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의 미학 오디세이 1 (20주년 기념판) - 에셔와 함께 탐험하는 아름다움의 세계 미학 오디세이 20주년 기념판 1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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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중세, 근현대의 시공간적 경계를 넘나들며 에셔, 마그리트, 피라네시의 작품과 함께 예술사와 철학사를 한눈에 그림으로써, 예술 체험이 삶에 대한 철학적 성찰로 나아가는 경험을 선사한다.

1권 ‘에셔와 함께 탐험하는 아름다움의 세계’에서는 자연주의적 양식과 기하학적 양식의 차이를 에셔의 작품을 들어 설명하고,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가상 대화를 통해 개념적 이해를 돕는다.

교보문고 제공

오랫만에 미술관련 책 읽었는데, 완전 내 취향 저격이다. <미학 오디세이>는 진중권씨가 저자로, 오랜기간 스테디셀러였으나 이제 읽었다. 오래전 미술관련 책을 탐독했던 시절이 있었으나 그때는 아이러니 하게도 이 책을 알지 못했다.

당시 <지식의 미술관>을 읽고 너무 재미있어서 다른 미술책들을 읽기 시작했다. 당시 나의 독서 방법은 도서관에 가서 미술책이 꽂혀 있는 책장에 가서 거기 꽂힌 책을 모조리 읽는 방식이었다. 특히 같은 책이 여러권 꽂혀 있는 경우는 인기작인 경우가 많아 가장 먼저 선택해서 읽었다. 프로젝트가 새로 시작할 때 마다 인근 도서관부터 찾아 다니는 습관이 있었고, 다행히 항상 근처에 대형도서관들이 있어서 풍족하게 책을 고를 수 있었다. 그런데 <미학 오디세이>는 도서관에서 영 찾아볼 수 없었다. 최근 유시민작가의 <글쓰기 특강>을 읽다가 추천 목록에 있어서 한권만 먼저 읽어 볼까 하고 주문을 했는데 솔직히 조금 망설이기는 했다. 아마도, 저자의 정치적 행보로 인한 선입견이 있어서 였던거 같다.

다읽고 난 소감으로는, '읽기를 잘했다'다.

책을 읽을 때 나의 가장 큰 즐거움은, 분명 특정 주제의 책이지만 '영역간 경계'가 없는 생각거리를 얻을 때다. 그런 의미에서 미학책이지만 그저 미술에만 한정하고 있지 않고 여러 영역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해줘 많이 반가웠다.

책의 제목은 '미학 오디세이'다.

'미학'은 철학의 한 분야로 아름다움을 대상으로 하는 학문이다. 즉 완성도가 높은 아름다움이 무엇인가를 분별하는 분야다. 미학에 대한 개념이 없는 내가 읽기에는 깊이가 있다. (내가 감히 미학에 대해 논할 수준이 아니기에)

그러면 저자는 왜 제목이름에 ''오디세이'를 붙였을까, 오디세이는 고대시인 호메로스가 트로이 전쟁의 영웅 오디세이의 모험을 다룬 대서사시로 '미학이 무엇인지를 찾아 떠나는 대 장정'을 뜻하고 싶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해 봤다.

1편은 에셔의 그림이 매 챕터 등장하여 무심한 듯 메시지를 던진다. 그리고 챕터 속에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대화가 등장하여 더더욱 내 흥미를 당겼다. 비록 온전히 이해를 못할 지언정 나도 껴서 이야기 하고 싶다라고 생각이 들 정도로...

에셔 작품은 과거에도 여러차례 본적이 있다.

판화작품에서 단골로 등장하지만 다른 판화와 많이 다르다. 일반적인 판화 작품은 눈에 보이는 장면을 판화로 만든경우가 많은데, 에셔 작품은 독특하게도 반복과 대칭을 활용하면서 이중적인 표현과 비현실적 구성으로 표현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소재는 일상에서 접하기 쉬운 새, 인간, 도마뱀 등으로 분명 현실을 반영하는 거 같으면서도 묘하게 공간을 틀어놔서 비현실적인 공간으로 만드는 거다. 처음에 에셔 그림을 봤을 때는 뭘 뜻하는지 잘 몰랐다. 단지 묘한 느낌을 주는 건 알겠다. 혹자는 삶의 주기나 윤회를 뜻한다라는 식으로 해석을 하기도 하는데, 나는 그저 그만의 독특한 세계에 감히 발을 들여 놓을 수가 없다.

그리고 등장하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은 서구미학의 시초라고도 불리우며 명문귀족 출신으로 정신을 강조하는 '이상주의자'이다. 본질이 존재하는 세계는 '이데아'이며 현실세계는 이데아에 대한 복사물로 유한하고 불완전한 곳이라고 이야기한다.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의사집안의 부유한 평민출신으로 정신 뿐 아니라 물질을 강조하는 현실주의자이다. 그러다 보니 인생의 목적은 '행복'이며 이를 추구하기 위해 '중용'을 강조한다.

스승과 제자의 만남이므로 아르스토텔레스는 존칭을 쓴다. 이리 다른 사상을 가진 이들의 대화이므로 투닥거리는 모습이 재미도 있지만, 대화를 이어가지 않고 급 마무리 하는 경우는 괜히 해학적이기도 했다.

에셔의 작품세계에 대한 이해도가 높거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에 대한 깊이가 있다면 이들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미학'과 연결해서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나의 무지함에 대한 아쉬움은 있다.

하지만, 어설프나마 미술 책들을 제법 읽은 경험으로 봤을 때 <미학 오디세이​>를 제일 먼저 읽었다면 나머지 책은 내 흥미를 덜 당겼을 거 같다. 미술책들이 많은 내용이 중복이 있지만, 다른 책들은 일반적으로 독자들이 읽기 편하게 적혀 있다면 <미학 오디세이​>는 생각을 하며 읽게 한다.

비유를 하자면 '추리소설'과 '클래식명작' 정도로 할 수 있을 까?

철학이 껴 있는 스타일을 내가 좋아해서 그럴 수 있겠지만, 여러번 읽어도 재미있을 내용이다. 솔직히 책의 내용을 내가 한번에 다 이해했다고 보기도 어려워 그렇테지만 그렇다고 어렵거나 스트레스 받는다가 아니라 다음에 또 다른 즐거움을 주겠구나 하는 반가움이 더 앞선다.

아이러니 하게도 책은 재미있게 읽었는데 아직도 '미학'이 뭔지 잘 모르겠다. 남은 두권을 다 읽는다고 온전히 이해할거 같지는 않다.

사실 '미학'이 뭔지를 알고 싶은게 아니라 뜻 그대로 어떤 것이 완성도 높은 아름다움인지 분별하는 눈을 가지고 싶다. 이건 '이론' 가지고 될 문제는 아니겠지..

그러고 보니 미술전시회 못간지도 오래됐다..한때 매주 주말 예술의 전당에 구경갔었는데..

자유로운 외출을 할 날을 꿈꾸면서, 당분간은 책으로 만족해야 겠다.

ps. '창의/예술적인 분야'로 갈수록 어떤 작품이 진정한 명작인가에 대한 의문이 든다.

한번은 '온라인 갤러리'에서 현시대 작가들의 작품들을 보며 좋은 작품을 골라본 적이 있다.

여러 마음에 드는 작품을 고른 후 한달이 지나 다시 그 그림들을 보는데, 이런.. 그중 대부분이 처음 봤을 때 처럼 구미에 당기지 않는다. 백화점에 쇼핑하러 가서 마음에 드는 옷을 봤는데, 다음에 다시 보니 그다지 사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 느낌?

반면 너무도 유명한 명화나 작품은 언제 봐도 그 느낌이 퇴색되지 않는다. 오히려 첫 대면에서 이 작품이 왜 그리 유명하지? 갸우뚱 했다가 볼수록 편안하게 와 닿는다.

과거 댄스곡 중 인기는 좋았지만 작품성은 낮은 것으로 여겼던 노래인 줄 알았는데, 나이가 들어서 들어보니 과거 내가 이리 좋은 노래를 잘못 폄하했구나 하는 경험도 비슷한 맥락이다.

과연.. 명작이란 무엇일까. 온전히 나의 경험과 나의 소신으로 '명작'이라고 받아들인 것일까, 아니면 전문가와 대중들의 심리를 내가 쫓아간 것일 까. <미학 오디세이>가 재미있게 느껴진 이유도 내가 스스로 판단한게 맞을까. 아니면 베스트셀러와 미학의 대가라는 명성을 먼저 접수한 후, 저자의 의식의 흐름을 그대로 수용해서 그리 느낀 것일까.

'미학'이 뭔지, 완성도 높은 아름다움을 구분하는 눈을 가질 수는 있는지는 결국 많은 작품을 보고, 다른이의 그림 평가도 들어 보고, 나의 평도 어설프게 해 보고 하면서 조금씩 깨워질거 같다.


https://blog.naver.com/jykang73/22210710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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