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문화재 홍원기의 예술세계
미디어신나라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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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구(白鷗)야 펄펄 나지 마라. 너 잡을 내 아니로다. 성상(聖上)이 바리시니 너를 좇아 예 왔노라. 오류춘광(五柳春光) 경(景) 좋은데 백마금편화류(白馬金鞭花遊) 가자." 벼슬을 버리고 자연으로 돌아간 지은이가 갈매기를 보고 말을 건네면서 아름다운 산수 풍경을 즐기는 내용을 가지고 있는 '백구사'는 조선시대 선비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가사(歌詞)이다. 궁중이나 상류 지식계급층의 음악인 정악의 한 부류인 가사는 시조, 가곡과 함께 학문에 정진하는 선비들이 음악을 몸소 익힘으로써 인격 수양을 다지는 방편으로 삼았던 조선시대 음악이다. 그러나 정악은 민속악이라 일컫는 농악, 시나위, 무악, 산조, 민요, 판소리에 비해 그리 대중적인 장르가 아니어서 폭넓게 불려지지 못했다. 이 정악이 좀더 확대된 것은 조선후기에 와서였다. 이 시기에는 선비뿐만 아니라 근대적 시민이었던 부유한 중인 계층에까지 활성화되었고, 덩달아 이 노래만을 부르는 전문 음악인도 탄생했던 것. 인간문화재 홍원기는 이 전통의 끝자락을 계승한 가인이었다. 남창가곡, 여창가곡, 가사, 시조의 대부분을 계승받았던 그는 국악계에 많은 전수자를 기른 스승이기도 했다.
1922년 서울에서 태어난 홍원기는 서울 청운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이왕직 아악부 양성소에 5기생으로 들어가 가야금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는 가야금을 배우면서도 가악에 남다른 욕구와 열정을 보였다. 아악부에 다닐 때 수업을 마치고는 따로 스승을 찾아다니며 소리를 배우곤 했다. 소남 이주환(1902∼1972)에게 정가를 이수받았고, 조선말기 기무별감을 지낸 최상욱에게 시조, 가사를 전수받았다. 그 뒤 그는 1941년 처음으로 서울 중앙방송국에서 시조를 녹음했고, 1946년 문교부가 주최한 전국음악경연대회에서 시조 2등, 가야금 1등을 차지한 바 있다. 이듬해 제2회 대회 때에는 시조와 가사 부분에서 1등에 입상하며 출중한 능력을 과시했다.
'정가'라는 잘 알아주지 않는 음악을 평생 동안 헤쳐온 그는 청아한 기교와 미성으로 국악의 맥을 담담하게 메워왔다. 또한 그는 1960년대 '창작 국악'의 시대를 맞아 작곡에도 큰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관악 6중주', 관현악 모음곡 '추모의 정', '바다의 향수' '산장의 추억' 등의 곡들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는 1975년 중요무형문화재 제30호 남창가곡 예능보유자로 지정받으면서 이제껏 해왔던 '소리'를 인정받기에 이른다.
그가 단정히 정좌해 청아한 음성으로 부르는 정가를 듣고 작곡가 알랜 호바네스는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오페라보다 아름다운 천악(天樂)"이라고 했다. 또 사람들은 그가 한참 활동하던 시절에 그를 두고 '살아있는 왕가의 마지막 가객'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런 그가 타계한 지도 어느덧 10여 년에 이른다. '홍원기의 예술세계'는 조선시대 선비의 정신을 가사, 가곡, 시조에 오롯이 새겨놓았던 명인을 추모하는 음반이다.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소치는 아희놈은 상기아니 일었느냐/재넘어 사래긴밭을 언제갈려 하느니"의 유명한 가곡으로 시작하는 이 음반은 홍원기가 평생 동안 일궈왔던 정악의 진수를 감상할 수 있다. 이 음반의 음원은 그가 스튜디오에서 정식으로 녹음한 것 외에 공연장의 각종 공연실황, 제자들을 가르치며 부르던 노래 등을 모아 수록한 것이다. 때문에 몇몇 음원은 음질 상태가 그리 좋은 편은 아니다. 그러나 가만히 음에 귀기울이면 역사와 자연, 선비 정신이 오롯이 마음속에 새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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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스플로러 시리즈-아프리카 음악

지금의 월드 뮤직을 있게 한 역사적인 기획 시리즈


지금처럼 월드 뮤직이 어엿하게 음악의 한 장르로 인정받게 된 것은 그야말로 논서치(Nonesuch) 레이블의 공이 크다. 이 레이블에서 1967년부터 발매하기 시작한 '익스플로러 시리즈'가 바로 월드 뮤직이라는 단어를 세상에 탄생시킨 주인공이다. 1967년 첫 발매를 시작으로 '익스플로러 시리즈'는 갖은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제3세계 음악을 세계에 알려왔다. 1980년대까지 이어진 이 시리즈는 서양의 클래식이나 팝 음악이 세상의 '모든' 음악이 아니라 이 음악들도 세계의 '일부'일 뿐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처음으로 보여주었다. 그런 까닭에 이 시리즈의 발매는 서구인에게 일종의 문화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자신이 속한 세계 이외에는 문화라는 것이 전혀 존재하지 않을 것이며, 존재하더라도 아주 미개하게 남아 있을 거라는 믿음이 음반을 접하고 산산이 깨졌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아프리카나 남태평양, 아시아 등지에서 들려오는 새로운 음악이 포화상태인 서양음악에 조그마한 대안으로 인정된 것도 이 시리즈가 쌓은 공헌이다.
서구세계에 숨통 역할을 톡톡히 한 이 시리즈는 서양인의 눈으로 판단하지 않고 각 민족의 시각으로 그들의 문화를 바라본 일종의 인류학 보고서이다. 민속음악 학자와 음반 프로듀서가 직접 현장에 뛰어들어 채록한 음원이 바탕이 됐고, 당연히 거기에는 생생한 현장음이 포착되어 있었다. 간략하지만, 꼼꼼하게 적은 내지도 이 시리즈가 단지 유럽문화가 가장 위대한 문화라고 주장하는 앵무새가 아님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 오리지널 예술 작품을 커버 디자인으로 채택해 수많은 젊은 팬을 열광하게 만든 것도 이 시리즈의 진면목 중 하나이다(실제로 당시 논서치에서 나온 음반 커버를 수집해 집 곳곳을 장식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그런 음반이 재발매 되었다. 정말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1984년까지 92타이틀을 끝으로 막을 내린 그야말로 역사적인 음반들이 조금씩 재발매 되었고, 국내에 한정 수량이 수입되었지만, 아쉽게도 곧 절판되고 말았다.

아프리카의 야성적인 단면을 원형 그대로

근 20년 만에 다시 선보인 아프리카 음악 열세 타이틀은 1969년에서 1983년 사이의 음원을 모아놓은 것이다. 여기에는 가나, 누비아, 짐바브웨, 브룬디, 브루키나 파소, 니제르, 말리, 우간다, 자이레, 케냐, 탄자니아 등 아프리카 전지역의 음악이 각각의 음반에 두루 담겨 있다. 또 소개된 장르도 지역만큼 다양하다. 아프리카 특유의 주술 음악과 전례 음악은 물론 므비라(손 피아노), 마림바, 캐러비시 실로폰 등으로 연주된 각종 타악 음악, 그리고 아프리카의 생생한 동물과 자연음이 폭넓게 펼쳐져 있다.
주목할 만한 타이틀을 몇 개 살펴보면 우선 두미사니 아브라함 마라이레를 일약 세계적인 연주가로 알린 '짐바브웨-아프리카의 므비라'를 꼽을 수 있다. 므비라 연주자이면서 보컬리스트인 마라이레의 야릇한 울림을 주는 즉흥연주와 강렬한 보컬이 어우러져 있는 음반에서 므비라의 소리에 매력을 느꼈다면, '짐바브웨-므비라의 영혼'에서 좀더 깊이 있는 므비라의 울림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또 1969년 아프리카 음악으로는 가장 먼저 출시된 '가나-하이 라이프와 대중음악'도 주목할 만하다. 가나라는 국가 이름이 붙었지만, 음악은 민족과 국가보다는 경향성에 더 치중해 있다. 바로 1960년대 후반의 아프리카 대중음악이 그 주인공인데, 나이트클럽이나 콘서트 현장에서 자주 연주되는 음악을 모아놓은 것이다. 그런 만큼 다른 타이틀에 담겨 있는 토속 음보다는 좀더 서양화된 음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악기 또한 색소폰, 더블베이스, 트럼펫, 기타 등 서양악기가 주로 사용되고 있다. 그렇지만 이 안에 담겨 있는 칼립소나 블루스 등이 완전히 서양화된 음악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서양악기를 쓰고 있지만, 리듬만큼은 아프리카적이며 아프리카 민속음악을 다소 현대적으로 편곡해 들려주고 있을 뿐이다.
'아프리카의 동물들-정글의 소리, 초원과 수풀'에는 아프리카의 야성적인 단면을 원형 그대로 담은 음반이다. 첫 트랙부터 표범의 거친 울음이 들리고, 이어서 아프리카 원숭이, 바위 너구리, 사자, 코끼리의 생생한 소리가 각 트랙에서 울려 나온다. 딱히 음악이라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야생 동물 또한 아프리카 대륙의 주인공이며 이 동물들이 인간과 어울려 살아가고 있다는 단순한 진리를 담고 있는 음반이다. 이 밖에도 아프리카 정 중앙에 자리잡고 있는 부르키나 파소의 '초원의 리듬' '사바나 리듬'과 '동아프리카-전례음악과 민속음악' '서아프리카-드럼, 성가 그리고 연주음악' 등도 아프리카의 생생한 소리를 소개하고 있다는 점에서 월드 뮤직 입문자나 애호가에게 안성맞춤의 음반이다.
끝으로 전설적인 '익스플로러 시리즈'를 기획한 테레사 스턴이라는 인물을 간단히 소개한다. 지난 2000년 세상을 등진 그녀는 1965년부터 1979년까지 논서치에 재직하며 현대음악, 고음악, 월드 뮤직 등 주류에서 벗어난 음악을 발굴해 세계문화를 한 단계 끌어올린 공헌을 했다. 1927년 브루클린 태생이며, 열두 살 때 NBC 심포니와 협연을 할 정도로 유능한 피아니스트이기도 했다. 그러나 곧 피아니스트의 꿈은 버렸지만, 음반 기획자로서 그녀의 이름은 길이 남을 만하다. 논서치에서 2002년 그녀가 연주한 음원과 기획한 음원을 모아 추모 음반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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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물만두 > 줄리언 반스의 작품들

마틴 에이미스는 돈(Mondy)으로 타임지 선정 백대 영문소설에 뽑힌 작간데 번역된 책이 없다. 아님 절판되었거나. 뭐, 꼭 선정된 작가의 작품을 봐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이 작가와 즐리언 반즈가 앙숙이었다는데 비교할 기회가 없으니 안타깝다는 얘기다. 반면 줄리언 반즈의 작품은 많으니...

 『내 말 좀 들어봐』는 런던에 사는 30대 초반의 남녀 세 명이 엮어 내는 사랑 이야기로 프랑스의 페미나상을 받은 작품이다. 스튜어트와 결혼한 여주인공 질리언, 스튜어트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질리언을 사랑하는 올리버, 이들의 불륜의 사랑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스튜어트. 그리고 이 세 명의 등장인물들은 반스 특유의 언어 조종술에 의해 고백적 언술로써 독자의 참여를 유도한다. 이들의 상반된 관점을 통해 독자들에게 진리에 대한 태도와 대화 부재의 인간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이 소설은, 반스가 재치와 장난스러운 테크닉의 거장임을 다시 한 번 증명하고 있다.

 

 영국의 현존 작가 중 가장 존경받는 작가 중 한 사람이자 유럽 문학을 대표하는 거장 줄리언 반스의 장편소설. 외형적으로는 아마추어 문학 애호가인 영국의 어느 퇴역 의사가 플로베르에게 영감을 주었다고 전해지는 박제 앵무새를 찾는 짧은 여정을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박제 앵무새를 모티프로 풀어 나가는 플로베르에 대한 탐구는 시공을 초월하고, 과거와 현재뿐 아니라 플로베르 작품 속 시간까지 함께 아우르며 진행된다. 전통적인 플롯 위주의 이야기 구조를 해체하고 플로베르의 작품과 발언에 근거한 의사 연대기, 플로베르 외전, 동물 열전, 플로베르를 받아들이는 현대인들의 우스꽝스러운 에피소드 등 만화경 같은 다양한 형식의 글을 통해 작가는 사실주의 소설의 대가의 초상을 어느 비평가나 전문가도 보여 주지 못한 방식으로 입체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은 단순히 창의적인 플로베르 평전에 머물지 않고, 예술의 자장 안에서 벌어지는 작가와 비평가와 독자 사이의 상호관계, 생활과 예술의 상관관계, 작가와 작품의 상관관계 등 예술 작품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인간 사회의 모든 양상을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그리고 있다.

 진 서전트란 여자의 일대기를 초년, 중년, 노년의 3부에 걸쳐 그리고 있다. 진은 1922년 출생해서 이 작품이 끝나는 해인 2021년까지 장수하고 있는 여자이지만, 이렇다 할 중요한 일은 하지 못한 아주 평범한 여자다. 1부 초년 시절의 진은 호기심 많은 어린이로 자라난다. 그리고 진은 영국의 전투기 조종사 프로서로부터 영국 해협을 건너 귀대할 때 오렌지빛 태양이 떠오르는 모습을 두 번이나 봤다는 경험담을 듣는다. 또 레슬리 아저씨와 함께한 여러 게임들과 그가 보여 준 마술들은 평범하고 따분한 어린 진의 생활에 새롭고 신기한 삶의 신비를 심어 주었다.
임무 수행중 죽음에 대한 공포에 사로잡혀 잠시 비행 중지 명령을 받고 진의 가족과 함께 유숙하고 있는 프로서는 자신이 집요하게 생각해 온 일, 즉 최고로 죽는 방법에 관해 진에게 설명한다. 그리고 실제 전쟁이 끝나고, 진은 프로서가 그의 말대로 한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태양을 향하여 수직상승하다가, 추락해 사망했다는 말을 듣는다. 삶에서 중요한 것은 사랑과 결혼이다. 성년의 문턱에 도달한 진은 경찰관인 마이클의 구애를 받고, 그와 결혼하고자 결심한다. 또 섹스에 무지했던 진은 결혼을 앞두고 현대적인 이웃 주부가 전해 준 책을 통해 무지를 극복하고자 한다. 그러나 그 책에 나오는 알 수 없는 언어들이 진을 더욱 혼란스럽고 불안하게 한다. 이런 언어들은 마이클과의 결혼 생활의 장래를 예고한다.
이 소설의 2부는 20년간의 결혼 생활과 이혼 후의 진의 삶, 여행, 지혜의 터득을 주로 묘사한다. 진이 결혼한 남자 마이클은 두 발, 어쩌면 두 눈까지도 모두 땅에 고착시키고 있는 그런 남자다. 태양을 응시하지도 않고 따라서 태양이 두 번 떠오르는 <평범한 기적>을 경험한 적도 없는 사람으로 진이 동경했던 사랑의 해답이 될 수는 없었다. 진은 마이클의 아내로서의 생활을 청산하고, 결혼 20년 만에야 얻은 아들 그레고리와 함께 스스로의 삶을 책임지는 독립된 여자로서의 길을 택한다. 처음에는 아들과 함께 이곳저곳 전전하는 삶을 살고 난 진은, 자신이 정한 <세계의 7대 불가사의>를 찾아 여행하기 위해 대륙에서 대륙으로 비행을 한다. 남편도 죽고, 자신도 은퇴의 나이가 되어 조용히 지나온 삶을 정리하고 자신과 자신의 세계에 대한 통찰의 여행을 떠난 것이다.
3부는 이제 99세가 된 늙은 진과, 레슬리 아저씨의 죽음 이후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힌 그레고리가 던지는 해답 없는 의문에 관한 것이다. 이제 60세가 된 진의 아들 그레고리는 죽음, 신, 삶의 신비 등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문제에 대한 집착을 보이며, 미래의 2021년 최첨단 컴퓨터 시대에 걸맞게 인간의 모든 지식을 수록한 GPC(다목적 컴퓨터)에 질문들을 입력한다. 그리고 TAT(절대 진리)라는 특수 프로그램에 형이상학적 문제에 대한 답을 구한다. 하지만 그가 컴퓨터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기대에 못 미치는 자료뿐으로, 해답이 어려운 질문에 대해서는 <현실적인 문제가 아닙니다>라는 짜증나는 거부 반응만 나타낼 뿐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이런 질문들에 대해 진은 자신의 소신껏 명료하게 대답해 준다. 그리고 아들 그레고리와 함께 비행기를 타고 프로서가 가르쳐 준 대로 태양을 응시하며, 태양이 지는 황홀한 모습을 구름 손가락 사이로 두 번씩이나 목격하는 행복을 경험하고, 사실상 그녀의 삶을 종결한다.

 영국의 현존 작가 중 가장 존경받는 작가 중 한 사람이자 유럽 문학을 대표하는 거장 줄리언 반스의 소설. 소비에트 연방과 동유럽 공산국가들이 몰락한 이후, 한 가상 국가에서 벌어지는 전 국가수반의 재판을 다루고 있는 『고슴도치』는 불가리아의 독재자 지프코프의 재판을 소재로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성들이 부엌에서 가지고 나온 각종 주방 기구들로 거대한 소음을 만들어 내며 거리를 행진한다. 도시 곳곳에서 위용을 자랑하던 옛 공산주의 영웅들의 조상은 이제 대좌에서 끌어내려져 폐차장으로 옮겨졌다. 공산주의가 몰락하고 새로운 체제로 전환되는 혼돈의 시기, 새로운 정부의 검찰 총장은 지난 33년간 정권을 휘둘렀던 독재자를 법정에 세운다. 역사상 유래가 없는 지난 체제의 수반에 대한 법적인 단죄. 온 국민의 관심을 집중시킨 이 거대한 재판은 텔레비전을 통해 전국에 중계된다. 스포츠 중계를 보듯이 재판을 관람하는 젊은이들과 이 모든 것에 귀를 닫고 소중히 간직한 레닌의 사진을 바라보며 공산주의의 복권을 꿈꾸는 노파. 구체제의 지도자와 새로운 세대의 지식인 사이의 계속되는 공방은 결국 행위를 정당화시키는 맹목적인 이념의 추구와 증거 조작, 적합한 법률의 부재로 인해, 점차 하나의 쇼로 변모한다.
불확실한 공산주의 재판의 기록
열린책들을 통해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줄리언 반스의 일곱 번째 장편소설,『고슴도치』는 동유럽 공산권 국가 지도자 중 35년의 최장기 집권 기록을 세운 불가리아 독재자 토도르 지프코프(1911~1998)의 재판을 소재로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프코프는 동구권의 몰락과 함께 1989년 말 대통령의 지위에서 쫓겨나고 공산당에서 추방된 인물로, 1990년 1월에 체포되어 2년의 재판 끝에 횡령죄로 7년형을 선고받았다. 이 소설이 1992년 불가리아에서, 그것도 영어가 아닌 불가리아어로 처음 출판된 특이한 역사를 가지게 된 것은 이러한 역사적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불가리아 소피아에서 라는 타이틀로 첫 출판된 이 소설은 발간 즉시 1만권이 팔리는 화제의 작품으로 떠올랐고 반스는 이를 계기로 직접 불가리아를 방문하기도 했다.
몰락한 구(舊)공산 체제를 대표하는 전 국가수반과 그에 맞서는 새로운 정부의 검찰 총장의 치열한 법정 투쟁과 그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혼란스러운 시대의 여러 가지 단면들을 놀랍도록 치밀하게 그려내고 있는 이 소설은 역사소설, 또는 정치소설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실제로 소설이 출간된 이후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의 사실적인 묘사에 찬사를 보냈다. 그러나 이 소설은 단순히 한 역사적 개인의 정치적 재판을 다룬 소설이 아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끊임없이 반복되는 이념의 붕괴와 재건, 새로운 정치 경제적 시스템에 대한 혼란과 세대간의 갈등은 사실 우리 모두의 역사이기도 하다. 독재자로 형상화된 구 정치체제에 대한 법적 단죄라는 소위 ‘과거사 재판’은 실제 우리의 역사에서도 여러 차례 반복되어 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드러난 과거에 대한 객관적인 인식이란 무엇이며, 누가, 어떻게 그것의 잘잘못을 가릴 것인가라는 문제 역시 소설의 그것과 닮아 있다. 『고슴도치』의 사실성은 <소비에트 연방의 가장 가까운 우방국>이라고 후무린 가상의 국가나 스치듯 언급한 <변화>에 영감을 주었을 것으로 잠작 되는 역사적 사실보다는 반복되는 이념의 붕괴와 재건, 그리고 객관화 할 수 없는 과거에 대한 문제의식에 있다고 할 것이다.
과거사 재판 혹은 텔레비전의 리얼리티 쇼
소설의 주인공 솔린스키는 잘못된 과거를 단죄한다는 확실한 신념을 가지고 기소를 시작한다. 하지만 재판이 계속될수록 과거에 대한 그의 확신과 미래에 대한 자신감은 점차 흐려지고 만다. 객관적 법률의 부재와 증거 부족, 전 국민적 공모의 분위기에 휩쓸려 재판은 점차 하나의 쇼로 전락하고 만다. 더욱이 재판이 텔레비전으로 중계된다는 설정을 도입함으로써 역사의 증인을 자처하는 다른 등장인물들 역시 관객의 위치로 밀려나게 된다. 검사와 피고인, 판결을 내린 재판관, 처음부터 끝까지 재판을 지켜본 새로운 세대의 젊은이들, 여전히 과거의 환상에서 빠져나오길 거부하는 노파, 그 누구도 이 재판을 통해서 답을 얻지 못한다. 『고슴도치』가 단순한 정치소설이 아니라 20세기 포스트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작가 줄리언 반스의 작품을 확인하게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권말에 함께 실린 단편 「웨딩 케이크」는 반스 특유의 아이러니가 돋보이는 작품으로, 사회주의 치하의 작가의 운명을 재치 있게 조명하고 있다. 망명한 루마니아 작가가 이야기하는 스탈린주의에 대한 작가적 저항으로서의 <웨딩 케이크 소설>, 공산주의의 위업을 찬양하는 거대한 서사적 다큐멘터리를 통해 그것을 비웃으려는 이 대담한 시도는 결국 씁쓸한 웃음을 자아내는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 짧지만 반스의 매력을 한껏 느낄 수 있는 소설이다.

 완벽하게 조율된 내러티브, 읽는 이를 사로잡는 강한 흡인력의 소설
반즈의 소설은 빠른 속도의 문체로 독자를 압도하면서도, 지나쳐버리기 쉬운 일상적 감정을 빠짐없이 잡아내어 그 속으로 서서히 몰입시킨다. 이 작품에서도 그는 인간의 이성이 편집광적인 사랑과 질투에 무너지는 과정을 잔인할 정도의 느린 시선으로 관찰하면서, 치밀한 구성과 빈틈없이 짜여진 내러티브로 그려내고 있다. 또한 많은 남자 관계를 가지고 있었던 연인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데도, 그 관계들의 역사만큼은 광적인 질투의 대상이 된다는 설정이 매우 흥미롭다. 재미있지만 슬프고 암울하기까지 한 반즈 특유의 유머와 스타일이 잘 살아 있다. 너무나도 사실적이어서 에세이적인 요소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질문까지도 받는 그는, 그것이 자신의 의도적인 논픽션적 스타일 때문이라고 말하고, 자신의 소설의 대부분은 허구일 뿐이라고 말한다. 반즈에게는 다른 작가들에게서는 좀처럼 찾기 힘든 특징이 있다. 먼저 그의 모든 소설은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를 정도로 스릴과 서스펜스가 넘치는 이야기 전개로 독자들을 사로잡으면서도, 동시에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소재들을 반즈 특유의 유머와 날카롭고 독창적인 통찰로 빚어내어 비평가들의 극찬을 받아왔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그녀가 나를 만나기 전>은 이러한 반즈의 세계를 잘 보여주는 반즈 문학의 정수로 손꼽히고 있다.

 항해와 발견 의 역사의 주제를 연결하는 것에는 소설에 대해서 공부되고 이야기된 바네스의 된 것이 있다. 소설 적이고 및 역사적 이야기의 혼합물은 바네스에게 역사의 웅대한 범위 내의 우리의 상호 작용 그리고 배치를 설명하는 응답을 위해 역사의 우리의 아이디어, 사실의 우리의 해석, 및 우리의 수색을 문제시하는 기회 제공한다.
"역사는 무슨 일이 일어났느가가 아니다. 역사는 무슨 사학자가 저희에게 말하는 정당하다. 본, 계획, 운동, 확장, 민주주의의 행진이 있었다; 태피스트리, 사건의 교류, 설명할 수 있는 복잡한 설화, 연결해 이다. 1개의 좋은 이야기는 또 다른 한개에 지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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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밤문화 - 낮과 다른 새로운 밤 서울로의 산책 서울문화예술총서 1
김중식.김명환 지음 / 생각의나무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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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기준으로 근대와 현대를 나눴는지 이해할 수는 없지만, 1970년대까지를 근대로 그 이후를 현대로 설정해 두 명의 기자들이 이 책을 지었다. 전문 연구자가 아니라 신문기자들이 책을 쓴 탓에 깊이는 없는 편이다. 심각한 건 '밤문화'가 제대로 조명되어 있지 않다는 데 있다. 신문이나 주간지에 연재 기사를 쓰는 형식으로 나열만 되어 있을 뿐 '문화'에 대한 조명은 없다. 어디 어디에서 주로 술을 마셨고, 어디가 무엇으로 유명했으며, 시대별로 이런 게 있었다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런 것들은 누구나 예측 가능하고, 또 누구나 아는 것이다. 시대를 조명한 책이나 여러 문화 관련서를 보면 다 나와 있는 얘기인데, 이 책은 그런 '사실'을 다시 나열하고 있을 뿐이다. 곧 왜 '밤문화'를 조명하고 있는지를 저자 자신도 모르고 있는 듯하다. 더구다 서울만의 밤문화가 나타나 있지도 않다.

특히 근대 편을 쓴 저자는 '여성들이 밤에 음란하게 논다'는 옛 신문기사를 그대로 받아 적고 있다. 지금도 홍대 앞 거리에 여성들이 외국인들과 논다는 식의 기사들이 종종 등장하는데, 저자는 왜 이런 기사가 문제가 되는지에 대한 비판 정신이 없는 듯하다. 그런 시각을 곧이곧대로 인용하고 있으니, 여성의 밤문화는 흥미거리로 전락했고, 남성 위주의 술자리 문화만을 말하고 있을 뿐이다. 밤풍경은 보여주었을지 모르겠으나 문화는 보여주지 못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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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린 쇠잡이이자 설장고 명인의 옹골찬 예술혼


1986년 36세의 나이로 자신의 아파트에서 넥타이로 목을 매고 말았던 김용배. 그는 유서도 남기지 않고 부패한 시체로 발견되었다. 시체 앞에는 ‘無’자 열 다섯 개가 쓰여진 액자가 걸려 있었고, 평소 애지중지 아끼던 꽹과리는 깨진 채 베란다에 버려져 있었다. 한 연주가의 절망적인 죽음을 상징하는 이 사건은 많은 사람들을 충격 속으로 몰아넣기에 충분했다.

“자네 먼저 갈라는가/쨍거랑 맑은 소리 맑고도 맑은 소리 자네 먼저 갈라는가/우리 모두 소리 찾아 몸고생 마음 고생 같이도 하였거늘/어찌 진정 자네 먼저 갈라는가/…/정히 가려거든 소리나마 심지말지/쨍거랑 맑은 소리 그마저도 가져가지/어허, 자네 홀로 그리 떠나는가/…/이 세상 흙탕 세상 그 안에 던져 지어/구르고 또 구르며 자네 할 일 해왔는데/뎅그러니 놓고 간들 누구 어찌 붙잡을까…”

그가 죽고난 뒤 그의 친구들이 만든 추모사는 그가 국악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얼마나 큰 것이었나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1955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나 남사당패의 일원으로 전국을 떠돌아다녔던 그는 1978년 공간사랑에서 김덕수, 이광수, 최종실 등과 모여 ‘웃다리 풍물’을 시작으로 ‘호남우도’ 가락을 발표하고 정식으로 사물놀이를 세상에 내놓았다.

젊은 나이에 이미 예술적 경지를 보여줬던 김용배는 그러나 늘 김덕수의 그늘에 갇혀 있었다. 함께 사물놀이 활동을 하며 우열을 가리기 힘든 연주 능력을 보여왔으나 항상 김덕수보다 한 수 아래로 평가된 것이다. 그래서 당시에 사람들은 이들이 연주하는 모습을 두고 “김덕수와 김용배가 신들린 듯 장단을 몰아갈 때, 서로가 지지 않으려고 피튀기는 싸움을 벌이는 것 같다”고 묘사하기도 했다. 선천적으로 안정된 김덕수의 장구 소리와 김용배의 거친 듯한 쇳소리는 밀고 당기며 감싸안는 조화를 이루며 당대의 음악계를 단숨에 사로잡았다. 곧 두 사람은 경쟁관계이면서도 서로가 없어서는 안 되는 파트너이기도 했던 것이다.


설장고에 스며든 굿거리 철학


그러나 둘은 서로의 음악적 견해가 달랐다. 김덕수가 전통적인 가락을 재창조하면서 대중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김용배는 완벽한 재창조를 한 뒤에 대중에게 다가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같은 마찰에 의해 결국 김용배는 1984년 사물놀이패를 떠나 국립국악원 수석 상쇠로 자리를 옮기게 된다.

그뒤 김용배는 제 자리를 잡지 못하며 방황한다. 틀에 박힌 국립국악원은 남사당패에서부터 자유롭게 생활했던 김용배에게 애초부터 어울리지 않은 곳이었다. 이론을 전공한 사람들과의 갈등도 있었고, 다른 단원들이 그의 실력을 미처 받쳐주지 못한 탓도 있었다. 그러나 한 연주가의 절망을 이런 단순한 사실에 의해 설명하기는 곤란할 것이다. 알려진 사실이 그의 모든 정신세계를 설명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김용배 설장고 가락 모음’(신나라 뮤직)은 전통의 끝자락에 서서 진정한 우리 가락을 되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그의 옹골찬 예술혼을 담고 있다. 지금까지 신들린 쇠잡이로서의 면모만 알려져 있었으나, 이 음반에서는 ‘설장고 명인’으로서의 김용배를 조명하고 있다.

특히 이 음반은 그가 생전에 스스로 녹음한 테이프에서 발췌한 음원을 음반화한 것으로 그가 개인적으로 품고 있던 가락을 생생하게 재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수록곡은 사물놀이패에서 함께 활동했던 이광수가 김용배를 기리는 단가 ‘죽장집고’와 ‘친구 용배를 기리며’로 시작해 ‘설장고 가락-안대미(장고를 일컫는 남사당패의 곁말) 맞춤’과 ‘태평소 시나위’를 거쳐 이광수의 ‘회심곡’으로 끝이 난다. 김용배는 이 음악을 녹음하면서 각각의 장단에 ‘굿거리, 변형의 형태’ ‘굿거리, 역의 과정’ 등 수수께끼와 같은 말을 적어놓았다. 김용배는 다스림, 굿거리, 오방진 가락 등 자유롭게 가락을 오가며, 자신의 고뇌와 신명을 음악 속에 표현한다. 또 자진몰이, 덩덕궁이, 영남지역의 조판조 가락, 영산다드래기 등을 연달아 연주하며 설장고에 스며든 굿거리에 대한 철학을 들려준다. ‘설장고 가락 2중주’에는 김용배가 홀로 연습실에서 가락을 연주하고 있을 때 이광수가 가세해 연주한 것이다. 변화무쌍하게 전개되는 음 속에 자연스럽게 즉흥이 개입됐고, 서로 충돌을 일으키는 듯하지만 결국에는 조화라는 말로 융화된다는 느낌이 드는 곡이다. 이광수가 ‘넋두리’에서 “김용배의 장고 가락이 남아 있는 유일한 테이프를 후세에 전하고 저승에까지 이르러야 한다”고 말하고 있듯이 이 음반은 불우한 처지에 맞서 끊임없이 자신을 연마해 예술로 승화시켰던 김용배의 넋을 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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