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탑
윌리엄 골딩 지음, 신창용 옮김 / 삼우반 / 2006년 3월
평점 :
품절


어리석은 자가 탑을 쌓는다. 주변 사람들을 희생하고, 자신의 신념에 따라 종교의 허상을 쌓아올린다. 그는 이것이 모두 하느님의 명령이라고 생각한다. 골딩은 이 문제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런 일을 하려면 뭐든 가능한 수단을 이용해야만 해요. 그러니까 사람들에게 자연히 피해가 가는데, 그게 내 기본 논지였고, 지금도 다른 방법은 모르겠어요."

그러나 내 개인적인 생각은 이런 방법이 끔찍하다는 것이다. 그 많은 사람들이 왜 그것에 희생되어야 할까?이런 류의 소설은 상당히 많은 편이지만, 결론은 제각각인 듯하다. 늘 어떤 생각을 하게 하고, 그 안에 담겨 있는 복잡한 이유와 사람들의 심리를 읽어내는 기쁨이 있다.

욕망의 탑을 쌓아올리는 그는 결국 죽음을 맞지만, 첨탑은 무너지니 않았다. 그는 위대한 사명을 완수했는가, 아니면 그저 어리석은 짓을 했을 뿐인가. 생각해볼 일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도르노 달하우스 크라이프 다누저 - 20세기 음악미학 이론
홍정수 외 지음 / 심설당 / 200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세기 현대음악은 과거와의 단절을 통해 진행된 탓인지 대중의 폭넓은 지지를 확보하지 못했다. 현재도 이 상황은 좀체 회복되기 힘들어 보인다. 클래식 음반산업과 연주계, 그 음악을 좋아하는 애호가 모두 소위 현대음악이라 불리는 것에 쉽게 접근하려 하지 않는다. 어느덧 21세기가 됐지만, 20세기 중반부터 발전해온 현대음악은 여전히 어려운 대상일 뿐이다. 곧 현대음악은 꼭 듣고 향유해야 할 음악이 아니라 굳이 듣지 않아도 될 미래의 음악쯤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아도르로, 달하우스, 크나이프, 다누저’는 20세기 음악미학을 이끌어온 네 명의 대표적인 학자들의 입장을 정리해놓은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 현대음악이 처한 상황과 20세기 음악미학을 개략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현대음악이 대대로 전해져온 전통적 미학과 단절을 선언한 까닭과 아도르노를 비롯한 네 명의 학자들이 어떤 관점으로 음악과 사회를 대했는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아우슈비츠 이후에 서정시를 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이 비유를 통해 아도르노의 음악미학을 이해하면 쉬울 것 같다. 곧 예술은 ‘아름다움’보다는 ‘진실’이 더 중요하다는 게 아도르노의 생각이다. 그렇기 때문에 ‘감각의 아름다움’을 극도로 추구한 후기 낭만주의 음악은 아도르노에게는 예술이 아니라 비판 대상일 뿐이다. 후기 낭만주의를 이끌었던 작곡가들은 ‘과거’에 안주하고 ‘미래’를 등한시하며 ‘진실’을 추구하지 않았다. 이는 20세기에 활동한 스트라빈스키나 힌데미트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아도르노는 이들이 대중성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과거와 타협했다고 비판한다. 곧 이들의 작품에는 과거에 대한 ‘부정’과 진실을 밝히는 ‘역사성’이 결여되어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아도르노는 어떤 대상에서 이상적인 예술성을 발견했을까. 잘 알려져 있다시피 아도르노는 쇤베르크를 비롯한 제2빈악파의 초기 작품에서 새로운 흐름을 발견했고, 인간의 고통, 현실의 타락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 아방가르드의 표현주의를 ‘진실이 반영되어 있는 예술’이라고 말하며 적극 옹호했다.

그러나 이런 아도르노의 주장도 비판의 여지가 있다. 크나이프는 아도르노가 너무 엘리트적이라고 말한다. 현대음악이 대중들에게 어렵게 느껴지듯이 그것을 옹호한 아도르노의 이론도 소수의 지식인을 위한 것뿐이다. 크나이프는 아도르노가 경멸했던 대중음악을 자신의 음악미학에 적극 반영했다. 그리고 평범한 사람들의 생각으로 대중음악 연구에 나섰고, 음악학에 대중음악이 일상적인 주제가 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이는 지식인에 의해 규정되는 아도르노의 이론보다 훨씬 적극성을 띄는 것이며, 20세기를 대중이 중심이 되는 ‘대중의 시대’로 파악한 사고이기도 하다.

또 한 명의 아도르노의 비판자인 달하우스는 음악의 자율성을 옹호하는 면에서 아도르노의 입장을 지지하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새로운 음악에 관심을 두지는 않는다. 또 아도르노와는 다르게 옛것은 보존해야 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며, 그 시대의 음악은 그 시대의 미학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곧 달하우스는 아도르노가 배격했던 아름다움을 다시 미학에 끌어들여 판단의 근거로 설정한 것이다.

달하우스의 제자 다누저는 자신의 주장을 피력하는 것보다 1950년대 이후의 20세기 음악을 정리하는 일에 몰두했다. 그는 다양한 관점을 모두 수용한 포스트모더니즘의 지지자였다. 따라서 그에게는 고급 음악과 저급 음악의 경계도 없으며, 옛것을 답습하는 연주나 전혀 새로운 경향의 성격의 것도 인정하고 있다. 이런 태도는 자칫 ‘음악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라는 질문조차 무색하게 만들지만, 음악을 비롯한 모든 예술과 철학에서 한때 유행했던 포스트모더니즘의 핵심이기도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드디어 키신이 우리나라에 오는군요. 언젠가 써놓았던 글입니다. 마마보이 키신, 4월 8일 예술의전당.

 

 

 

 

 

지난 1980년대 중반부터 천재 또는 신동으로 불리며 전세계에 신드롬을 일으켰던 예브게니 키신. 그도 어느덧 신동이니 천재니 하는 말과는 어울리지 않는 30대의 나이에 접어들었다. 때문인지 혹자는 ‘키신의 위대한 시대’는 이미 저물었노라고 말한다. 키신이 빛을 발했던 이유는 순전히 시간성에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고 그가 더 이상 나이가 어리지 않다면, 그의 연주는 ‘전설’이 아니며 그저 평범한 피아니스트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항변한다. 사실 어느 정도 이 지적은 맞는 말이다. 데뷔 초기에 보여줬던 비범한 재능 속에는 그의 단점도 들어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걸 용인하며 그를 천재로 규정했다. 그리고 그는 그 말을 통해 스타로 등극했고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흘렀다. 그는 과거처럼 어린아이가 아니어서 사람들은 그의 장점보다 단점을 더 많이 찾아내고, 또 그의 위대함이 한낱 평범함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고 평가절하하려 한다.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그의 연주 속에 사람들을 사로잡는 그 무엇이 없다면 아마도 사람들은 그를 영원히 잊으려 할지도 모른다. 두 살 때 피아노를 연주해 열 살 때 정식 데뷔무대를 가졌고, 열두 살 때 국제무대에 나오면서 그의 험난한 운명은 시작됐다. 그는 뭔가를 끊임없이 보여줘야 하고 연주 속에 천재성을 드러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연주가로서의 수명은 곧 끝날지도 모른다. 그건 모든 연주가들이 다 마찬가지라고? 맞는 말이다. 하지만 키신만이 지니는 특수성이 있다. 1990년대 초반 그는 대중 스타에 버금가는 인기를 누렸다. 세계 유수의 언론이 앞다퉈 그를 소개했고, 클래식 음악계의 불황도 그의 음반과 연주회에서는 맥을 추지 못했다. 또 세계 음악계가 찬탄해마지 않았던 마우리치오 폴리니보다 대중들에게 더 큰 대우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키신은 자만하지 않았다. 인기에 편승해 다른 연주가들처럼 낭만적인 소품 모음집을 남발하지 않았고, 매번 일정한 실력으로 완성도 높은 연주를 들려주며 전설을 만들어갔다. 대중들의 천박한 심리에 휩쓸려 스스로를 돌보지 않는 우를 범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차분하게 실력을 가다듬어 안절부절 못하는 대중들을 만족시킬 줄 알았다. 이런 모습을 보고 급기야 대중들은 키신을 거장적 연주가의 반열에 올려놓기에 이르렀다.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는 우리 시대의 연주가


“예술인은 언제 어디서나 감정을 쏟아 분위기를 창조해낼 수 있어야 합니다. 순간적인 심적 변화로 연주를 망치거나 하는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진정한 연주가는 어떤 기분에 지배를 받아서는 안됩니다. 매번 자신의 연주를 최상으로 만들 수 있는 평상심을 가지고 있어야 하죠.”

피아노 콩쿠르를 거치지 않고 성공한 몇 안 되는 연주자인 그는 한번도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닦아왔다. 이 모습은 꾸준히 선보이고 있는 음반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현재까지 비공식 녹음을 합쳐 사십 장 가까운 음반을 발표했다. 그런데 이 음반들의 레퍼토리가 거의 낭만주의 음악으로만 채워져 있음을 알 수 있다. 고전주의 시대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열정’, 피아노 협주곡 두 곡만을 녹음한 바 있고, 모차르트의 곡은 비교적 자주 연주하는 편이지만 음반은 그리 많지 않다. 또 현대음악은 프로코피예프와 쇼스타코비치 협주곡 정도가 눈에 띌 뿐이다. 그는 바흐에 대한 관심을 피력하기도 했지만 부조니 편곡판 몇 곡만을 녹음했고, 본격적으로 바흐의 작품을 연주하지는 않았다. “낭만주의 음악을 가장 잘 연주하는 피아니스트”라는 평도 받은 바 있지만, 너무 한 시대에만 천착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더욱이 실내악 작품은 유리 바슈메트, 미샤 마이스키 등과 녹음한 슈베르트의 ‘송어’를 빼면 전무한 실정이다.

그렇지만 이 모든 것은 언젠가 그의 손을 통해 최상의 것으로 둔갑해 세상에 선보여질 것이다. 실제로 그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를 비롯해 바흐, 현대음악, 실내악에 대한 열정을 자주 내비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좀더 기다릴 필요가 있다. 천재를 너머 거장의 손길로 다듬어진 연주를 듣기 위해 좀더 그가 자유롭게 사유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놓아줄 필요가 있다. 언젠가는 그의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을 것이므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내가 결혼했다 - 2006년 제2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박현욱 지음 / 문이당 / 2006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소설은 잘 읽힌다. 그리고 주제도 신선하다. 이 두 가지가 이 작품의 미덕이다. 이 두 가지만으로도 많은 것을 이야기할 수 있고, 또 많은 것을 성취했다고 할 수 있다.

술술 읽으면서 아쉬웠던 점은 아내에 관한 것이다. 도대체 아내의 매력을 도무지 느끼지 못했던 것. 아내의 '말발'은 거의 사회학자의 수준이지만, 그녀의 삶은 도무지 '나'가 좋다고 하니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이 캐릭터가 좀더 빛을 발했다면 정말 좋은 작품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면 또 다른 남편의 캐릭터도 생생히 살아났을 것이다. 이 소설에서 그는 단지 '대상'일 뿐 주체가 되어 움직이지 않는다. 곧 주인공 나'가 바라본 제3자일 뿐이다. 그는 아내를 사랑하며 아내의 말에 따라(자기의 철학이기도 하겠지만) 행동하긴 하지만 '그런가 보다' 하고 느껴지기만 할 뿐 그의 머릿속과 마음속을 알 수가 없다.

그리고 가장 아쉬웠던 것은 결론 부분이다. 결론 부분을 대하고는 솔직히 짜증이 일었다. 이렇게 잘 엮어놓고 결국 떠날 수밖에 없었단 말인가. 좀더 문제의식을 확장해야지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렸다. 실로 허탈한 결론이 아닐 수 없다.  부딪치고 또 다른 결론을 도출했다면 내내 화제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 문학사에 등장하는 새로운 종으로 자리매김할 수도 있었을 텐데. 아쉬울 따름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작은' 사회주의와 '작은' 예술, '작은' 교육을 꿈꾸다 - <윌리엄 모리스의 생애와 사상> Read 132 | 2006-03-24

 

 


                                                                                         글 l 이윤희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는 1834년에 태어나 1896년에 생을 마감했던, 19세기의 인물이다. 그리고 그의 삶을 기술한 <윌리엄 모리스의 생애와 사상>(개마고원)이라는 이 책은, 우리나라의 법학자 박홍규가 그에 대해 쓴 평전이다. 박홍규는 법을 연구하는 학자이고 법학과 교수이지만 미술사에 대한 커다란 조예로 몇 권의 미술사 관련 연구서들을 가지고 있는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이다. 그의 활동은 (미술계의 입장에서만 보면) 그 분야 학계의 테두리 밖에서 누가 알아주든 말든 연구하고 그 결과물을 내는 재야의 선비와도 같아 그의 활동이 널리 회자되는 것 같지는 않지만, 필자를 포함하여 그러한 그의 행적을 존경의 눈으로 바라보는 이들도 적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그는 윌리엄 모리스가 우리나라에 아직도 본격적으로 소개되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저간의 짧은 소개들도 대부분 오해의 소지를 가졌다는 지적에서 이 책을 시작한다. 윌리엄 모리스의 이름은 19세기 영국의 미술 공예 운동(Arts and Crafts Movement)의 이론적 실천적 지도자 정도로 알려져 있다. 대부분의 미술사 관련 서적들에서 그는, 당대의 삶의 형태와 당대가 낳은 사물들의 조악함을 비판했지만 중세로 돌아가자는 시대착오적인 제안을 하여 지속적인 영향력을 가질 수는 없었던 자로 평가되어 왔다.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사회주의의 실현을 위해 분골쇄신했던 이론가이자 실천가였고 삶의 기본이 되는 생활의 양식으로부터의 변혁을 꿈꾸었지만, 실제로는 벽지 디자인 같은 인테리어에나 성과물을 남겼던 인물 정도로 기술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 박홍규는 윌리엄 모리스의 이상들, 당대에 실현될 수 없었고 현재도 여전히 실현되기 어려운 그 이야기들이, 여전히 우리로 하여금 꿈꾸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소박하고 자연스러운 삶으로의 복귀


그는 자신이 살았던 사회를 아름답지 못하고 자연스럽지 못하다고 비판하며 그것을 근본적으로 변혁시키고자 했다. 아름답고 자연스러운 삶, 그것이야말로 당연히 인간이 누릴 수 있는, 누려야만 할 삶의 모습이라고 보았고, 그가 생각했던 이러한 삶의 기반이 되는 것으로 자유로운 노동과 삶에 밀착된 예술을 말했다. 자유로운 노동이라는 것이 과연 실현 가능할지에 대해서는 논외로 하자. 실제 모리스는 자신의 실천적 예술의 꿈을 이루기 위해 공장을 설립해서 노동자들을 고용했지만, 모리스 공장의 노동자들 역시 모리스의 엄격한 감시 체제 속에서 '자유로운 노동'을 누리지는 못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한 삶에 밀착된 예술을 실현하기 위한 모리스 공장의 제품들은 시장에서 비싼 값으로 부유층의 전유물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했다고 한다. 이것들이 모리스의 이상적 사고에 대해 쉽게 주어지는 주된 비판의 지점이다. 그 모순 덩어리의 행적을 바라보며 그의 꿈을 비웃는 자들은 책을 덮어도 좋다. 그러나 그러한 자들이야말로 진정으로 불쌍한 자들이라고 저자는 목소리를 높인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는, 소박한 간소함을 경멸하고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기게 만듦으로써 소비를 창출하고, 그 소비를 충족시키기 위한 생산을 함으로써 사회를 유지시킨다. 이 사회에서 인간은 소비함으로써 존재할 수 있으며, 소비와 생산의 메커니즘에서 떨어져 있는 자는 정상적인 삶을 유지하기 어렵다. 정녕 이와 다른 형태의 삶은 불가능한가, 하는 의문은 자본주의의 생성 이래로 늘상 있어왔으며, 이러한 의문에 대한 극단적인 해답과 실천으로 사회주의 운동이 존재했다. 역사 속에서 사회주의 운동은 실패했다고 평가받을 수 있지만, 그것이 제기되었던 상황은 여전히 미결의 과제로 남아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모리스의 말에 귀 기울여 보자. 모리스가 추구한 이상 사회는 개인의 자유에 기초한 간소한 생활의 복귀를 목표로 한 것이었다. 소박함을 거부하는 것은 결국 우리의 생활을 복잡한 의존으로 둘러싸게 만들어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로 살게 하며, 그것은 결국 우리가 자유인이 아니라는 증거라는 것이다.


돈이 있으면 다 가질 수 있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필요한 만큼만 내 것으로 가지고 소박하고 간소하게 살기로 결심한다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니다. 극단적인 예로,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하여 모은 돈으로라도 값비싼 세칭 '명품' 가방을 사야 하는 아이들은 자본주의의 자손들이다. 필요한 것을 만들거나 구매하여 아끼고 아껴 손때를 입히고 평생을 쓰는 행위는 자본주의 사회의 운용에 바람직하지 않지만, 그러한 행위가 대량소비사회에서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다고 모리스는 말하고 있다. 모리스가 중세로 돌아가자고 할 때, 그것은 중세 건축이나 예술에 대한 경탄과 바람직한 공동체성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허위 없고 간소한 중세 민중의 삶 속에서 이 시대의 '대안'을 찾은 까닭이기도 했다.


만인이 향유하고 나누어가질 수 있는 예술       


또한 모리스는 예술이 그러한 소박하고 간소한 삶에 아름다움을 부여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에 의하면 사람의 손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에는 모두 형태가 있는데, 그 형태는 아름답기도 하지만 추하기도 하며 아름다운 형태를 가진 것이야말로 인간과 올바른 관계를 갖는 것, 인간에게 참된 것이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장식예술, 즉 '일상생활 속 몸 주위의 것을 아름답게 만드는 예술'을 소예술(Less Art)이라 지칭했는데, 이는 그가 대예술(More Art)이라 칭하는 회화와 조각에 대응되는 건축, 도장, 목공, 도자기, 유리, 직물, 카페트, 가구 등을 의미하는 것이다. 모리스가 장식예술을 소예술이라 부른 것은 장식의 가치를 낮게 보아서가 아니라 그 반대로 장식 없이는 예술 자체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가 말하는 소예술의 부흥은 예술의 총체적이고도 종합적인 부흥을 말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모리스는 자신이 명명한 소예술과 대예술이 분열되는 현상을 통해 예술의 시대적 위기를 간파했고, 당시의 예술 상황을 뿌리 없는 나무에 비유하기도 했다. 만인이 향유하고 나누어가질 수 없는 것이라면 예술이 무슨 소용이냐는 문제의식 속에서 모리스는 만드는 자나 사용하는 자에게 행복을 느끼게 하는 작은 예술, 생활 속의 예술이 가능하며 그것이 모든 예술의 근본이라고 여겼다.

 
그의 미래 계획 속에는 아이들의 교육에 대한 문제도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다. 그는 한마디로 아이들은 끼리끼리 자란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는 부모의 보호가 상대적으로 적은 가난한 동네의 아이들이 더욱 현명하고 천재적인 기지를 발휘하기도 하며 공동체의 전통을 쉽게 익힌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에 의하면 교육은 언제나 가능하고 지속적으로 행해지는 것이므로 결코 강요되어서는 안 되며, 아이들이 특정 과목을 배우고 싶지 않다면 그것 또한 가르쳐서는 안 되고, 아이들의 취미를 강제하여도 그것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모리스는 특히 학교에서 학습보다는 인간관계를 통해 익히는 말하기, 책을 통한 지식 배우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익히는 생활을 통한 신체적 기능의 숙련을 삶에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 생각했다. 이를테면 수영이나 목공, 양털 깎기, 빵 굽기, 재봉 등은 누구나 짧은 시간에 쉽게 배울 수 있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평생에 걸쳐 가장 중요한 삶의 도구가 되는 것들이라는 것이다. 또한 신체적 기능을 키우느라 학문적 능력이 떨어진다 해도 문제가 되지 않으며 학교나 도서관 또는 충분한 자유 시간을 통하여 학문을 익힐 기회는 평생 부여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사회, 이러한 예술, 이러한 교육은 서로 보완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모리스가 꿈꾸는 이상 사회의 근간이 되고 있다. 묘하게도, 그가 말하는 사회와 예술과 교육은 오늘날 여러 가지 형태의 소규모 자발적인 운동들과 상당한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


대안적 사회운동과 모리스의 이상


이를테면 자발성을 중시하고 형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그의 교육관은 오늘날의 대안교육 시스템과도 상당한 공통점이 발견된다. 우리 사회는 머릿속에 대량의 정보와 지식을 누가 더 빨리 더 많이 구겨 넣을 수 있느냐로 아이들의 현재를 판가름하지만, 실제로 그것은 아이들의 행복과는 무관하고 그 판가름된 결과가  아이들이 지닌 가능성을 잘 보여주는 경우도 드물다고 본다. 이러한 교육에 대한 비판이 일고 있지만 그에 대해 딱 부러지는 대안이라는 것도 존재하기 힘든 상황에서, 부모가 일방적으로 이끄는 형태의 교육보다 아이들의 또래 문화를 인정하고 그들 사이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울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 아이들 각자의 개성과 취향의 차이가 존재함을 알아주는 것, 그리고 배울 수 있는 틀을 만들어주되 배움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제시하는 모리스의 견해는 충분히 귀기울일만한 지점들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아이들의 인생에 어른이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는 '작은' 교육이 아이의 가능성을 짓밟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최근의 소규모 공동체 운동이 지향하는 생태주의와 모리스가 지향했던 이상사회는 상당히 유사한 형태를 띤다. 간소하고 소박한 삶의 지향은, 국가의 정체를 바꾸거나 계급 혁명을 말하는 거대한 운동에 비하면 형편없이 힘없고 작게 보이지만 현재로서는 자본주의에 대항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으로 보인다. 박홍규가 '생활사회주의'라고 명명한 그것은 일종의 '작은' 사회주의, 즉 나 스스로의 삶으로부터 시작할 수 있는 반자본주의 운동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모리스가 꿈꾸었던 '작은' 사회주의 안에서 나의 손으로 만드는 '작은' 예술품들과 함께, 활기를 잃지 않는 '작은' 교육이 이루어지는 곳, 그 곳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꿈이기도 하다. 먼저 꿈꾼 자가 있어서 우리의 꿈은 더욱 힘을 얻는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한솔로 2006-03-29 2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꽤 오래전에 이 책을 읽었는데, 기억 나는 거라곤, 박홍규 선생이 그 전방위적인 활동과 인물 소개는 참 대단하고 의미 있지만 글은 역시 못 쓴다는 거에요.

새들처럼 2006-03-30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분의 전방위적인 활동은 정말 놀랄 만한 것 같네요. 게다가 인세도 안 받는다고 하시니... 소문인지, 사실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