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나리아
야마모토 후미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창해 / 2005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는 흔히 말을 한다. 훔친 사과가 맛있다느니, 놓친 버스가 더 아깝다느니. 진짜 그럴까? <플라나리아>에 나오는 주인공이 플라나리아로 태어나고 싶다고 했을 때 나는 이런 말을 해주고 싶었다. ‘아직도 산다는 게 어떤 건 만만해 보여?’라고. 플라나리아처럼 유방이 잘라도 다시 생겼으면 좋겠지. 등 뒤의 살을 베어내지 않아도 되고 말이야. 요지는 그건데 당신이 플라나리아로 태어났는데 실험실에 잡혀가서 온갖 이상한 실험 대상이 된다면 플라나리아가 된 당신은 또 이런 생각을 할 거야. ‘플라나리아보다 더 단순하고 남의 눈에 더 안 띄고 더 편하고 그런 거 뭐 없나?’


당신은 괜찮아. 그 가슴 드러내고 비키니 수영복 입고 수영장 갈 생각은 왜 못해? 남한테 유방암 환자라고 말은 하면서. 사실은 아니고 싶은데 돼서 속상한 거지. 안 겪어보면 모를 일들. 그래서 가끔은 ‘체험 수기 나는 이렇게 극복했다‘ 이런 책 보면 짜증이 확 밀려오잖아. 그런데 말이야. 다른 사람들도 다 거기서 거기라고. 비키니 못 입는 사람들 많고, 일 안하고 사는 사람도 많고 자기 단점이 장점인 냥 얘기하는 사람들도 많아. 단지 그런 얘기는 보통이라고 생각하고 당신 얘기는 보통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거야. 보통이 아니면 안 되는 세상이라서 말이지. 자장면도 보통이 있고 곱빼기가 있고 보통도 남기는 사람도 있는데.


이 단편집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현재진행형이다. 작가는 마지막에 그 어떤 결론도 내리지 않았다. <플라나리아>에서도 그 뒤 주인공이 어떻게 되었는지, <사랑 있는 내일>에서 주인공들이 결혼을 했는지 안했는지, <네이키드 Naked>에서 주인공이 일자리를 찾았는지 그 남자와 다시 만나는지, <어딘가가 아닌 여기>에서 마이 페이스로 어떻게 딸과 아들, 남편과 친정어머니를 어떻게 했는지, <죄수의 딜레마>에서 그 뒤 다시 만난 건지, 결혼만 안하고 만 건지 모두 알 수 없게 만들어 놨다. 왜냐하면 인생은 모두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이고 소설 속 주인공들의 삶 또한 작가가 마침표를 찍어주지 않는 한 계속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삶은 공식이 없는 것이다. 어떻게 살건 그건 개인의 문제다. 그것이 사회의 문제가 되지 않는 한.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과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을 버거워 한다. 그것은 그들이 궁극적으로 자신들의 짐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그래서 사회는 일탈을 죄악처럼 여기게 교육시켰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동의 의무를 비롯한 의무와 책임이라는 것을 지고 살고 있고 남에게도 똑같은 것을 요구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내심 한번쯤 이런 삶을 꿈꾸지만 선뜻 할 수 없기에 손가락질을 먼저 하는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들은 이들만의 삶을 산다. 그러니 보통이 좋은 사람들은 보통의 삶을 만끽하기를. 어차피 이들도 선택에 의해서 이렇게 된 것이 아니고 어찌어찌하다보니 이렇게 된 거니까.


일탈과 일상이라는 딜레마 속에서 오늘도 우리는 방황하고 있다. 한번쯤 벗어나고 싶다고 생각만 하면서도 다람쥐 쳇바퀴 돌듯 일상에 매달려 있다.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의 컨베이어 벨트에서 똑같은 일만을 하다가 모든 둥근 것만 보면 조이고 싶어 하는 채플린처럼 우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가차 없이 동일하게 살기를 요구하고 있다. 아니면 낙오자, 사회부적응자 등의 이름으로 그들을 분류해 내서 가지치기 하듯 잘라낸다.


작가의 삶이 이 단편들 속에 점점히 박혀 있는 것을 느낀다. 작가의 체험이지 싶은 내용들로 전 단편들이 이어지고 있다. 가지치기 당할 만 하다 싶다. 럭비공이 어느 방향으로 튈지 알지 못하듯 우리네 삶이 어떻게 될지는 죽을때까지 모르는 것이다. 그러니 죄수처럼 인생 가지고 남과 함께 저울질 하지 말고 그냥 살아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사는 게 뭐 별거냐고. 플라나리아처럼 살고 싶으면 살면 되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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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04-18 1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들은 자신과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을 버거워 한다.---제가 그랬다는 것을, 물만두 님의 리뷰를 읽고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종종 어떤 말은 들리는 순간 혹시, 하는 마음에 뒤돌아보다가 나였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방금이 딱 그런 경우였어요. 요즘 일본 소설은 거의 읽지 않았는데, 바로 읽고싶어지도록 만들어주셨습니다.

물만두 2006-04-18 1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드님 그러셨군요. 저도 그래요. 대부분이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겨울 2006-04-18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이 책 읽고서 와! 하는 감탄사를 터트렸는데, 지금은 다 까먹었어요. 손만 뻗치면 닿을 곳에 책이 있으니 언제든 다시 읽을 수 있어요. 초록색의 표지를 좋아했는데 어느새 바뀌었군요.

물만두 2006-04-19 1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다시 나왔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