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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묘촌 ㅣ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 / 시공사 / 2006년 8월
평점 :
이 작품은 1908년 작인 메리 라인하트의 <나선계단의 비밀 The Circular Staircase>에서 최초로 사용했던 HIBK (Had I But Known)스타일을 따라 하고 있다. 시종일관 화자의 회고록에서 화자가 그때 이렇게 했더라면, 저렇게 했더라면 하는 생각을 독자가 따라 가게 만들고 급기야는 긴다이치 코스케가 알았으면 이렇게 했었어야지 하는 생각까지 하게 만든다. 그러면서도 <나선계단의 비밀>보다 더 재미있고 스릴과 긴박감이 넘치는 모험 소설의 느낌까지 주고 있다.
전설의 여덟 무사의 금괴를 탐해 그들을 죽인 뒤 마을에 재앙이 내리자 그들의 무덤을 만들고 신격화해서 마을 이름까지 ‘팔묘촌’이라 만든 한 마을에서 삼십년도 지나지 않은 참혹한 일이 그 일을 저지른 아들의 등장으로 재현되는 것처럼 독살이 잇따른다. 화자로 등장하는 그는 천애고아로만 알았다가 부잣집 상속인이라는 사실에 들떠 자신에게 어떤 재앙이 내릴지도 모른 채 자신이 태어난 마을로 들어서고 마을 사람들의 시선은 곱지 않은데다가 그에게 해괴한 편지와 악담까지 뒤따른다.
첫 발부터 ‘가지 않았더라면’ 이다. 그리고 때마침 그곳에 있던 긴다이치 코스케와의 만남도 그의 전작에서 알 수 있듯이 살인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역시 탐정보다 범인의 머리가 더 뛰어나다고 할 밖에.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은 <옥문도>와 마찬가지로 모리스 르블랑의 뤼팽의 느낌을 다분히 느낄 수 있게 한다. 또한 니키 에츠코가 말했듯이 약간의 변형과 손질로 범인을 자유자재로 누구로도 만들 수 있다. 그런 점이 이 작품을 계속 영화로 리메이크되게 하는 힘, 여전히 사랑받는 추리소설로 있게 하는 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읽으면서 생각해보기를. 책을 덮고 나서라도 나라면 누구를 어떤 이유로 어떻게 범인으로 만들겠는지를... 마지막까지 범인은 이 사람? 저 사람? 하게 만들고 덮고서도 이 사람이었다면, 저 사람이었다면 하게 만드는 마력을 가진 작품이다.
한편으로 읽으면서 긴다이치 코스케의 위상과 활약이 약간 미흡하다는 생각도 들 것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이 더 재미있어지고 주인공의 모험이 더욱 독자들을 사로잡은 거라고 말하고 싶다. 사사건건 탐정이 잘난 척 하며 등장한다면 긴장감의 흐름이 끊기게 될게 자명하다. 이런 점으로도 작가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다. 자신의 탐정을 조연으로 만들면서 작품을 돋보이게 한다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탐정은 작가의 분신과도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분신을 그림자로 만들면서 작품성을 높이는 작가의 작품이라면 그 작품의 명성이 오래가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닐까.
아가사 크리스티의 미스터리 로망과 모리스 르블랑의 뤼팽식 모험과 메리 라인하트의 방법이 묘하게 어우러지고 여기에 일본의 전설이 가미되어 고전 추리소설의 백미를 만들어냈다. 이 작품이 왜 사랑받는지는 읽어보면 알게 된다. 요코미조 세이시의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는 정말 계속 출판되어야 한다. 적어도 베스트 10은 나와 줘야 독자에 대한 예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