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린 쇠잡이이자 설장고 명인의 옹골찬 예술혼


1986년 36세의 나이로 자신의 아파트에서 넥타이로 목을 매고 말았던 김용배. 그는 유서도 남기지 않고 부패한 시체로 발견되었다. 시체 앞에는 ‘無’자 열 다섯 개가 쓰여진 액자가 걸려 있었고, 평소 애지중지 아끼던 꽹과리는 깨진 채 베란다에 버려져 있었다. 한 연주가의 절망적인 죽음을 상징하는 이 사건은 많은 사람들을 충격 속으로 몰아넣기에 충분했다.

“자네 먼저 갈라는가/쨍거랑 맑은 소리 맑고도 맑은 소리 자네 먼저 갈라는가/우리 모두 소리 찾아 몸고생 마음 고생 같이도 하였거늘/어찌 진정 자네 먼저 갈라는가/…/정히 가려거든 소리나마 심지말지/쨍거랑 맑은 소리 그마저도 가져가지/어허, 자네 홀로 그리 떠나는가/…/이 세상 흙탕 세상 그 안에 던져 지어/구르고 또 구르며 자네 할 일 해왔는데/뎅그러니 놓고 간들 누구 어찌 붙잡을까…”

그가 죽고난 뒤 그의 친구들이 만든 추모사는 그가 국악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얼마나 큰 것이었나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1955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나 남사당패의 일원으로 전국을 떠돌아다녔던 그는 1978년 공간사랑에서 김덕수, 이광수, 최종실 등과 모여 ‘웃다리 풍물’을 시작으로 ‘호남우도’ 가락을 발표하고 정식으로 사물놀이를 세상에 내놓았다.

젊은 나이에 이미 예술적 경지를 보여줬던 김용배는 그러나 늘 김덕수의 그늘에 갇혀 있었다. 함께 사물놀이 활동을 하며 우열을 가리기 힘든 연주 능력을 보여왔으나 항상 김덕수보다 한 수 아래로 평가된 것이다. 그래서 당시에 사람들은 이들이 연주하는 모습을 두고 “김덕수와 김용배가 신들린 듯 장단을 몰아갈 때, 서로가 지지 않으려고 피튀기는 싸움을 벌이는 것 같다”고 묘사하기도 했다. 선천적으로 안정된 김덕수의 장구 소리와 김용배의 거친 듯한 쇳소리는 밀고 당기며 감싸안는 조화를 이루며 당대의 음악계를 단숨에 사로잡았다. 곧 두 사람은 경쟁관계이면서도 서로가 없어서는 안 되는 파트너이기도 했던 것이다.


설장고에 스며든 굿거리 철학


그러나 둘은 서로의 음악적 견해가 달랐다. 김덕수가 전통적인 가락을 재창조하면서 대중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김용배는 완벽한 재창조를 한 뒤에 대중에게 다가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같은 마찰에 의해 결국 김용배는 1984년 사물놀이패를 떠나 국립국악원 수석 상쇠로 자리를 옮기게 된다.

그뒤 김용배는 제 자리를 잡지 못하며 방황한다. 틀에 박힌 국립국악원은 남사당패에서부터 자유롭게 생활했던 김용배에게 애초부터 어울리지 않은 곳이었다. 이론을 전공한 사람들과의 갈등도 있었고, 다른 단원들이 그의 실력을 미처 받쳐주지 못한 탓도 있었다. 그러나 한 연주가의 절망을 이런 단순한 사실에 의해 설명하기는 곤란할 것이다. 알려진 사실이 그의 모든 정신세계를 설명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김용배 설장고 가락 모음’(신나라 뮤직)은 전통의 끝자락에 서서 진정한 우리 가락을 되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그의 옹골찬 예술혼을 담고 있다. 지금까지 신들린 쇠잡이로서의 면모만 알려져 있었으나, 이 음반에서는 ‘설장고 명인’으로서의 김용배를 조명하고 있다.

특히 이 음반은 그가 생전에 스스로 녹음한 테이프에서 발췌한 음원을 음반화한 것으로 그가 개인적으로 품고 있던 가락을 생생하게 재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수록곡은 사물놀이패에서 함께 활동했던 이광수가 김용배를 기리는 단가 ‘죽장집고’와 ‘친구 용배를 기리며’로 시작해 ‘설장고 가락-안대미(장고를 일컫는 남사당패의 곁말) 맞춤’과 ‘태평소 시나위’를 거쳐 이광수의 ‘회심곡’으로 끝이 난다. 김용배는 이 음악을 녹음하면서 각각의 장단에 ‘굿거리, 변형의 형태’ ‘굿거리, 역의 과정’ 등 수수께끼와 같은 말을 적어놓았다. 김용배는 다스림, 굿거리, 오방진 가락 등 자유롭게 가락을 오가며, 자신의 고뇌와 신명을 음악 속에 표현한다. 또 자진몰이, 덩덕궁이, 영남지역의 조판조 가락, 영산다드래기 등을 연달아 연주하며 설장고에 스며든 굿거리에 대한 철학을 들려준다. ‘설장고 가락 2중주’에는 김용배가 홀로 연습실에서 가락을 연주하고 있을 때 이광수가 가세해 연주한 것이다. 변화무쌍하게 전개되는 음 속에 자연스럽게 즉흥이 개입됐고, 서로 충돌을 일으키는 듯하지만 결국에는 조화라는 말로 융화된다는 느낌이 드는 곡이다. 이광수가 ‘넋두리’에서 “김용배의 장고 가락이 남아 있는 유일한 테이프를 후세에 전하고 저승에까지 이르러야 한다”고 말하고 있듯이 이 음반은 불우한 처지에 맞서 끊임없이 자신을 연마해 예술로 승화시켰던 김용배의 넋을 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