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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전당포 살인사건
한차현 지음 / 생각의나무 / 2003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살인 사건이라는 말만 가지고 책을 사지 말자고 맹세하게 된 작품이다. 물론 그 맹세는 지켜지지 않았다. 이 작품에 대한 평이 무척 좋았고 많은 사람들이 읽기에 - 원래 그러면 더 안 읽게 되는데 - 한국 추리 소설을 의무적으로라도 읽겠다고 다짐한 것 때문에 망설이지 않고 샀다. 그리고 읽었다. 이제야 서평을 쓴다. 왜냐하면 정말 어이없었기 때문이다. 난 제발 작가들이 아무 작품에나 살인 사건이라는 제목 좀 붙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추리 소설이 작가들, 특히 우리나라 작가들 눈에는 하위 장르의 하찮은 작품들로 보일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함부로 대하며 독자를 우롱할 권리는 없다.
언젠가 작가를 가두고 글을 쓰라고 하고 싶은 작가를 조사했었다. 그때 나는 이 작가가 생각났다. 가두고 글 못 쓰게 하고 싶은 작가로... 이 작가 좋아하는 독자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이 작품의 결점은 작가의 노골적인 정치 색이다. 비판은 은근하고 은유적이어야 더 사로잡을 수 있는 매력으로 다가오는 법이다. 하지만 작가는 너무 노골적이었다. 그래서 시원했을 지는 몰라도 소설로서 적어도 독자를 생각하는 작가라면 이런 식으로 자신의 소설을 더럽힐 수는 없다. 차라리 공개 비판의 글을 쓸 것이지 뭐 하러 소설을 쓴 단 말인가. 그것도 장르를 알 수 없는 SF도 아니고 추리 소설도 아닌 형식을 취하면서 말이다.
이런 작가들이 있어 우리 나라 장르 소설이 발전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 유치하기 그지없다. 비슷한 색깔을 가지고 쓴 작가의 단편을 소개한다. 일본 SF 작가인 츠츠이 야스다키의 <인간 동물원> 중에 있는 <원시 공산제>다. 같은 파시즘에 대한 비판이지만 얼마나 판이하게 다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일본 에니메이션 <공각기동대>에 등장하는 쿠사나기 모토코까지 등장시킨다. 그러면서도 이 정도가 작가의 한계이다.
작가는 비판적이어야 하지만 그 비판을 작품에서 편향되지 않은 시각으로 녹여 낼 줄 알아야 한다. 이미 중심을 잃은 작가가 쓴 글은 결코 잘 설 수가 없다. 작가가 이것을 깨닫기를 바란다. 소설을 화풀이 대상이 아닌 글쓰기 대상으로 삼기를. 독자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려면 직접적이 아닌 간접적이어야 한다. 그리고 시야를 넓히기를. 작가가 우물 안에서 울기만 하는 개구리가 될 것인지 그 우물에서 벗어나 넓은 호수를 찾을 것인지 지켜보겠다. 하지만 당분간 당신의 책을 읽을 생각은 없구료.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오시리스 살인 사건>이 훨씬 잘 쓰여진 작품인데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더 많이 팔렸다는 점이다. 많이 팔리는 작품이 좋은 작품은 아니라는 사실이 또 한번 입증된 것인가...