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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럿 피쉬
오오사키 요시오 지음, 김해용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6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살아오면서 내 나이가 야마자키의 나이 비슷하니까 나도 그와 같이 누가 파일럿 피쉬처럼 만들어준 삶 속에서 숨 쉬기 편하게 지냈을 것이고 또 누군가의 파일럿 피쉬가 되어 다른 사람의 삶이 잘 다져지도록 만들었을지 모른다.
모든 것은 인간 혼자 이루는 것이 아니라 인연이 만드는 것이다. 만남도 헤어짐도, 사랑도 이별도. 그 모든 것을 인간은 자신이 만들고 가꿔나간다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단지 작은 수족관 속에서 인간에게 보여 지기 위해 헤엄을 치고 있는 물고기들처럼 인간도 누군가에게 보여 지기 위해 한정된 공간 속에서 한정된 사람을 만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내가 파일럿 피쉬인 동시에 누군가 나의 파일럿 피쉬였던 것이다.
나이가 든다는 건 자꾸만 과거를 곱씹게 된다는 것이다. 앞으로 나아가기보다 뒤돌아보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후회하고 미련을 갖고 자책하게 된다. 지나간 시간은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더욱 각인된 과거에 매달리게 되고 꼬리 잘린 개가 자신의 꼬리를 찾아 뱅글뱅글 맴을 돈다는 것의 부질없음을 알면서도 어느 순간 자신이 그 개가 되어 자신의 잘려나간 꼬리를 찾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왜 앞으로 남은 날들이 지나간 날들보다 더 소중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걸까. 지나온 날들을 후회하느니 남은 날들을 잘 보내려고 하련마는 인간은 그렇게 안 되는 존재인가보다. 미련하고 미련한 것 중에 인간만큼 미련한 중생이 없는 것 같다.
서로를 바라보는 끊어진 인연을 가진 두 사람이 절대 끊어지지 않았다고 말을 한다. 그럴지도 모른다. 인간은 누군가의 기억 속에, 누군가의 학습 속에, 한때의 사랑 안에 남고 그것으로 만들어지는 집합체일지도 모른다. 그 중 어떤 것이 좋았고 어떤 것이 나빴음을 따진들 19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같은 모습으로 양쪽 플랫폼에 서 있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모든 인연은 그것이 좋은 인연이든 나쁜 인연이든 맺고 끊음에서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을.
그러니 모든 파일럿 피쉬들인 우리, 그저 오늘이 고마워 내일을 살자. 내가 가꾼 수조 안에 다른 누가 들어와 살 때까지 그곳을 더 살기 좋게 만들면서.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