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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 오페라
박홍규 지음 / 가산출판사 / 2002년 1월
평점 :
절판
우리가 음악사를 논할 때 자주 범하는 오류는 작곡가를 둘러싸고 있는 시대상을 빼놓고 작품을 설명하는 것이다. 마치 모든 작품이 작곡가의 절대정신이나 순수의지에 의해서만 좌우되는 것처럼 말하곤 한다. 그러나 이 책 '비바 오페라-오페라의 사회사'는 이러한 인식을 조목조목 반박하며, 모든 예술이 그러하듯 음악 또한 작곡가의 순수한 정신에서 나온 창작물임과 동시에 사회적 체험의 표현이며, 사회가치 행위를 전달하는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이라고 주장한다. 곧 음악도 "순수한 정신의 지배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사회라는 환경의 제약"을 받으며, 음악의 정치성과 사회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장르로 오페라를 꼽고 있다. 때문에 이 책은 그동안 반복되어 출판되었던 음악 자체의 역사만을 논한 책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오페라의 사회사'라는 부제에 걸맞게 책은 오페라 기본개념을 계몽, 혁명, 민족, 자유, 국가, 민중, 여성, 현실, 민주주의 등 9개의 항목으로 정리해 설명한다. 그리고 계몽 개념은 모차르트에게, 혁명은 베토벤, 민족은 로시니와 도니체티, 벨리니의 작품에 적용했고, 자유는 베르디, 국가는 바그너, 여성은 비제와 생상스, 오펜바흐의 작품에 각각 적용해 정리한다. 이를 위해 저자는 오페라의 정의부터 시작해 오페라의 역사를 점검한 뒤 본격적인 비평을 시작한다. 본론에는 작곡가의 삶과 음악에 대해 당시의 상황을 예로 들며 간략하게 살핀 뒤 그 작곡가가 만든 오페라의 사회사에 연관시킨다.
이를테면 모차르트의 '이도메데오'와 '후궁으로부터의 유괴' 그리고 최후작인 '티토 황제의 자비'를 모차르트가 생각한 계몽적이고 인간적이며 이성적인 지도자상이 그려져 있다고 해서 계몽군주 오페라로 구분하고 있고, '피가로의 결혼' '돈 조반니' '코지 판 투테' '마술 피리'를 계몽 시민 오페라로 분류하고 있다. 특히 저자는 '피가로의 결혼'을 '계급투쟁 오페라'로 설정하고, "평민의 승리와 귀족의 패배를 보여주는 점에서 확실히 민중적이고 반체제적이며 현대적"이라고 호평하고 있다. 또한 이 오페라에는 페미니스트적인 양상도 보인다고 설명하고, 그 예로 "백작부인을 비롯한 여성들의 아리아를 통해 남성에 대한 여성의 투쟁"이 드러나 있기 때문이라고 적고 있다.
서구에서도 최근에서야 오페라를 사회사나 정치사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 책은 그런 최근 연구들을 참조하면서 한국인의 시각으로 오페라를 분석한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의 지은이는 음악학자가 아니라 노동법을 전공한 진보적인 법학자인 박홍규 교수이다. 이미 그는 반 고흐의 삶과 예술 세계를 새롭게 해석한 '내 친구 빈센트', 풍자 만화의 선구자인 오노레 도미에의 평전 '오노레 도미에-만화의 아버지가 그린 근대의 풍경'과 같은 책을 내놓은 바 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예술을 권력(또는 부)의 일종으로 소비하는 특권층을 비판하며, 삶과 예술의 통합을 시도하고자 했다.
박홍규 교수는 책 서문에서 "그래서 나는 예술의 민주화를 꿈꾼다. 내가 꿈꾸는 그것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우선 음악가나 노동자가 함께 음악을 즐기는 것이고 음악가와 노동자를 친한 동무로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음악가에게서 노동자성을 발견하고 노동자에게서 그 음악을 즐길 수 있는 음악성을 발견하게 하여 둘을 잇는 것이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