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요마는 정통 클래식 연주가이면서 크로스오버 음반을 많이 선보인 연주가 중 한 사람이다. 마크 오코너, 애드가 마이어와 함께했던 '애팔래치아 모음곡' 시리즈를 비롯해, 재즈 가수 바비 맥퍼린과 함께한 ‘허시’, 그리고 ‘탱고의 영혼’ 등이 그가 선보인 대표적인 크로스오버 음반이다. 또 그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전곡을 가부키․아이스댄싱 등에 적용해 색다른 크로스오버 연주를 선보이기도 했다. 그는 이와 같은 시도를 통해 서로 다른 음악 장르간의 상호 교류를 극명하게 표현하면서 일종의 크로스오버 연주의 모범답안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크로스오버 음반이라고 하면 정통 연주가들의 심심풀이 연주로 보여지는 경우가 없지 않다. 우선 선곡부터가 그렇다. 클래식이 아닌 타 장르를 바라보는 시각이 그리 진지하지 않다는 것을 금세 눈치챌 수 있을 정도로 가볍고, 달콤한 작품만이 담겨 있는 음반이 태반이다. 그런 까닭에 내용도 좋을 리 없다. 장르와 장르가 충돌하면서 색다른 성향의 음악이 연출되어야 하는데, 이도 저도 아닌 음악만을 양산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음악팬들은 클래식 연주가의 크로스오버 음반을 음악성보다는 상업적인 의도가 더 극대화된 그저 그런 음반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앞서 말했듯이 요요마의 크로스오버 음반은 조금 특별한 면이 있다. 특히 최근 들어 내놓은 음반이 더욱 그런 면모를 잘 보여준다. 지난해 발매한 ‘실크로드 여행’은 정통 월드 뮤직 음반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상업적인 면보다는 음악성이 더 강조된 음반이다. 더 나아가 음악을 너머 문명과 문명의 만남을 모색한 뛰어난 음반이기도 하다.

요요마는 이 음반을 내놓기 위해 지난 1998년 실크로드 앙상블을 조직해 여러 해 동안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연주를 수행했다. 그는 음악학자 테어도어 레빈과 함께 실크로드로 상징되는 다양한 문명의 만남과 소통을 음악으로 표현하고자 이른바 ‘실크로드 프로젝트’를 구상한 것이다. 실크로드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동양과 동양, 동양과 서양의 문명이 정면 충돌한 곳이다. 이슬람과 기독교, 불교 등이 이 길을 통해 만났으며, 이것이 서로 이질화되지 않고 각각의 문화에 영향을 끼치며 색다른 문화를 만들어갔던 것이다. 요요마는 이 실크로드를 거친 문명의 문화를 표현하기 위해 1999년 실크로드와 관계된 9개 국가 20여 명의 작곡가에게 곡을 위탁했고, 그 결과 한국의 강준일과 김지영을 포함해 아르메니아, 중국, 아제르바이잔, 일본, 이란, 몽골, 타지키스탄, 터키, 우즈베키스탄의 작곡가들의 곡을 위촉받아 유럽과 미국, 아시아 곳곳에서 연주해온 것이다.

이 음반에는 공히 전통음악과 유럽음악의 요소가 혼합되어 있으며, 이를 통해 실크로드가 그랬던 것처럼 민족문화와 외래문화의 만남과 소통이 반영되어 있다. 또 음악에만 머무르지 않고 이 프로젝트는 공연과 학술행사, 교육 프로그램, 멀티미디어 출판 계획을 아우르며 대규모의 소통의 장으로 진행시키고 있다. 요요마는 이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우리는 그동안 친숙하지 않은 음악 전통과 서로 영향을 주고받아 왔다. 나는 실크로드 음반을 통해 한 집단에게만 속하지 않은 목소리와 만날 수 있었다. 나는 그 목소리를 통해 우리는 하나의 세계에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의 또 하나의 크로스오버 음반인 'Obrigado Brazil‘도 ’실크로드 프로젝트‘의 연장선상에 있는 음반으로 봐도 좋을 듯하다. ‘고마워요 브라질’이라는 뜻인 음반에는 삼바와 보사노바, 쇼루 등 브라질의 대중음악이 담겨 있다. 이 음반도 ’실크로드 여행‘처럼 그리 가벼운 음반은 아니다. 보사노바의 거장 안토니우 카를로스 조빔의 히트곡 한 곡이 여성 보컬리스트 로사 파수스의 목소리로 수록되어 있는 것을 제외하면 모두 생소한 음악들이다. 그러나 요요마와 함께한 연주가들의 면모는 그야말로 대단하다. 브라질 타악기의 대가 시로 팝티스타, 쿠바 태생의 클라리넷 주자 파키토 드라베라, 보사노바 가수이자 기타리스트인 로사 파수스, 피아니스트 세자르 카마르구 마리아누, 보사노바의 선구자인 기타리스트 오스카르 카스트로 네베스와 로메루 루밤부, 그리고 세계적인 탱고 연주자로 유명한 아사드 형제 등이 세션으로 참여하고 있다.

브라질은 넓은 땅과 다수의 인종이 살고 있어 그 음악도 상당히 복잡한 편이다. 원주민인 인디오와 16세기 이후에 들어온 라틴계(포르투갈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들), 그리고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끌려 온 흑인의 문화가 복합적으로 섞여 있다. 이웃인 아르헨티나와 달리 브라질은 백인보다는 흑인 음악의 영향력이 상당히 강하다. 이것이 원주민과 유럽계 문화와 맞물려 독특한 음악문화가 형성된 것이다.

특히 '흐느끼다‘라는 뜻을 가진 ‘쇼루’(Choro)는 각별하다. 브라질 현대음악의 시초 '쇼루'는 포르투갈의 파두, 폴카, 왈츠에 흑인의 리듬이 결합되어 리우 데 자네이루에서 발생했다. 19세기 후반에 생긴 카니발의 역사와 궤를 같이하는 쇼루는 악기편성에서 그 특색을 찾을 수 있는데, 울음소리 같은 클라리넷 연주와 현을 미끄러트려 연주하는 카바큉유(포르투갈의 작은 기타)의 슬픈 음색이 극대화되어 나타난다. 이 음반에 실린 픽싱기나(1897~1973)의 음악이 바로 쇼루이다. 픽싱기나는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가 브가질 음악가 중 가장 위대한 사람을 만나고 싶다고 하자 빌라 로보스가 그를 지칭해 국제적으로 유명해진 인물이다. 음반에는 ‘하나에서 열까지’(IXO), '사랑하는‘(Carinhoso) 등 두 곡이 담겨 있는데, 부드럽기 그지없는 멜랑콜리한 리듬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빌라 로보스도 쇼루에 영향을 많이 받은 작곡가이다. ‘코코넛의 땅’(a lenda do coco), ‘브라질의 영혼’(Alma Brasileira) 등을 들어보면 픽싱기나의 음악과 그리 큰 차이가 없음을 알 수 있다. 또 발디르 아제베도의 ‘브라질레이링요’도 유명한 쇼루 음악이다. 모두 부드러우면서도 슬픈 멜로디에 상큼한 리듬이 덧붙여진 연주 음악들이다.

같은 흑인계열의 음악이면서도 삼바는 쇼루와 정반대의 느낌을 준다. 쇼루가 조용하면서 사적인 음악인 반면 삼바는 시끄러우면서 대중적인 음악이다. 음반에 담긴 자쿠 두 반돌림과 바덴 파월의 음악이 바로 삼바인데, 요요마는 이 음악들의 원시적인 면모보다는 좀더 세련미 넘친 작품으로 해석하고 있다.

삼바에서 영향을 받은 보사노바도 이 음반의 한 궤를 형성한다. 보사노바는 그 유명한 안토니우 카를로스 조빔이 완성한 음악이다. 조빔은 1950년대 리우 데 자네이루 해변가의 호텔 관광객들에게 듣기 편하면서도 세련된 무드음악을 연주하고 있었는데, 당시 이곳을 찾은 재즈 기타리스트 찰리 버드가 그 음악을 듣고 매료되어 보사노바라는 이름으로 퍼트리기 시작해 유명해졌다. 음반에 담긴 것은 로사 파수스가 부르는 ‘슬픔이 찾아오다’(Chega De Saudade)라는 곡으로 보사노바 특유의 부드럽고 낭만적인 음이 잘 깃들여 있어 누구라도 매혹될 만한 노래다.

요요마는 쇼루와 삼바, 보사노바를 특유의 생동감 넘치는 연주로 훌륭하게 소화하고 있다. 클래식 음반에서 감정과잉으로 자주 비판을 받은 데 반해 이 음반에서는 오히려 그 감정 표현이 더 효과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언젠가 요요마는 어느 인터뷰에서 “음악은 사람들을 서로 끌어당기는 자석”이며 “음악에는 우리들로 하여금 공동체를 구성하게 하고, 무엇인가를 같이 나누게 한다”고 말하면서 다음과 같이 덧붙인 바 있다. “어떤 지역적인 것을 찾아가면 갈수록 더 세계적인 것을 발견하게 된다. 정통을 따르는 어떤 음악 체계를 이해하면 그것들이 나타내는 세계를 표현하기가 더욱 쉬워지듯이 마찬가지로 익숙하지 않은 음악을 접하면 접할수록 그 사회에 한발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용기가 생기게 된다. 어떤 면에서 모든 음악은 국경을 초월하는 소리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모두 한 가지 세계, 곧 사람의 세계에 속하는 것이다.”

이 말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그는 음악을 인류학적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일찍이 하버드 대학에서 인류학을 공부한 바 있는 그는 문화를 한쪽이 다른 쪽을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함께 이뤄간다는 것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끊임없이 새로운 의사소통의 방법을 개발하고 있는 그는 앞으로도 지역과 문화를 탐구하는 음반을 계속 내놓을 예정이라고 한다. 이 음반들에는 또 어떤 성찰이 담기게 될 것인지 자못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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