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한 권의 책이었다
소피 카사뉴-브루케 지음, 최애리 옮김 / 마티 / 200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한 설교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어떤 이들은 신을 발견하기 위해 책을 읽는다. 그러나 더 큰 책이 있으니 창조된 세계 자체가 그것이다. 사방 위아래를 둘러보고 눈 여겨 보라. 그대가 발견하고자 하는 신은 먹물로 글씨를 쓰는 대신 지으신 만물을 그대 눈앞에 두신 것이다.”라고. 여기에서 이 책의 제목이 나온 듯하다.


솔직히 말해서 이 책은 내가 원하던 그런 책은 아니었다. 나는 치우침 없는 자세를 가지고 글을 쓰는 사람을 좋아한다. 자신들만의 우월성을 내포하고자 하는 책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차라리 이 책의 제목이 중세 시대까지의 성경의 발달사라거나 기독교 서적에 포함된 글자 문양과 그림들의 다양한 변천사였다면 이해했을 것이다. 그런데 ‘세상은 한 권의 책이었다.’라고 하면 그 세상은 어느 세상이란 말인가? 바로 서구의 중세를 말하는 것이다. 그럼 프랑스 작가가 쓴 책이니 프랑스를 중심으로 쓰여 졌음은 이해하지만 다른 나라는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인가? 이런 물음만이 가득하다.


예전에 오르한 파묵의 작품 <내 이름은 빨강>이라는 책을 읽었다. 그 책에서는 세밀화가가 등장한다. 아마도 그 세밀화가가 여기에서 말하는 채식사가 아닌가 싶다. 그들이 나아가서 화가들과 경쟁하게 되었다고 하니 화가의 원류는 기독교서, 성경에 그림을 그리던 사람들이 시초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 채식사들은 수도사들의 일이었기에 이름을 남긴 이가 드물다. 또한 이런 아름다운 책은 매우 값비싸서 일반 대중은 엄두도 낼 수 없는 책이었고 교회의 수도사들과 귀족들의 전유물이고 황제나 황후, 대공의 후원을 받지 못하면 제작할 수 없게 되므로 희소성은 이루 말 할 수 없다고 하겠다.


책을 펼치면 내용이 무엇이든, 그림이 어떤 뜻을 담고 있든 아름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림만 봐도 족한 책이다. 하지만 정말로 그것만으로 족하지 않다는 것을 책을 덮으면서 생각하게 된다. 이 책에서는 철저하게 파피루스의 기원이 어디라는 것, 어디에서 들여왔다는 것은 알리면서 그들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할 수 없다고 적고 있다. 어찌 받지 않을 수 있을까. 문명이란. 문화란 돌고 도는 것이라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 같은 기독교 국가 간의 전쟁을 통해서 빼앗거나 배워온 것에 대해서는 말하면서 - 독일의 성서가 프랑스에 있는 이유 등 - 아랍권에서 들어오거나 혹은 채색 물감에서도 파란색을 얻기 위해 동방에서 수입해야 했기에 비쌌다고 말한 청금석이 있었음에도 그 물감 원료만 들여오고 같이 문화는 들어오지 않았을까 심한 의심을 갖게 한다.


작가가 이 책을 쓴 의도가 무엇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세상이 한 권의 진정한 책이 되기 위해서는, 또한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조물주가 말씀하신 자연이라는, 만물이라는 진정한 책을 얻기 위해서는 독선과 아집, 배타적 배척은 사라져야 할 것이다. 우리가 진정 신이 행하시고자 하는 것을 어찌 알겠는가마는 분명한 사실은 이런 화려한 서적의 등장도 아니요, 보석으로 치장한 겉포장의 물질적 상징도 아니고 그것들을 소중히 보존하면서 남의 나라 것에 대해서는 모르는 척 하는 행위 또한 아닐 것이다.


아름다운 책 한 권을 잘 읽고 체한 듯 가슴이 답답한 것을 그들은 알까. 지금 그들이 소중히 여기는 많은 문화유산들이라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말이다. 다시 한 번 나는 프랑스적인 우월주의와 다른 나라에 대한 무시를 느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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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3-20 15: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물만두 2006-03-20 1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생각하고 있었어요^^

sooninara 2006-03-20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본에선 중국의 영향을 받았다고는 하면서 한국의 영향은 없다고 우기잖아요.
그나마 큰나라에서 들여왔다고 하는게 더 좋다는거죠.
그거 볼때마다 웃기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인들도 몇대조 할아버지가 어쩌고 하면서 뿌리 찾기 해서 영국 귀족 나온다고 자랑하는거 보면....프랑스뿐 아니라 그런 우월주의는 제국주의 나라들이 심한것 같아요.

물만두 2006-03-20 1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니아우 세상이 다 그런데 책까지 그렇게 쓰진 말았음 좋겠는데 참... 읽은 나를 탓해야지 ㅠ.ㅠ

반딧불,, 2006-03-20 1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슬프죠 뭐.
이제 괜찮으신지 모르겠습니다.

물만두 2006-03-20 1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딧불님 그럭저럭입니다~

비로그인 2006-03-21 1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소개에 유럽중세의 책문화라고 소개했으니 흠은 아니죠. 제목때문에 저도 읽으면서 동양은 왜 없을까 했는데 동양은 우리가 써야죠. 얇은책에 너무많은것을 담으면 집중도가 떨어지고 산만해집니다. 화려한 도판을 보는 시각적인 효과가 이책의 장점입니다.
오르한 파묵의 <내이름 빨강>읽었는데, 유럽이 투르크를 이긴 이유중의 하나가 인쇄술때문이라고 합니다. 19세기까지 투르크는 필사를 했으니 지식보급이 늦은거죠.

물만두 2006-03-21 1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담뽀뽀님 가끔 제목에 흥분할때가 있어요. 뭐 그들의 성향이고 시각적인 면에서는 돋보이는 책인데 작은 글귀 하나가 약간 그랬습니다. 마지막에요. 그리고 책 초기에 파피루스가 전해진 것은 이슬람권이니 뭐 오고 가고 했을것이라는 거죠. 지식면에서는 그들이 중세 이전에 이미 우월했구요. 인쇄술이라면 그렇지만 필사라면 늦은 건 아니죠. 또한 세상을 너무 자신들 중심으로 본다는 점이 그렇다는 거죠. 중국도 세상이 자기들 중심으로 돈다고 생각했으니 같은 시각에서 그렇다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