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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살 것인가 - 우리가 살고 싶은 곳의 기준을 바꾸다
유현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18년 5월
평점 :
이 책의 부제는 '우리가 살고 싶은 곳의 기준을 바꾸다'인데
책 전반 분위기는 인류의 역사의 흐름을 도시와 건축의 시각으로 재 해석한 이야기로 보인다.
인류 생활의 '의식주' 중 <주> 모습이 인류 생활 전반에 크게 영향을 미친 것에는 분명하다. 물론 인간의 의식변화가 변저 와서 <주>의 생활이 바뀐 건지, <주>의 변화로 인해 인간의 의식변화가 시작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직업 상 짧게는 1년 길게는 3~5년 정도의 IT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보니 프로젝트 단위로 일터가 바뀐다. 아무래도 대규모 SI프로젝트가 통신, 금융 등 에서 10년에서 15년 주기로 생기는 경향이 있어 대부분 프로젝트는 서울이다. 긴 세월 동안 프로젝트를 하는 동안 세 번 정도 서울 아닌 곳에서 프로젝트를 해 본 적이 있는데, 그렇게 장기적으로 다른 도심에 있어 본 경험도 나름 신선했다.
이 세 번 중 K프로젝트는 장소가 분당이라 말이 서울이 아닌거지, 서울과 바로 인접한 곳으로 거리상은 크게 멀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런데, K프로젝트 참여 후 6~7개월 지났을 무렵, 어느날, '어? 왜 이러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전투적으로 일을 할 프로젝트 단계로 많이 예민해져 있을 기간인데 이상하게도 그렇게 조바심이 느껴지지 않고 fact중심으로 나름 차분하게 (그리고 즐겁게)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은 '나의 변화'가 느껴져서이다.
그러면서 한 가지 떠오른 것은, 언제부터인가 출근할 때 서울을 벗어나서 분당으로 들어서면서 넓어진 길, 노란 은행나무, 나즈막한 건물들이 갑자기 눈에 들어 오면서 마음이 안정적으로 바뀌고 있음을 알았고, 반면 퇴근할 때 서울로 진입하면서 빽빽한 고층 빌딩, 많은 차로 인해 가슴이 좀 답답하다 느꼈던 순간순간 기분이었다.
아마도 출퇴근 길 창밖으로 펼쳐지는 모습에 의해 나의 심리적 변화까지 서서히 연결되어 기본적인 마음의 안정감을 가지게 되어 그러지 않았을 까 하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
그러면서, 아.. 내가 사는 공간, 내가 걷는 공간이 알게모르게 내 심리적 안정감에 크게 영향을 끼쳤구나를 알았던 것 같다. 한편으로는 내가 왜 여행을 좋아하는지, 나즈막한 건물이 있는 도시를 좋아하는지, 자연이 가득한 공간을 좋아하는지도 설명이 가능해졌다.
책을 읽다 보니, 내가 꿈꾸는 도시에 대해 저자가 하나씩 언급해 주고 있음도 알았다. 건축물에 대해, 공원과 같은 공공장소에 대해, 도시에 대해 그 역사와 현재, 미래를 언급하며 '거기서 사는 사람' 중심으로 나아가야 할 개선점을 알려준다. 안타까운건, 실행이 되었으면 좋겠는데 현실적으로 규제나 정책으로 인해 어렵다는 점.
나이가 들면서 나도 어쩔수 없이 과거를 그리워 하게 된다. 그중에서 해외여행을 통해 깨달은 것이 있었다. 해외여행을 가서 그 나라의 문화, 역사가 가득한 관광지를 보고 집으로 돌아오면, 서울의 깨끗한 거리와 높은 건물들을 보게 되는데.. 이 또한 한국의 모습이지만 '우리의 역사'를 일상에서 보기가 참 힘들구나 싶었다. 그 이유를 6.25 탓이라고도 생각해보고, 새마을 운동의 여파라고도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
어린 시절 너무도 흔하게 돌아다녔던 좁은 골목, 돌이나 시맨트 담, 좁은 길과 작은 집이 소중한지 모르고, 새로 건물을 올리고 길을 만드는 수많은 세월동안 우리의 소중한 추억이 있던 과거의 흔적들 역시 우리의 역사인데 알게 모르게 사라져간 것을 알았다. '응답하라 시리즈'를 보며 과거의 향수에 빠지게 하는 것들이 당시의 옷, 음악, 각종 소품도 있지만.. 고무줄 뛰기, 말뚝밖기를 하고 놀았던 골목과 여름밤 수박을 먹고 더위를 식혔던 옥상이지 않았던가.
그래서 <보톡스 도시>가 많이 와 닿았다. 시간이 흘러서 나이를 먹어도 얼굴에 주름이라는 것을 남겨둬야 자연스럽듯이, 눈앞의 개발이익으로 낡은 것을 부수고 새로 짓는 것이 아니라 이 시대를 대표하는 건축물을 남기자는 저자의 말이 완전히 공감이 된다. 그리고, 이 시대를 대표하는 건축물은 '서민이 살았던 곳'이 아닐까. 내가 어릴 적 뛰어 다니던 좁은 골목과 낮은 집들이 있던 바로 그 건축물들..
반만년 역사를 가지고 있는 나라다.
경주를 방문하고, 경복궁을 가야만 그 역사를 접할 수 있게 하지말고,
내 발길이 닿는 곳에 10년전 과거의 모습, 또 얼마간 갔을 때 50년전 과거의 모습이 서로 어우러져 있는 도심의 모습이 더 친근하고 재미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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