쨍한 사랑 노래 문학과지성 시인선 300
박혜경.이광호 엮음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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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아주 먼 옛날에 한 남자는 한 여자를 사랑했다. 동그란 카라가 달린 노란 블라우스를 입고 계단을 내려오던 커트 머리의 그 여자에게 그 남자는 첫눈에 반했다. 그리고 같은 그 먼 옛날에 한 여자는 한 남자를 사랑했다. 남산에서 공갈빵을 사준다며 낡은 바지 주머니에서 소중하게 꺼내던 깨끗하고 반짝반짝 빛나던 십 원짜리 지폐 한 장에 그 여자는 남자에게 반했다고 한다.


그 남자와 그 여자는 결혼을 해서 아이를 셋 낳고 호호 할아버지와 호호 할머니가 되어버렸다. 지금 그들은 서로를 웬수라고 부른다. 불쌍해서 살아준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 남자는 문을 열고 들어와서 그 여자가 없으면 불안해 안절부절 못하고 그걸 아는 그 여자는 문 여는 소리만 들리면 “여보, 왔어?”를 크게 외친다.


사랑을 한번도 해보지 못한 나는 이런 사랑만을 알뿐이다. 그런데 이런 사랑이면 족하지 않을까. 한 세상 쨍한 사랑이 어떤 사랑인지는 몰라도 가슴 짠한 사랑을 하는 이를 보는 것, 그들의 자식으로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나는 노래 부른다.


내가 읽었던 시도 있고 처음 읽는 시도 있다. 사랑은 각자가 느끼고 각자가 품는 것이니 시인들의 시를 뭐라 말하고 싶지 않다. 다만 아직도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는 유행가처럼 사랑을 노래하는 시, 시인들은 여전히 있다는 생각에 사랑, 그것은 질기고도 지독한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산다는 것은 사랑을 한다는 것이라 했던가... 사랑을 한다는 것, 사랑의 시를 쓴다는 건 그래서 일상일 뿐이다. 모두... 그 일상은 또한 지루하고 남루하며 허무한 것이기도 하다. 쨍한 사랑이라... 사랑 앞에 쨍이라는 것이 붙고 보니 유리창 깨지는 소리처럼 들린다. 유리창은 깨져서 햇빛을 받아 그래도 반짝이고 누군가 밟고 간 이의 피로 물들어 색을 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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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5-08-18 1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만두님, 쨍하고 짠한 리뷰입니다.^^

물만두 2005-08-18 1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솨^^

플레져 2005-08-18 2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두님, 뭉클한 리뷰네요. 오늘 너무 허무하게 보내서 속상했는데, 사랑하며 보낸 날이라고 생각해야겠어요...

물만두 2005-08-18 2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인생 별건가요^^ 생각하기 나름이죠^^;;;

진주 2005-08-19 2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휴, 제가 쓰려고 했던 댓글을 로드무비님이 그대로 하셨네요.신기하네~
"만두님 리뷰도 쨍하고 짠합니다!"
하고 쓰려고 했거든요.

물만두 2005-08-19 2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