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킵 - 시간을 뛰어넘어 나를 만나다
기타무라 가오루 지음, 오유아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6년 5월
평점 :
품절


다 읽은 뒤 감히 왜라고 물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이 작품은 왜가 통하는 작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왜라고 묻는 순간 이 작품의 순수함과 마리코의 삶에 대한 열정은 빛이 바래져서 남루해져 버린다. 그렇게 만들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왜 라는 내 안의 물음을 던져버렸다.


책을 읽다보면 나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를 생각하게 된다. 나라면 어땠을까? 잠을 자기 전에 분명 열일곱 살이었는데 깨어나 보니 마흔이 넘은 아줌마에 동갑의 딸에 남편까지 있는 황당한 상황을 접하게 된다면? 그리고 학교 선생님으로 자신보다 한 살 많은 학생들을 가르쳐야 한다면 말이다.


이렇게 당당하게 매 순간을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지지 않기 위해 열심일 수 있을까? 과장이라고 하기엔 마리코의 순수함이 너무 맑다. 그리고 살아가면서 한번은 부딪치게 마련인 장애물을 이런 식으로 과감하게 넘어보고 싶은 것이 우리네 마음이다. 매 시간 주어진 현재에 충실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우리는 안다. 성실히 살았다고 생각하면서도 뒤돌아 지난날들을 회상해보면 늘 아쉽고 안타깝고 아깝게 생각되어 다시 한 번 그 시간이 돌아온다면 더 잘할 수 있을 텐데 하고 되뇐다.


마리코의 머리에 왜란 없다. 그런 생각보다 지금 있는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열심히 살아가려 한다. 늘 자신에게 충실한 사람이 된다는 것, 어느 순간이든 자기 자신의 모습을 잃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 이 작품이 가진 매력이며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다. 어제를 한탄하지 말고 오늘을 열심히 살라고. 그 하루하루가 모여 만들어지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하는 우리에게 마리코는 ‘아자’하고 외치는 것 같다. 마리코에게는 가장 좋아하는 말이 자존심이기 때문이다. 자존심 때문에라도 물러설 수 없고 인정하기 싫지만 숨을 수도 없다. 자기를 존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에게서 사라진 이십 오년이라는 세월보다 그녀 앞에 놓인 이십 오년에 충실하기로 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해 보인다.

 

마리코말고도 그녀의 딸이면서 동갑으로 어느 날 나타난 엄마를 이해하고 감싸주고 도와주는 미야코도 대단하다. 이제는 사라진 예전의 엄마를 그분이라 부르며 현재 엄마 안의 열일곱 살 동갑내기인 마리코를 이해해준다. 지금 말을 하지 않고 대화가 통하지 않는 많은 이 또래 아이들이 있는 부모와 자식들은 이 책을 같이 보길 바란다. 그리고 서로가 같은 나이라 생각하고 서로를 이해하려 애써보길. 그럼 아마도 문제는 저절로 해결될 것이다. 단절은 이해의 부제에서 나타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마리코의 남편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사랑하던 아내가 갑자기 열일곱 살이라고 하며 자신을 낯선 아저씨처럼 생각하는데도 그는 아내의 마음이 어떻든지 그녀가 하는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그녀가 자신에게 적응하도록 도와준다. 그러면서 오히려 자신이 잃어버렸던 것을 찾을 수 있었다며 고마워한다.


가족이란 이런 것이다. 서로에게 이런 존재여야 한다. 이런 존재만이 가족이라 할 수 있고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것이다. 낯선 감정보다는 우리에게 이런 것이 없다는 사실이 아쉬웠다. 이렇게 바라보는 시각이, 이런 순수함을 만들어내는 열정이, 삶을 바라보는 따뜻함과 나누는 깊이가.

 

'어제라는 시간이 있었던 것 같다. 내일이라는 시간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내게는 지금이 존재한다.' 이것이 마리코가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던진 말이다.


이제 책을 덮고 생각한다. 내 안에 마리코를 끌어내자고. 내게도 분명 있을 것이다. 강인하며 순수하고 맑은 마리코가. 내가 잊고 살았던 그녀가 지금 찾아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다면 찾아 나서야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저마다에게 깊숙이 감추어져 있는 마리코를 찾는 일이 아닐까 싶다. Skip! Skip! Skip! 가볍게 뛰면서 나아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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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져 2006-05-09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두님 리뷰는 skip 할 수 없어 꼼꼼이 읽었습니다 ^^
보관함에 일단 직행.
제게도 이런 마리코가 필요해요, 지금...흑.

mong 2006-05-09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읽어야 할것 같아요 ;;;

물만두 2006-05-09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레져님 안 읽으심 후회하실겁니다^^
몽님 읽어보세요^^

BRINY 2006-05-27 1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왓! 언제 Kitamura Kaoru의 SKIP이 다 번역되어 나왔드랬죠? 이거 3부작 무지 좋아하는데~

물만두 2006-05-27 1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브라이니님 이제 보시다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