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꾼 여자들
기타무라 가오루 지음, 정유리 옮김 / 북하우스 / 2006년 3월
평점 :
절판


아라비안나이트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한번쯤 이런 생각이나 상상을 했을 것이다. 잠이 안 올 때라던가, 무료하고 심심할 때, 누군가 나에게 재미있고 환상적인 이야기를 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마 이것은 어린 시절 베갯머리에서 손자에게 옛날이야기 해주시던 할머니를 그리워하는 그럼 심정과 맞닿아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 작품 속 이야기꾼 여자들을 모으는 남자도 그런 생각으로 이 일을 시작했다. 그는 바닷가 저택에 비스듬히 의자에 기대거나 누워 여자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여자들은 각양각색이다. 이야기를 들어준다기에 온 여자도 있고 자신의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하고 싶어 온 여자도 있다.


첫 번째 얘기부터 독사를 사로잡는다. 환상적인 대나무 숲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들려주는 여자에게 일어난 일은 환타지적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야기는 몽환적이기도 하고 현실적이기도 하고 오싹하기도 하며 단순하기도 하다.


<초록 벌레>, <걸을 수 있는 낙타>, <잠자는 숲>, <스이코(水虎)>, <매화나무>는 환상적인 느낌이 강한 작품들이다. 일본의 전래 동화나 다른 나라의 동화, 혹은 요괴 이야기 같은 것들이 섞여 오묘한 맛을 내고 있다.    

 

<내가 아니야>, <어둠의 통조림>, <글자>, <전혀 다른 이야기>는 약간 오싹한 공포와 SF적인 느낌을 주는 단편들이다. 특히 <글자>는 보르헤스적인 남미 소설 특유의 환상 소설적 느낌을 주는 작품이었다.


나머지 작품들은 추억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작품들과 소통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들이다. <사각의 세계>와 <바다 위의 보사노바>는 인간들이 소통하는 방법이 다를 때 우리를 일깨워 주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문명과 문화에서 오는 소통의 부재와 인간 개인의 생각에서 오는 소통의 부재에 대해서 말이다.


<선물>, <몸>, <여름의 나날들>, <러스크 님>, <마술>, <Ambarvalia>는 추억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낭만적이기도 하고 약간은 진부하기도 하지만 어린 시절 우리가 친구들, 부모님과 함께한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같이 놀던 친구들, 나의 첫사랑, 아버지와의 놀이... 지금은 다 잊었다 생각하는 것들이 파도처럼 잔잔하게 밀려온다.


이 단편집은 17편이나 수록되어 있어 각기 짧은 이야기들이다. 그래서 근사한 천일야화를 생각하면 안 된다. 하지만 천일야화보다 더 좋다. 나이가 들어 그런 지어낸 얘기보다는 나도 겪었음직한, 나도 한번쯤 꿈꾸었을 법한 이야기가 더 마음에 와 닿는 것이므로...

 

지금도 어느 바닷가에는 자신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러 오는 여자들을 기다리는 남자가 파도소리에 몸을 맡기고 넘실거릴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나에게 이야기해주는 많은 사람들을 기다리지 않아도 만날 수 있다. 많은 책속에서 많은 이야기들을 만나므로... 내 방에는 이야기꾼 여자들은 찾아오지 않아도 이야기꾼이 숨 쉬는 책들은 많다. 그러므로 세상 공평한 것 아닌가. 부자가 아니어도 이렇게 좋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으니...


이 작품에서는 17개의 단편이 있고 그 단편마다 어울리는 삽화가 있다. 그 삽화가 더 근사하다. 아마 이 책을 놓치는 독자는 두 가지를 놓치게 되는 것이 될 것이다. 그리고 작품이 자신의 생각과는 달리 그저 그랬다 싶어도 한 가지는 건질 수 있다. 그림... 마지막으로 이 작가가 추리소설 작간데 이런 작품으로 만나게 돼서 안타깝다. 기회가 된다면 이 작가의 추리소설 출판을 부탁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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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dai2000 2006-03-14 0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오즈 이치의 <쓸쓸함의 주파수>와 이 작품 중에서 장고를 하다 오즈 이치를 샀는데 이 책도 좋을 것 같습니다. 역시 장바구니로 들어가야겠군요. 저도 이 작가의 추리소설, 특히 유명한 <밤의 매미>를 읽어보고 싶네요. ^^;;

물만두 2006-03-14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님이 이리 찌르시는군요^^ 저도 밤의 매미 보고 싶어요 ㅠ.ㅠ

stella.K 2006-05-18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자가 죽었나요? 땡기네...

물만두 2006-05-18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자가 죽었다구요? 아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