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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문화재 홍원기의 예술세계
미디어신나라 / 2001년 4월
평점 :
품절

"백구(白鷗)야 펄펄 나지 마라. 너 잡을 내 아니로다. 성상(聖上)이 바리시니 너를 좇아 예 왔노라. 오류춘광(五柳春光) 경(景) 좋은데 백마금편화류(白馬金鞭花遊) 가자." 벼슬을 버리고 자연으로 돌아간 지은이가 갈매기를 보고 말을 건네면서 아름다운 산수 풍경을 즐기는 내용을 가지고 있는 '백구사'는 조선시대 선비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가사(歌詞)이다. 궁중이나 상류 지식계급층의 음악인 정악의 한 부류인 가사는 시조, 가곡과 함께 학문에 정진하는 선비들이 음악을 몸소 익힘으로써 인격 수양을 다지는 방편으로 삼았던 조선시대 음악이다. 그러나 정악은 민속악이라 일컫는 농악, 시나위, 무악, 산조, 민요, 판소리에 비해 그리 대중적인 장르가 아니어서 폭넓게 불려지지 못했다. 이 정악이 좀더 확대된 것은 조선후기에 와서였다. 이 시기에는 선비뿐만 아니라 근대적 시민이었던 부유한 중인 계층에까지 활성화되었고, 덩달아 이 노래만을 부르는 전문 음악인도 탄생했던 것. 인간문화재 홍원기는 이 전통의 끝자락을 계승한 가인이었다. 남창가곡, 여창가곡, 가사, 시조의 대부분을 계승받았던 그는 국악계에 많은 전수자를 기른 스승이기도 했다.
1922년 서울에서 태어난 홍원기는 서울 청운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이왕직 아악부 양성소에 5기생으로 들어가 가야금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는 가야금을 배우면서도 가악에 남다른 욕구와 열정을 보였다. 아악부에 다닐 때 수업을 마치고는 따로 스승을 찾아다니며 소리를 배우곤 했다. 소남 이주환(1902∼1972)에게 정가를 이수받았고, 조선말기 기무별감을 지낸 최상욱에게 시조, 가사를 전수받았다. 그 뒤 그는 1941년 처음으로 서울 중앙방송국에서 시조를 녹음했고, 1946년 문교부가 주최한 전국음악경연대회에서 시조 2등, 가야금 1등을 차지한 바 있다. 이듬해 제2회 대회 때에는 시조와 가사 부분에서 1등에 입상하며 출중한 능력을 과시했다.
'정가'라는 잘 알아주지 않는 음악을 평생 동안 헤쳐온 그는 청아한 기교와 미성으로 국악의 맥을 담담하게 메워왔다. 또한 그는 1960년대 '창작 국악'의 시대를 맞아 작곡에도 큰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관악 6중주', 관현악 모음곡 '추모의 정', '바다의 향수' '산장의 추억' 등의 곡들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는 1975년 중요무형문화재 제30호 남창가곡 예능보유자로 지정받으면서 이제껏 해왔던 '소리'를 인정받기에 이른다.
그가 단정히 정좌해 청아한 음성으로 부르는 정가를 듣고 작곡가 알랜 호바네스는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오페라보다 아름다운 천악(天樂)"이라고 했다. 또 사람들은 그가 한참 활동하던 시절에 그를 두고 '살아있는 왕가의 마지막 가객'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런 그가 타계한 지도 어느덧 10여 년에 이른다. '홍원기의 예술세계'는 조선시대 선비의 정신을 가사, 가곡, 시조에 오롯이 새겨놓았던 명인을 추모하는 음반이다.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소치는 아희놈은 상기아니 일었느냐/재넘어 사래긴밭을 언제갈려 하느니"의 유명한 가곡으로 시작하는 이 음반은 홍원기가 평생 동안 일궈왔던 정악의 진수를 감상할 수 있다. 이 음반의 음원은 그가 스튜디오에서 정식으로 녹음한 것 외에 공연장의 각종 공연실황, 제자들을 가르치며 부르던 노래 등을 모아 수록한 것이다. 때문에 몇몇 음원은 음질 상태가 그리 좋은 편은 아니다. 그러나 가만히 음에 귀기울이면 역사와 자연, 선비 정신이 오롯이 마음속에 새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