를 지닌 고급요리들, 음료와 장신구, 그럴싸한 의상과 저택, 무기, 게임, 무용수, 흥분제 등에 관한 전문가가 되기에 이른다.” 그것은 마치 미래를 내다볼 때에도 오로지 과거밖에 못 보는 자본가들과 같다. 그들이 소유한 공장들이 세계가 혁명에 휩싸여도 여전히 상품을 만들어내듯이 그들의 생활양식도 르네상스를 연상시키는 우아함을 흉내 낸다. 또한 그들은 노동자들의 희생을 기반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만일 노동자들이 이 사실을 깨닫고 체제를 붕괴시키려고 할 것을 우려해 문화적ㆍ사회적 통제를 하게 되는데, 이것이 애국심, 민족주의, 군국주의, 제국주의 등으로 나타난다고 말한다.

과시성을 지향하는 현대사회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전세계 노동자들이 단결하여 자본가계급을 타도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에 비해 혁명적이라기보다는 훨씬 냉소적이었던 베블런은 부자들의 자화상을 신랄하게 묘사하는 데 자신의 정열을 바쳤다. 베블런이 부자들에게 그토록 혹독한 비난을 퍼부은 까닭은 “그들의 모든 종교적 믿음과 모든 소비패턴이 바로 프로테스탄트들이 종교개혁을 위해 싸워야했던 가톨릭주의의 유습이었다”는 데 있다. 그는 실용성보다는 과시성을 지향하는 현대사회의 소비가 “의례”나 “성례”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 한다. 그런 소비의 특징은 “신도들의 정신구조를 확연히 고양시키고 위무”하는 “사치스럽고 화려하기” 그지없는 “신성한 건축물”에서 행해지는 “경건한” 의례나 성례를 통해서 가장 잘 드러나고 또 그런 의례나 예배 속에 가장 잘 농축되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베블런은 과시적 소비가 기껏해야 이성이 아닌 감정에 호소하는 제의적인 격세유전의 산물에 불과하다고 갈파한다.

폭력과 스포츠의 과시성
빈민들은 야만인이고 부자들은 문명인이라는 통념에 반대하는 베블런은 양측이 다 폭력에 매력을 느낀다고 지적한다. 그는 “의견차를 해소하기 위한 보편적인 방법으로 여겨지는 결투에 통상적으로 의존하는 사람들은 오직 상류계급 신사들과 무뢰배들밖에 없다”고 진단한다. 결투든 거리의 싸움이든 베블런이 보기에는 하등의 차이가 없다. 두 가지 싸움 모두 구경꾼들의 격정에 호소하면서 타인의 눈을 통해 자신의 명성을 확인하고 과시하려는 “발달이 억제된 남자의 도덕성”의 발로이기 때문이다.
베블런이 보기에, 스포츠는 폭력과 마찬가지로 역시 그 진행방식부터 지각없는 해로운 활동이다. 베블런은 스포츠를 종교생활과 비교하면서 거듭 부자나 빈민 할 것 없이 공통적으로 미신에 사로잡혀 있다고 비판함으로써 스포츠에 대해서 미증유의 모욕을 퍼부었다. 무뢰배 내지 범법자들이나 잘 훈련받은 스포츠맨이나 모두 “공동체나 사회의 일반적인 평균인들보다 더 쉽사리 공인된 어떤 신조의 신봉자가 되는 경향이 있을 뿐 아니라 종교적인 의례에 이끌리기도 더 쉽다”고 베블런은 적고 있다. 아마도 베블런은 자유투를 하기 전에 성호를 긋는 현대의 농구선수들이나 승리를 확신한 순간 신에게 감사기도를 하는 듯한 자세를 취하는 여타의 현대 스포츠선수들을 보았더라도 그리 놀라지는 않을 것이다. 베블런이 보기에 종교와 스포츠 모두 행운에 대한 믿음을 강조하는 전근대적인 활동이다. 그런 믿음을 가진 종교나 스포츠 옹호자들은, 예컨대, 인간에게는 신의 영광을 달성할 능력이 있다고 믿거나 미식축구의 결과도 이미 예정되어 있다고 믿는다. 스포츠가 사회에서 대표적인 역할을 하는 한, 즉 과시적 소비체제가 유지되는 한 스포츠는 계속될 것이라고 말한다. 즉 그것은, 오늘날 경제적인 실용성과는 거리가 먼 ‘고대적인 생활양식’에 권좌를 내주는 것이다.

과시적 대학문화
베블런의 눈은 권위적인 대학도 피해가지 않는다. 고등교육 자체가 스포츠와 마찬가지로 이미 약탈의 매력을 부추기는 활동이었다. 특유의 의례, 학사모, 가운, 배지 같은 특이한 복장을 통해 대학은 “일부 학문적 사도들의 대물림”하고 한 세대의 권위를 다음 세대에까지 세습하는 학자들로 구성된 “전문 성직자계급”의 지배를 받고 있다고 분석했다. 베블런이 보기에 대학은 무용한 상류계급 사람들을 유용한 사람들로 느끼게 만드는 기능을 제외하면 아무런 공적 기능도 수행하지 못하는 “보수적”이고 심지어 “반동적”인 교육기관이다. 무엇보다도 대학교는 종교기관이었다. 베블런의 관점에서 보면 대학교들은 고전이나 인문학을 가르치고 “일반 학생들로 하여금 그런 류의 지식들을 습득하고 있음을 과시하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도록” 후원하는 식의 구시대적인 관행들에 바쳐지는 “고등교육을 위한 신학교들”로 남았다고 말했다.

베블런학파
그의 <유한계급론> 덕분에 영어권에서는 이른바 “베블런학파(Veblenesque)”라는 신조어가 출현했다. 지금까지 경제학계는 100여 년 전 베블런이 내놓은 저서에 필적할 만한 처방전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한편, 오늘날 일반 대중에게도 알려진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 줄리엣 쇼어, 로버트 프랭크 등 다수의 저명한 경제학자들이 베블런의 영향 아래 배출되었다. 이제 누군가를 “베블런학파”라고 부르는 것은 그(그녀)가 전문 경제학자들만 빼고 거의 모든 사람들이 확연히 알고 있는 현재 자본주의의 맹점을 파헤치고 폭로하는 작업에 종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유한계급론>의 현대적 의미
1899년에 출간된 <유한계급론>에는 ‘기존 제도에 대한 경제적 연구’(An Economic Study of Institutions)라는 제목의 부제가 붙어 있다. 그는 다윈의 진화론을 현대의 경제생활 연구에 적용하려 했다. 그는 산업화된 제도가 사람들에게 근면ㆍ효율ㆍ협동을 요구하는 반면, 실제로 산업계를 지배하는 사람들은 돈을 벌고 자신들의 부를 과시하는 데에만 여념이 없다고 지적하면서 이는 과거에 약탈을 일삼았던 미개사회의 잔재라고 주장했다. 이 흥미로운 책은 베블런이 철저히 경제학적 분석이라고 못을 박았음에도 불구하고 특히 문학계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독자들 대부분이 이 내용을 경제학적 분석이라기보다는 풍자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베블런은 경제학자로서의 한계를 뛰어넘어 사회비평가로서도 명성을 얻을 수 있었다.
베블런이 살던 시대의 생활만큼 현대의 생활도 불공정하다. 현재 미국의 대통령인 조지 W. 부시가 만일 지금 고등학교 졸업반이라면 아마도 오늘의 예일 대학교에 입학하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는 부시 일가의 금력과 인맥을 등에 업고 그보다 머리가 좋은 가난한 사람들을 앞질러 출세를 보장받을 수 있을 것이다. 비단 미국의 예가 아니더라도 그것은 전세계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 따라서 유한계급이 가치 없고 값이 비싼 것일수록 과시적 소비의 품목으로 높이 치고, 값이 싸고 유용한 것일수록 천하고 품위 없는 것으로 여길수록 <유한계급론>의 분석은 가치를 더할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산의 소유가 사회적 존경의 기초가 되어 자기가 속한 계층의 사람들과 경쟁적 소비를 일삼게 된다. 그 소비의 악순환에 빠지면 노동자들은 그들의 수입에 상관없이 만성적 불만에 빠질 것이고 역으로 그들은 금전적 문화에 순응하게 된다. 이 악순환이 계속되는 한 우리는 <유한계급론>을 통해 여전히 자본주의 경제제도의 모순을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이고, 그가 풍자하려고 했던 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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