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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식탁
세오 마이코 지음, 김난주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가족이 가끔 멍에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나이가 들고 보니, 아니 어렸을 때도 느낀 거지만, 어른이라고 해서 엄마, 아버지가 덜 힘든 건 아니다. 자식인 사람들도 나름대로 힘들지만 생각해보고 겪어보면 부모라는 자리가 얼마나 힘들고 외로운 자리인지를 알게 된다.
사와코의 집은 독특한 집안이다. 아빠의 자살 사건 이후 자책감에 힘들어 하던 엄마는 집을 나가서 따로 살면서 왕래를 하고, 아빠는 아빠 자격을 내놓고 입시 준비를 선언한다. 머리 좋고 공부 잘했던 오빠는 대학 진학을 안 하고 농부가 되었고 그 중에서 사와코는 평범한 학생이며 이 모든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전혀 자연스럽지 않은 이들은 전혀 충돌이 없다. 충돌이 없는 집이라 더 문제라고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폭력적으로 폭발하는 것보다 가정의 유기적인 해체와 자발적인 스스로의 문제 해결로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
그런 것이 낯설지만 가정의 해체와 심각한 폭력성이 드러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이런 식으로의 접근도 시도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정서상 안 맞겠지만.
어쩜 이런 모순된 가정이었기 때문에 사와코는 평범한 오우라를 좋아하게 된 건지도 모른다. 전혀 독특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그 아이에게서 사람 냄새를 맡은 것은 아닐까.
사와코는 다시 한 번 시련을 만나지만 또 극복한다. 그리고 해체된 가정은 복구를 시작한다. 그런 해체가 있었기에 그 자리에 대한 소중함과 책임 회피는 문제 해결이 안 된다는 걸 알게 된 것일 것이다.
초등학교 때 아버지와 함께 낯선 곳에 갔던 적이 있다. 그때 난 어쩔 줄 몰라 아버지한테 의지했지만 아버지도 그곳이 처음이라 아무 것도 모르셨고 당황하셨다. 그때 알았다. 아무 것도 아닌 일이었지만 어른이 모든 걸 다 아는 건 아니라는 걸. 아버지는 솔직하게 말씀하셨다. “나도 처음 와서 모르겠는데?”그때 아는 척, 어른의 권위를 지키려 하셨다면 더 이상했을 것이다.
그 말씀이 아직까지 내 맘에 남아 있는 것은 가족이란 어른과 아이의 집합이 아니라 모르는 것은 서로 알려주며 공유하고 서로를 지켜주는 울타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일방적으로 지키고 베풀기만 하고 누군가는 일방적으로 보호받기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가정의 모습이 우리가 지향하는 진정한 가정의 모습이 아닐까...
민망하게 마지막에 울고 말았다. <전 일본을 눈물로 적신 감동의 성장소설>이라는 띠지의 문구에 콧방귀를 꼈는데 참... 눈물이 흘렀다. 사와코와 사와코의 가정이 행복해져서, 물론 지금도 행복하지만, 행복한 식탁에서 진정하게 오붓한 식사를 할 수 있기를 바란다. 간결하면서도 썩 괜찮은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