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ma - 한국인이 좋아하는 러시아 로망스 베스트 2
Various Artists 노래 / 아울로스(Aulos Media)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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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로스 뮤직에서 선보이고 있는 ‘러시아 로망스 베스트’ 두 번째 음반으로 한국인이 좋아할 만한 노래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노래가 구슬프면서도 아름다운 선율, 그리고 서정적인 가사로 이루어져 있다. 한번 듣기만 해도 마음이 편해지는 노래들은 그 자체로 러시아의 감성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올해로 만 20살밖에 되지 않은 타타르스탄 출신의 미녀 가수 알수의 ‘겨울 꿈’을 비롯해 예세닌의 시에 노래를 붙인 렐릭의 ‘낙엽을 흩뿌린 나무’, 1969년 구 소련 최고의 가수로 꼽혔던 잔나 비쳅스까야의 노래까지 다양한 시대와 세대를 포괄하고 있다. 이 음반에 수록되어 있는 노래를 들으면 과거와 현재의 러시아 음악 흐름을 쉽게 살필 수 있다.

이중에는 러시아계 한국인인 비토르 최의 ‘혈액형’과 아니타 최의 ‘엄마’도 수록되어 있다. 빅토르 최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한국계 혈통이면서 러시아 록 음악을 대표하는 가수이다. 1990년 내한공연 두 달여 전, 교통사고로 사망해 안타까움을 자아내기도 했던 그의 노래가 수록되어 반갑기 그지없다. 윤도현이 ‘한국 록 다시 부르기’에 ‘혈액형’을 넣기는 했지만, 한국보다는 러시아 전통에 더 걸맞는 노래라고 할 수 있다. 아니타 최는 러시아에 거주하고 있는 까레이스키의 비극적인 역사를 그 가족들이 몸소 겪었다고 한다. 그녀가 부르는 ‘엄마’는 그 때문인지 더 서글프게 다가온다. 풍성한 성량이 돋보이며 노래 자체에 대한 매력도 대단하다. 이런 류의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녀의 매력에 흠뻑 빠질 만하다. 러시아 음악 팬에게는 여러모로 장점이 많은 음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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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요마는 정통 클래식 연주가이면서 크로스오버 음반을 많이 선보인 연주가 중 한 사람이다. 마크 오코너, 애드가 마이어와 함께했던 '애팔래치아 모음곡' 시리즈를 비롯해, 재즈 가수 바비 맥퍼린과 함께한 ‘허시’, 그리고 ‘탱고의 영혼’ 등이 그가 선보인 대표적인 크로스오버 음반이다. 또 그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전곡을 가부키․아이스댄싱 등에 적용해 색다른 크로스오버 연주를 선보이기도 했다. 그는 이와 같은 시도를 통해 서로 다른 음악 장르간의 상호 교류를 극명하게 표현하면서 일종의 크로스오버 연주의 모범답안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크로스오버 음반이라고 하면 정통 연주가들의 심심풀이 연주로 보여지는 경우가 없지 않다. 우선 선곡부터가 그렇다. 클래식이 아닌 타 장르를 바라보는 시각이 그리 진지하지 않다는 것을 금세 눈치챌 수 있을 정도로 가볍고, 달콤한 작품만이 담겨 있는 음반이 태반이다. 그런 까닭에 내용도 좋을 리 없다. 장르와 장르가 충돌하면서 색다른 성향의 음악이 연출되어야 하는데, 이도 저도 아닌 음악만을 양산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음악팬들은 클래식 연주가의 크로스오버 음반을 음악성보다는 상업적인 의도가 더 극대화된 그저 그런 음반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앞서 말했듯이 요요마의 크로스오버 음반은 조금 특별한 면이 있다. 특히 최근 들어 내놓은 음반이 더욱 그런 면모를 잘 보여준다. 지난해 발매한 ‘실크로드 여행’은 정통 월드 뮤직 음반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상업적인 면보다는 음악성이 더 강조된 음반이다. 더 나아가 음악을 너머 문명과 문명의 만남을 모색한 뛰어난 음반이기도 하다.

요요마는 이 음반을 내놓기 위해 지난 1998년 실크로드 앙상블을 조직해 여러 해 동안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연주를 수행했다. 그는 음악학자 테어도어 레빈과 함께 실크로드로 상징되는 다양한 문명의 만남과 소통을 음악으로 표현하고자 이른바 ‘실크로드 프로젝트’를 구상한 것이다. 실크로드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동양과 동양, 동양과 서양의 문명이 정면 충돌한 곳이다. 이슬람과 기독교, 불교 등이 이 길을 통해 만났으며, 이것이 서로 이질화되지 않고 각각의 문화에 영향을 끼치며 색다른 문화를 만들어갔던 것이다. 요요마는 이 실크로드를 거친 문명의 문화를 표현하기 위해 1999년 실크로드와 관계된 9개 국가 20여 명의 작곡가에게 곡을 위탁했고, 그 결과 한국의 강준일과 김지영을 포함해 아르메니아, 중국, 아제르바이잔, 일본, 이란, 몽골, 타지키스탄, 터키, 우즈베키스탄의 작곡가들의 곡을 위촉받아 유럽과 미국, 아시아 곳곳에서 연주해온 것이다.

이 음반에는 공히 전통음악과 유럽음악의 요소가 혼합되어 있으며, 이를 통해 실크로드가 그랬던 것처럼 민족문화와 외래문화의 만남과 소통이 반영되어 있다. 또 음악에만 머무르지 않고 이 프로젝트는 공연과 학술행사, 교육 프로그램, 멀티미디어 출판 계획을 아우르며 대규모의 소통의 장으로 진행시키고 있다. 요요마는 이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우리는 그동안 친숙하지 않은 음악 전통과 서로 영향을 주고받아 왔다. 나는 실크로드 음반을 통해 한 집단에게만 속하지 않은 목소리와 만날 수 있었다. 나는 그 목소리를 통해 우리는 하나의 세계에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의 또 하나의 크로스오버 음반인 'Obrigado Brazil‘도 ’실크로드 프로젝트‘의 연장선상에 있는 음반으로 봐도 좋을 듯하다. ‘고마워요 브라질’이라는 뜻인 음반에는 삼바와 보사노바, 쇼루 등 브라질의 대중음악이 담겨 있다. 이 음반도 ’실크로드 여행‘처럼 그리 가벼운 음반은 아니다. 보사노바의 거장 안토니우 카를로스 조빔의 히트곡 한 곡이 여성 보컬리스트 로사 파수스의 목소리로 수록되어 있는 것을 제외하면 모두 생소한 음악들이다. 그러나 요요마와 함께한 연주가들의 면모는 그야말로 대단하다. 브라질 타악기의 대가 시로 팝티스타, 쿠바 태생의 클라리넷 주자 파키토 드라베라, 보사노바 가수이자 기타리스트인 로사 파수스, 피아니스트 세자르 카마르구 마리아누, 보사노바의 선구자인 기타리스트 오스카르 카스트로 네베스와 로메루 루밤부, 그리고 세계적인 탱고 연주자로 유명한 아사드 형제 등이 세션으로 참여하고 있다.

브라질은 넓은 땅과 다수의 인종이 살고 있어 그 음악도 상당히 복잡한 편이다. 원주민인 인디오와 16세기 이후에 들어온 라틴계(포르투갈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들), 그리고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끌려 온 흑인의 문화가 복합적으로 섞여 있다. 이웃인 아르헨티나와 달리 브라질은 백인보다는 흑인 음악의 영향력이 상당히 강하다. 이것이 원주민과 유럽계 문화와 맞물려 독특한 음악문화가 형성된 것이다.

특히 '흐느끼다‘라는 뜻을 가진 ‘쇼루’(Choro)는 각별하다. 브라질 현대음악의 시초 '쇼루'는 포르투갈의 파두, 폴카, 왈츠에 흑인의 리듬이 결합되어 리우 데 자네이루에서 발생했다. 19세기 후반에 생긴 카니발의 역사와 궤를 같이하는 쇼루는 악기편성에서 그 특색을 찾을 수 있는데, 울음소리 같은 클라리넷 연주와 현을 미끄러트려 연주하는 카바큉유(포르투갈의 작은 기타)의 슬픈 음색이 극대화되어 나타난다. 이 음반에 실린 픽싱기나(1897~1973)의 음악이 바로 쇼루이다. 픽싱기나는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가 브가질 음악가 중 가장 위대한 사람을 만나고 싶다고 하자 빌라 로보스가 그를 지칭해 국제적으로 유명해진 인물이다. 음반에는 ‘하나에서 열까지’(IXO), '사랑하는‘(Carinhoso) 등 두 곡이 담겨 있는데, 부드럽기 그지없는 멜랑콜리한 리듬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빌라 로보스도 쇼루에 영향을 많이 받은 작곡가이다. ‘코코넛의 땅’(a lenda do coco), ‘브라질의 영혼’(Alma Brasileira) 등을 들어보면 픽싱기나의 음악과 그리 큰 차이가 없음을 알 수 있다. 또 발디르 아제베도의 ‘브라질레이링요’도 유명한 쇼루 음악이다. 모두 부드러우면서도 슬픈 멜로디에 상큼한 리듬이 덧붙여진 연주 음악들이다.

같은 흑인계열의 음악이면서도 삼바는 쇼루와 정반대의 느낌을 준다. 쇼루가 조용하면서 사적인 음악인 반면 삼바는 시끄러우면서 대중적인 음악이다. 음반에 담긴 자쿠 두 반돌림과 바덴 파월의 음악이 바로 삼바인데, 요요마는 이 음악들의 원시적인 면모보다는 좀더 세련미 넘친 작품으로 해석하고 있다.

삼바에서 영향을 받은 보사노바도 이 음반의 한 궤를 형성한다. 보사노바는 그 유명한 안토니우 카를로스 조빔이 완성한 음악이다. 조빔은 1950년대 리우 데 자네이루 해변가의 호텔 관광객들에게 듣기 편하면서도 세련된 무드음악을 연주하고 있었는데, 당시 이곳을 찾은 재즈 기타리스트 찰리 버드가 그 음악을 듣고 매료되어 보사노바라는 이름으로 퍼트리기 시작해 유명해졌다. 음반에 담긴 것은 로사 파수스가 부르는 ‘슬픔이 찾아오다’(Chega De Saudade)라는 곡으로 보사노바 특유의 부드럽고 낭만적인 음이 잘 깃들여 있어 누구라도 매혹될 만한 노래다.

요요마는 쇼루와 삼바, 보사노바를 특유의 생동감 넘치는 연주로 훌륭하게 소화하고 있다. 클래식 음반에서 감정과잉으로 자주 비판을 받은 데 반해 이 음반에서는 오히려 그 감정 표현이 더 효과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언젠가 요요마는 어느 인터뷰에서 “음악은 사람들을 서로 끌어당기는 자석”이며 “음악에는 우리들로 하여금 공동체를 구성하게 하고, 무엇인가를 같이 나누게 한다”고 말하면서 다음과 같이 덧붙인 바 있다. “어떤 지역적인 것을 찾아가면 갈수록 더 세계적인 것을 발견하게 된다. 정통을 따르는 어떤 음악 체계를 이해하면 그것들이 나타내는 세계를 표현하기가 더욱 쉬워지듯이 마찬가지로 익숙하지 않은 음악을 접하면 접할수록 그 사회에 한발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용기가 생기게 된다. 어떤 면에서 모든 음악은 국경을 초월하는 소리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모두 한 가지 세계, 곧 사람의 세계에 속하는 것이다.”

이 말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그는 음악을 인류학적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일찍이 하버드 대학에서 인류학을 공부한 바 있는 그는 문화를 한쪽이 다른 쪽을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함께 이뤄간다는 것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끊임없이 새로운 의사소통의 방법을 개발하고 있는 그는 앞으로도 지역과 문화를 탐구하는 음반을 계속 내놓을 예정이라고 한다. 이 음반들에는 또 어떤 성찰이 담기게 될 것인지 자못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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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tricia Salas - Puerto Montt
파트리시아 살라스 (Patricia Salas) 노래 / 씨앤엘뮤직 (C&L)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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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해야 할만한 또 한 명의 여성 가수가 국내에 소개됐다. 칠레 출신의 파트리시아 살라스. 그녀는 열두 살에 처음으로 기타를 연주하고, 열네 살 때 작곡을 했으며, 열여섯 살에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 재능 많은 소녀에게 한 음반사가 음반을 제의했고, 처음 발표된 것이 큰 인기를 끌었다. 이후 그녀는 RCA와 열 장의 싱글 앨범을 선보여 큰 성공을 거뒀다. 당시 그녀가 두 명의 자매와 함께 결성한 밴드 프레깬시아 모드는 남미의 거의 모든 나라에 알려질 정도였다. 그리고 1986년 그녀는 독일로 이주했다. 그 뒤부터는 줄곧 독일에서 음반 작업을 하며 활동했다. 네덜란드, 이탈리아, 스칸디나비아, 소련 등지에서 콘서트를 가지며 성공적으로 유럽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비록 몸은 유럽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그녀의 노래는 라틴아메리카 특유의 누에바 칸시온이다. 고향 땅의 풍경들, 커피 농장 노동자의 삶, 라틴아메리카의 영웅 볼리바르 등을 담으며 삶의 열정을 노래하고 있다.

누에바 칸시온은 우리나라의 민중가요 운동과 비슷하다. 당시 라틴아메리카의 시대상황이 이 노래운동을 탄생시켰다. 아따우알파 유팡키, 비올레따 파라 등이 주도했고, 메르세데스 소사, 빅토르 하라 등이 널리 퍼트려 지금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이들의 노래 속에는 안데스 인디오의 삶이 녹아 있다. 자신의 주체를 서양에서 건너온 이민자로 인식하지 않고 인디오로 규정하며 그들의 노래를 계승, 발전시켰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노래에는 인디오의 악기인 께나, 차랑고, 시쿠 같은 것이 등장하고, 선율도 인디오의 전통을 느낄 수 있는 것들로 만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사에 억압받는 사람들의 삶과 역사적 현실을 과감히 담아 노래운동을 시작했던 것이다.

파트리시아 살라스도 이 누에바 칸시온 운동에 참여했다. 잔잔한 포크 계열의 음악을 선보이고 있는 그녀는 억압받는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노래를 부르며 자신의 활동범위를 넓혀갔다. 이 음반은 그녀가 선보인 대표작 ‘Amis Amigos’, ‘Gracias A La Vida’ 중에서 유명곡만을 뽑아놓은 것이다. 첫 곡 ‘몬 항’은 칠레 남부의 휴양지에서 이별하는 두 연인의 아픈 사랑을 노래한 곡이다. 어디선가 꼭 들은 것만 같은 선율이 가슴을 울리는 곡으로 한 번 듣기만 해도 금세 매력에 빠질 만한 요소가 많은 노래다. ‘삶에 감사하며’는 아르헨티나의 거장 메르세데스 소사가 불러 유명한 곡이다. 이 노래 역시 가슴 깊게 전해지는 호소력 깊은 목소리와 선율이 인상적이다. ‘마리아는 떠나고’, ‘난 너의 친구야’, ‘사랑에 빠졌네’, ‘그대는’ 등에서는 살리아스의 단아하면서도 청초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잔잔한 기타음과 더불어 울리는 그녀의 목소리는 상당히 매혹적이며, 열정적이다. ‘모든 이들의 노래’는 라틴아메리카 사람들의 자유에 대한 갈망을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다소 둔탁하게 들리기도 하지만, 이와 같은 정열적인 노래가 그녀의 또 다른 특징이기도 하다. 이것은 플라멩코 풍의 ‘네가 보고자 원할 때’에서도 느껴진다. 활달하면서도 서정적이고, 강렬하면서도 담백한 풍의 복합적인 목소리가 그녀의 음악을 더욱 빛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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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es2 Music World Collection Vol.02 - Gypsy
Various Artists 노래 / 알레스2뮤직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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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에서 집시는 박해받는 소수자에 속한다. 역사에 집시의 모습이 처음 등장한 시기부터 이들은 가장 밑바닥 계층이었다. 그들은 가는 곳마다 갖은 차별에 시달렸다. 우물에 독을 푼다더라, 가축에게 독을 먹인다더라, 아이를 유괴하고, 사람고기를 먹는다더라. 각종 흉흉한 소문의 근원지는 모두 집시에서 비롯된 것으로 여기고 유럽인들은 이들을 인간 이하로 취급했다. 노예로 부린 뒤 땅에서 쫓아내고, 때로는 생명을 앗아가기도 했다.

집시는 거리에 서 있는 사람들이다. 그 자신을 비롯해 그 누구도 그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또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알지 못했다. 그들은 거리에서 거리로 움직였을 뿐이다. 당연히 그들을 보호해주는 국가는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이들은 끊임없이 떠돌며 특유의 문화를 퍼뜨리며 유럽을 넘어 세계문화의 한 흐름을 형성해왔다. 음악은 그중 가장 큰 줄기다. 무시 못할 힘을 지닌 이들의 음악은 일일이 나열하기도 벅찰 정도로 세계 각지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사람들은 그토록 집시를 이방인 취급했으면서도 유독 그들의 음악과 자유로운 문화에 열광했다.

알레스2 뮤직에서 선보인 집시 음악 모음집(2CD)에는 집시에 대한 총체적인 문화가 모두 담겨 있다. 내지에는 집시의 역사와 문화가 세세하게 수록되어 있으며, 음반에는 세계를 대표하는 집시 음악인들이 거의 모두 망라되어 있다. 내지의 글귀와 그들의 음악을 들으면 집시의 문화가 얼마나 흡인력이 강한지 단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집시는 세계의 거의 모든 지역에 퍼져 있지만, 이 음반에서 다루는 것은 칼데라시족(발칸반도와 중부 유럽에 퍼져 있는 집시들)과 신티족(프랑스, 알사스, 독일 주변에 거주하는 집시들)의 음악만을 다루고 있다. 비교적 이 지역에 분포되어 있는 집시들의 음악이 서로 공통점이 많기 때문이다.

이 음반의 최대 장점 중 하나는 현재의 집시 음악을 이끌고 있는 화려한 연주진이 거의 모두 등장한다는 점이다. 루마니아와 불가리아 지역의 집시 음악을 연주하는 로말레스, 러시아 집시 음악을 대표하는 밴드 로이코, 동구권 집시 음악의 대모 벨라 빌라, 집시 음악의 여왕 에스마, 독특한 집시 음악을 들려주는 그룹 안도 드롬, 집시 재즈로 유러피안 재즈에 큰 영향을 미친 프랑스 집시 밴드 브라취, 마케도니아의 역동적인 향취를 표현하는 브라스 밴드 코차니 오케스트라 등은 그 스스로가 모두 집시 음악을 대표하는 하나의 문화 트렌드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이 연주하는 작품은 어느 하나도 놓치기 아까운(일일이 설명하기에도 벅찬) 명곡들이다. 로말레스의 ‘모든 집시여, 오 우리의 어머니여’에는 집시들의 국민가요라고 할 수 있는 ‘에델레지’가 특유의 즉흥 멜로디로 어우러져 있고, 로이코의 ‘집시의 시간’에는 레온지아 에르덴코의 애절한 음성으로 집시 음악의 서정성이 극대화되어 있다. 집시 음악인 중에서 대중적 명성을 크게 얻은 베라 빌라의 ‘아멘’과 ‘울고 싶어요’는 어디선가 한번쯤은 들어봤음직한 멜로디이고, 에스마의 ‘난 방황해 왔습니다’도 마찬가지로 집시 음악 중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명곡이다. 그밖에 다른 작품들에도 집시의 정통성과 문화, 그리고 치열한 음악성이 배어 있다.

신자유주의가 세계의 모든 지역을 잠식하며 하나의 생각만을 강요하고 있는 지금, ‘집시 음악’과 같은 월드 뮤직을 통한 교류가 어떻게 보면 새로운 대안 문화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알레스2 뮤직에서 시작한 ‘월드 뮤직 컬렉션’이 반갑기 그지없다. 꾸준히 많은 대중에게 선보여서 우리의 문화를 좀더 성숙하게 만들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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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낮달 > 잭 런던이 그려 낸 독점자본주의의 미래
강철군화 - 한울사회문학시리즈 1
잭 런던 지음, 차미례 옮김 / 한울(한울아카데미) / 198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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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 런던의 작품을 처음 만난 건 초등학교 때인 듯하다. 그가 쓴 여러 편의 알래스카를 무대로 한 동물소설 중의 하나였던 "황야의 부르짖음"을 통해서였는데, 이 작품은 주인공 개가 알래스카로 팔려가 썰매를 끌게 되면서, 거기서 약육강식의 세계와 비정한 인간의 혹사를 겪게 되고, 주인이 죽은 뒤 자기 내부의 야성의 부르짖음에 따라 결국은 북극의 이리떼에게 돌아간다는 이야기이다. 물론 작가 따위를 의식하고 읽은 책은 아니었다. 아이들은 문학 작품이 개인의 생산물이라는 점을 잘 의식하지 못하니 말이다. 강철군화를 읽고나서야 그 시절에 읽었던 얘기가 그의 작품이라는 걸 소급해 이해한 것이다.

  

사회과학 전문의 도서출판 '한울'에서 강철군화의 초판이 나온 게 1989년 7월인데, 내가 갖고 있는 책은 90년에 12월에 간행된 5쇄다. 결국 내가 이 책을 읽은 것은 91년도쯤인 셈이다. 책의 정가는 3,800원. 15년쯤 지난 책표지의 코팅이 군데군데 벗겨지고 있는데, 아마 나 말고 이 책을 읽은 이는 대여섯 명은 좋이 될 듯하다. 내게 읽을 만한 책 추천을 부탁한 동료 교사들과 제자들, 그리고 해직 시절 같은 지역에서 알고 지냈던 금속 노동자도 이 책을 읽었다.


사생아로 태어나, 사회 밑바닥의 비참한 삶은 온몸으로 견뎌내고 잘 팔리는 작가가 되어 엄청난 부를 얻었지만, 삶과 이데올로기 사이의 심화된 자기 모순과 번민 속에서 죽어간 작가, 잭 런던을 대영백과사전은 '생존을 위한 본능적이고 처절한 투쟁을 낭만적으로 묘사한 작가', '돈을 벌기 위해서 쓴 낭만소설과 사회주의자로서 이념을 위해 쓴 사회주의 소설로 날카롭게 양분되는 작품 세계를 가진 작가', '미국에서보다 외국에서 더 유명하며 스스로 계급투쟁에 관심을 갖지 않게 된 말년에도 가장 위대한 사회주의 작가로 영원히 추앙을 받은 작가'로 소개하고 있다.


1908년 발표된 강철군화는 '사회주의 노동운동가로서의 통찰력과 문학적 뚝심의 백미(번역자 차미례)'로 평가되는데, 대체로 이데올로기를 다루고 있는 소설이 빠지기 쉬운 '소설적 완성도의 결핍'으로부터 자유로운 작품이다. 이른바 자본주의의 부패로부터 해방된 27세기 통일된 사회주의 시대인 '인류형제애 시대(Brotherhood of Man)'의 세계국가 아디스의 문헌학자가 쓴 서문의 형식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20세기, '강철군화'라고 불리는 과두지배체제가 노동대중의 얼굴을 짓밟았던 시대의 혁명가 어니스트 에버하드의 상류계급 출신 아내, 애비스 에버하드가 기록해 둔 원고가 사회민주주의의 최종적 승리가 이루어진 이후 700여년 만에 웨이크 로빈 산장의 해묵은 참나무 심장 속에서 발견되었다는 문헌학자의 보고를 서문으로 이 '애버하드 원고'는 독자들의 '피를 끓게 하면서' 그 드라마틱한 속살을 펼쳐낸다.

 

 애비스의 관점에서 기술되고 있는 소설 초반부에서 '말굽편자 대장장이 출신의 사회학자'인 주인공 어니스트는 그의 해박한 사회주의 이론과 철학으로 이 상류계급의 우아한 숙녀와 그녀의 아버지인 버클리 대학의 물리학자, 그리고 모어하우스 주교의 세계관을 뒤흔들어 버린다.   


어니스트는 주교를 향해, 남부의 면사공장에서 어린 아이들을 혹사하고 있는 상황을 가리키면서 "그 공장의 배당금은 그 애들의 피에서 지급된다."며 주교는 "그 배당금으로 배가 부른 미끈한 수혜자들을 향해 듣기 좋은 상투적인 설교를 늘어놓고 있는 것"이라고 일갈하고 애비스에게도 "당신이 입고 있는 그 드레스가 피로 얼룩져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결국 애비스는 어니스트의 애정의 포로가 되고, 사랑을 실천하려 한 주교는 교회에 의해 정신병원에 갇히고 만다.


소설은 사회주의 혁명과정(시카고 코뮨)을 실감나게 그려내면서 그 과정에서 결국은 대규모의 살육으로 끝나는, 그들 이상의 패배를 고통스럽게 기술하고 있다. 그것은 결국 혁명이 실패하게 되면 지배계급은, 즉 강철군화는 '노동대중의 얼굴 위를 짓밟고 다닐 것'이라는 점을 현실을 통해 증명해 버린 것이다.




잭 런던이 이름한 '강철군화'는 자본주의 정치권력의 한 형태로 이해할 수 있겠는데, 이는 1922년 무솔리니의 파시즘으로 현실화되었다. 그는 지배계급이 과도한 잉여이윤으로 노동자 계급의 일부를 매수하여 우리 안에 가두어 놓은 다음, 나머지 노동계급을 지배하는 주역의 구실을 하는 '노동귀족'의 출현도 예언하였다. 1937년 트로츠키는 강철군화 소련판이 출간되었을 때, "그 당시의 단 한 명의 맑시스트 혁명가도 자본과 노동귀족 사이의 불길한 야합의 가능성을 그처럼 완벽하게 예견한 사람은 없었다."고까지 단언했다. 한 작가의 역사적 통찰력이 한 시대를 넘어 미래까지를 꿰뚫어 본 것이다.


10년도 전의, 까마득한 옛 시절의 소설 한 편을 새삼스럽게 기억하는 것은 한갓진 회고는 아니다. 강철군화 이후 100년이 가까워오지만 어니스트의 지적처럼 "두 사람이 똑같은 것에서 자기들이 얻을 수 있는 전부를 얻으려고 들 때, 거기에는 이해의 대립이 존재한다. 그것이 노동과 자본 간의 이해의 대립"이라는 명제는 변하지 않았다. 신자유주의의 발호 아래 비정규직의 비율이 전체 노동자의 60%를 넘고, 부모 없이 외조부모에게 맡겨진 아홉 살짜리 아이가 혼자서 사냥개의 공격으로 목숨을 잃고, 그 주검이 이튿날에야 발견되는 이 야만의 사회, 2005년의 절망 앞에서 부끄러움 없이는 책을 덮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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