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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턴
세실 바즈브로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3월
평점 :
공교롭게도 오늘은 장국영의 기일이다. 언제나 나는 그가 깊은 잠을 자고 있다고 생각을 하려 한다. 자신이 좋아하던 배우가 세상을 떠나도 아픔이 남는다. 그런데 자신의 생에서 가장 소중한 무언가 하나씩을 바다로 인해 잃어버린 사람들이라면 그들 마음속에는 어떤 것들이 남아 있게 될까...
<페리의 밤>은 페리호에서 연주를 하던 콘트라베이스 주자가 난파한 배에서 함께 연주하던 동료를 잃고 혼자 살아남아 삶을 이어가는 이야기다. 떠날 수도, 남을 수도, 연주할 수도, 그렇다고 추억할 수도 없는 한 남자는 사랑하는 남자를 잃고 떠나는 여자의 뒷모습만을 바라볼 뿐 여전히 그곳에 남는다. 그는 왜 떠나려는 시도조차 하지 못한 것일까. 사는 동안 누구나 상처 하나쯤 품고 산다. 그 상처가 아무는 이도 있고 평생 벌어진 채 덧나는 이도 있다. 아물면 아무는 대로, 덧나면 덧나는 대로 삶이란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것. 그때 마지막 연주로 모든 것이 사라졌듯이 꿈이 사라지면 그 당시 그것이 꿈이었는지 행복이었는지 몰랐다 하더라도 바다가 삼킨 것을 뱉지 않는 것처럼 그렇게 되어버리는 것. 끝나버린 야상곡을 리플레이할 수 없듯이.
<등댓불>은 난파하던 배를 본 등대지기의 이야기다. 그는 비로소 자신의 삶이 사라짐의 연속임을 깨닫는다. 이별과는 또 다른. 바다가 삼키듯이 사람들은 쉴 새 없이 떠밀려오고 떠밀려가는 가운데 자신만이 오롯이 남아 탐조등으로 그들을 비추고 있다는 두려움과 마주하고도 그는 다시 등대에 오른다. 삶은 선택이 아닌 깨달음이라는 것을 알려준 바다를 보러.
<바다로 보낸 병>은 아들을 바다에 잃은 노부부가 바다에 던진 병에 대한 이야기다. 진부한 얘기일 수 있지만 이 얘기는 소통에 대한 이야기다. 이해와 화해에 대한 이야기다. 한 번도 자식을 이해하지 못했던 노부부가 십년 만에 자식을 이해하고 그 꿈을 함께 나눌 수 있다는 것은 지금 소통부재인 시대에 반목만이 남은 오늘날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 지를 알려준다. 우린 과연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의 내면을 잘 들여다보고 있는 지. 무슨 생각을 하는 지 알기나 하는 것인지. 늦기 전에 한번쯤 생각해 보는 것도 좋으리라. 바다는 어쩜 삼킨 것을 뱉어내어 주는 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그것을 알지 못할 뿐인지도...
<혼자라면>은 아버지에 의해 강제로 바다에 묶인 형제에 대한 이야기다. 바다는 시커먼 속을 알 수 없는 눈으로 우리를 두렵게 하듯이 우리 또한 우리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것의 정체를 알지 못한다. 그 밤바다에 우리는 없었다. 각자 혼자만이 있었을 뿐이다. 아버지의 욕심과 어머니의 원망과 아내의 절망이...
바다는 누군가에게는 꿈이고 누군가에게는 공포다. 바다는 누군가에게는 삶이고 누군가에게는 죽음이다. 그 바다에서 삶이라는 야상곡이 흐른다. 그 야상곡이 어떤 곡인지, 내 바다에서 흐르는 내 야상곡은 어떤 곡인지 한번 이 작품들을 읽으며 잔잔히 생각해볼 수 있기를 바란다. 작은 네 편의 단편이지만 소품의 피아노곡의 아름다움을 무시할 수 없듯이 이 단편들의 호흡도 깊이 각인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