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너니? 그토록 요란스레

올라와서 다시 푸르게 하는

이 도래가 내겐 전혀

가능해 보이지 않았거든. 다시 너니? 대지가 죽은 생명과

새로운 생명으로 너의 가슴을 살찌우는 동안

네 가슴은 그토록 대책 없이

터지도록 자라는 구나. 다시너니 이름 모를 무덤위에

참호의 흙덩이 위에

꽃을 피우며, 피로 얼룩진 이 조국에

그 형형 색색의 형상을 만드는 자가?

다시 너. 봄이니?



1938년 4월(스레인 내전중의 한해 봄), 라파엘 알베르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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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밖에 못 보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 가면의 배후에 숨겨진 것밖에 못 보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 동시에, 더없이 아름다운 가면과 그 가면의 배후에 숨겨져 있는 무서운 얼굴을 보는 자만이 나무랄 데 없는 제 눈의 주인인 것이다!
그 얼굴 뒤로, 가면과 얼굴을 함께 보고, 두 얼굴의 성격을 파악하려는 자에게 복이 있을진저. 그런 자만이 삶과 죽음이라는 쌍생아의 피리를 볼 수 있는 것이다.
니코스 카잔차키스 '돌의 정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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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카 프라티카 동문선 문예신서 157
마이클 캐넌 지음, 김혜중 옮김 / 동문선 / 200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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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랑 바르트는 19세기의 아마추어 연주가들끼리의 음악 관습을 '무지카 프라티카'라고 부르고 있다. 그에 따르면 음악은 두 가지 형태, 들려지는 음악과 연주되는 음악으로 존재한다. 바르트는 아무리 형편없는 연주자라 할지라도 연주와 노래를 하지 않는 일반 사람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음악을 듣는다고 말한다. 곧 이들에 의해 음악은 의식적으로 무언가를 지시하지 않아도 무엇을 해야 할지를 알고 있다는 것이다. 음악과 인간의 관계가 이토록 밀접하게 서로를 소통할 수 있었던 사회는 부르주아 계급의 도래와 더불어 무미건조한 것으로 변했으며, 상류 사회의 응접실과 같은 분위기로 변절되고 말았다.
이 책은 클래식 음악이 물질세계와는 담을 쌓은 채 고고한 정신세계만을 표현하는 것인 양하는 풍토를 비판한다. 오히려 음악이야말로 자본주의 사회의 발전 과정에 밀접한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저자 마이클 캐넌은 롤랑 바르트를 비롯해 니체, 바흐친, 베버, 마르크스, 아도르노, 쇤베르크 등의 책을 인용하며 음악과 사회적 관습과의 관계를 엮어간다.
이를테면 음악 인쇄술의 발달이 악보 시장에 끼친 영향, 시민혁명 이후 전통적인 후원계층의 변화와 직업인으로서의 음악인의 관계, 상품으로서의 음악, 기보법의 변화가 음악에 미친 영향 등을 사회경제학 문제들과 관련하여 설명하고 있다. 또 16세기 그레고리오 성가에서 최근의 포스트모더니즘에까지 방대한 음악사가 역사와 함께 서술되어 있고, 오케스트라의 물적 토대의 변천과정 등의 흥미로운 주제도 포괄하고 있다.
머리말 '음악의 수수께끼'라는 도전적인 제목으로 시작하는 이 책은 '음악을 형성하는 힘들' '음악의 정치경제' '음악공학' '전자 음향악 시대의 음악'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것을 통해 저자는 음악이 가지는 본래의 목적인 '유토피아적 꿈'의 회복을 원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무지카 프라티카가로 대표되는 음악과 인간의 완전하지는 않지만, 소통 가능한 세계가 그것을 대변해주고 있다. 저자가 마지막 페이지에 서술한 말은 모든 사람이 귀담아 들을 만하다.
"언어만큼이나 명확한 인간적 성향을 가지고 있으며, 모든 사회에 존재했음이 알려져 있는 음악은 사회 체제의 지표라 할 수 있는데, 그 속에서 우리는 단지 과거를 들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우리가 방법을 안다면 미래에 대해서도 사태를 서서히 살필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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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 오페라
박홍규 지음 / 가산출판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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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음악사를 논할 때 자주 범하는 오류는 작곡가를 둘러싸고 있는 시대상을 빼놓고 작품을 설명하는 것이다. 마치 모든 작품이 작곡가의 절대정신이나 순수의지에 의해서만 좌우되는 것처럼 말하곤 한다. 그러나 이 책 '비바 오페라-오페라의 사회사'는 이러한 인식을 조목조목 반박하며, 모든 예술이 그러하듯 음악 또한 작곡가의 순수한 정신에서 나온 창작물임과 동시에 사회적 체험의 표현이며, 사회가치 행위를 전달하는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이라고 주장한다. 곧 음악도 "순수한 정신의 지배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사회라는 환경의 제약"을 받으며, 음악의 정치성과 사회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장르로 오페라를 꼽고 있다. 때문에 이 책은 그동안 반복되어 출판되었던 음악 자체의 역사만을 논한 책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오페라의 사회사'라는 부제에 걸맞게 책은 오페라 기본개념을 계몽, 혁명, 민족, 자유, 국가, 민중, 여성, 현실, 민주주의 등 9개의 항목으로 정리해 설명한다. 그리고 계몽 개념은 모차르트에게, 혁명은 베토벤, 민족은 로시니와 도니체티, 벨리니의 작품에 적용했고, 자유는 베르디, 국가는 바그너, 여성은 비제와 생상스, 오펜바흐의 작품에 각각 적용해 정리한다. 이를 위해 저자는 오페라의 정의부터 시작해 오페라의 역사를 점검한 뒤 본격적인 비평을 시작한다. 본론에는 작곡가의 삶과 음악에 대해 당시의 상황을 예로 들며 간략하게 살핀 뒤 그 작곡가가 만든 오페라의 사회사에 연관시킨다.

이를테면 모차르트의 '이도메데오'와 '후궁으로부터의 유괴' 그리고 최후작인 '티토 황제의 자비'를 모차르트가 생각한 계몽적이고 인간적이며 이성적인 지도자상이 그려져 있다고 해서 계몽군주 오페라로 구분하고 있고, '피가로의 결혼' '돈 조반니'  '코지 판 투테' '마술 피리'를 계몽 시민 오페라로 분류하고 있다. 특히 저자는 '피가로의 결혼'을 '계급투쟁 오페라'로 설정하고, "평민의 승리와 귀족의 패배를 보여주는 점에서 확실히 민중적이고 반체제적이며 현대적"이라고 호평하고 있다. 또한 이 오페라에는 페미니스트적인 양상도 보인다고 설명하고, 그 예로 "백작부인을 비롯한 여성들의 아리아를 통해 남성에 대한 여성의 투쟁"이 드러나 있기 때문이라고 적고 있다.
서구에서도 최근에서야 오페라를 사회사나 정치사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 책은 그런 최근 연구들을 참조하면서 한국인의 시각으로 오페라를 분석한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의 지은이는 음악학자가 아니라 노동법을 전공한 진보적인 법학자인 박홍규 교수이다. 이미 그는 반 고흐의 삶과 예술 세계를 새롭게 해석한 '내 친구 빈센트', 풍자 만화의 선구자인 오노레 도미에의 평전 '오노레 도미에-만화의 아버지가 그린 근대의 풍경'과 같은 책을 내놓은 바 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예술을 권력(또는 부)의 일종으로 소비하는 특권층을 비판하며, 삶과 예술의 통합을 시도하고자 했다.
박홍규 교수는 책 서문에서 "그래서 나는 예술의 민주화를 꿈꾼다. 내가 꿈꾸는 그것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우선 음악가나 노동자가 함께 음악을 즐기는 것이고 음악가와 노동자를 친한 동무로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음악가에게서 노동자성을 발견하고 노동자에게서 그 음악을 즐길 수 있는 음악성을 발견하게 하여 둘을 잇는 것이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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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스탄과 이즈 (보급판) 지만지 고전선집 64
죠제프 베디에 지음, 이형식 옮김 / 지만지고전천줄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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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너는 '로엔그린'을 발표한 뒤 이 작품을 '낭만적 오페라'라고 이름 붙이고 "이제 더 이상 오페라는 만들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그가 다시 만든 작품이 바로 가극 '트리스탄과 이졸데'이다. 바그너가 직접 독일어로 쓴 대본은 이룰 수 없는 사랑에 대한 무한한 동경과 사랑의 황홀감이 주는 관능성이 훌륭하게 묘사되어 있다.
바그너는 이 작품을 13세기에 활약한 독일의 시인 고트프리트 폰 슈트라스부르크의 서사시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참고해 개작했다고 밝힌 바 있다. 바그너의 작품으로 우리에게도 친숙해진 이 이야기는 사실 유럽 전지역에 널리 퍼진 일종의 민중설화이다. 따라서 바그너가 참조한 독일 시인 슈트라스부르크가 창작한 이야기가 아니며, 최초의 발상지가 어디인지, 그것을 처음으로 노래한 사람이 누구인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12세기 전후 아일랜드와 프랑스 브르타뉴 지방에서 활동하던 켈트족에게서 흘러나왔다는 정설만이 확인될 뿐이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가 이토록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불려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바로 이 책 <트리스탄과 이즈>에서 그 이야기의 매력을 조금이나마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은 프랑스의 언어학자이자 문학사가인 조제프 베디에가 중세 시대에 활약한 시인들의 장편 서사시(아일하르트의 '트리스트탄트', 토마스의 '트리스탄과 이즈', 작자 미상의 '트리스탄과 광대짓')를 토대로 당시의 정감을 살려 재구성한 것이다.
이 책의 주제는 다음과 같은 두 구절에 크게 압축돼 있다. "아름다운 여인이여, 우리의 운명 역시 그러하니, 나 없이 그대 없고, 그대 없이 나 또한 없도다." "이즈 나의 연인, 이즈 나의 사랑, 그대 속에 나의 죽음 있고, 그대 속에 나의 삶 있나니!" 이 문장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책의 내용은 그 무엇도 막을 수 없는 '죽음보다 강한 사랑' 이야기이다.


책은 첫 부분부터 박진감이 넘친다. 초반부에 모든 이야기를 다 풀어놓을 것처럼 줄거리가 순식간에 바뀐다. 로누아의 왕자로 태어난 트리스탄('슬픈 남자'라는 뜻)이 태어나기 전에 아버지를 잃은 사연부터, 그가 용맹스런 기사로 성장할 때까지의 이야기가 짧게 서두를 장식한다. 그런 뒤 본격적인 이야기가 전개된다. 외삼촌인 코온월의 왕인 마크왕 밑에서 기사로 성장한 그는 아일랜드의 거인 기사 모르훌트를 무찌르고 나라를 구하는 영웅이 된다. 이 싸움에서 큰 상처를 입고 바다를 정처없이 떠돌던 그를 구해준 이가 바로 모르훌트의 조카인 이즈이다. 이즈는 죽어가는 트리스탄이 자신의 삼촌을 죽인 원수인지도 모른 채 치료를 해주고, 트리스탄은 몸이 회복되자 아일랜드를 탈출해 마크왕에게로 되돌아온다.
이들의 인연은 트리스탄이 마크왕의 아내를 맞이하기 위하여 아일랜드로 건너가면서 다시 시작된다. 원수의 관계였지만, 트리스탄이 골칫거리인 용을 퇴치해주자 아일랜드의 왕은 딸 이즈를 마크왕의 아내로 내준다. 트리스탄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던 이즈는 트리스탄이 자신을 군주에게 팔아 넘긴다고 생각하며 분노를 금치 못한다(바그너의 가극에서는 이미 두 사람이 사랑에 빠져 있다고 설정되어 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영영 헤어나지 못할 비극에 접어든다. 배 위에서 시녀의 실수로 마크와 이즈를 위해 준비한 '사랑의 묘약'을 트리스탄과 이즈가 마시게 된 것. 그 음료를 마신 뒤 두 사람은 거부할 수 없는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게 된다.
마크왕과 트리스탄, 이즈의 갈등이 증폭되고 결국 트리스탄은 영지에서 추방되기에 이른다. 브르타뉴의 '흰 손의 이즈'를 아내로 얻지만, 자신이 사랑하는 '금발의 이즈' 를 잊지 못해 병상에 눕게 된다. 트리스탄은 이즈를 데리고 오는 데 성공하면 흰 돛을 달고, 그렇지 못하면 검은 돛을 달라고 부탁하며 친구를 이즈에게 보낸다. 하지만 트리스탄은 검은 돛의 배가 온다는 '흰 손의 이즈'의 거짓말을 듣고 절망하여 숨을 거둔다(파두의 여왕 아말리아 로드리게스의 '검은 돛배'가 바로 이 장면을 노래한 것이다). 그가 죽은 직후에 도착한 이즈도 슬픔에 잠겨 트리스탄의 곁에서 죽고 만다.

바그너의 가극이 외면적인 것을 없애고 두 주인공의 내면에만 천착했다면, 이 소설은 풍부한 읽을거리를 제시하며 갈등의 원인과 결과와 더불어 주인공의 내면을 되새기고 있다. 오랫동안 유럽의 여러 작가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던 이 지고지순한 사랑이야기는 인습과 이성보다는 원초적인 본능과 정염이 더 소중하다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또 그것은 죽음을 통해서만 얻어진다는 역설을 훌륭한 서사시로 승화시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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